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祭祀

Ⅰ. 성서에서의 제사 · Ⅱ. 유교에서의 제사 · 〔히〕זֶבַח · 〔그〕θυσία · 〔라〕Sacrificium · 〔영〕Sacr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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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과 멜키세덱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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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과 멜키세덱의 제사.

제사는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할 수 있으며, 인간의 보편적인 종교적 행위이다. 제사는 종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제사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종교학, 문화 인류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이론도 다양하다. 신들의 적대감을 줄이기 위해 신들에게 바치던 선물에서 유래한다는 주장, 혹은 공동체 일원들과 신들과의 교제를 추구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다는 이론도 있다. 또 제물의 봉헌을 통하여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도덕적인 인격 상태를 변경시키려고 하는 종교적 행위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희생 제사는 폭력을 없애고 공동체의 조화를 세우는 데 있다고도 설명한다. 제사의 기원에 대한 여러 이론들의 공통점은 제사가 신성한 영역과 속된 영역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수립하고 유지 또는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제사의 종교 의식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제사를 받는 대상인 신령한 물체ㅡ예를 들어, 나무 혹은 바위 등 또는 형상화된 신들, 그리고 제물로 구성된다. 민족마다 다양한 형태의 제사 의식이 있으며, 제사의 시기와 장소에 따라 또한 다양한 절차와 의례가 있다.
I. 성서에서의 제사
이스라엘 민족은 태고 시대(창세 8, 20), 선조 시대(창세 15, 9 이하), 모세 시대(출애 5, 3), 판관들과 왕조 시대(판관 20, 26 : 1열왕 8, 64), 바빌론 유배 이후의 시대(에즈 3, 1-6) 등 역사 중에 항상 제사를 바쳤다. 그들의 개인 생활과 공동 생활은 모두 제사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제사는 개인과 집단의 종교심을 드러내는 행사였다.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해 예언할 때 이방인들이 제물을 바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구약성서의 저자들은 구세사를 묘사할 때 제사 없는 종교 생활을 상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한 예수는 외면적 의식보다 정신의 우위를 가르친 예언자들의 사상을 따랐고(마태 5, 23-24 ; 마르 12, 33), 이로써 자신이 바칠 제사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였다. 신 · 구약 사이에는 일련의 연속성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구약의 제사에 관한 용어들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봉헌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독특한 것이라는 점에서 구약을 초월하고 완성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제사〕 기원전 25~20세기경까지 쓰여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헌에 의하면, 제사는 신전에서 드렸으며 제사를 담당하는 사제가 있었고, 제사의 종류도 다양하여 각 종류에 따라 사제의 역할도 분담되었다. 신전에 가져오는 예물은 여러 종류의 농작물과 염소, 양, 소 등이었으며, 이러한 제물의 일부는 절기에 따른 제사에 사용되었다. 또한 잉여 제물은 신전을 운영하고 신전 중심의 경제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각 도시에 여러 신전이 있었으며, 신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매일 신상 앞에 네 번의 식사를 드렸다. 시기와 장소에 따라 신상 앞에 드리는 식사의 절차는 다르지만, 대체로 먼저 신상 앞에 상을 차려 놓고 손 씻을 물을 대접에 담아 함께 놓는다. 그리고 빵과 고기, 곡주, 과일 등 음식을 차려 놓으며, 연주자는 수금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 신은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쳐다보며 받아들인다. 식사가 끝나면 향을 피우고 손 씻을 물을 대접에 담아 드린다. 매일 신들에게 예물을 드리는 이유는 신들이 도시에 머무르며 도시민을 보호하여 주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흔히 재앙이나 불행이 생기는 이유는 신들이 도시를 미워하고 도시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고대인들은 흔히 생각하였다.
