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트루다 (1256~1302)

Gertru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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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제르트루다.

성녀 제르트루다.

성녀. 신비가. 독일 헬프타(Helfta)의 시토회 수녀. 축일은 11월 16일. '위대한 제르트루다' (Gertrud der Gro-Ben)라고 불린다.
〔생 애〕 1256년 1월 6일 독일에서 태어난 제르트루다의 출생지와 가족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5세 되던 1261년 아이슬레벤(Eisleben)에 있는 헬프타 시토회 수녀원 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이 수도원은 성덕으로 유명하였는데, 이 수도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인 하크본의 제르트루다(Gertrud von Hackebom)는 수녀원을 지혜롭게 운영했으며 그곳을 문화와 영성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제르트루다는 수녀원장의 동생이면서 수련장이었던 메크틸드(Mechtild von Magdeburg) 수녀 밑에서 개방적이고 휴머니즘적 교육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나이 또래들이 즐기는 놀이에는 흥미가 없었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재치가 있었으며 명석하였다. 15세 때 학교 교육을 마치고 수녀회에 입회하였는데, 그녀의 지적 열망과 타고난 지능으로 베네딕도(480?~547?), 베르나르도(1090~1153) 성인의 영성뿐 아니라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 등에 능통하였다. 특히 라틴어에 정통하여 수녀원 내의 필사실(Scriptorium)에서 일하였다. 하지만 세속 학문들과 모든 것을 지성적으로만 판단하려는 사고는 영적인 생활을 소원하게 만들었고, 거의 냉담 상태가 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이 꺼지면서 1280년에 영적이며 심적인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1281년 1월 27일에 예수의 발현을 체험하였다. 16세 가량의 젊은 이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는 지적 공부에만 몰두해 있는 그녀를 책망하면서 "멀지 않아 너의 구원은 올 것이다. 왜 그렇게 고통을 받느냐? 너를 슬픔에서 벗어나게 조언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 라고 위로하였다고 한다.
예수와의 만남은 제르트루다의 내적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고통으로 잃었던 평온함을 다시 되찾았다. 예수와의 깊은 일치와 친교 관계는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일치 경험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죄가 사해짐과 예수에 대한 열정이 다시 회복됨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더욱 내적이며 명상적인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성서와 교부들, 특히 아우구스티노(354~430),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 베르나르도, 후고(1096~1141)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였고 스콜라 사상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계시와 여러 발현들을 보게 되었다. 하느님과 그녀 사이에는 부드러운 대화가 생겨났으며, 이것은 그녀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로 부각되었다. 그녀는 예수를 신적인 신랑으로 체험하였고, 이 결합은 평화와 삼위 일체의 삶을 경험하게 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 였다면 제르트루다에게는 '너를 사랑하는 자' 로 바뀌었다. 그녀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리는 영원한 찬가'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제르트루다는 당시 신비주의자들이 가졌던 감정, 열정 그리고 상상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그녀는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대신덕의 실천을 통한 그분과의 친숙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삶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284년 공동체를 악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기도가 문제가 되어 자매 수녀들로부터 고역을 치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녀의 심장에 성흔(聖痕, stigma)을 줌으로써 더욱 많은 신비적인 은총을 주었다. 물론 이 성혼은 영혼에 입은 것으로 내적인 것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녀의 저술을 통해 성흔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1288년 제르트루다는 심한 병을 알게 되고 합병증으로 치유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예언도 하였다. 1291년 수녀원장 하크본의 제르트루다가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이은 소피아 수녀에게 그녀는, 1292년 아돌프(Adolf von Nassau, 1250?~1298)가 독일의 왕이 되겠지만 1298년에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리라고 말하였다. 허약한 건강 때문에 그녀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시간 전례에 참여해 하느님께 찬송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1302년 11월 16일 헬프타 수도원에서 중병을 앓던 그녀는 "아! 신랑이 오신다"라고 외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 제르트루다는 성인품에 올려지지 않았지만 1606년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전례의 기도, 독서, 찬가에서 그녀를 공경할 수 있다는 공인을 받았다. 성녀 제르트루다의 축일은 전세계 가톨릭 교회로 확대되었고, 1738년 교황 글레멘스 12세(1730~1740)는 다른 제르트루다와 구별하고 그녀의 영적인 깊이를재평가하면서 '위대한' 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저서와 영성〕 저서 : 그녀의 저서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사자(使者)》(Legatus Divinaepietatis)와 《영성 수련》(Esercitia spiritualia septem) 그리고 메크틸드에 의해 쓰여진 기도와 시로 된 소책자(Liberspecialis gratiae)가 있다.
