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교회 역사가.
팔레스티나에 있는 체사레아의 주교(367~395)였던 그는 예루살렘의 치릴로(Cyrilus, +386)의 조카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젤라시오는 367년 체사레아의 주교가 되었지만,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에서 결의한 신앙 고백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로마 제국 발렌스 황제(364~378)에 의해 372년 주교좌에서 쫓겨났다. 그의 주교좌는 아리우스주의자인 에우조이우스(Eu-zoius)가 차지하였지만,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가 379년 즉위하면서 자신의 주교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 참석한 150명의 교부 중 한 사람이었다. 이후 39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통 신앙을 고백하며 활동하였다. 교회사가인 키루스의 주교 테오도레토(Thedoretus, 393?~458?)는 젤라시오가 "교리를 순수하게 보존한 분명한 분이며 그의 생애는 성덕으로 빛났다" 라고 서술하였다(《교회사》 5권 8). 또한 예로니모(Hieronymus, 347~419) 역시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De Vir. ill., Ⅲ, 130).
대표적인 저서로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 2권으로 구성된 《교회사》가 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260/265?~339)가 저술한 《교회사》(Ἐκκλησιαστικὴ ἱστορία)의 속편으로, 395년까지의 교회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예루살렘의 치릴로의 요청으로 저술한 것으로서, 그 내용은 루피노(T. Rufinus, 345~410)의 《교회사》와 시지쿠스의 젤라시오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를 역추적하여 재생시킬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이 루피노의 《교회사》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이 《교회사》에서 젤라시오는 콘스탄틴 대제(306~337)가 아리우스주의를 옹호하는 정책을 펼쳤던 과실을 대충 얼버무려 넘기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외 교의신학적 저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같은 본질이심을 극단적으로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의 하나인 아노메이(Anomei)를 반박하는 단편의 논문이 있다. 또한 신앙의 신비에 대해 설명하는 《상징의 해설》 (Expositiosymbol)은 치릴로가 저술한 《예비자 교리》에 대한 일종의 작업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단편만 존재한다.
※ 참고문헌 K.-H. Uthemann, 《LThK》 Ⅳ, 3rd ed., p. 401/ B. Altaner . A. Stuiber, Patrologie, Leben, Schriften und Lehre der Kir- chenväter, Herder, 8th ed., 1993, p. 225f./ F. Scheidweiler, (RGG) Ⅱ, 3rd ed., p. 1310/ J. Quasten, Patrology, Ⅲ, 4th ed., 1988, p. 347f./ FL. Cross · E.A. Livingstone eds.,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p. 658/ A. Glas, Die Kirchengeschichte des Gelasios von Kaisareia, Leipzig · Berlin, 1914/ F. Winkelmann, Untersuchungen zur Kirchengeschichte des Gelasius von Kaisareia, SDAW.S, 1965/ 0. Bardenhewer, Geschichte der Altkichlichenen Literatur Ⅲ, p. 282. 〔張仁山〕
젤라시오, 체사레아의 ? ~ 395)
Gelatius Caesariensis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