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사상을 바탕으로 생명의 근본인 선조께 끊임없이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유교의 추원 보본(追遠報本)행위.
〔조상 숭배의 바탕인 효〕 조상 숭배의 바탕이 되는 효를 유교에서는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유교에서는 효를 유교의 핵심 사상인 인(仁)을 실현하는 근본으로 여기며, '인간 행위의 기초, 최우선, 모든 덕의 으뜸' 으로 본다. 이 효에 의해 사람됨이 평가되며, 불효는 가장 큰 죄로 간주되었다. 효는 단순히 부모 섬김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수신(修身), 가족 간의 우애, 임금의 선정(善政), 더 나아가 하늘〔天〕을 섬김까지 연결 · 확산된다.
효의 근본 정신은 감사의 보답에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는 은혜를 베풀어준 존재에게 감사의 보답을 하는 것이다. 배은망덕은 인간이 행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만큼 큰 은혜를 베풀어준 존재가 없으므로, 마땅히 최우선적으로 감사의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선조는 가장 귀중한 생명을 전수해 주셨으니 생명의 근본에 보답을 해야 하며〔報本〕, 사랑과 정 성으로 기르고 키워 주셨으니 그 은공에 보답해야 하는 것이다〔報恩〕. 부모와 선조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고 느낄 때, 친애와 감사의 정이 우러나오고 보본(報本)과 보은(報恩)의 효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보본과 보은의 효도를 유교에서는 하늘이 천부적으로 부여한 양지(良知)요 양능(良能)이라 한다.
효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다양하나, 크게 네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는 부모에게 전수받은 신체를 잘 보존하는 것〔身體保全〕이다. 《효경》(孝經)에서는 "신체· 머리카락 · 피부는 모두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감히 훼상시키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다" 라고 하였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생명 · 신체 · 정신을 받았으므로 자녀의 신체는 부모가 물려준 유체(遺體)이며, 부모가 줄기요 뿌리라면 자녀는 가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지가 상할 때 줄기나 뿌리까지 영향을 미쳐 상하게 하므로, 자녀는 부모의 유체인 자신의 몸을 경건하게 다루고 잘 보존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부모에게 극진한 봉양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잘 보존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부모를 욕되게 하므로 불효가 된다. 또한 부모의 생명력과 정신은 자녀를 통해 지속되고 확충되므로, 부모의 생명력을 지속시키고 부모께 보본과 보은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후손이 없는 것은 최대의 불효이다.
둘째는 부모를 봉양하는 양구체(養口體)와 그 뜻을 받들고 공경하는 양지(養志)이다. 자녀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부모께 문안드리고 의식주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불편없이 평안히 지내도록 봉양하며 질병시에는 정성껏 치료와 간호를 해드려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신체를 봉향하는 양구체의 효를 했다 하더라도 그 뜻을 받들어 마음을 편안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양지(養志)의 효를 하지 않는다면, 개나 말을 돌보고 사육하는 견마지양(犬馬之養)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공경과 정성으로 부모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양지(養志)의 효를 더욱 중시한다.
셋째는 도(道)를 행하여 떳떳한 인간이 됨으로 이름을 빛내고 부모께 영광을 드림〔立身行道 揚名顯親〕과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냄이다. 부모의 공통된 염원은 자녀가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그 이름을 빛내는 것이다. 자녀의 몸은 부모의 유체이므로 자녀의 덕(德)과 업적이 발할 때 부모와 선조에게 영광이 되며, 반대로 자녀가 악취를 풍길 때 부모에게도 욕이 된다. 부모의 공통적인 또 하나의 염원은 형제 간에 우애있게 지내는 것이다. 아무리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 하더라도 형제 간에 우애가 없다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결과적으로 불효가 된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부모에게 대한 효와 형제 간의 우애를 중시하며, 이상적 인물인 "요(堯)와 순(舜)의 도(道)는 다름이 아니라 오직 효(孝)와 제(弟)뿐”이라고 강조한다.