이처럼 신들을 부양하는 제사 이외에 가장 흔히 드리는 제사는 죽은 이의 혼을 달래 주는 제사이다.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적어도 신석기 시대로 부터 전해진 관습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죽은 부모에게 드리는 제사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길가메쉬의 하인 엔키두가 저승에 내려가 저승에서 본 것들을 길가메쉬에게 말하는데, 그중에서 제사 지낼 사람이 없는 사람에 관해 이렇게 전한다. "제사 지낼 사람이 없는 혼을 보았느냐?" , "보았습니다", "무엇처럼 하고 있느냐?" "손을 비벼대며 길거리에 떨어진 빵 조각을 주워 먹고 있습니다"(293~294행). 죽은 이를 위해 제사를 반드시 지내야 하는 이유를 잘 표현하는 대목이다.
한편,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큰 두려움 중에 하나는 전쟁이나 전염병, 사고 등 비운에 죽은 이들의 혼이 저승에서 올라와 산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이들을 위한 제사는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였지만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특히 그들의 혼을 달래 주는 제사는 범국민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이들의 혼이 산 사람들을 붙잡아 병에 걸리게 하거나 저승으로 데려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도성의 외곽 지역에 위치한 낮은 언덕에 신당을 지어 죽은 이들의 혼을 위해 빵과 곡주 등을 차려 놓고 일상 제사를 지냈다. 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구마 사제는 불행하게 죽은 이들을 불러 저승에서 올라오지 말아 달라고 달랜다. "네가 저승에서 올라온 유령이든 네가 쉴 자리가 없는 허깨비이든 네가 손을 대지 않은 처녀이든 네가 팔을 끼어 보지 않은 총각이든네가 들판에서 쓰러진 사람이든 네가 들판에서 죽은 사람이든 네가 들판에서 흙으로 덮이지 않은 사람이든 네가 무기로 살해당한 사람이든 네가 강둑에서 미끄러진 사람이든 네가 사자(獅子)에게 살해당한 사람이든 네가 개에게 잡혀 먹힌 사람이든 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든 네가 지붕에서 떨어진 사람이든 네가 대추야자나무에서 떨어진 사람이든 네가 배와 함께 빠진 사람이든···"(<악한 귀신을 쫓는 기도문> 312~325행). 이러한 죽은 이들의 혼이 저승에 안전하게 머물러 있기를 기원하여 빵과 곡주를 상에 차려 놓고 제사를 지냈다.
특히 죽은 이들의 혼을 위한 제사와 관련하여 발전된 저승 신화에서 양치기 두무지는 매년 하지 때에 죽어 저승으로 내려갔다가, 봄에 부활하는 '영원한 반복' 의 원형이었다. 두무지는 역사적으로 고대 수메르 왕국의 왕이었다. 그런데 여신과 혼인하여 저승에 여행 갔다가 그녀의 잘못으로 반년 동안 저승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이러한 두무지를 위한 제사는 비운에 저승으로 간 죽은 이들을 위한 제사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두무지는 아카드어로 '탐무즈' 라고 부르며, 6~7월에 걸리는 달〔月〕을 '탐무즈 달' 이라고 불렀다. 이 달은 곡(哭)하는 달로 알려졌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두무지 신화와 그 제사 의례는 주변 민족들에게 전해졌고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에제키엘서에서 그예를 읽을 수 있다. "그분께서 나를 주님의 집 북쪽 대문어귀로 데려가셨는데, 그곳에서는 여자들이 앉아서 탐무즈 신을 애도하고 있었다"(에제 8, 14) .
〔구약성서의 제사〕 창세기의 태초 이야기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카인과 아벨의 제물 이야기(창세 4)에서 볼 수 있으며,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하느님을 위해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을 번제물로 바쳤다(창세 8, 20).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다음으로 연결되는 레위기에서 성막과 성전 중심의 제사 법규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물론 출애급 이전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당연히 제사를 드렸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 자손을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로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이 하느님께 끊임없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올리라는 명령에 복종하는 단락(창세 22)은 후대에 큰 표본이 되었다. 그러나 제사에 대한 제도가 확립된 것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의 가르침인 토라를 이스라엘이 받게 되면서부터라고 모세 오경은 설명한다.
