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알퐁소. 한국명은 옥유아(玉裕雅). 1877년 2월 5일 루아르(Loire) 강 하류의 애그르푀이유(d'Aigrefeuille) 면의 가네스통(Geneston)에서 태어났다. 노트르담 데 쿠에(Notre-Dame des Couëts) 소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수사 학년이 끝날 무렵, 그의 지도자의 의견에 따라 쿠에 신학교를 떠나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학업을 이었다. 1895년 9월 10일 비에브르(Bièvres)의 성모의 무염 시태 대신학교에 들어가 기본적인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고, 2년 후에 쥐 드 바크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1900년 6월 24일 사제 서품을 받고 8월 1일에 프랑스를 떠나 가을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는 서울 주교관에서 머무는 몇 달 동안 한국어 공부에 전념하였고, 연례 피정 후인 이듬해 4월 27일 가실(현 낙산) 본당에 부임하였다. 부임 첫해 가을 공소 순방에서 60여 명의 성인 영세자를 내었으며, 외교인들에게도 기꺼이 마음을 열어 주어 유례 없이 많은 개종자를 내었다. 1903년 성당을 증축하고 사제관을 신축하였으며, 1904년에는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 부지를 넓혔다. 그는 매주 일요일에는 소년, 소녀들에게 교리 문답을 가르쳤고, 매일 매일 불한 사전 원고를 정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전교 활동에 진력하여 가실 본당에 부임하였을 시기에 800여 명이던 신자수가 몇 년 만에 1,400명 정도로 증가하였다. 1907년에는 성당을 확장할 계획이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폐렴으로 인한 열병으로 그해
1월 12일 선종하였다. 유해는 성당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가실 본당 소유의 언덕에 묻혔다.
大學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드망즈 주교 일기》/ 《뮈텔 주교일기》/ 《M.E.P. 선교사 약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附錄, 가톨릭 출판사, 1984. 〔金志煥〕
조아요, 알퐁스 (1877~1907)
Joyau, Alph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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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신자들과 함께 있는 조아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