넷째는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장례와 제례를 통해 보본과 보은의 효를 계속함이다. 유교에서는 위에 열거한 효도 실천을 부모 돌아가심으로 끝내지 않고, "돌아가신 이 섬기기를 살아 계실 때 섬기듯이 함" 〔事死如事生〕으로 계속한다. 유교의 효도를 시간적으로 구분하면, 생시에 섬기는 사친(事親), 돌아가셨을 때 정성껏 장례를 지내는 장친(葬親), , 장례 후에 제사를 통해 정성과 공경을 드리는 제친(祭親)이 있다. 그런데 유교에서는 살아 계실 때의 효도보다 돌아가셔서 장례와 제사를 통한 효도에 더 정성을 기울인다. 그것은 생시에는 좀 부족함이 있더라도 다음의 기회가 있으나, 장례에는 다음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례의 경우에는 부모를 직접 뵙지 못하고 오직 정성을 통해서만 통교와 감격(感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상례와 죽은 이의 내재화〕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죽은 이는 물론 남는 이로 하여금 순수한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게 한다. 특히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은 자녀에게 말할 수 없는 애통과 그리움을 안겨 준다. 이 순수하고 애절한 심정은 자연히 외부로 표출되어 상례(喪禮)라는 의식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상례에서 자녀의 심정과 효성이 가장 잘 표출된다. 그런데 상례는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행해지는 의식이지만, 예(禮)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자녀들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자녀의 심정과 상례 의식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에 상례 예식은 살아 있는 자녀 심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유교 상례 의식은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복잡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녀의 심정과 의식의 관계에서 볼 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거부 심리가 소생희원(蘇生希願)으로 강하게 표출되는 초종 의식(初終儀式)이요, 둘째는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애통과 함께 죄책감으로 인해 애도의 거상(居喪) 생활을 하며 극진한 정성으로 장사를 지내는 장송 의식(葬送儀式)이다. 그리고 셋째는 돌아가신 부모를 자녀 안에 내재화(內在化)하는 상제 의식(喪祭儀式)이다.
초종 의식 :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첫 반응은 대체로 충격과 거부 심리로 나타난다. 이러한 충격과 거부 심리가 유교 상례에서는 임종해서 입관(入棺)까지의 초종 의식에서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평소 유교인은 인간이 할 바를 다 하고 결과는 하늘(天)에 맡기는 '진인사대천명' (盡人事 待天命)의 생사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죽음에 임해서도 천명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처신한다. 가족 역시 임종자가 품위 있게 죽음을 맞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녀의 심정은 부모 생명의 회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며 심지어는 오사(五祀)에 빌기까지 한다. 평소에는 개인적인 기도를 배척하는 유교이지만, 임종 시의 이 기도만은 효자의 절박하고 극진한 심정의 표현이요 바른 도리로서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한 운명을 해도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생을 비는 복(復)을 행한다. 복은 떠난 혼(魂)을 다시 불러들여 백(魄)에 합치도록 하는 종교 의식이다. 복을 해도 소생하지 않으면 일단 사망으로 간주하고 상사(喪事)를 행하지만, 계속해서 소생의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습(襲)과 염(斂)에서 잘 드러난다. 시신을 목욕시키는 것은 죽은 이에 대한 정성의 표시이지만, 다른 한편 소생을 희구하는 자녀 심정의 표현이다. 반함(飯含)에서 생명력과 활력을 상징하는 쌀과 조가비〔貝〕또는 옥(玉)을 입 안에 넣는 것 역시 소생 희구의 표현이다. 또한 소렴(小斂) 시 옷과 이불로 시신을 싸지만 묶거나 얼굴을 가리지 않는 것이나 3일간 기다렸다가 입관하는 것 역시 돌아간 부모의 소생에 대한 원의의 발로이다.
장송 의식 : 3일간이나 소생 희망을 갖고 기다려도 소생하지 않으면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입관을 하고, 죽은이를 위한 복장인 상복을 입으며 장송 절차를 밟는다. 그런데 자녀는 부모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더욱 심한 죄의식을 느끼게 되며, 자기의 죄역(罪逆)으로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느낀다. 유교는 다른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와는 대조적으로 평소에는 죄의식이 희박하나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심한 죄의식을 갖는다. 죄책감을 느끼는 자손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근신의 거상 생활(居喪生活)을 통해 애도하고 속죄하며 부모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인간답게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최대의 정성으로 돌아가신 부모를 장송하는 일이다. 따라서 상제들은 안장(安葬)전 뿐만 아니라 그 후 3년간이나 의식주와 사회 활동 등 생활 전반에 걸쳐 금욕적 근신을 하면서 애도를 극진히 한다. 아울러 친척과 이웃의 도움을 받아 전(奠), 상식(上食), 묘택(墓宅) 마련, 안장(安葬)에 각별한 주의와 정성을 드림으로써 장친(葬親)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한다.