종류와 방법 : 레위기에 정해진 제사 법규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대대로 지켜야 할 제물에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 속죄 제물과 보상 제물, 임직 제물과 친교 제물이 있다" 라고 한다(레위 7, 37). 곡식 제물 이외의 제물은 소, 양, 염소, 새(비둘기)와 같이 모두 짐승을 바치는 의례이다. '번제물' 은 짐승의 피를 받아 반은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뿌린다. 그리고 가죽을 뺀 짐승 전체를 제단 위에서 불에 살라 바치는 것이다. '곡식 제물' 은 일종의 선물로, 신하가 군주에게 존경의 표시로 첫 열매를 바치는 공물의 성격을 띤다. 즉곡식 제물은 신의 주권을 인정하는 뜻으로, 땅의 소유주인 신에게 속하는 땅에서 소출된 곡식과 열매를 소유주에게 바치는 예물이다. '속죄 제물' 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기 위해 바치는 것으로, 죄의 정도나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 제물의 종류가 달라진다. 가난한 자는 비둘기를 가져오지만, 사제가 죄를 지었을 경우 소를 바쳐야 한다. 짐승의 굳기름은 제단 위에 태우고 살코기는 사제들의 몫이다. 그러나 죄지은 자가 사제이거나 백성 전체일 경우는 예외이다. '보상 제물' 은 잘못에 대한 보상으로 원래 값어치의 5분의 1을 더한 값을 바치는 것이고, '임직 제물' 은 사제들의 임직식을 위한 제물이다. '친교 제물'도 굳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태우고 살코기의 일부는 사제의 몫이지만, 나머지는 봉헌한 사람과 그의 가족, 친지 등이 성소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함께 먹는다. 그로 인해 친교제는 잔치의 성격을 지닌다.
제사에서 피의 의미 : 이상의 내용처럼 고대 이스라엘제사의 본질은 예물, 부양, 속죄, 친교 등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제사 가운데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한 제사 드리는 사람들에게 뿌리는 속죄 제사나 친교제 등에서 피는 제사 의례의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소위 '계약의 피' 로 알려졌다(출애 24, 8). 피를 뿌리는 의례가 속죄의 핵심이 된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태초에 세상에는 큰 신들과 지위가 낮은 신들이 있었다고 한다. 낮은 신들이 노동을 하여 큰 신들을 부양하였다. 그러나 노역이 점차 극심해지면서 작은 신들은 불평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큰 신들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에 지혜의 신은 인간을 만들어 낮은 신들의 노고를 대치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반란을 주도한 낮은 신들의 우두머리를 처형한 후 그 피를 점토와 섞어 사람을 만들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에서 제사에 바친 짐승의 피를 제사 드리는 사람과 제단에 뿌림으로 속죄를 받는 것은 반란을 일으킨, 즉 죄지은 신의 피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전승 때문이다.
