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

〔영〕Zoroastianism

글자 크기
10
최고의 신인 아후라마즈다의 탄생.
1 / 2

최고의 신인 아후라마즈다의 탄생.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 오늘날 이란과 아프카니스탄 접경 지역에 있는 고산 지대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이며 종교 개혁가였던 조로아스터(Zoroaster ; Zarathustra, 기원전 628?~551?)가 창시한 종교.
조로아스터교는 신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종교로, 사원과 가정에 성화(聖火)를 모셔 두고 그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 (拜火敎)라고도 불렀다. 조로아스터교는 5세기경 중국에 전해졌다. 조로아스터교 최고의 신이 '아후라마즈다' (Ahura-Mazda)이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를 '마즈다이즘' (Mazdaism)이라고도 부른다. '아후라마즈다' 는 하늘과 땅, 낮과 밤, 빛과 어둠의 창조자로 최고의 신이다. 아후라마즈다를 종종 '지혜의 신' , '빛의 신' 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조로아스터교 이전의 페르시아 종교〕 조로아스터교 이전의 페르시아 종교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자료가 없다. 하지만 베다 시대의 아리아인(Aryan) 종교와 뿌리를 같이한다. 조로아스터교 이전에 페르시아인들은 주로 '데바' (deva)라는 힘의 존재를 숭배하였다. 데바는 태양, 달, 별, 땅, 불, 물 등과 같은 자연적인 힘과 관련된 존재로, 페르시아인들이 숭배하였던 데바라는 이름은 <리그베다>(Rigveda)의 데바(빛나는 존재)와 일치한다. 또한 페르시아인들은 미트라(Mitarrc)라는 신을 숭배하였다. 미트라는 메소포타미아 북쪽 산악 지역을 지배하던 아리안족의 일부인 미탄니(Mitami)의 주신이기도 하였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신은 가축과 자손의 번성을 주관하는 신 미트라였다. 미트라는 빛의 신이고, 충성과 신앙 수호의 신이었다. 이밖에도 전쟁의 신 인타르(Intar), 쌍둥이 신 나사티아(Nasatya), 바람의 신 바유(Va-yu), 죽은 자들을 통치하는 이마(Yima), 후손을 보살피는 조상의 신 프라바시(Fravashi) 등이 있었다. 이런 신들 사이에는 위계 질서가 있었다.
야외 제단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바칠 때, 제사장들은 성화를 피우고 '하오마' (Haoma, 베다의 소마) 라는 식물로 만든 환각수인 하오마즙을 제단에 뿌린 뒤 희생 제물로 주로 동물을 바쳤다. 그들이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린 것은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르시아인들의 생활 양식이 유목에서 정착 농경 방식으로 바뀌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유목민들에게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으나, 농사를 짓는 정착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따라서 페르시아인들은 변화된 생활 양식에 맞는 새로운 종교 예식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처럼 페르시아의 삶의 방식이 유목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바뀌면서 종교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 개혁이라는 대과업을 조로아스터가 떠맡게 되었다.
〔조로아스터의 생애〕 조로아스터교 전승에 따르면, 그는 '알렉산더보다 258년 앞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은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9~330)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가 코라스미아(중앙 아시아 아랄 해 남부 지역)의 왕자인 비슈타스파(Vishtaspa)를 개종시켰을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고 한다. 또한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0?~500?)가 바빌론에서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전설도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할 때, 그는 기원전 628년경에 태어났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가 페르시아의 중동부 어디에선가 태어났다고 추측만 될 뿐 분명하지는 않다.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조로아스터는 15세 때 '쿠스티' (Kusti, 성스러운 노끈)를 받았다. 20세 때에 부모와 아내 곁을 떠나 종교적인 방랑의 길에 들어섰고, 30세 때에 계시를 받았다. 그후 조로아스터는 지혜의 신, '아후라' 를 섬기는 제사장이 되었다.
조로아스터가 활동하였던 시기는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의 시조(始祖)인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때였다. 아케메네스 왕 때에는 마기(Magi, 단수형은 Magus)가 페르시아의 모든 종교 의식을 주관하고 있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30/420?)에 의하면, 마기들은 특별한 관습을 지닌 주술사들로서 죽은 자의 시체를 밖에 그대로 방치해 두던 관습을 갖고 있었으며, 악한 동물과 싸우거나 꿈을 해몽하는 일을 하였다.