상제 의식 : 유교의 상례는 시신의 안장으로 끝나지 않고, 장례 후 제사를 통해 돌아간 부모를 내재화(內在化)함으로써 완성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장한 후 생자(生者)의 심정은 허전함과 공허감을 느끼면서 계속 찾게 되는데, 그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함께 있다고 느낄 때 상례는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과 내재화의 과정을 유교에서는 장례 후 우제(虞祭), 졸곡제(卒哭祭), 부제(祈祭), 소상제(小祥祭) . 대상제 (大祥祭), 담제(禮祭), 길제(吉祭)를 통해 수행한다.
장례 후 자녀의 심정은 슬픔과 공허감으로 차 있게 되는데, 이때 돌아간 이의 신상(神像)이요 의빙처(依憑處)라고 믿는 신주(神主)를 모셔 놓고 신령의 임재(臨在)를 느끼면서 우제(虞祭)를 지낸다. 이로써 신령을 평안케하는 동시에 자녀의 마음도 위로를 받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게 된다. 또한 졸곡제(卒哭祭)를 통해 좀더 안정을 이룰 수 있기에 수시로 하던 곡(哭)을 그치며, 부제 (祐祭)를 통해 신주(神主)를 선조들의 사당에 부(附)함으로써 돌아간 부모를 선조들의 세계에 입적시킨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슬픈 감정도 순화되고 돌아간 부모의 내재화(內在化)도 이루어짐에 따라, 소상(小祥) 후에는 아침 · 저녁으로 하던 곡(哭)도 그치고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 대상(大祥) 후에는 상복을 벗고 신주를 사당에 모시며, 담제(禮祭) 후에는 탈상하고 평상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마침내 길제(吉祭)에 이르러서는 하사(嘏辭), 수조(受胙), 음복(飮福) 등을 통해 더욱 절실히 돌아간 부모와 통교하고 일체감을 느끼게 되며, 공동체와도 일치와 친교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하여 사별한 부모를 살아 있는 자녀 안에 완전히 내재화함으로써 상례는 완성되며, 슬픔과 아픔의 흉례(凶禮)는 기쁨과 감사의 길례(吉禮)로 변하게 된다. 또한 부모와 선조를 내재화한 자손은 선조의 생(生)까지도 지속, 확충시켜야 하므로 자신의 삶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죽음은 천명(天命)으로 개개인이 혼자서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은 살아 남은 자녀에 의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사당과 추원 보본〕 유교에서는 죽은 이의 내재화를 통해 상례를 완성하고 상기(喪期)를 마친 후에는, 신주(神主)를 가묘(家廟)에 봉안(奉安)하고 부모와 선조가 계시다고 믿는 사당(祠堂)을 중심으로 "돌아가신 이 섬기기를 살아 계실 때 섬기듯이 함"의 추효(追孝)를 계속한다. 유교에서 사당은 선조가 계시는 신성처(神聖處)요 마음의 고향이며 가문의 중심이다. 따라서 생활 전체는 사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매일 아침 사당에 문안드리고 출입 시는 물론 새로 벼슬을 하거나 벼슬이 올라가거나 떨어질 경우에도 알리며, 출생 · 관례 · 혼례 · 상례 등 가정에 큰 일이 생기면 반드시 고한다. 집을 지을 때는 먼저 정침(正寢) 동쪽에 사당을 세우고, 수재 · 화재 또는 도둑 등을 당하면 제일 먼저 신주를 구한다. 또한 삭망(朔望)과 속절(俗節 : 元旦, 冬至 등)에는 음식을 드려 참례(參禮)를 하고, 햇과일이나 곡식이 나면 천신(薦新)한다. 기일(忌日)에는 기제(忌祭), 사시(四時)에는 사시정제(四時正祭) 계추(季秋)에는 이제(禰祭)를 드려 추원 계효(追遠繼孝)를 한다.
