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1809~1868)

趙成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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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세례명은 마태오. 12세에 부모로부터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고, 서강(西江) 수철리(水鐵里)에 살면서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에게 이끌려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만났다. 이후 베르뇌 주교를 세 차례 집으로 모셔와 미사도 드리고 고해성사도 받았으며, 1866년 베르뇌 주교가 사망했을 때에는 최사관(崔士寬, 예로니모), 박순지(朴順之, 요한) 등과 함께 와서현(瓦署峴, 용산구 한강로 3가의 왜고개)에 매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조성노는 병인박해 이전 어느 시기에 경기도 부평 마오장리(馬五長里)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가 1868년 3월에 체포되었다. 그는 서울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을 때 결코 굴복하지 않았으며, '천주가 천지 만물을 창조한 대부모(大父母)' 임을 강조하면서 굳건히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포도청등록》중,영인본,보경 문화사, 1985.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