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거, 그레고어 (1906~1950)

Sorger, Greg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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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거.

조르거.

베네딕도회 보이론(Beuron)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그레고리오. 세례명은 루도비코.
1906년 11월 19일 독일 로텐부르크(Rottenburg) 교구의 스파이힝겐(Spaichingen)에서 태어난 조르거는, 1928년 베네딕도회 보이론 연합회의 보이론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은 후 1929년 6월 29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그는 1934년 8월 5일 보이론 수도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1937년 독일 보이론 연합회가 일본 토노가오카(Tonogaoka)에 진출하여 새 수도원을 건설하고 있을 때, 일본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보이론 수도원의 일본 진출 계획은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어 결국 실패하였고, 보이론 연합회는 일본의 수도원 건물 전체를 덕원 수도원에 이양하였다. 그런데 일본에 있던 일부 선교사들은 덕원 수도원에서 선교 활동을 계속하기를 열망하였다. 조르거 신부는 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덕원 신학교 교장인 로머(A. Romer, 盧炳朝, 1885~1951) 신부의 간청으로 1940년부터 덕원 신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는 수도원의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었고, 그해 신학교에서 영어가 선택 과목으로 개
설되자 영어 과목까지 담당하였다. 몸집이 유난히 컸던 그는 신학생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쳤고, 신학생들의 영명 축일을 꼭 기억하여 작은 선물이라도 몰래 전해 주곤 했던 사랑 많은 선생이었다.
1949년 5월 덕원 수도원을 북한 공산 정권에 빼앗긴 후 평양 인민 교화소에 갇혀 있을 때부터 그의 건강은 나빠졌다. 이후 옥사독 수용소로 이송된 후에도 계속된 설사로 그의 몸은 야위어 갔다. 천성이 명상적이고 경건하였던 그에게 강제 노동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결국 조르거 신부는 1950년 11월 15일, 미군의 공습을 피해 함경북도 만포(晩浦)로 가던 피난길에 굶주림과 추위로 동사하였다. 그의 시신은 한국인 포로에 의해 만포 근처에 매장되었다. (→ 덕원 신학교)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제2집 :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위원회, 1991/ A. Kaspar · P. Berger hrsg., Hwan Gab 60 Jahre(還甲), Münster-schwarzach, 1973/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편,《원산수녀원사》, 1988/ F. Renner hrsg., Der fünfarmige Leuchter, Bd. Ⅱ, 1971/ 박영구 역, 《북한에서의 시련》, 1997, 분도출판사.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