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삼 (?~1801)

趙龍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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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따라 여주로 이사가는 조용삼 베드로( 탁희성 작)

아버지를 따라 여주로 이사가는 조용삼 베드로( 탁희성 작)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경기도 양근의 양반 가정에서 두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 모친을 여의고 부친의 슬하에서 자랐는데, 아버지 조제동은 가난 때문에 더 이상 고향에 머물 수 없자 두 아들(조용삼 · 조호삼)과 함께 여주로 이주하여 임희영(任喜永)의 집에 얹혀 살았다. 조용삼은 몸이 쇠약하고 외모도 보잘것없었으며, 세상 일에도 어두워 남들의 조롱을 받았다. 여기에 집이 가난하여 30세가 되도록 관례(冠禮)도 못하고 장가도 들지 못하였다.
한편 여주로 이주한 후 처음으로 천주교 교리를 듣게된 그는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을 스승으로 받들며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정약종만은 그의 덕행과 열심을 칭찬하며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렇게 천주교를 접하고 교리를 배우던 조용삼 부자는 1800년 4월(음) 부활 대축일을 지내기 위해 여주 정종호(鄭宗浩)의 집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이중배(李中培, 마르티노)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여주 옥에 수감된 조용삼은 혹독한 형벌과 고문은 이겨냈지만, 배교하지 않으면 부친을 때려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그가 보는 앞에서 부친을 혹독하게 매질하자 어찌할 수 없이 배교한다는 말을 하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옥문을 나서다가 이중배 등이 권면하는 말을 듣고 다시 관아로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였다. 그 결과 좀 더 혹독한 형벌이 그에게 가해졌고, 경기 감영으로 이송된 후에도 여러 차례 문초를 받았다. 조용삼은 신앙을 굳게 지키며 11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었고, 옥중에서 대세(代洗)를 받았다. 그러다가 1801년 2월(음) 다시 형벌을 가하며 배교를 강요하자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다" 라는 말로 신앙을 고백하고, 1801년 2월 14일(음)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帛書》/ 《달레 교회사》상/ 차기진 역주,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 자료집》 3집, 천주교 수원 교구 시복시성 추진 위원회, 1998.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