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막달레나(1807~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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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을 부양한 조 막달레나(탁희성 작).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을 부양한 조 막달레나(탁희성 작).

성녀.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 성녀 이 가타리나의 3남매 중 맏딸.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모친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 친척들이 천주교를 금하게 되자, 모친은 막달레나가 7~8세 되었을 때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왔다. 막달레나는 외가에 살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자라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을 부양하였다. 그녀는 18세 때 혼담이 오가자 수정(守貞)을 결심하고 상경(上京)하여 교우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였고, 5~6년 후에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모친을 봉양하며 교회 일에도 열심이었다. 즉 무식한 사람을 가르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병자들을 간호하고 죽을 위험에 있는 외교인 어린이들에게 대세(代洗)를 주는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교우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던 중 1838년 말 고향에서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막달레나는 모친과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피신하였고,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의 주선으로 서강 독갑이골 조바르바라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막달레나 모녀와 조 바르바라 세 모녀 등 5명은 예수와 주교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함께 생활하던 중 1839년 5월(음)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막달레나는 포도청에서 신문과 주뢰형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았고, 체포된 지 3개월 후인 8월(음) 전염병에 걸려 33세의 나이로 옥에서 사망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방한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이 가타리나)
※ 참고문헌  《기해일기》/《달레 교회사》 중.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