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재현되는 제사장이자 하느님의 백성이 미사 때에 다 함께 참여하는 주님의 식탁이며, 제관이고 제물이며 살아 있는 돌이고(1베드 2. 4)모퉁잇돌인(에페 2, 20)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성당 건축의 중심점이자. 미사의 중심 장소이다.
성당 건축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비의 표지라면, 제대는 교회의 원천이요 머리이며 중심인 그리스도 신비의 표지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리스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제대 없이 그리스도를 언급할 수 없다" 라고 데살로니카의 시메온(Simeon Thessalonicensis)은 말하였다. 이처럼 제대는 전례 거행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용 어〕 고전 라틴어에서 제대를 가리키는 용어는 '아라' (ara) , '알타레' (altare) , '멘사' (mensa) 등의 세 가지가 있다. 이 용어들은 각각 그리스어의 '보모스' (βωμος), '튀시아스테리온' (θυσιαστήριον), , '트라페자' (τράπεζα)를 번역한 용어들이다.
이 용어중 '아라' 는 정기적으로 자주 사용된 용어인 반면, '알타레' 는 사용된 예가 매우 드물다. 그 대신 맨사' 는 타지 않는 봉헌물인 음식이나 꽃, 과일들을 올려놓기 위해 신전 내부에 배치된 탁자들을 가리켰다. 구약에서 제대를 뜻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사용된 용어는 '튀시아스테리온' 이다. 그리고 '보모스' 는 구약에서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이 용어가 이교인들의 제대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반면 '트라페자' 는 빵을 올려 놓는 야훼의 식탁을 가리키는데, 간혹 하느님의 제대와 관련되어 언급된다(에제 41, 22 ; 44, 16 ; 말라 1, 7.12). '트라페자' 가 이교인의 제대와 관련되어 사용된 것은 오직 한 번뿐이다(이사 35, 11).
신약에서 '보모스' 는 구약과 같은 양상으로 사도행전 17장 23절에 단 한 번 나타나는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 봉헌된 제대를 가리킨다. 반면 '튀시아스테리온' 은 히브리서 13장 10절과 요한 묵시록에 드러나는 의미를 제외하고는 항상 구약 성전의 제대를 뜻한다. 그리고 트라페자' 는 그 용어가 가진 속성 때문에 가정의 식사 장소 이외의 성전에서 거룩한 빵을 올려 놓은 식탁, 예수가 수난 전날 최후 만찬을 거행하였던 식탁, 하느님 나라에서 제자들이 그 주위에 모이게 될 식탁을 가리키고 있다. 이용어는 또한 '주님의' (του Κυρίου)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되어 우상들에게 바친 고기를 올려 놓는 식탁에 반대해서 성찬의 식탁을 가리킨다.
교부 시대의 그리스도교 문학은 일반적으로 신약성서 편집자들에 의해 묘사된 것을 취하고 있다. 그리스 저술가들은 그리스도교 제대를 가리키기 위해 거의 절대적으로 '보모스' 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튀시아스테리온' 이나 '트라페자' 란 용어를 제사적 성격이나 성찬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서로 다르게 사용하였다. 이 두 가지 용어에 대해서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634/640?~733)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믿는 이들에게 '트라페자' 라는 용어는 살과 피를 영원한 생명의 음식으로 제공하는 참된 빵인 그리스도가 제대 위에 놓여 있다는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으며, '튀시아스테리온' 은 십자가의 제사를 기념하는 장소를 나타내기 때문에 신약의 타지 않는 제사를 완성한다고 하였다.
성찬의 식탁을 가리키기 위하여 가장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사용된 용어인 '트라페자' 는 전례문에서와 같이 교부들에 의해서도 형용사와 관계 2격에 의해 그 성격이 규정되었다. 즉 거룩한 식탁(Mensa sacra), 주님의 식탁(Mensa Domini), , 신성 불가침한(Inviolable) 천상의(Divi-na) 식탁(그 식탁 위에서 천상 신비를 완성한다는 관점에서),고귀한(Onorabile) · 거룩하며 전례적인(Sancta et litur-gica) · 전율이 흐르는(Tremenda) 식탁 등이다.