곡식 제물과 짐승 제물 :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제물 이야기는 곡식 제물과 짐승 제물의 효용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알려 준다. 농부 카인은 곡식 제물을 준비하였고, 양치기 아벨은 양과 그 굳기름을 제물로 준비하였다. 하느님은 아벨의 것은 굽어보시고 카인의 것은 굽어보시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한 질문은 이 본문이 전해진 이후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하느님이 짐승 제물을 받아들이고 곡식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대한 실마리는 제사 법규에서 찾을 수 있다. 곡식 제물은 신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종의 선물로 드리는 것이며, 짐승을 바치는 경우는 속죄 혹은 보상 제사나 친교제의 경우이다. 하느님이 카인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바쳐야 할 제사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창세기 4장의 시작 부분은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처음으로 드리는 제사에 대한 단락이다. 과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첫 제사는 어떠한 종류의 제사여야 합당 한지를 알려 주는 이야기이다. 카인은 하느님이 하늘과 땅의 소유주임을 확인하는 의미로 곡식 제물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아벨은 양과 그 굳기름을 제물로 선택하였음으로 속죄나 보상 혹은 친교를 위한 제사를 뜻한 것이다. 카인이나 아벨 모두 그전에 지은 죄가 없음으로 속죄나 보상 제물을 드릴 이유는 없다. 따라서 아벨이 준비한 제물은 친교제를 위한 제물이다. 즉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첫 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와 화목을 목적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친교 제물을 히브리어로 '쉴라밈' (שלמים)이라고 하는데, 이는 '평화, 안전, 화목, 완성' 등을 뜻하는 단어 '샬롬' (שלום)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뜻(가르침)을 성취하겠다는 합의를 제사라는 형식을 통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카인과 아벨의 이어지는 단락에서 보여 주는 인간성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카인처럼 제사의 종류를 잘못 알든지 혹은 그분의 뜻(하느님의 지식)을 파악하지 못하든지, 자기 주장만을 생각하고 홧김에 사람을 살해하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과월절과 속죄 : 어느 민족이나 대부분 명절에 특정한 제사를 지낸다. 고대 이스라엘의 명절 가운데 3대 명절은 과월절(過月節), 주간절(週間節) 그리고 초막절(草幕節)이었다. 이 가운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중심축을 형성한 것은 과월절이다. 물론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우리의 파스카(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고린 5, 7)라는 신약성서의 구절 때문에 과월절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겠지만, 과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구원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출애 12, 1-13, 16). 과월절 의식의 핵심 부분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지방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며, 그 양의 뼈는 꺾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또한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무교병(無酵餠)을 과월절 기간 동안 먹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규례는 제사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하느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명절이 과월절 축제이지만, 과월절 제사에는 속죄의 개념이 있다.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의 맏배를 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희생 제사의 피를 자신들 집의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이다. 이 희생 제사의 속죄하는 피가 맏배의 죽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절기에는 속죄일이 있다. 속죄일은 신년 열흘째 되는 날이며, 지금도 유대교에서 속죄인은 자신의 이마에 피를 바른다. 속죄의 피로 몸과 마음이 죄에서 사해짐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과월절 의례에서 문지방에 희생 제사의 피를 바르는 것도 이러한 속죄의 개념과 연관된다. 과월절 제사는 희생 제물의 피로 맏배가 보호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이다. 매년 이러한 제사에 참여하는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확인한다. 예언자들의 비판 :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전 중심의 제사는 형식적이었고 성전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예언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예언자들이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고 제사의 남용에 대하여 반대한 것이다. 성전 사제들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며 영적이고 양심적인 제사 의례에 전념하라고 촉구하였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숫양의 번제물과 살찐 짐승의 기름기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이사 1, 11. 15-16).
이러한 비판은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단정적으로 표현한 예언자의 문구는 호세아에게서 발견되고, 예수도 이 구절을 인용하며 복음의 뜻을 알려 주었다(마태 9, 13). 또한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이후 발전된 초기 유대교 랍비들의 문헌에서도 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자주인용되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이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이다"(호세 6, 6). 그러나 예언자들이 성전 제사를 통한 하느님경배를 배척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들이 강조하였던 점은 제사의 목적이 하느님의 현존을 실현시키는 것이며, 하느님이 자신의 백성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공의와 정의, 사랑과 진실, 자비와 화목이라는 내용을 상기시킨 것이다.