유교에서는 사대부의 경우 사당에 부모부터 고조(高祖)까지의 4대조 고비(四代祖考妣)의 신주만 모시고(四代奉祀), 그 이상의 선조 신주는 묘지 옆에 묻어 체천(遞遷)하며 일년에 한번 묘제(墓祭)를 통해 추효(追孝)한다. 사당과 제사의 중심이 되는 신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신상(神像)과 의빙처(依憑處)이다. 인간의 본성적 조건에서 볼 때 돌아가신 이를 계속 사모하고 섬기기 위해서는 볼 수 있는 상(像)이 필요한데, 신주는 바로 죽은 이의 신상(神像)이다. 또한 사람의 죽음이란 혼(魂)과 백(魄)의 갈림인데 백(魄)을 떠난 혼(魂)을 떠돌아다니게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 혼이 의지하도록 마련해 드린 의빙처이다. 그런데 이 두 의미 중 의빙처보다는 신상의 의미가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유교 조상 제사의 근본 정신은 생명의 근원인 부모와 선조에게 계속 보본과 보은을 하기 위해 생시와 같이 섬김으로써 효를 계속 실천하는 데 있다. 이렇게 계효 보본(繼孝報本)으로 드리는 정성의 제사는 신령이 흠향하며 아울러 강복도 따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신령이 흠향하기를 염원하고 간청하며 정성의 제사는 꼭 흠향한다고 믿는다 하더라도, 유교 제사의 근본 정신과 목적은 신령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손의 보본 추효에 있다. 물론 민간에서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신령이 굶주리게 된다는 소박한 믿음도 있으나, 유교에서는 제사를 받는 대상보다는 제사를 드리는 자손이 중심이 되며 죽은 이의 존재 양태나 흠향보다는 산 이의 인간 도리인 효심과 성경(誠敬)이 문제인 것이다. 신령과의 감격(感格) 내지 신령의 흠향은 오로지 자손의 정성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지성으로 드리면 아무리 오래 전에 돌아가신 선조라도 감격하여 흠향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갓 돌아간 부모도 흠향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한마디로 "불성(不誠)이면 무물(無物)"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체적 성(誠)을 중시하고 있다.
유교 조상 제사의 목적은 선조로부터 복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민간에서는 조상 제사를 통해 복을 받으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유교에서는 복을 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이기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기적 사욕(私慾)은 악의 뿌리로 간주되고있다. 그렇다고 유교에서 복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효성의 제사는 반드시 복이 수반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복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추원 보본하는 효심과 효행 그 자체이며, 효자는 이 외에 다른 복(福)을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유교의 조상 제사는 보본과 보은의 마음에서 생시와 같이 정성껏 섬기려는 효성의 상징적 표현이다. 그리고 신령의 흠향이나 강복(降福)은 정성의 제사에 수반되는 효과요 결과이다.
유교의 조상 제사는 종류가 다양하며 예식에 있어서도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예식 구조는 대체로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마음을 집중시키고 신령(神靈)의 임재(臨在)를 여실(如實)하게 하는 준비 및 개식(開式) 단계이다. 제사 전에 마음과 정성을 모으는 재계(齊戒), 정성된 음식을 차려 놓는 진설(陳設), 죽은 이의 표상인 신위(神位) 또는 지방(紙榜)을 모시고 인사를 드리는 참신(參神), 향을 피우고 술을 모사(茅沙)에 부음으로써 혼기(魂氣)와 백기(魄氣)의 결합을 통해 신령의 임재(臨在)를 여실(如實)하게 하는 강신(降神) 등이다.
둘째 부분은 효성과 사모의 상징적 표현인 제물을 올리면서 흠향을 간청하는 의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생시와 같이 정성의 음식을 올리는 진찬(進饌)과 술을 올리는 헌작(獻爵 : 初獻, 亞獻, 終獻), 사모의 정을 표하면서 제물의 흠향을 간청하는 독축(讀祝), 생시 음식을 권하듯이 흠향을 권하는 유식(侑食)이다.
셋째 부분은 신령이 흠향하고 강복(降福)하는 의식이다. 신령이 흠향하도록 문을 닫는 합문(闔門), 다시 들어가서 차나 숭늉을 드리는 헌다(獻茶), 축관(祝官)이 신령의 강복을 전하는 하사(嘏辭), 제물의 일부를 제주(祭主)에게 먹도록 하는 수조(受胙), 신령의 흠향이 끝났음을 알리는 이성(利成) 등이다.
넷째 부분은 신령께 드리는 의식을 끝내고 제물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일치와 유대를 도모하는 마무리 의식으로, 작별 인사를 올리는 사신(辭神), 신위(神位)는 사당에 모시고 지방(紙榜)은 태우는 납주(納主), 상호 축복을 하면서 제물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 등이다.
이 모든 의식은 죽은 이를 생시와 같이 정성껏 섬기려는 효성의 상징적 표현이다. 또한 "제사를 드릴 때는 신령이 여실히 임재해 계신 듯이" 하는 성경(誠敬)의 실천이며, 나아가 신령이 흠향하리라는 염원과 믿음의 표현이다. 의식의 전체적인 구조는 돌아가신 선조와 살아 있는 후손과의 대화적 화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생명의 근본인 선조의 조건없는 은혜 베푸심에 유체인 자손은 감사의 보답으로 정성의 제사를 드리며, 정성을 흠향한 신령은 강복을 복물(福物)과 함께 내려준다. 신령의 복을 받은 후손은 그 복을 독점하지 않고 친척 · 이웃과도 나누며, 더 나아가 삶 자체가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함으로써 신령에 화답하는 것이다.
