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921년 5월 평양 관후리에서 조봉윤(요셉)과 곽인숙(아가다)의 3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1933년 3월 평양 성모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진학하였고, 1938년 4월 덕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45년 12월 27일 임시 주교좌 본당이었던 평양 상수구리 본당에서 홍용호(洪龍浩, 1906~?) 주교의 주례로 사제품을 받고, 관후리 본당 보좌로 부임하여 주교 비서 겸 교구 경리 일을 맡으며 공산 치하에서 어려운 사목 활동을 전개하던 홍 주교를 보필하였다. 1948년 10월 평양교구에서 두번째로 커서 신자가 3,000명에 이르는 진남포 본당 11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서른도 안 된 젊은 사제의 부임에 신자들이 우려하였으나, 조 신부는 공산 정권의 박해 속에서도 냉담자 가정 방문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49년 5월 14일 공산당에 의한 홍용호 주교의 납치 사건이 있자 신자들은 조 신부의 보호를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조 신부의 월남을 권유하였으나 일축당하였다. 1949년 12월 평양 시내의 성직자 전원이 체포되고 성당 등 교회 재산이 몰수되었으며, 1950년 5월에는 진남포 본당과 사제관이 몰수되어 조 신부는 본당 양로원으로 옮겼으나 양로원도 1개월 뒤에 폐쇄되었다. 결국 조 신부는 신자 집에 기거하며 미사를 봉헌할 수밖에 없었지만 신자들의 보호로 공산당에게 체포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새벽 잠옷 차림으로 자고 있던 조 신부는 공산군에게 납치되어 행방 불명되었다.
※ 참고문헌 張善興, 《붉어진 땅의 十字塔》, 갑진문화사, 1951/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평 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 편 《북녘 땅의 순교자》, 가톨릭출판사, 1999. 〔崔起榮〕
조문국 (1921~?)
趙文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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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