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1901년까지 4권으로 간행된 쿠랑(M. Courant, 1865~1935?)의 저서. 조선의 서지에 관한 소개서로, 170여 쪽에 달하는 서론과 총 3,821종의 서적에 대한 목록과 해제가 수록되어 있다. 보유편을 제외한 3권은 일본 도쿄의 츠쿠지(筑地) 활판 제조소에서 인쇄하였으며, 발행처는 파리 동양어학교(Ecoled Langues Oreientales)이다.
〔저술 과정〕 쿠랑은 1888년 파리 동양어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북경의 프랑스 공사관에서 통역관 실습생으로 근무하던 중 1890년 5월 23일 통역 서기관으로 서울로 전속되었다. 당시 주한 프랑스 공사인 플랑시(V.C. de Plan-cy, 1853~1922)는 한국의 도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쿠랑이 오자 그에게 한국 도서의 정리 작업을 함께할 것을 제의하였다. 따라서 《조선서지》는 플랑시의 구상이었으며, 이를 해제(解題) 차원까지 넓히고자 했던 것도 그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함께 작업을 진행하던 중 플랑시가 일본으로 전임되면서 《조선서지》의 편찬 계획은 쿠랑에게 맡겨졌다.
쿠랑이 한국에 머물렀던 기간은 1890년 5월부터 1892년 2월까지로 총 21개월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서울의 고서점을 찾아다니며 자료 조사와 도서 수집에 열중하였고, 또 프랑스 공사관에서 일하던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3,821종의 도서를 해제까지 포함시켜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플랑시와 각종 기초 자료를 제공해 준 뮈텔(G.-C.-M. Mutel, 1854~1933) 주교의 도움이 컸다. 특히 3권과 보유편의 경우 쿠랑은 위텔 주교와의 서신 연락을 통해 자료 수집과 그에 대한 해설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구성과 내용〕 《조선서지》는 1894년에 1권, 1895년에 2권, 1896년에 3권이 출판되었고, 1901년에 보유편이 완성되었다. 쿠랑의 서지 작성은 기존의 문헌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과 한국의 서점, 파리의 국립 도서관, 동양어학교 도서관 및 기메(Guimét) 박물관, 런던의 대영 박물관, 그리고 일본의 우에노(上野) 도서관 등지에서 직접 도서를 실사(實査)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도서의 소장처를 밝혔는데, 소장처가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은 주로 《대전회통》(大典會通), 《육전조례》(六典條例), 《통문관지》(通文館志), 《문헌비고》(文獻備考), 《대동운옥》(大東韻玉), 《후자경편》(後自警編), 《동경잡기》(東京雜記), 《내각장서휘편》(內閣藏書彙編), 《간례휘찬》(簡禮彙纂), 《고사촬요》(致事撮要)를 비롯해서 주요 참고 서목에 게재된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대명삼장성교목록》(大明三藏聖教 目錄), 《집설전진》(集設詮眞), 《이씨오종합간》(李氏五種合刊)) 등 참고 문헌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조선서지》는 서론과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는 이 책을 만들게 된 동기와 과정 그리고 전반적인 한국의 도서 문화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또 본문에서는 총 3,821종의 서적을 내용에 따라 9부(部)로 나누고, 각 부의 서적들을 다시 36류(類)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첫째, 교회부(敎誨部)는 한글 교육 · 천자문 · 훈몽서 등에 관한 교육류(敎育類)와 서간문집의 간독류(簡牘類), 청원서 · 보고서 · 가사 등의 입문류(入聞類)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언어부는 한어류(漢語類) · 청어류(淸語類) · 몽어류(蒙語類) · 왜어류(倭語類) · 범어류(梵語類) 등 각종 외국어에 관한 책들이다. 이 중 한어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비한어가 경시되어 온 풍