제대에 대해 데살로니카의 시메온은 "교회에는 전율이 흐르는 식탁(Tremenda Mensa)이 있다. ··· 모든 이에게 예수님은 살아 있는 음식이요 기쁨의 음식이며, 용기를 주는 빵이며, 기쁘게 하고 생기를 주고 뜨겁게 하며 취하게 하고 가장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포도주 잔이기 때문에 '멘사' (식탁)라 불린다" 라고 설명하였다. 라틴 저술가들도 일반적으로 같은 의견을 따르고 있지만, 성찬의 제사적인 의미에 더 민감한 그들은 고전 작가와는 달리 '알타레' 란 용어를 사용하기 좋아하였다. '멘사' 라는 용어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이따금 사용되었지만, 아프리카 저술가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였다.
치프리아노(?~258)는 카르타고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함께 모여야 하는 장소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하나의 '멘사' (제대)를 준비하였다고 전해준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주님의 제대'(MensaDomini)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문학이나 그리스인들뿐만 아니라 라틴인들의 전례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존엄한 천상 제대" (altare sublime)라는 표현이다. 비잔틴 전례에서도 "이 제물에 강복하시고 당신의 존엄한 천상 제대에(in altare sublime) 오르게 하소서"라는 표현이 있다. 그리고 요한 그리소스토모(344/354?~407)의 감사 기도에서도 "당신의 거룩한 천상 제대(단)에 영적 감미로움 안에서 선물을 받아들이신 자비의 우리 주 하느님은 그 보답으로 천상 생명의 선물을 우리 에게 보내 주신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로마 감사 기도문에도 나타난다. "전능하신 아버지, 간절히 청하오니, 거룩한 천사의 손으로 이 제물이 존엄한 천상 제대(in sublime altare)에 오르게 하소서. 그리하여이 제대에서 성자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마다하늘의 축복과 온갖 은총을 가득히 내려주소서"(감사 기도 Ⅰ).
이상의 고찰을 통해 제대를 가리키는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예식을 논하면서 일상 생활의 용어를 더 즐겨 사용하였다. 그리고 오역의 위험이 없고 용의주도하게 신중을 기할 때 구약의 용어를 취하며,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조명하에서 성전 예식을 고려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목적으로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멘사' 라는 용어를 더 즐겨 사용하였다. '알타레' 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는 히브리서 10장 13절처럼 우리와 모든 이를 위해 희생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장소라는 관점에서이다.
〔역사적 변천〕 초기 시대 :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제대 형태는 식탁, 무덤, 그리고 제대라는 세 가지 독특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식탁으로서의 그리스도교 제대 출발점은 최후 만찬의 성체성사였다. 예수가 새롭고 놀라운 의미를 부여한 유일한 파스카 만찬이 거행된 것도 바로 나무로 만든 식탁에서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개인 집에서 계속해서 성찬례를 거행하였으며, 성찬례를 거행하는 것과 친교의 식사를 연결시켰다. 그러나 사도 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성찬례에서는 변화적 성격을 띤 식탁과 제사적 식탁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때까지 제대는 전례 용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식탁이란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그 식탁 주위에서 신자들은 아가페 음식을 먹었으며, 그 식탁에서 주교는 사제들과 함께 성체를 축성하였다.
이처럼 초기 시대에는 이교인들을 이해시킬만한 참되고 고유한 제대가 없었다. 그래서 이교인들은 제사용 식탁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즉시 아가페 식사와 구분해 성찬 신비를 더 강조함으로써 축성 예식은 고유한 식탁에서 거행되었다. 그 고유 식탁은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것처럼 '주님의 식탁' (Mensa Domini)이라 불렸는데, 아마도 귀족 집안에 있는 가구 가운데 흔히 볼 수 있는 다리가 3개로 된 식탁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부제들은 적절한 순간에 그 식탁을 지정된 장소에 배치하여 그 위에 빵과 포도주를 올려 놓았으며, 주례자는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였다.