천사장 보후 마나(Vohu Manah, 선한 생각)가 나타나 조로아스터에게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순수한 영혼의 상태로 아후라마즈다 신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마즈다는 조로아스터에게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주면서 진정한 종교의 교리와 의무를 가르쳐 주었다. 그 후 8년 동안 조로아스터는 여섯 번이나 중요한 천사장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조로아스터에게는 최초의 계시가 더욱더 확고해졌다. 이런 체험 이후 조로아스터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으나 실패하고 혹독한 유혹의 시련을 당하였다. 악령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가 나타나 마즈다를 예배하는 종교를 버리라고 종용하였으나, 조로아스터는 이를 거부하였다. '마이뉴' 는 '인간' 또는 '정신' 이라는 뜻을 지닌 아베스타어이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이 단어는 영어의 '마음' (mind), '정신적인' (mental)이라는 단어와 같다. 그러나 주로 마이뉴를 '영' (spirit)으로 해석한다.
그 후 조로아스터는 비슈타스파 왕자의 궁정에서 2년동안 머물면서 왕자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였지만 궁정 사제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궁정 사제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한 조로아스터는 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낸다. 그런데 이 무렵 왕자가 아끼던 흑마(黑馬)가 병들었는데, 조로아스터가 그 흑마를 고쳐 줌으로써 감옥에서 풀려났다. 왕자의 아내 후타오사의 도움을 받아 조로아스터는 왕에게 자신의 종교를 믿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해 오는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로아스터는 20년 동안 자신의 종교를 페르시아인에게 열성적으로 전파하고 종교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두 차례나 성전(聖戰)을 치렀다고 한다. 그는 77세 되던 해에 유목민의 침입으로 죽었다.
〔주요 사상과 교리〕 이원론 :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론이며, 제한된 윤리적 이원론(二元論)이고 우주적 이원론이다. 유일신론(단신론)은 다신론과 반대이지 이원론과는 반대가 아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은 결코 절대적인 이원론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빛과 정의를 상징하는 선신 '아후라마즈다' 와 어둠과 불의를 상징하는 악신 '앙그라 마이뉴' 와의 투쟁에서 최후에 최고의 신이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로아스터교의 윤리적 이원론에 의하면,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선과 악의 관점에서 선택해야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모든 신들을 서열상 최고 신 '아후라마즈다 아래 두고서 선과 악의 두 원리를 설명한다. 선신 스펜타 마이뉴(Spenta Mainyu)와 악신 앙그라 마이뉴는 조로아스터교 최고의 신인 '아후라마즈다' 의 쌍둥이 아들이다. 이 쌍둥이 아들들은 태초부터 영원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스펜타 마이뉴(자애로운 영으로 아후라 마즈다의 성령임)는 선을 선택하여 진리, 정의, 생명의 속성을 갖고, 앙그라 마이뉴(훗날의 아흐리만)는 악을 선택하여 파괴, 불의, 죽음의 힘을 갖게 된다. 두 신의 선택에 의해 선한 것들과 악한 것들이 생겨난다. 따라서 우주론적 이원론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의 근본은 이 두 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두 신은 각각 다른 한쪽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상호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가진다. 조로아스터는 세계를 선신과 악신의 싸움터로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선신과 악신의 싸움에 참가하여야 한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이싸움에 참가해야 한다. 조로아스터는 사람들에게 이 싸움에서 선신인 아후라마즈다의 편이 되어 악신에 맞서 싸우라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신의 충실한 종이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는 아후라마즈다를 제외한 다른 모든 신에 대한 제의를 거부하였다. 아후라마즈다라는 신의 개념을 만들어 낸 조로아스터는 기존의 전통 종교를 거부하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낸 개혁가였다. 조로아스터는 아후라마즈다만을 선신으로 간주하고, 다른 모든 신들은 악의 세력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아후라마즈다는 조로아스터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신은 아니었다. 아후라마즈다는 인도의 아리아인이 바루나(Varuna)라는 이름으로 숭배하던 도덕과 자연 질서의 신이었다.
우주론 · 종말론 · 구원론 : 조로아스터교의 우주론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첫째 단계는 세상 창 조이고, 둘째 단계는 선한 종교 마즈다의 계시이며, 셋째 단계는 종말에 변형된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만물의 주(主) 오르마즈드(0mazd, 아후라마즈다)가 물질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가 뚜렷한 빛에서 불의 형상을 창조하였고, 그 불로부터 만물이 생겨났다. 첫 인간, 가요마르트(Gayõmart)는 하늘의 형상을 닮아 둥글게 생겨났다.
