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오 (1815~1871)

曹明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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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경기도 수원 양간(梁澗) 사람으로, 수원 돌모루에 살던 김치공(金致公)의 권유로 천주교서(天主敎書)를 배웠다. 이어 김치공에게 대세(代洗)를 받고 세례명을 얻었으며,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에게 두 차례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조명오는 병인박해를 겪으면서 냉담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1871년 3월 26일(음) 경포교(京捕校)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었다. 그는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던 중 배교하는 말을 하였으나 곧바로 통회하고 홍원여(가롤로)와 함께 1871년 4월 15일(음) 57세의 나이로 우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치명일기》 254번/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현대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병인치명사적> 6권, 절두산 순교성지 소장/ 《포도청 등록》하, 영인본, 보경문화사, 1985.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