갈리스도 카타콤바의 '성사들의 경당' (Capella dei Sa-crament)에서 제대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묘사로 여겨지는 그림을 통해 그와 같은 제대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망토를 입은 한 인물이 빵과 물고기가 놓여 있는 삼각대의 식탁 앞에 서서 이 식탁 위에 놓인 빵과 물고기를 향해 축성의 동작으로 손을 펼치고 있다. 희생 제사를 위해 이 식탁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축성된 것이 라는 특별한 유산을 부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제대 축성은 그 위에서 희생 제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 외에 다른 의식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으로, 카타콤바의 프레스코화에서 묘사된 나무 식탁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것은 정방형이고, 어떤 것은 원형이고, 어떤 것은 반원 모양이며, 어떤 것은 다리가 세 개이지만 네 개인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처럼 초기의 성찬 아가페 식탁에서 발전한 3세기의 제대 식탁(atare-menea)은 원이나 사각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재질은 목재로 되어 있다. 제대 식탁은 히폴리토(170~236)의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제대 위에 성찬 요소와 다른 봉헌물을 올려놓아 축복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만들어졌다. 초기 나무제대들은 현재 로마의 성 요한 라테란 대성전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로마의 성 푸덴시아나 성당에도 다른 제대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아울러 아우구스티노 역시 도나투스주의자들이 일으킨 분쟁에 대해 언급할 때, 나무 제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해 주고 있다. "그가(주교가) 제대에 서 있을 때, 그들이 곤봉과 그와 같은 무기로 그를 잔혹하게 쳤으며, 마침내는 깨진 나무 제대로 쳤다." 이러한 나무 제대들은 교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4세기 말부터 나무로 만든 제대가 적지 않게 불편하다는 것이 거론되면서 점차적으로 돌로 대치되었다. 또한 이시대에 동방 교회에서는 미신적인 이유로 나무 제대들을 실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돌 제대 사용은 교황 실베스테르 1세(314~335)에 의해 최초로 정식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의 재료로 돌을 주장한 첫 인물은 요한 그리소스토모로 보인다. 돌 제대에 관한 또 다른 언급은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제대는 본성상 벽을 만들거나 도로를 포장하는 데 사용하는 돌과 다를 바 없는 보통의 돌이다. 하지만 일단 축성하고 하느님께 드리는 경신례를 위해 봉헌한 후에는 거룩한 식탁, 즉 흠없는 식탁이 된다." 처음으로 나무 제대의 사용을 금지하고 돌 제대를 공식적으로 규정한 것은 517년 프랑스 에파오(Epaon) 교회 회의이며, 1140년에 편찬된 《그라시아노 법령집》에 의해 전세계 교회에서 지키도록 구체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11세기까지 나무 제대가 계속 사용되었고, 에디오피아 교회에서는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순교자들의 유해와 연결된 고정 돌 제대 : 콘스탄틴 대제 시대(306~337)의 출현으로 제대는 새롭게 변화되면서 세 가지 주요한 성격을 드러냈다. 첫째, 나무 제대는 사라지고 견고한 재료인 돌이나 대리석, 값어치 있는 금속으로 제대를 만들었다. 둘째, 제대가 지면(땅)에 고정되었다. 셋째, 제대는 순교자들의 유해와 연결되었다.
제대에 대한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음으로써 박해의 위험이 사라지게 되어 옮겨다닐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바실리카(Basilica)를 성당으로 개조하거나 처음부터 교회의 전례 집회를 위한 건물로 건축함으로써 내부의 중앙에 준비했던 나무 제대 대신 바실리카의 토대를 쌓을 때 이미 제대를 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건물 전체의 중심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라 여겼기에, 제대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건물을 상징하는 돌로 쌓아 올린 건축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신비적 사고는 제대가 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희생 제사의 제대로 간주되었다. 또한 그분은 '살아 있는 돌들' 인 신자들의 거룩한 성전이 세워져야 할모퉁잇돌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가 돌 제대에 의해 보다 명료하게 제시되었다.