조상 제사의 효과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신령과 교감하고 복을 받는 것 뿐 아니라, 자손으로 하여금 생명의 소속감과 뿌리 의식을 깊이 느끼고 선조의 유체로서의 자신의 삶에 더욱 충실하도록 자극한다. 자손은 바로 선조의 유체이며 자손의 삶 여하에 따라 선조의 생(生)이 확충 · 지속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달려 있다고 믿기에, 자신의 삶을 함부로 불충하게 살아갈 수 없다. 또한 조상 제사는 친족으로 하여금 동일한 생명의 근본으로부터 출생하고 동일한 얼과 기(氣)를 받았음을 깊이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친족 상호 간의 일치와 유대를 이루게 한다. 아울러 자손들이 어릴 때부터 이 조상 제사를 통해 인효(仁孝)를 배우게 된다. 그로 인해, 윤리 도덕의 함양과 인격 수양이라는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본다.
〔조상 숭배의 극치와 배천〕 유교에서 조상 숭배의 극치는, 살아계실 때 부모 섬김에 있어서는 천(天)을 섬기듯이 하고 돌아가신 다음에는 제사로써 천과 짝함〔配天〕에 있다. 유교에서는 천을 만물과 인류의 근원으로 믿고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며 천명(天命)에 순응하지만, 천 섬김의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경신 의례(敬神儀禮)나 기도 행위보다는 천부(天賦)의 선한 본성에 입각한 인간다운 삶을 중시하고 여기에 관심을 쏟는다. 천이 인간 안에 이미 내재해 있기에 본심을 극진히 하고 인간의 도리를 충실히 할 때 그 자체가 하늘을 섬기는 행위〔事天行爲〕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 섬김〔事天〕과 부모 섬김〔事親) 역시 분리하지 않으며, 불가분의 관계로 본다. 그래서 "인자(仁者)는 부모 섬기기를 하느님〔天〕섬기듯이 하고〔事親如事天〕, 하느님 섬기기를 부모 섬기듯이 한다〔事天如事親〕” 라는 것이다. 더욱이 하(下)에서 상(上), 근(近)에서 원(遠)으로의 실천 순서를 중시하는 유교는 부모 섬김을 통해서만 하느님 섬김에 이르게 된다고 본다.
또한 부모 사후에도 계속 부모 섬기기를 천을 섬기듯이 하되 제사 때 배천(配天)함으로써 극치에 이른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배천은 천자(天子)만이 천제(天祭)인 교제(郊祭)에서 행한다. 천자 외의 사람들은 제사 의식으로는 행할 수 없고, 다만 배천(配天)의 정신으로 선조에게 추모와 감사를 극진히 하는 것이다. 천자의 경우 배천하다고 해서 선조를 천의 위치로 끌어올려 천과 동등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천은 만물의 근본이요 선조는 자손의 근본"이므로 생명의 근본이란 면에 상통하기에 짝〔配〕하여 보본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천은 인류와 만물의 궁극적인 근원이나 선조를 통해 인간을 생출(生出)하기에 인간에게는 선조가 가까운 근본〔近根本〕이며, 천은 먼 근본〔遠根本〕으로 두 근본이 상호 불가분적이므로 짝하여 동시에 보본과 보은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교를 "종교화한 윤리, 윤리화한 종교" 또는 "천조 숭배(天祖崇拜)의 이신 종교(二神宗敎)"라고 일컫기도 한다. (⇦ 제사, 유교의 ; → 유교 ; 인 ; 조상 제사 문제)
※ 참고문헌 최기복, 《유교와 서학의 사상적 갈등과 相和的 이해에 관한 연구》, 성균관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9/ 一, <유교의 음복>, 《종교 신학 연구》 3집 ,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소, 1990/ 최길성 , 《한국의 조상 숭배》, 예전사, 1986/ 한국민속대관 편찬위원회, 《한국 민속 대관》 1집, 고려대학교 민속문화연구소, 1980/ 羅光, 《中國哲學大綱》 上冊, 臺灣 商務印書館, 1975/ 王治心, 《中國思想史大綱》, 臺灣, 中華書局, 1977. 〔崔基福〕
조상 숭배
祖上崇拜
〔라〕Manismus · 〔영〕Ancester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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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제사는 효를 계속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