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 시대 사학자로 불리는 이능화(李能和, 1869~1945)가 1925년에 완성하여, 3년 뒤인 1928년에 간행한 책. 한국의 모든 종교 역사를 정리해 보고자 노력한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1918)를 저술한 이후 1920년대에 들어 그리스도교사에 대한 저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책의 제목에 기독교사 외에 외교사가 함께 언급되고 있어 약간의 혼란을 주고 있지만, 이 책은 하나의 독립된 체재하에 쓰여진 그리스도교사, 특히 한국 천주교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능화가 이 책을 저술한 동기는 종교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에서 함께 찾아 볼 수 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불교 신자였던 이능화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아버지 이원긍과 갈등을 일으켰던 신앙상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종교적으로 모순되지 않고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능화는 한국의 역사와 결부된 그리스도교사를 새로이 써 보고자 하였다. 거기에는 한국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그리스도교사가 없다는 사실과 기존의 그리스도교사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하였다. 특히 이능화는 그리스도교사를 근대 한국의 낙후된 원인을 파악하려는 자신의 현실적인 관심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이해하였다. 그는 조선 사회가 크게 낙후된 것은 그리스도교 등 서양의 문물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파악하였던 것이다.
《조선기독교급외교사》는 전체 상 · 하의 2편, 각 40장 · 31장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범례를 통하여 그 구성을 대강 알 수 있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 부분은 상편의 1~5장까지 해당되는데, 주로 천주교의 수용 과정에 관한 부분이다. 여기에서 이능화는 한국에 천주교가 수용된 것은 매우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학자들이 서적을 통해 천주교를 연구하면서 자발적으로 믿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선조 · 광해군 대를 한국에 천주교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라고 하였다. 둘째 부분은 상편의 6장에서 하편의 13장까지 해당되는데, 이능화가 서술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다룬 부분으로, 천주교의 전파 과정 및 천주교 박해의 전말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인조 대에 들어와서 천주교가 싹이 트며 점차로 만연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고종 대까지의 확산 과정을 시대적인 순서뿐만 아니라 계층 및 지역의 변화까지 주목하여 다루고 있다. 이때 특히 천주교 박해의 원인과 그 과정에 주목하고 있는데, 천주교 박해의 원인을 그는 당쟁이나 세도 정치 등 당시의 정치 현실과 관련하여 이해하였다. 즉 천주교 박해가 표면적으로는 사교(邪敎) 축출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남인(南人)들이 천주교 박해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언급한다. 셋째 부분은 하편 14~31장까지 해당되는데, 그리스도교가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 및 당시의 교회 상황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천주교가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게 된 과정을 외교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는 특징이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후에 갑자기 신자들이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한편으로 신자들의 활동과 함께 조선 사회의 풍속 등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조선기독교급외교사》가 가지고 있는 사학사적 의의는 대체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한국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최초의 그리스도교사라는 점과 그리스도교 성직자나 신자에 의한 저술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역사, 특히 당시의 정치 현실과 관련시켜 그리스도교사를 살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능화는 천주교 박해의 주된 원인으로 당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그리스도교사에 대한 그의 이러한 기본적인 관점은 그대로 1930년대 일본인 학자들의 연구에 계승되었다. 이와 함께 이능화는 《조선기독교급외교사》를 통하여 조선 양반 사회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당시 조선 사회가 개화되지 못하고 낙후된 것은 유교의 완고함과 소극성 때문이라고 하며 유교를 신랄히 비판하였다. 이와 달리 그리스도교는 한국에 수용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하였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면서 신분이나 지역의 차별이 없어져 평등하게 되었고, 한편으로 양반 사회에서 억눌리고 소외당하던 피지배층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큰 역할을 담당하도록 해 주었다는 것이다. (→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
※ 참고문헌 金壽泰, 〈李能和와 그의 史學>, 《東亞研究》 4, 1984. 〔金壽泰〕
《조선기독교급외교사》
朝鮮基督教及外交史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