돌 제대를 만드는 관습은 곧 순교자들에 대한 의식과 연결되었다. 그리스도의 상징인 제대는 그리스도의 구성원들이 없으면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순교자들은 가장 밀접하고도 뛰어난 구성원들로 여겨졌다. 이는 그들이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리를 빨은' 자들이고, '하느님의 제대 아래' 있는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신비적 용어는 순교자들의 유해가 제대 안에 모셔짐으로써 곧 현실화되었다.
제대에 성인들의 유해를 넣는 관습은 흔히 얘기되는 것처럼 박해 시대 때 카타콤바에서 순교자들의 석관(sacro-phagio) 위에서 성찬례를 직접 집전했다는 진위가 분명하지 않은 예식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보다 그럴듯한 기원은 콘스탄틴 대제 이후 순교자들을 기념하여 지은 성당들이 많아지면서 제대를 가급적 순교자들의 무덤과 가깝게 하려고 교회 바닥 밑의 무덤 위에 직접 제대를 세우거나, 가능하다면 제대 안에 석관을 합체하려고 했던 열망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특별 효과를 위해 사용된 방법들은 매우 다양하였다. 그중 일부는 제대 위의 한 부분을파고 그 안에 유해를 모셔 두거나 제대 안에 순서대로 모셔 놓은 값비싼 상자 안에 안치하기도 하였다. '칸첼래'(Cancellae) 또는 '페네스텔라' (Fenestela)라고 불리는 제대 앞의 창을 통해 신자들은 유해를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직접 몸으로 다가설 수도 있었다. 신자들은 순교자들에 대한 깊은 신심에서 관습적으로 천이나 다른 물건들을 창을 통해 넣었는데, 이는 성인들의 무덤이나 석관과의 접촉을 통해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다 치밀하게 배열한 곳에서는, 성당 바닥 밑의 작은 방에 있는 순교자의 무덤 바로 위에 제대를 놓기도 하였다. 성인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콘페시오' (Confessio) 또는 '마르티움' (Martyrium)에 접근하는 것은 제대에 이르는 계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성인들의 시신을 나누는 것은 7~8세기에 들어오면서 평석 제대의 상층부에 좁은 구멍 속이나 '세풀크룸' (Sepulcrum)으로 알려진 깊은 창안에 유해를 넣고 봉합하는 관습으로 나타났다. 성인들의 시신을 안치하는 것과 아울러, 세 조각의 축성된 성체뿐 아니라 매장했음을 드러내는 세 알의 향을 함께 넣기도 하였다.
500년경 일부 지역에서 축성 예식 중에 주교들이 제대 윗면 중간과 네 모퉁이에 십자 표시를 하면서 크리스마 성유로 도유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식탁을 이전에는 성수로 씻었기 때문에 제대 축성과 세례와 견진 예식 사이의 두드러진 연결이 강조되었다. 에파오교회 회의 26항은 이와 같은 유형의 도유가 돌 제대가 아니라면 허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제대를 축성하는 이 특별 예식은 갈리아 전례에서 기원하였기 때문에 로마 전례에서는 8~9세기에 가서야 채택되었다.
그러나 돌 제대만이 축성될 수 있다는 에파오 교회 회의와 그 후 교회 회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나무 제대에서 성찬례를 집전하는 일이 생겼다. 교회가 없는 나라를 여행하는 선교사들, 십자군의 경우처럼 주둔지를 따라 이동하는 군인들, 선박에서나 그 외 다른 경우돌 제대 대신에 나무 제대의 사용을 허용하였다. 아울러 주요 인물들의 집과 성 안에는 대개 경당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미사가 집전된 때도 있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서 '특별한 형태의 제대' (성석)가 고안되었다. 성석은 조그마한 직사각형 혹은 정방형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주교가 축성한 후 사제가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미사를 집전할 때, 이 정향형의 돌을 축성되지 않은 제대 안에 삽입할 수 있었다. 또는 단순히 식탁 중간에 놓고 그 위에 성작과 성반을 놓고 성체성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닫집 형태로 덮인 제대 : 4세기에 이르러 제대 주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제대위 전체를 덮는 닫집 형태〔天蓋〕의 구조물인 '발다키누스' (baldachinus) 또는 '치보리움' (ciborium)이 세워졌다. 이것은 대개 돌, 대리석, 나무 또는 금속으로 제작되었는데, 나무로 된 것들은 대개 금속으로 씌워졌다. 콘스탄틴 대제가 라테란 대성전에 봉헌한 닫집처럼 은으로 만들어진 예도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재료는 돌이나 대리석이었다.
