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포

祭臺布

〔라〕tobalea · 〔영〕altar cl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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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포가 덮여진 제대.

제대포가 덮여진 제대.

주님을 기념하는 미사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제대를 덮는 백포. 제대가 미사를 봉헌하는 장소이며 주님 만찬의 식탁임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로마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를 거행할 때 제대를 천으로 덮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로마인들에게는 식탁을 포로 덮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2세기 말의 위경인 《토마스 행전》(Acta Thomae)은 제대를 천으로 덮는 일을 명백하게 암시해 준다. 밀레비스의 주교인 옵타토(+370?)는 이를 보통의 일이라고 말하였다. 라벤나의 6세기 모자이크에는 제대가 장식된 넓고 흰 포로 덮여져있다.
본래 제대포는 하나였다. 제대 위에서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펼쳤고 끝나면 걷었다. 현재 파스카 삼일 예식에 이 흔적이 남아 있다. 파스카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중 영성체 예식을 시작할 때 제대에 제대포를 펼쳐 놓는다. 예식이 끝나면 다시 제대포를 벗겨내 제대는 벗겨진 채로 남게 된다. 성체포는 초기 제대포의 대용품이었다.여러 개의 제대포를 사용하는 습관은 7세기에 도입되었다. 축성된 포도주를 붓는 경우 제대 밖으로 흘릴 수 있는 위험을 피하려는 신중함에서 유래하였다. 당시의 참회규정들은 두 개 또는 네 개의 제대포를 언급하고 있다. 이시대에 제일 위에 있는 제대포를 성체포(palla corporalis,corporale)나 수의(壽衣), 또는 성포(聖布, sindon)라고 불렀다. 전례 학자이자 트리어의 대주교인 아말라리오(775?~850/853?)는 "우리는 수의(sindon)를 보통 성체포라고 부른다" 라고 증언하였다. 《로마 예식집》(Ordo Roma-nus) 10번에 따르면 이 포는 제대 전체를 덮고 있었다. 한편, 《로마 예식집》 1번은 미사 봉헌 예절에서 부제들이 제대포를 제대 위에 펼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대포는 항상 순수 린넨 천으로 짜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깨끗한 린넨 천에 감싸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중세의 우유적 해석은 제대의 린넨 천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고 우리는 그분의 신비한 몸을 상징한다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차부제 서품식에서 차부제들에게주교는 말한다. "거룩한 교회의 제대는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교회 제대의 성작 덮개와 성체포는 그리스도의 지체, 곧 하느님의 신자들이다. 이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귀중한 옷으로 둘러싸셨다."
과거 미사 경본의 예식 규정은 세 개의 제대포를 요구하였다. 현재는 적어도 하나만을 요구한다. 색깔도 흰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님의 기념제이며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잔치인 미사를 경건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제대는 적어도 하나의 흰색 제대포(tobalea)로 덮어야 한다"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117, 297, 304항). 제대에 항상 제대포를 덮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벗겨진 제대는 모퉁잇 돌, 곧 교회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회상시킬 수 있다. 다만 파스카 목요일 미사 후부터 파스카 금요일 영성체 예식까지 제대포는 벗겨져있어야 한다.
제대포의 모양, 크기, 장식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다만 제대 구조에 알맞게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제대포에 장식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파스카 시기에 특별한 제대포를 사용하여 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 경우 무엇보다도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는 표지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예술적 원칙도 존중해야할 것이다. (→ 성체포 ; 제대)
※ 참고문헌  M. Righetti, Storia liturgica I. Introduzione generale,Milano, 1964. 〔沈圭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