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순교자. 영국과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특히 베네치아와 페라라의 수호 성인. 축일은 4월 23일.
제오르지오 성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그의 순교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콘스탄틴 대제(306~337) 이전에 팔레스티나의 디오스폴리스(Diospolis)라고도 불리던 리다(Lydda)에서 순교하였다는 것만 알 뿐이다. 하지만, 성인은 이른 시기부터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 모두에서 알려져 있었고 공경을 받았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는 그를 '위대한 순교자'(μεγαλομάρτυρας) 불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과 《그리고리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regorianum)에 나타난다. 6세기경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의 성당이 그에게 봉헌되었으며, 이른 시기부터 그는 동로마 제국 군인들의 수호 성인이었다. 또한, 시리아에서는 4세기에 성인의 이름으로 몇 개의 성당이 봉헌되었으며, 콘스탄틴 대제는 콘스탄티노플에 성인을 기리는 성당을 지었다. 이집트에는 성인의 이름을 딴 40개의 성당과 3개의 수도원이 있었다. 이 유적지들에는 글들이 남아 있는데, 이런 것들로 보아 성인의 연대가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6~8세기에 걸친 테오도시오(Theodisius), 안토니오(Antonius), 아르쿨포(Ar-culphus) 등의 초기 순례자들은 한결같이 리다 혹은 디오스폴리스가 제오르지오 성인 공경의 중심지이며, 이곳에 성인의 유해와 유물이 안장되어 있다고 언급하였다. 495년 교황 젤라시오 1세(492~496)가 반포한 교령 <되찾은 책에 대하여>(De Libris recipiendis)는 출처가 미심쩍은 제오르지오 성인의 행적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하지만 이 교령은 "성인을 공경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성인의 정확한 행적은 하느님만이 알고 계신다"라고 밝히고 있다.
성인이 세 번 칼에 맞고 불에 태워졌으나 그때마다 하느님의 힘으로 다시 살아났다든가, 죽은 사람을 살려서 세례를 주었다든가, 순교자의 잘린 머리에서 피가 아닌 우유가 흘렀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담은 성인전 내용이 신빙성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제오르지오에 대한 성인전이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들을 전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근거로 성인에 관한 참된 역사를 추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오르지오 성인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랜 옛날, 구체적인 장소와 관계되어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상당한 역사성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제오르지오 성인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성인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한 것이 《황금 성인전》(Le-genda aurea)에 언급된 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인이 어느 나라를 지나다가 어떤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 용의 제물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나라는 계속 어린 양을 용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양들이 다 바닥나자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돌아가면서 딸들을 바치다가 공주의 순서가 되자 그 하녀가 대신 제물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인은 하녀와 함께 기다리다가 용이 나타나자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용을 붙잡았다. 이때 성인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다면 용을 죽이겠다고 하자 왕과 백성들이 동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창으로 용을 찔러 죽였고, 왕을 비롯한
15,000명이 세례를 받았다. 성인은 왕국의 반을 주겠다는 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하느님의 교회들을 잘 돌보고 성직자들을 존경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 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프랑크족의 왕인 클로비스 1세(466?~511)는 성인을 기리는 수도원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성인을 7~8세기 영국에 알린 사람은 아마도 아르쿨포와 아다난(Adamnan, 627~704)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인의 이름은 《베다의 순교록》(730)에 등장하는데, 어떤 이유로 그가 영국의 수호 성인이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성인의 행적이 앵글로색슨어로 번역되고, 노르만의 정복 이전에 성당들이 성인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는 것만이 알려져 있다. 그중 하나가 1061년에 봉헌된 동커스터(Doncas-ter)의 성당이다.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성인에 대한 공경은 더 널리 전파되었다. 역사가인 맘스베리의 월리엄(William of Malmesbury, 1090?~1143?)은 1098년의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순교자 기사들' 인 제오르지오 성인과 데메트리오(Demetrius) 성인이 프랑크 군대를 도와 사라센을 물리치고 도시를 점령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잉글랜드의 왕인 리처드 1세(1189~1199)는 자신과 자신의 병사들을 성인의 보호에 의탁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군인들의 특별한 수호 성인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많은 화가들에 의해 제오르지오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그는 일반적으로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과 함께 갑옷을 입은 젊은 모습의 기사로 묘사된다. 그리고 말 위에서 창으로 용을 겨누고 있거나, 주변에 부러진 창이 있고 칼로 용을 죽이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발 아래에 죽은 용이 있고 부러진 창을 들고 있는 모습도 있다. 하지만, 수호 성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갑옷을 입고 깃발과 창을 들고 있거나 또는 부러진 창과 칼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궁수들, 기사들, 기사단, 군인들의 수호 성인이며, 남편들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현재 영국 해군에서 사용하는 기장은 하얀 바탕에 붉은색으로 커다란 성 제오르지오의 십자가가 그려진 문양이며, 이는 영국 국기 도안의 일부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G. Ferguson, Signs & Symbols in Christian Art, Oxford Univ. Press, 1961, pp. 121~122/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p. 197~198/ FL. Cross · E.A. Livingstone,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Oxford Univ. Press, 1997, pp. 664~665/ E. Hoade, 《NCE》 6, 2003 , pp. 143~144. 〔편찬실〕
제오르지오 (?~303?)
Georgius
글자 크기
10권

용을 죽이는 성 제오르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