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

Gervasius et Protas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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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르바시오(성 비탈레 성당, 라벤나) .

성 제르바시오(성 비탈레 성당, 라벤나) .

성인. 2세기경 밀라노의 순교자들. 밀라노와 건초 만드는 사람들의 수호 성인. 도둑을 찾으려고 할 때 이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풍습이 있었다. 축일은 유해가 옮겨진 6월 19일에 기념하는데, 그리스 교회에서는 순교한 날로 추정되는 10월 14일을 축일로 거행한다.
성인전(Acta Sanctorum, June, IV, 680~704)에 기록된 성인들의 행적은 이탈리아의 주교들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매우 간결한 문체 로 쓰여진 이 편지는, 암브로시오(339~397)에게 보낸 편지로 잘못 알려졌었다. 성인전에 기록된 내용은 당시에 기록된 것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성인전의 내용을 보면,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는 순교자의 쌍둥이 아들이었다. 아버지 비탈리스(Vitalis)는 집정관이었는데, 네로 황제(54~68)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어머니 발레리아(Valena)는 밀라노에서 순교하였다. 그리고 두 아들은 태형에 이어 참수형을 당하였다. 어떤 저자들은 이들의 순교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 때 일어났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네로 황제 때라고 한다. 이는 암브로시오 때까지, 두 성인들이 매장된 장소와 이름까지 잊혀졌던 이유를 올바로 해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순교가 161~168년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86년에 암브로시오는 밀라노에 아름다운 대성전을 건축한다. 시민들은 로마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장엄하게 대성전을 봉헌해달라고 암브로시오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필요한 유물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꿈속에서 유물을 구할 수 있는 장소를 보게 되었고, 도시 외곽에 있는 성 나보르(Nabor)와 펠릭스(Felix) 성당에 있는 무덤을 발굴하게 하였다. 그곳에서 제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성인의 유해를 발견하였다. 암브로시오는 두 분의 유해를 일단 성 파우스타(Fau-sta) 성당으로 옮겼다가 다음날 새로운 대성전으로 옮긴다. 후에 이 대성전은 성 암브로시오 대성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성당과 관련하여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며, 특히 암브로시오와 아리우스주의자인 황후 유스티나(Justi-na) 사이에 큰 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늘에 나타난 징표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암브로시오는 누이 마르첼리나(Marcellian)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표징과 성인들의 유해 발견, 그리고 여러 기적들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아우구스티노(354~430)도 이 이적들에 관해 증언하고 있다(《고백록》 Ⅸ,vii ; 《신국론》 XXII, ⅷ ; 《설교》 286 in natal. Ss. Mm. Gerv. et Prot.). 또 놀라의 바올리노(353~431)역시 《성 암브로시오의 생애》라는 책에서 이 일들을 설명하였다. 암브로시오가 세상을 떠나자, 본인의 뜻에 따라 부활 주일에 암브로시오 대성전의 두 순교자들 곁에 안장되었다. 835년에 세 성인들의 유해는 석관에 안장되는데, 1864년 이 석관의 유해가 다시 발견되었다.
한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레드리히 1세(1152~1190)가 밀라노를 파괴한 뒤, 그의 신하 라이날트(Rai-nald von Dassel)가 이 유해들을 밀라노에서 반출하여 독일 남서부에 있는 브라이자흐(Breisach)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도 이곳의 주교좌 성당에 은으로 만들어진 성해함에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밀라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재 성 암브로시오 대성전의 주제대 아래에 유해가 모셔져 있다. 암브로시오가 두 성인들의 유해를 발견한 직후 이탈리아에는 제르바시오와 포르타시오 성인들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고, 파비아(Pavia)와 놀라 등지에 성인들을 기리는 성당들이 세워졌다. 라벤나의 성 비탈레(San Vi-tale) 성당에는 두 성인에 대한 묘사가 모자이크로 남아있다. 골 지방에도 성인들을 기리는 400개 가량의 성당이 있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교황인노천시오 1세(402~417)는 로마에 두 성인들을 기념하는 성당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후에 이 성당의 이름에는 두 분의 아버지인 비탈리스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두 성인들의 이름은 일찍부터 성인 호칭 기도문에 삽입되었다. 그런데, 성인들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한다. 어떤 이들은 두성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 참고문헌  J. Brückman, 《NCE》 6, 2003, p. 194/ Bénédictins de Ramsgate, Dix Mille Saints, Brepols, A & C Clock, 1988 p. 224/ H.Delehaye, Analecta Bollandina 49( 1931), pp. 30~3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