〔초기 유대교의 제사〕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성전이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무너지고 유대 왕국의 사제들과 관리 등 많은 사람들이 바빌로니아의 여러 도시로 유배를 갔다. 따라서 이후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왕의 칙령으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성전을 개축하여 제사 제도를 다시 실행하였다. 그로 인해 성전 제사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기원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의 동방 원정으로 유대 땅은 다시 외국인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기원전 170년경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가 예루살렘성전을 약탈하고 안식일과 유대인 명절을 지키지 못하게하였으며,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부정한 동물을 제물로 바치게 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마따디아(+기원전167/166)는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수천명이 이에 동조하였다. 이 '마카베오가 독립 전쟁' 으로 기원전 164년 예루살렘을 수복하였다. 그리고 첫 번째로 제단을 쌓고 희생 제사를 거행한 후 그날을 '제단 봉헌 축일' 로 정하여 지키기로 하였다(1마카 4, 59). 이를 통해 제단에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임무가 급선무였음을 볼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처럼 초기 유대교에서도 희생 제사는 사회의 중심체였다. 성전 제사는 재기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는 유대 땅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외국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성전세와 헌금을 보내어 성전 운영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에세네파 : 마카베오가 형제들이 통치권과 대사제권을 겸임하는 것에 반대하여 에세네파가 형성된 이후 초기유대교에 여러 분파가 만들어졌다. 그들 가운데 가장 큰 호응을 받은 분파는 바리사이파이며, 공동 소유의 공동체를 운영하였던 에세네파도 상당한 수를 유지하였다. 에세네파를 창시한 익명의 '정의의 선생' 은 예루살렘 성전의 전통적인 대사제 집안인 사독의 자손이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권력을 장악한 사두가이파를 '어둠의 자식들' 이라고 여겼다. 에세네파에서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올바른 제사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에세네 공동체를 자신들의 성전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에세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태음력인 윤달을 낀 음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태양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절기를 지켰다. 따라서 명절에 따른 제사 시기도 전통적인 달력과는 달랐다. 에세네 사람들은 안식일에 안식일 번제를 올렸다. "안식일에 안식일 번제물 이외에는 제단에 올려놓지 않는다"(《새 계약의 규례》 11, 17). 하지만 속죄 제사나 친교제 등에 짐승 제물을 제물로 바치지 않았으며, 기도와 찬양으로 제물을 대신하였다. "그들(계약에 들어온 공동체 사람들)은 사악한 죄지음과 부정한 이득에 대해 속죄하며 번제물의 살〔肉〕이나 희생 제물의 기름 없이 이땅을 위해 자비를 얻는다. 바르게 바친 입술(기도)은 정의의 향기와 (하느님의) 길의 온전함 같으며 열망으로 바치는 헌제와 같다"(《단합체의 규례》 9, 4-5). 성전 제사의 속죄 제물 대신 기도와 찬양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얻는 다고 에세네파는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예언서(호세아등)에서 적합한 구절을 인용하여 타당성을 논박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희생 제물 대신에 기도와 찬양으로 하느님께 속죄제와 친교제를 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또한 성전 제사 제도를 다른 형식으로 실행하는 에세네의 지침은 유대교의 불화와 분파 형성의 큰 요인이 되었다.
사두가이파 : 이들의 임무는 주로 성전에서의 봉사였지만, 제사에 대한 성서적 해석은 바리사이파 현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바리사이파 현자들은 상세한 성서해석을 통하여 토라의 계시를 확인할 수 있다며 성서 공부에 전념하였다. 예를 들어, 과월절이 시작되는 니산 달 14일이 안식일인 경우 과월절 제사를 위한 도살을 안식일에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바리사이파 현자인 힐렐(Hiillel, 기원전 1세기 후반~서기 25?)은 아래와 같이 그 대답을 유도하였다. " 그 정한 때' (라는 용어)가 '매일 제사(타미드) 번제물' (의 문구와 함께) 나오는 것(민수 28, 2-3)은 안식일을 대신한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정한 때에 (과월절을 지내야 한다)' (민수 9, 2)(라는 용어)는 안식 일을 대신한다" (토세프타 법전 4, 14). 매일 제사도 그 정한 때' 에 드려야 하는 것처럼 과월절 제사도 그 정한 때에 거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비록 과월절 제사가 안식일에 걸려도 그 희생 제물의 도살을 하루 먼저 하거나 다음 날로 미룰 수 없다는 해석이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이전까지도 성전 제사는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힐렐이 남긴 언급 중"아론의 제자들이 되어라"는 글이 있다(《미쉬나》 Ⅲ, 9, 1,12). '아론의 제자' 는 사제를 뜻하며, 성서 학교에서 성서 공부를 하는 목표는 단순히 학문적인 선생(랍비)을 양성하는 데 있지 않고 사제직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된다는 말씀이다. 힐렐은 기원전 4년에서 서기 6년까지 산헤드린의 대표로 활동하였다.