《하느님의 사랑의 사자》는 제르트루다의 삶과 그리스도의 발현,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비로운 은총적 계시를 다룬 5권의 책이다. 음악적이고 부드러운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약 610쪽에 달한다. 이 책은 성녀의 투명한 영혼의 자서전적 고백서이며, 영적 유언서라고 할 수 있다. 각 권은 간단한 입문과 함께 시작되는데, 1권은 성녀의 간단한 전기로 다른 이에 의해 쓰여졌다. 2권은 이 책의 제1부에 해당되는 것으로 성녀 자신에 의해 쓰여졌다. 반면 3~5권은 이 책의 제2부로 성녀의 말을 받아 다른 수녀들에 의해 쓰여졌고, 그녀가 사망한 후 직접 쓴 비망록 등을 수집하여 같은 수도회의 자매 수녀들에 의해 편집되었다. 두 번째 책인 《영성 수련》은 금욕적이며 신비주의적 보석이라고 여겨지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침투하는 은총의 행위에 대한 자각을 다룬 7개의 묵상집이다. 이 책은 성녀의 영혼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성녀의 마음과 영적 정진을 보여 주고 있다. 이책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 깊은 영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1권에는 세례성사의 은총과 그때의 순수성의 회복에 대해, 2~4권까지는 그녀의 허원식과 착복식의 기념일, 그리고 영적 회개와 쇄신에 대해, 5권은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찬양, 6권은 은총의 행위, 7권은 죽음을 준비하면서 용서를 청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 제르트루다는 고뇌와 고통을 완화시키는 중재 기도의 은총에 대해 강조하였다. 세 번째 책의 저자는 같은 회 수녀이자 그녀의 스승이었던 메크틸드로 되어 있으나, 여러 면에서 제르트루다가 주로썼거나 유일한 저자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는 풍부한 비유와 상징적 표현을 통해 베네딕도 규칙에 기반을 둔 자유, 개방성, 명상 그리고 강함 등 강렬한 독일적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녀가 본 환시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들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도원 장상들은 제르트루다의 저서들을 검열하기 위해, 당시 유명했던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의 신학자들에게 의뢰하였다. 이들은 책을 검열하였고 그 내용이 하느님의 계시임을 공인하였고 주석을 달아 해석하였다.
영성 : 제르트루다의 신비주의적 삶에 대한 깊은 경험은 성서, 영적 독서, 공동 기도, 시간 전례, 미사를 통해 성숙되었다. 시간 전례 중에 하느님의 모습을 신비적으로 보거나 삼위 일체로부터 오는 입맞춤이나 포옹을 체험하였고, 미사 도중에 탈혼, 계시적 조명 그리고 사랑의 상처를 경험하였다. 그녀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꼈고, 전례가 그리스도와 합일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믿었다. 탈혼 중의 환시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상처 안에서 스스로를 완전히 내어 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식별하고 이해하게 해 주었다. 그녀는 예수의 마음과 상처 안에서 피난처와 휴식처를 찾았다.
그녀의 영성 중심은 육화, 수난, 구원, 성체성사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신비였다. 특히 성체성사는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와 합일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한편 제르트루다는 스스로를 이 땅에 주님의 신적 사랑을 알리는 전령자로 생각하였고, 이 임무는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위탁받은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제르트루다의 신비주의는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에 근거를 둔다. 그녀는 내적 경험을 항상 성서에 비추어 해석했으며, 인간의 현실을 무시하는 과장된 감정이나 상상에 빠지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가진 애정적인 신비 경험 역시 환상적인 경험이 아니라 대신덕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오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이처럼 제르트루다의 영성은 순수하고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그리고 건전하였다.