초기에 만들어져 현재 남아 있는 완전한 '치보리움' 은 없다. 물론 후대의 '치보리움'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것은 중부와 북부 이탈리아의 성당들에 있다. 원래 위치에 남아 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812년에 세워진 것으로, 라벤나의 성 아폴리나리우스 성당에 있다.
14세기 이후, '치보리움' 은 제대를 제대 벽이나 큰 창문이 있는 동쪽 벽에 위치시키는 변화된 조건에 적응해 야 하였다. 채광을 고려했던 북유럽에서는 크고 넓은 창문을 동쪽에 설치하였다. 이처럼 특이한 조건 때문에 무거운 기둥들 위에 놓여져 있는 '치보리움' 은 하나의 장애물로 여겨졌기에, 이 상황에 맞게끔 적용시켜야 했다. 제대 주변의 기둥들은 존속되었지만, 그 기둥들은 닫집이 아닌 커텐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보다 가느다란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반면, 성당에 자연광을 최대로 들어 오게 하기 위해, 원래 있던 닫집은 창문 위로 올라가 지붕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원래의 정방형 형태를 계속 지녔고 제대 상단과 제대 모두를 덮었다. 그리고 로마와 중부 이탈리아에서는 대리석을 사용하여 만든 '치보리움' 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크고 정교한 상부구조물들에 대한 이러한 열광의 결과로 희생 제사의 식탁인 제대 자체는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본래의 의미를 모두 상실하게 되었고, 교회의 중심점이 되지도 못하게 되었다.
〔신학적 의미와 규정〕 신학적 의미 : 《로마 미사 경본총지침서》에 의하면, "제대는 십자가의 제사가 성사적 표지로 현재화되는 장소이자 동시에 미사 때 하느님 백성이 다함께 참여하는 주님의 식탁이다. 또한 제대는 성찬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감사 행위의 중심이기도 하다" (총지침 259항)라고 언급하였다. 《성당과 제대 봉헌예식서》는 또한 식탁으로서의 제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제대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준비하는 식탁" 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제2장 62항). 이런 의미에서 주교는 공동체를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여기서 당신 신자들이 제대 주위에 모여 파스카의 신비를 기념하여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체의 음식을 나누어 먹게 하소서 "
그리고 제대가 봉헌될 때, 제대 봉헌 기도에서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에 의해 세워진 제대를 상기한 후 주교는 기도한다. "이 성당에 마련된 이 제대를 천상으로부터 거룩하게 하시어, 영구히 그리스도의 제사를 재현하는 제대가 되고 주님의 만찬 식탁이 되게 하소서. 여기서 당신 백성이 천상 잔치를 맛보리이다"(제4장 48항). 이기도문의나머지 부분도 제대가 "기쁨의 식탁"이고 "친교와 평화의 장소"이며 "일치와 형제애의 원천", "기도와 감사의 중심"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제대를 봉헌할 때 사용되는 감사송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주님의 만찬이 준비되어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당신 자녀들이, 하나이며 거룩한 교회를 형성하나이다." 이처럼 교회 문헌의 언급을 통해 볼 때, 제대의 품위는 전적으로 제대가 '주님의 식탁' 이라는 사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규정 : ① 오직 하나의 제대 : 새로 짓는 성당에는 제대 하나만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므로써 신자들에게 한 집회에 하나의 제대가, 한 분이신 구세주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한 성체를 표시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주간에 소규모 신자들로 성찬례가 거행되는 소성당이 있다면 다른 제대를 그곳에 설치해도 좋다. 그러나 본 성당과는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당 내부를 장식할 목적으로 여러 개의 제대를 설치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성당 안에 제대를 한 개 이상 두면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무시되기 쉽다.