〔랍비니즘 시대의 제사〕 바리사이파의 후예가 랍비 유대교의 핵심 기반을 형성하였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사두가이파가 와해되면서 성전 중심의 유대교에서 회당과 성서 학교 중심의 유대교로 바뀌었다. 랍비 유대교의 기반을 세운 사람은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이다. 그는 제1차 유대 독립 전쟁(66~70)으로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포위되었을 당시,비밀리에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 로마 군대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만나서 야브네(Jabneh, Jamnia)에 거주하며 율법 학당을 개설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이후 70여 년 동안 야브네는 랍비 유대교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많은 성서 학교가 세워졌다. 랍비들은 성전 제사를 거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대교의 전통을 유지하여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맞는 성서 해석을 크게 발전시켰다. 자연히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 대신 매일 드리는 기도로 예배 형식이 갖추어졌다. 그리고 성서에 근거한 해석만이 유용하기 때문에 성서에 대한 연구가 급속도로 발전되었다. 민수기 성서 해석의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입술의 열매를 바치렵니다(호세 14,3). 이스라엘은 세상의 주님에게 말했다. 성전이 서 있을 때에 우리는 제물을 드리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손에는 오직 기도뿐이 있습니다"(《민수기랍바》 18, 21).
서기 70년 이후 제사 규정에 대한 논박은 오직 입으로만 하게 되었다. 서기 200년경에 편찬된 《미쉬나》의 제5부 성물(聖物) 편은 성전 제물에 관한 규정이 대부분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동물을 바치는 희생 제사와 곡식 예물, 맏아들과 맏배, 예물 교환, 매일 드리는 제사 등의 제물에 관하여 논하며, 희생제사용이 아닌 경우에 도살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성전 제사에 대해 이렇게 상히 논의하는 항목들은 전혀 실행되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유대 땅에 살든지 외국에 살든지, 유대인이 성년이 되면 누구나 1년에 세 번, 즉 과월절, 주간절,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를 하였다. 《미쉬나》 제21부 12편축제(1, 1)에 의하면 여자, 어린이, 병자, 노인, 불구자,종이 아닌 유대인 남자는 3대 축제 때 예루살렘 성전으로 반드시 순례를 가야 하며, 두 가지 예물인 축제 예물과 출두 예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기 70년에 성전이 무너졌어도 예루살렘으로 순례는 할 수 있었지만, 제2차 유대 독립 전쟁(132~135)의 실패로 성전이 완전히 무너진 다음부터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성전이 없어지면서 성전에서 거행되던 명절의 제사 제도는 새로운 형태로 바뀌었다. 과월절의 희생 제사는 성전에서 양을 잡고 제단에 피를 뿌리며 제물을 불에 구워고기를 나누어 먹으면서 출애급의 역사를 기억하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성전이 없어지자 개인 집이나 공동 회관같은 곳에 여러 집안의 식구들이 함께 모여 식탁에서 출애급 사건을 이야기로 재현하였다. 과월절 식사에 모인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내용과 과월절 의례를 자세히 기록한 《하가다》(הגדה)를 읽으면서 과월절을 기념하였다. 첫 번째 포도주 잔을 축성하며 과월절 제사를 시작하고 누룩이 없는 빵을 먹는다. 모인 사람들은 《하가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낭송한다. 중간 중간에 먹고 맨 마지막에 포도주를 마시면서 끝낸다. 과월절 식사의 식탁은 성전 시대의 희생 제사를 위한 제단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바빌론 탈무드》에서 그 해석을 읽을 수 있다. "성전이 서 있을 때에 제단은 사람을 위해 속죄하여 주었지만 이제 사람의 식탁이 그를 위해 속죄하여준다" (27a). 또한 희생 제사는 《하가다》의 '입술의 기도'로 바뀌었다. 이처럼 성전이 없는 유대교에서 제사를 대신하여 기도문이 발전되었으며, 매일 드리는 일상 기도외에 안식일에 드리는 기도문, 각 명절마다 읽는 기도문
등이 각 권의 기도책으로 편집되었다.
