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행》

朝鮮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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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독일 상인 오페르트(Emest Jacob Oppert, 1832~?)가 1880년 함부르크에서 출판한 조선에 관한 인문 지리서. 원제는 《폐쇄된 땅, 조선을 향한 여행》(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
오페르트는 1868년(고종 5) 5월 충청도 덕산(德山)에 있는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는데, 조선과의 통상을 위해 1866~1868년까지 세 차례 선박을 타고 서해안을 횡단하여 조선을 탐방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저술하였다. 《조선기행》(문교부, 1959)이란 제목으로 한우근(韓沾功, 1915~1999)에 의해 처음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으며, 서울시립대 부설 서울학연구소에서 부분적으로 번역하여 《서울, 제2의 고향-유럽인의 눈에 비친 100년 전 서울》(1994)에 수록하였다.
<조선기행>은 모두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제1장 서언(緒言) · 지지(地誌) · 인종, 제2장 국법과 정체(政體), 제3장 조선의 역사, 제4장 풍속 및 관습 · 종교, 제5장 언어와 문자, 제6장 산업 · 박물(博物) · 상업, 제7장(조선으로의) 1차 항행(航行), 제8장 2차 항행, 제9장 3차 항행 등이다. 그리고 말미에는 <조선 정부에 제안하여 조인되어야 할 가조약(假條約)의 초안>과 조선 항해 를 위한 지도가 첨가되어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조선을 아시아에서 가장 흥미있는 나라로 규정하고, 조선이 서구 열강과의 교역에 적극 나서 주기를 바랐다. 본문에서 오페르트는 자신이 세 차례에 걸쳐 조선으로 항해한 것은 오직 조선 왕국과의 통상 교역의 길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고 역설하고,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점령하면서 자행한 약탈과 파괴 행위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제3차 항행에서 덕산군청을 습격하여 무기고를 탈취하고 민간인의 재물을 약탈한 행위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거나 변명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또한 책 말미의 <가조약의 초안>에서는 조선의 원산(元山), 동래(東萊), 송도(松都), 강화(江華) 등의 항구를 개방하여 그 개항장에 조계(租界)를 설정하고 외국인의 거주와 상업 활동을 도와 주며, 여행증을 가진 경우 유람 과 행상(行商)을 위해 조계 이외의 내지(內地)를 여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아울러 조선인들에게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포함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부여할 것과, 외국인은 자국의 영사에게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영사 재판권(領事裁判權)을 명기하고, 모든 외국 화폐의 자유로운 유통을 규정하였다. 동시에 그는 조선인을 위한 몇 가지 고려 사항도 제시하였는데, 아편의 수입과 운송을 엄격히 금지하고,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 조선인의 관습은 존중되어야 하며, 중국과 일본에 통용되는 정도의 관세율을 설정할 것 등이다. 이러한 가조약 초안을 1876년(고종 13) 2월의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및 같은 해 6월의 조일수호조규부록(朝日修好條規附錄)의 내용과 비교하면, 기본적으로 선진 열강의 경제적 침투를 가능하게 하는 제국주의적 발상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1876년의 조약에는 없는 그리스도교의 수용 및 관세를 설정하고 있는 점 등은 일본 측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보다는 훨씬 더 도덕적이고 신사적인 태도라고 평가된다. (→ 덕산 굴총 사건)
※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敎會史의 探究》,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최종고, <법학을 통한 한독 관계사>,《한독법학》 2호, 1985/ 원재연, <오페르트의 덕산 굴총 사건과 내포 일대의 천주교 박해>, <백제문화> 29집,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 〔元載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