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도>

朝鮮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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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도> .

<조선전도> .

1845년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부제 때 서울에서 제작한 한국 지도.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고 조선을 세계에 소개할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이 지도의 축척은 1/981,500로, 1846년 조선의 밀사 편에 : 의주 변문에서 메스트르(Maistre, 李) 신부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부제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1847년에는 메스트르 신부에 의해 다시 상해 주재 프랑스 총영사 몽티니(Mont-gny)에게 전달되었고, 몽티니가 귀국하여 1855년에 프랑스 왕립 도서관에 기증하면서 그해 프랑스 <지리학회지>(地理學會誌)에 소개되었다. 그 결과 이것은 1735년 당빌(D'Aville)의 <조선왕국도>(朝鮮王國圖), 1840년 지볼트(Siebold)의 <조선반도도>(朝鮮半圖)에 이어 세번째로 조선을 서구에 소개하는 지도가 되었다. 국내 학계에는 1979년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 신부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이어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가로 48 5cm, 세로 88cm로 복원하여 <조선전도>라는 표제로 간행하였다.
달레(Dallet)에 따르면 김대건은 '한양의 정부의 고문서고에 있던 공식 지도' 를 보고 자신의 지도를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전도>의 형태는 조선 초기 지도의 전통에 속함으로, 이의 제작에 사용된 원도(原圖)는 아마도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東國地圖)나 정상기 식의 관제(官制) 지도로 추정된다. <조선전도>는 선교사들의 입국과 포교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알아 두어야 할 관부(官府)의 위치와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 즉 만주의 봉황성(鳳凰城)에서 의주 변문까지의 도로와 한강 하류를 포함한 서해안 일대의 해로(海路) 등이 자세히 표시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조선전도>는 미완성 지도이다. 즉 많은 관부 · 산천 · 도로 · 해로 등이 누락되어 있고, 관부의 소재지와 도서(島嶼)를 그려 놓고도 이름을 기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 경기도 · 한강 · 제주부 · 정의현 · 대정현만이 한문으로 병기되어 있을 뿐 기타 지명은 로마자로만 표기되어 있고, 도서가 비례적으로 너무 크고 많으며, 도계(道界) · 관부의 위치 · 강의 지류 등이 부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는 당빌과 지볼트의 지도보다 지명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과 <조선왕국도>가 중국식 발음으로, <조선반도도>가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되어 있는 반면 지명이 조선식 발음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울릉도 동편에 우산(于山)을 기입함으로써 오늘의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조선전도>는 이후 많은 선교사들의 지도 제작에도 영향을 주어 달레의 지도처럼 거의 완전한 '조선 지도' 가 제작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 김대건)
※ 참고문헌  최석우, <金大建의 朝鮮全圖>, 《한국 교회사의 탐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崔奭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