〔신약과 교회의 제사〕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과월절의 희생 제사로 설명하였다. '최후 만찬' 예식을 통하여 과월절 제사를 '새 계약의 피' 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는 내 계약의 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마르 14, 24).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자기 목숨을 과월절의 희생 제사를 위한 온전한 어린 양처럼 내주었다는 설명이다(마르 1,45 ; 요한 1, 29). 따라서 성찬례에서의 빵과 포도주는 과 월절의 식탁에 올리는 누룩 없는 빵과 제단에 뿌리는 흠없는 양의 피에 상응한다. 성찬례에 초대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하느님께 드리는 희생 제사로서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제사는 속죄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찬미와 감사의 제사' 이다(히브 13,15).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스라엘 제사의 최종적이며 완전한 속죄 제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모든 제사를 포함한 것이며, 예수의 희생 제사적인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하느님 앞에 그리스도의 제물로 나아갈 수 있다(히브 7). 그리스도의 죽음, 즉 그의 희생 제사는 화목 제물(1요한 2, 2)로 그리스도께서 아벨의 깨끗한 피의 대가(마태 23, 35)를 갚아야하는 하느님의 가르침, 즉 토라를 완성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 1, 29 ; 1베드 1, 19)을 통해서 인류의 결정적인 구속을 완성하는 파스카의 희생 제사이며(1고린 5, 7 ; 요한8, 34-36), 동시에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출애 24, 8) 새로운 계약의 희생 제사이다(1고린 11,25). 신약의 이 제사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성자의 피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13항). 또한 성체성사를 거룩한 희생 제사로 부르는 것은 "성체성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고 교회의 봉헌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사 성제, 찬미의 제사(히브 13, 15), 신령한 제사, 깨끗하고 거룩한 제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제사가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고 능가하기 때문이다"(130항)라)라고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례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1367항)이며, "성찬례는 교회의 희생 제사"(1368항)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저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시편 50, 19)이라고 하였듯이 외적인 제사는 영적 제사의 표현이어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내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아모5, 21-25), 이웃 사랑과 상관없이 바쳐지는 제사를 비난하였다(이사 1, 10-20). 예수 역시 "내가 바라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선이다"(마태 9, 13 ; 12, 7)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교회는 "하느님과 일치하여 행하고 또 그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참다운 제사" (2099항)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교회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기억하는 미사를 통해 재현되고 현재도 계속 봉헌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삶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 친교제 ; 희생 ; ←번제 ; 봉헌 ; → 과월절 ; 무교절 ; 바리사이파 ; 사두가이파; 유대교 ; 축제, 성서의 ; 쿰란 공동체 ; 하가다)

※ 참고문헌  R.T. Beckwith · M.J. Selman eds., Sacrifice in the Bible, Michigan, Baker Book House, 1995(김병길 역,《성경에 나타난 제사법연구》, 도서출판 그리심, 2001)/ B. Chilton, The Temple of Jesus. His Sacrificial Program Within a Cultural History of Sacrifice, Pennsylvania, The Pennsylvania State Univ. Press, 1992/ P. Heger, The Three Biblical Altar Laws. Developments in the Sacrificial Cult in Practice and Theology. Political and Economic Background, Berlin, Walter de Gruyter, 1999. 〔曺哲秀〕
Ⅱ. 유교에서의 제사 (⇨ 조상 숭배 ; 조상 제사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