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 (1787~1819)

趙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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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동정 부부.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사위이자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의 친척. 1787년 경기도 양근의 양반 집에서 태어났으며, '숙' 은 관명(冠名)이고 '명수' 라고도 불렸다.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하자 부모를 따라 강원도 외가로 피신하여 여러 해 살았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의 부모와 조숙이 1801년 이전에 이미 입교하였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조숙은 종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또 박해의 공포 때문에 결혼하기 전까지는 냉담 상태에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가 1804년 권일신의 딸인 권 데레사와 결혼하면서 부인의 영향으로 신앙심이 다시 살아났고, 특히 권 데레사의 제의로 부부가 합의하여 일생을 동정 부부로 살 것을 결심하고 순교 때까지 순결을 지켰다.
박해가 점차 수그러들고 평온한 상태가 회복되자 조숙은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이주하였다. 이들 부부는 가난했지만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으며,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고 전교에도 힘써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이경언(李景彥, 바오로)도 있어 두 사람은 여러 해 교류하며 가르침을 주고받았고, 이경언은 자신이 그린 성화를 조숙에게 주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조숙은 성직자 영입에도 힘을 기울여, 정하상(丁夏祥, 바오로)이 북경에 갈 때에는 모든 준비를 거의 도맡아 하였고, 정하상도 서울에 머물 때에는 그의 집에서 기거하였다.
이처럼 교회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1817년 3월 말(음) 조숙은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져 포도청에 체포되었다. 그러자 아내 권 데레사는 자진하여 남편을 따라갔으며, 함께 생활하던 고 바르바라 · 막달레나도 조숙 부부를 쫓아가 투옥되었다. 그들은 혹독한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신앙을 지켰으며, 2년 이상 옥에 갇혀 있다가 1819년 5월 21일(음, 혹은 음력 6월 13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때 조숙의 나이는 33세였고, 권 데레사는 36세였으며, 고 바르바라 · 막달레나는 60세가 넘었다. 이 중 조숙과 권 데레사는 2002년 '하느님의 종' 으로 선정되어, 현재 시복 · 시성 작업이 추진중이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중.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