그녀의 신심의 특징은 예수 성심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체험과 헌신이었다. 성녀의 마음은 하느님이 머무는 처소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 만나는 가교였으며 그녀의 신심 대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특히 그리스도의 상처에 집중되었다. 이 상처는 인간 때문에 야기된 피 흘리는 고통에 집중된 슬픈 신심이 아니라, 정화되고 밝고 변형된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다. 그리스도의 상처를 깊이 느낄 때마다 상처들이 주는 변화의 효과를 체험했으며, 성덕 속에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체험하였다. 예수의 찢어진 옆구리에서 견고하면서도 순수한 시냇물이 용솟음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삶 전체는 예수 성심에게 봉헌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성사에서 '예수 성심의 신학자' 라고 불리어졌고, 예수성심 공경을 시작한 선구자 혹은 첫 사도로 여겨졌다.성녀가 계시를 통해서 본 하느님은 귀부인들을 거느린 궁중의 황제일뿐 아니라 무장한 장정들을 거느린 황제였다. 이로써 하느님은 활동적인 분이라는 것을 체득하였다. 그래서 성녀는 명상뿐 아니라 모든 활동은 인내, 겸손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이며 하느님을 기쁘게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신비적 명상을 통해 합일된 삶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사도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리스도와 갖는 혼례적 결합은 그분의 성덕이 자신의 성덕으로 변화되어 죄인들을 회개시킬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완전한 증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즉 그리스도와 결합되는 혼례적인 신비주의는 제르트루다를 통해 활동적 신비주의가 되었다. 그녀는 외형적으로는 전형적인 시토회 수녀였지만 사도적 봉사와 사랑의 실천 면에서는 수도원의 벽을 넘어 사회 모든 계층에 확산되었다. 부자나 가난한 이, 배운 이와 배우지 못한 이, 제왕이나 농부를 가리지 않았다.
성녀의 대표적인 성덕 중 하나는 순명이었다. 그러나 제르트루다에게 순명은 상벌과 연결된 규율을 잘 지키고 장상에게 복종하는 것 이상이었다. 순명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Sequela Christi)이며, 이를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느님의 사랑의 사자》 3권 30장에는 한 순교자 축일의 시간 전례를 바치던 중에 체험한 신비적 무아경을 소개하고 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제르트루다에게 "어떤 이들은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순명을 가지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어떤 이에게는 병들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개인의 십자가가 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견디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가장 어려운 길이지만 가장 우선적인 길이 바로 순명이라는 것을 그녀가 본 환시가 증명해 준다. 그녀에게 있어서 순명은 또한 겸손의 첫 걸음이었다. 그녀는 하느님이 그녀에게 준 모든 은사를 합당하다고 생각지 않았고, 단지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촛불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완전 순명은 완전 봉헌을 전제로 하기에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무조건 이행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4권 22장). 순명의 덕을 닦고 성덕의 증진을 위해 그녀의 신심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으로 연결되었다. 성모 마리아는 그녀의 지도자, 보조자, 간구자였다. 고통 앞에서 끝없는 순종과 겸손의 모습을 보였던 성모를 최상의 모범으로 삼고 따르면서 하느님의 사랑스런 거처가 되기를 간구하는 것이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사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4권 48장). 성모 마리아와의 일치는 하느님께 죽음으로까지 순명한 그리스도의 순명과 일치로 이끈다. 오랜 병을 앓고 있던 제르트루다는 병상에 있을 때 성 마르티노 축일을 맞게 되었고이날 환시를 보게 되었다.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그녀가 세상을 떠날 날에 대해 물어보자 "네가 선택하여라. 너의 육체를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원한다면 너의 부족과 과실을 만회하기 위해 오랫동안병상 생활을 할 수도 있다"라고 대답하셨다. 성녀는 "나의 하느님, 당신의 뜻으로 하소서"라고 하면서 "나의 주님, 저의 최대의 기쁨은 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당신과 합일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공심판 까지 이 땅에 머물러 당신을 찬양하면서 극도의 비참함이라도 견디겠습니다" 라고 끝없는 순명을 보였다(5권 29장). 그녀의 바램, 뜻, 그리고 노력은 하느님께 대한 끝없
는 순명 안에, 그리스도를 완전히 따름 안에 있었다. 이세상에서 그녀는 그리스도의 삶 자체와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를 살기를 원했고, 그리스도의 삶과 자기 존재가 하나됨으로써 그리스도와 같아지기를 갈망하였다. 하느님 앞에서의 그녀의 순명은 끝없는 헌신을 동반한 완전한 자기 무화에까지 나아갔다.
〔평 가〕 많은 성녀들 중에서 그녀에게 '위대한' 이라는 칭호를 붙인 이유는, 그녀의 신학적인 섬세함과 신비적인 감수성 그리고 지성과 감성을 조화시킨 영적 균형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13세기의 독일 교회 안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가로 여겨지고, 그녀의 풍부한 신비 경험으로 '독일의 데레사' 라고도 칭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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