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들이 정보 교환의 수단으로 1902~1921년까지 20년간 프랑스어로 간행한 잡지. 본래 이 잡지는 고유한 명칭이 없었으나, 서울에서 발행되던 것이었기에 편의상 '서울 보고서' (le Séoul Bul-letin)라고 불렀고 지금은 이를 '조선교구 통신문' 이라 번역하여 부르고 있다.
《조선교구 통신문》은 연월일별로 해당 날에 있었던 사실을 충실히 객관적으로 적고 있는데, 간혹 편집자의 해설이 첨가된 것도 있다. 발행 횟수는 일정치 않았으나 대개 월 2회 이상이었으며, 비매품으로 조선 안에 거주하는 프랑스 성직자라면 누구나 받아 볼 수 있었다. 초대 편집인은 비에모(Villemot, 禹一模) 신부로 창간 때부터 1916년까지 편집을 맡았는데, 1909년에는 데예(Deshayes, 曺有道) 신부가, 1911~1913년에는 멩(Meng, 明若一) 신부가 편집을 맡았다. 그리고 1917년부터 폐간까지 라리보(Lammbeau, 元亨根) 신부가 편집을 맡았다.
《조선교구 통신문》은 폐간된다는 예고도 없이 1921년 11월 30일자를 마지막으로 발간이 중단되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한국인 성직자를 대상으로 간행되던 월간 잡지 《타벨라》(Tabella)의 속간이 주요 원인으로 추론되고 있다.
재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종교적 · 문화적 관심에서 탄생된 《조선교구 통신문》은 러일전쟁, 을사보호조약, 한일합방, 제1차 세계대전, 3 · 1 운동 등 역사의 격동기라 할 수 있는 시기에 교회를 둘러싼 내외 정세에 관해 사실 중심의 객관적인 서술을 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교회와 역사》 58호(1980. 6), p. 1/ 《조선교구 통신문》 〔白秉根〕
《조선교구 통신문》
朝鮮教區通信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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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