첫 인간의 부부가 처음에는 물을 먹었고, 그 다음에는 풀과 우유를 먹었고, 마지막에는 고기를 먹었다. 마지막 천년대에는 세 명의 구세주가 연이어 도래한다. 이때에 사람들은 고기, 우유, 풀의 역순서를 지키면서 절제를 하고, 단지 물만 먹을 것이다. 마지막 대전투에서 선신의 군대와 악신의 군대가 격렬하게 싸우지만, 오르마즈드의 군대가 악신의 군대를 쳐부수고 이긴다. 이리하여 초기의 평화로운 상태가 회복된다. 그때 사악한 자들은 불의 단죄를 받는다. 부활한 인간은 모두 불의 강을 건너야만 한다. 불의 강은 사악한 사람을 불태우지만, 정의로운 사람은 불의 강을 따뜻한 우유처럼 신선하게 느낄 것이다. 사악한 자들은 3일 동안만 고통을 당하고, 그 후에는 모든 인간이 행복을 누리게 된다.
후대의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의 역사를 각기 3,000년씩 네 시기로 구분한다. 무한한 시간 안에서 빛에 거주하는 오르마즈드와 어둠에 거주하는 아흐리만은 서로 공존한다.
첫 번째 3,000년이 끝날 때 아흐리만은 그들을 갈라 놓았던 공허를 건너 오르마즈드를 공격하였다. 오르마즈드는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경건한 기도, 아후나 바이랴를 암송한다. 아흐리만은 혼비백산하여 심연으로 도망가서 3,000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오르마즈드는 자애로운 불멸자를 비롯한 영적 존재를 창조한 뒤, 그에 상응하는 물질인 하늘, 물, 땅, 식물, 최초의 황소 와 최초의 인간을 창조한다. 그 다음 오르마즈드가 인간의 선재 영혼(fravashis)에게 초기 상태에 영원히 머물 것인지, 아니면 아흐리만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물질 세계로 육화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탄생과 전투를 선택한다. 한편 아흐리만은 여섯 마귀를 만들고 물질적인 창조를 하였다.
두 번째 3,000년이 끝날 때, 아흐리만은 최초의 여자인 창녀의 유혹을 받아 하늘을 찢고 오르마즈드의 창조물을 타락시킨다. 아흐리만이 첫 인간(가요마르트)을 죽이자 그의 몸에서 인간과 광물이 나왔고, 황소를 죽이자 그 몸에서 동물과 식물이 나왔다. 세 번째 3,000년 기간에 아흐리만은 물질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르마즈드가 만든 함정에 빠져 파멸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3,000년이 시작되자, 지상에 종교가 도래하였다. 그것은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의 탄생이었다. 1,000년 주기가 끝날 때에는 조로아스터의 계승자요, 사후에 낳은 아들인 새로운 구원자가 등장한다. 세 번째 3,000년이 끝나는 해에 등장한 최후의 메시아인 사오시안트(Saoshyant)는 최후의 심판을 하고, 불멸의 음료수를 분배하며, 새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무한한 시간에서 비롯된 유한한 시간은 12,000년이 지난 뒤 무한한 시간과 융합된다.
선신과 악신의 싸움에서 선신 아후라마즈다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데, 이 승리는 인간의 도움을 받아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사오시안트의 강림으로 인해 실현된다. 사오시안트가 강림하기 전에 두 신들이 투쟁하는 기간은 6,000년인데 3,000년은 조로아스터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지나가 버렸다. 조로아스터는 자신도 메시아들 가운데 하나이기를 원하였다. 두 신들의 투쟁이 끝 나고 사오시안트가 강림하게 되면, 종말이 시작된다. 즉 부활과 심판이 있게 된다. 죽은 사람이 모두 소생하고, 천국과 지옥에 있던 영혼이 몰려나와 최후 심판을 받는다. 결국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시험에서 살아난 영혼만이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즉 조로아스터가 죽은 후 3,000년이 지나면 세상 종말이 오는데, 그때 구세주가 나타나 천국, 연옥, 지옥에서 모든 인간이 부활하고, 금속 용광로의 불로 최후 심판이 시작되면서 악은 멸망한다고 한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에 의하면, 세계는 얼마 후에 엄청난 대화재로 소멸된다. 세계 질서가 끝날 때 모든 인간이 부활하여 일종의 시험을 거쳐 선인과 악인으로 구별된다. 신의 추종자들만이 새 창조에 동참한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영혼은 갈라짐의 다리, 즉 친바트(Chinvat) 다리에서 심판을 받는데, 자기 영혼에 관한 기록이 낭독되고 선과 악의 무게를 저울질하여 선한 자는 천국으로, 사악한 자는 지옥으로 간다. 결국 인간의 운명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 살아 생전에 행한 언행에 의해 내세의 삶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죄가 인간을 영원히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다. 죄를 씻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죄의 고백이다. 죄를 고백할 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인 파테트를 암송해야 한다. 죄의 고백은 대사제 다스투르(Dastr)에게 해야 하지만, 다스투르가 없을 때는 일반 사제에게 한다. 죄를 씻는 다른 하나는 여분의 공적들의 이전(移轉)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성인들의 통공' 과 비슷하다. 여분의 공적의 이전 때문에 죽은 자들에 대한 기도와 예식이 중요하다. 이 같은 교리는 후대에 발전된 것이다. 그중 일부는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시대에 발전된 것들도 있다.
