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 한국 성은 조(趙). 1851년 10월 19일에 프랑스의 브와소(Boiseau)에서 신앙심 깊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성직자를 희망하여 낭트(Nante)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거쳐 1875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년 동안 노트르담 데 쿠에(Note-Dame des Couëts) 소신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클리옹(Cion)의 보좌 신부로 4년간 사목 활동을 하였다. 1880년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교육을 받은 뒤에 1881년 10월 26일 임지인 조선을 향해 출발하였다. 도중 상해(上海)에서 리델(Ridel, 李福明) 주교를 만났는데, 그의 지시로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건너가 그곳 인쇄소에서 일을 도우며 동료 신부들과 함 께 조선 말을 배우면서 조선 입국의 날을 기다렸다. 1882년 가을에 그는 장티푸스에 걸려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다행히 회복되었고, 때마침 주교 성성식을 갖기 위해 일본에 왔던 블랑(Blanc, 白圭三) 주교를 수행하여 1883년 10월 1일 서울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곧 부엉골과 작은 공소를 맡아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884년 9월에는 전라도 지방의 사목을 맡게 되었다. 1885년 안대동 본당(현 함열 본당) 설립 후 주임 신부로 부임한 그는 벽촌을 두루 찾아다니며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새로운 영세자를 얻는 데 진력을 다하다가 과로로 몸이 쇠약해졌다. 게다가 장티푸스가 재발하여 1886년 1월 28일 조선에 들어온 지 28개월 만에 선종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드망즈 주교 일기》/ 《M.E.P. 선교사약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 〔金志煥〕
조스, 장 밥티스트 (1851 ~ 1886)
Josse, Jean Bapti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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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