제대는 공동 집전을 위해 설계되어 있지 않다. 거룩한 식탁을 길게 늘여 놓는 것이 아니라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형태로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어야 하고, 감동적이며 품위 있고 고상한 식탁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아름다운 재질로 제작되어야 하며, 순수하고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오랜 전통을 따라 제대에 내포된 성격상 상징적인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고정 제대의 윗면은 돌이어야 하고 특히 자연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튼튼하고 고상한 다른 재료로 된 고정제대와 이동 제대를 사용해도 좋다. 제대를 받치는 다리는 튼튼하고 고상한 재료이면 어떤 것을 사용해도 좋다.
② 고정식 제대와 이동식 제대 :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서》에 의하면, 제대에는 고정식과 이동식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고정 제대란 바닥에 붙어있어 움직일 수 없는 제대이고, 이동제대란 움직일 수 있는 제대이다. 모든 교회에 고정 제대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고, 미사를 드리는 다른 거룩한 장소에는 고정된 제대나 혹은 이동식 제대를 둔다.
제대가 고정식이거나 이동식이거나는 문제 되지 않고, 다만 사제가 그 주변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고려하고 성찬례가 회중을 향하여 거행되도록 하면 된다. 또한 제대를 벽에서 떼어서 세워 가능한 한 모든 회중이 모든 면에서 제대를 가까이 하기 쉽게 세워야 한다.
③ 제대의 위치 : 성당에서 제대를 설치하는 데 있어서 제대는 신자들이 쉽게 주목할 수 있는 회중의 중심 장소에 놓여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공간적으로 중심에 있어야 하거나 중심 축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심 장소가 아니라도 평면적 위치와 입면상에 전체적으로 잘 볼 수 있고 잘 들을 수 있는 요구 조건에 부합되면 된다.
④ 유해 :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서》에 의하면 "축성하는 제대 안쪽이나 밑에 반드시 순교자의 유해가 아니더라도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는 관습은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성당과 제대 봉헌 예식서》에는 "순교자들의 육신이 제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가 순교자들의 무덤을 영광스럽게 한다" 라고 한다. 그러므로 제대에 안치된 유해는 그것이 육신의 일부분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크기여야 한다. 때문에 너무 심하게 작은 성인의 유해를 안치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성인의 유해가 정말 확실한 것인지 주의깊게 검사해야 한다. 의심스러운 성해를 모시는 것보다는 유해 없이 제대를 축성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성해함은 제대 위나 제대상 안에 넣지 말고 제대 모양에 따라 제대상 밑에 안치해야 한다. 성해와 관련된 이런 규정들은 이동 제대가 성석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전의 기준들을 폐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동 제대나 거룩한 장소 밖에서 미사를 드릴 때에 사용하는 상에는 반드시 성석을 놓을 의무는 없다"(총지침서 265항). 성인들의 무덤 위에 제대를 마련하거나 혹은 제대 밑에 그들의 성해를 안치하는 것은 제대가 본질적으로 오직 하느님 한 분에게 봉헌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미사가 하느님 한 분에게 봉헌되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이름을 붙여 성인들을 공경하기 위하여 제대를 축성하는 교회의 관습은 이런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제대 봉헌 예식서》에서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제대를 설치할 때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설치하지만 절대로 그 어느 순교자를 위하여 설치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순교자들의 하느님을 위하여 설치하는 것이다" (《성당 축성 예식서》 제4장 10항).
그러므로 새로 짓는 성당에서는 성인들의 석상이나 성화를 제대 위에 두지 말아야 하며, 마찬가지로 성인들의 유해를 교우들에게 공경의 대상으로 현시할 때에도 제대 상 위에 두지 말아야 한다. (← 성석 ; → 성당 ; 성당 봉헌 ; 제대포)
※ 참고문헌 AA.VV., Gli spazi della celebrazione rituale, Milano,1984/ M.G. Boyer, The liturgical Environment, Minnesota, 1990/ M.Righetti, Manuale di storia liturgica, Milano, 1950/ Vicenzo Gatti,Liturgia e arte : I luoghi della celebrazione, Bologna, 2002. 〔鄭義哲〕
제대
祭臺
〔라〕altare · 〔영〕al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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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나무 제대 일부(요한 라테란 대성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