죽음에 대한 신화 : 조로아스터교의 장례 예식은 아주 독특하여 풍장(風葬)이나 조장(鳥葬)으로 장례식을 치른다. 사람이 죽으면, 개 한 마리를 시체 앞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방에 불을 켜고 시체를 인도의 파르시(Parsi)들이 '침묵의 탑' 인 다크마(Dakhma) 안으로 옮긴다. 파르시의 침묵의 탑은 일종의 시신 처리 장소이다. 이곳에 시체를 발가벗긴 채 3일 동안 놔두면, 독수리들이 와서 시체를 쪼아먹는다. 시체를 먹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1~2시간 정도면 독수리들이 시체를 깨끗이 먹어 치운다. 시체는 반드시 낮에 치워야만 하며, 햇볕에 말린 뼈들은 나중에 중앙 우물 속에 쓸어 넣는다.
나흘째 아침은 가장 엄숙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도달하여 심판할 신들 앞에 출두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즉 죽은 자의 영혼은 시체 위를 사흘 밤 맴돈다. 첫째 날 밤에는 생전에 자기가 했던 말들을, 둘째 날 밤에는 생전에 했던 생각들을, 셋째 날 밤에는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영혼이 되돌아본다. 그 다음날 아침에 영혼은 재판관 세 명에게 재판을 받으러 간다. 재판관들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누렸던 지위 같은 것에 개의치 않고 엄정하게 중립을 지키며 재판을 한다. 그들은 노래집에 기록되어 있는 각 개인의 행동을 근거로 저울에 죄와 공로의 무게를 달아 재판한다. 선의 무게가 악의 무게보다 더 나가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선과 악의 무게가 같으면 그 영혼은 하메스 타간이라는 연옥으로 가서 죄를 씻어야 하며, 악의 무게가 선의 무게보다 더 나가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간다. 재판이 끝나면 영혼들은 각자 자신의 안내자를 만난다. 선한 영혼은 아름다운 젊은 여자를, 악한 영혼은 보기 흉한 노파를 안내자로 만난다. 안내자들은 "내가 바로 당신의 양심입니다" 라는 말로 자기를 소개한다. 선한 영혼이든 악한 영혼이든 모든 영혼은 안내자를 따라 친바트 다리를 향해 나아간다. 친바트 다리에서 선한 영혼들은 천국으로 통하는 넓은 길을 걸어가지만, 악한 영혼들은 지옥으로 통하는 아슬아슬한 좁은 길을 걸어가게 된다. 악한 영혼들은 좁디좁은 길을 지나가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지옥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라 할지라도 일단 죄값을 다하면 다시 심판을 받기 위해 재판관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죄가 완전히 씻어졌다는 판결을 받으면, 지옥에 다녀온 영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마지막 재판 때에는 모든 영혼들이 부활하는데, 이때 몸과 영혼이 다시 결합하여 온전한 인간이 된다.
불의 사원 :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중요한 예식인 '야스나' (Yasna)는 성화 앞에서 아베스타(Avesta)를 낭송하면서 하오마(거룩한 음료)를 바친다. 성화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타도록 최소한 하루에 다섯 번 기름을 넣어야 한다. 매일 다섯 번 예배를 드리는데, 그 내용은 성전 암송과 기도문 암송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오마 즙을 짜는 의식도 포함되어 있다. 일련의 길고 복잡한 예식을 거쳐 정화된 16개의 불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불을 가장 신성시한다.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배하지만 불 자체를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아후라마즈다의 상징인 불을 숭배함으로써, 현명한 아후라마즈다의 본성과 본질을 깨달을수 있기 때문에 불을 숭배하는 것이다. 불을 숭배하는 예식을 집전하는 에르바드(Ervad)는 정화 예식을 되풀이하면서 청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에르바드는 아베스타를 암기하나 대부분 그 뜻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아베스타의 언어는 사어(死語)이기 때문이다.