토에서 청어 · 몽고어 · 왜어 · 범어류를 따로 모은 것은 의의가 크다. 셋째, 유교부(儒敎部)는 경서류(經書類) · 성적류(聖蹟類) · 유가류(儒家類)로 나뉘며, 여기서 성적류는 공자에 관한 것을 따로 모은 것이다. 넷째, 문묵부(文墨部)는 시가류(詩歌類) · 문집류(文集類) · 전설류(傳說類) · 잡서류(雜書類) 등 한문학 자체와 한국에서 형성된 한문학 및 한국 문학과 관련된 서적들이다. 특히 이 부문은 한국 문학에 큰 비중을 두고 소개함으로써 한글에 대한 국문학계의 중요한 기본 자료가 되고 있다. 다섯째, 의범부(儀範部)는 통례(通禮) · 제례(祭禮) · 각종 궁중 의식 · 국장(國葬)으로 구분된 예의류(禮儀類)와 일반 행정 · 조령 주의(詔令奏議) · 왕실 · 의정부(議政府) · 육조(六曹) 등으로 나닌 치리류(治理類)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777종으로 가장 많은 전적을 수록하고 있다. 여섯째, 사서부(史書部)는 동사류(東史類) · 동잡적류(東雜蹟類) · 중사류(中史類) · 지리류(地理類)로 나누어 역사 · 지리에 대한 서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중 동잡적류에는 행정 서식 · 고문서 · 서체집 · 시화 · 백과사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곱째, 기예부(技藝部)는 산법류(算法類) · 천문류(天文類) · 술수류(術數類) · 병가류(兵家類) · 의가류(醫家類) · 농잠류(農蠶類) · 악보류(樂譜類) · 예술류(藝術類)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덟째, 교문부(敎門部)는 도교류(道敎類) . 불교류(佛敎
類) · 천주교류 · 야소교류(耶蘇敎類) 등 종교와 관련된 서적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도교류와 불교류에 대한 설명이 보다 충실하며, 천주교류는 수록 도서가 가장 많지만 목록의 형태 혹은 간단한 설명만을 첨부하고 있다. 아홉째, 교통부(交通部)는 조약류(條約類) · 무역류(貿易類) · 신보류(新報類) 등 당시의 외교 · 무역 관계 및 신문류들로, 대개가 당시 프랑스 공사관에 소장되어 있 던 것이며, 현재는 프랑스 외무성으로 이전되어 있다.
〔특 징〕 쿠랑은 일생 동안 103편의 논저를 남겼는데, 그중에서 《조선서지》는 오늘날까지 유럽 학계에서 한국학 연구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활자본으로 인정된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심경)이 《조선서지》를 계기로 발굴된 점은, 이 책의 가치를 잘 보여 준다. 아울러 《조선서지》는 어떤 특수 분야나 특정 장서에 대한 목록이 아
니라, 당시 한국 · 프랑스 · 영국 등지에 분포 소장된 도서와 기존의 도서 목록에 수록된 한국의 고서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19세기 말까지 한국의 국가서지(國家書誌)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국의 서지와 도서 문화를 상세히 설명한 서론은 이 분야에 대한 최초의 연구라고 할 수 있으며, 도서의 가격 · 한글의 체제 등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점도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물론 동양본(東洋本)의 특성이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분류를 잘못한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경사자집(經史子集) 4부로 나누던 동양의 분류법 대신 9부 36류로 세분화시킨 것은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종래 고서 목록에서 무시하였던 한글본을 다수 수록하고 있는 점은 당시 민중 문학으로서의 한국 문학 연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옛 한글 도서의 서지류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 되고 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계열의 서적(가톨릭류 110종, 프로테스탄트류 70종)을 소개한 것도 당시로서는 유일하며, 최근까지도 이 분야의 기본적인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원판 《조선서지》는 거의 구할 수 없으며, 뉴욕의 버트 프랭클린(Burt Franklin) 출판사에서 새로이 인쇄된 것이 서양의 서점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한글 번역본으로는 서론 부분만 번역된 것이 여러 종 있으나, 전체는 숙명여대 이희재(李姬載) 교수의 《한국 서지 : 수정 번역판》(일조각, 1994)으로 간행되어 있다. (→ 쿠랑, 모리스)
※ 참고문헌 모리스 쿠랑, 이희재 역, 《韓國書誌, 修正翻譯版》, 一潮閣, 1994/ 이희재, <모리스 쿠랑과 韓國書誌에 관한 고찰>,《倫文集》 28, 숙명여자대학교, 1988. 〔李姬載〕
《조선서지》
朝鮮書誌
〔프〕Bibliographie Coréenne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