아베스타는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아베스타 경전은 수세기 동안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사산 왕조(226~651) 때인 300~400년경에 집대성되었다. 아베스타 경전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조로아스터의 송가가 들어 있는 야스나이다. 그외에도 세상 창조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팔레비(Pahlavi) 경전과 조로아스터의 설화 모음집인 덴카르트(Denkhart) 등이 있다. 아베스타 경전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우선 예배 의식에 관한 규정과 가타스(자라투스트라의 송가)에 대한 내용인 '야스나', '작은 아베스타' 라는 뜻을 지닌 기도서인 '쿠르다 아베스타' (Khurda Avesta), 예배와 제사에 대한 규정인 '비스 프 라트' (Visp-rat) , 악마를 물리치는 주문과 정결 의식에 관한 내용인 '벤디다드' (Vendidad) 또는 '비데브다트'(Videvdat), 사후 영혼에 관한 내용인 '하독스트 나스크'(Hadoxst Nask) 등이다.
여러 가지 축제들 : 조로아스터교의 연중 축제에는 여섯 번의 계절 축제인 가한바르와 연말에 죽은 자를 기념하는 축제가 있다. 또 1년 열두 달의 이름을 따서 신에게 바치는 대축제가 있다. 신년 축제인 노루츠는 조로아스터교의 축제 중에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축제이다. 이 축제는 정오와 여름을 의인화한 라피트윈을 기념하는 봄철 축제이다. 미트라 혹은 메라간의 축제는 전통적인 가을 축제로, 노루츠의 봄 축제처럼 가을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역사와 변천〕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사산 왕조에 이르기까지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계속 변하면서 다른 근동 종교들(유대교, 그리스도교, 무슬림 이전의 아랍인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교는 자취를 감추고 헬레니즘화되었다. 그러다가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7~서기 224) 말에가서 조로아스터교는 다시 살아났으며, 사산 왕조 때에 페르시아의 국교가 되었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사산 왕조는 다른 종교(그리스도교, 마니교, 불교)들을 박해하였다. 그 결과 샤푸르 1세(?~272) 치하에서 어느 정도 종교의 관용을 누렸던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Manichaeus, 216~274)는 바흐람 1세(273~276)가 즉위하자 조로아스터교에 의해 희생당했다.
651년에 사산 왕조가 이슬람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이슬람은 페르시아인들에게 종교적인 관용을 베풀었다. 코란에 다른 종교에 관용을 베풀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조로아스터교에 관대하였으나, 조로아스터교도들이 계속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박해를 자초하였다. 이슬람은 8~10세기에 집중적으로 조로아스터교를 박해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자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집단적으로 인도로 이주하여 봄베이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들이 바로 인도의 파르시(인도로 이주한 페르시아인)들이다. 높은 교육열과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유명한 파르시들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면서 엄청난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종교 서적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인도에서 가장 실력있는 사업가요 실업가로서 호텔업, 철강 사업, 항공 사업 등을 장악하였다. 오늘날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은 전세계를 통틀어 10만 명 정도이며, 주로 인도와 이란, 영국에 분포되어 있다.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 학자들에 의하면, 바빌론 유배 이후 이스라엘의 종교 안에 메시아 사상과 부활, 천사, 사탄 같은 교리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200~50년 중엽에 유대인들이 파르티아(페르시아)인들과 접촉하면서 이 같은 사상이 유대교에 들어왔다고 주장하였다. 사해 두루마리가 발굴되자,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에서 발견된 문서들 속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유대-그리스도교 종말론 사상이 후기 조로아스터교 문서들에 나타난 사상과 일치하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불교와 이슬람교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가 이들 종교에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면 이들 종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또는 이러한 사상이 중근동 지역의 종교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해야 할 것이다. 조로아스터교가 다른 종교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원론 · 천사론 · 종말론 같은 개념의 기원을 정확하게 밝혀 내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다른
종교들 안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로아스터교는 오랜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왔다. 사산 왕조 때에는 조로아스터가 주창한 원래의 유일신론이 다신론으로 변형되고 조로아스터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옛 아리아인의 자연신들이 조로아스터교에 들어와 최고의 신, 아후라마즈다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등 본래의 교리가 많 이 변하였다. (⇦ 배화교 ; 아후라마즈다 ; → 마니교)
※ 참고문헌  G. Gnoli, 《ER》 15, pp. 579~591/J. Duchesne-Guilemimin, La Religion de l'Iran ancien, Paris, 1962/ ㅡ, Zoroaster, 《NCE》 14, 2003, p. 935/ R.C. Zaehner, The Dawn and Twilight of Zoroastrianism, 1961/ J.B. 노스, 윤이흠 역 《세계 종교사》 상, 현음사, 1986. 〔盧成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