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의 공동 주교좌 본당 중 하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675-6 소재. 1976년 11월 19일에 북수동(北水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다. 주보는 평화의 모후. 관할 구역은 조원동, 영화동, 송죽동, 정자동. 〔교세〕 1976년 1,889명, 1981년 3,758명, 1988년 7,519명, 1994년 12,665명, 2001년 5,856명. 〔역대 신부] 초대 배영무(裴英武) 라우렌시오(1976. 11~1981.6), 2대 한종훈(韓鍾勳) 스테파노(1981. 6~1985. 2), 3대 김창린(金昌麟) 필립보(1985. 2~1990. 11), 4대 양병묵(楊柄默)루가(1990. 11~ 2001. 1), 5대 장덕호(張德鎬) 갈리스토(2001. 1~현재) .
수원교구의 고등동(高等洞) 주교좌 성당은 그 성당 내부가 협소하여 교구의 주요한 행사를 치르는 데 많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수원교구는 신자 차성화(車聖化, 수산나)가 교구에 기증한 대지에 새로운 주교좌 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1976년 6월에 기공식을 가지고 같은 해 11월에 본당을 설립하였다. 1976년 11월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배영무 신부는 성당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당 근처 빈 공터(수성중학교 뒤편에 있는 차 수산나가 기증한 밭)에 천막을 치고 미사를 드렸다. 1976년 12월에는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의 주례로 사제 · 부제 서품식을 거행함으로써 조원동 본당은 주교좌 성당으로 자리 매김하였다. 1977년 5월 18일에는 교황 대사 도세나(Luigi Dossena) 대주교가 주례를 하고, 김남수 주교와 배영무 신부 등이 주관을 맡아 주교좌 성당의 봉헌 미사를 거행하였다. 도세나 대주교는 교황청에서 보내온 주교좌 성당 인증서를 김남수 주교에게 인계하였는데, 이 인증서는 현재 조원동 성당 제의실에 보관되고 있다. 배영무 신부는 주일학교 교실과 본당 수녀들이 머물 수녀원을 건립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공사가 중단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대 주임 한종훈 신부는 1981년 6월에 그동안의 본당사목 활동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소책자를 만들어 사목임원과 단체 임원들에게 배포하였고, 10월에는 《가톨릭 수원》의 간행처를 북수동 본당에서 조원동 본당으로 옮겨와 11월부터 1983년 8월에 폐간될 때까지 간행하였다. 본당의 주일학교 교사회는 1982년 2월에 월보 <작은 꽃밭>을 창간하였고, 마리아 청년연합회는 4월부터 <물줄기>라는 제호의 회지를 발간하였다. 같은 해 5월에는 주일학교와 수녀원을 완공하였고, 10월에는 부활 축복 예수상을 제작하여 중앙 제대에 부착하였으며, 1983년 12월에는 103위 순교 성인 부조를 제작하였다.
3대 주임 김창린 신부는 1985년 9월 비좁았던 본당 사무실을 신축하였고, 1986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10주년 기념으로 구역별 성가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교육의 터전이 될 교육관을 증축하였다. 1987년 3월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라는 성모 성년 선포문을 반포하였는데, 수원교구에서는 중부 지구에 평화의 모후 성당인 조원동 본당을 지정 순례 성당과 특별 고해소 설치 성당으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율전동(栗田洞) 지역의 신자수가 급증하자 1988년 1월 이 지역을 분리하여 본당으로 설립하였다. 1990년 7월에 수원교구에서는 전례 규정에 관한 서한(사목 90-90, 1990.7.2)에서 본 성당의 봉헌일, 봉헌 주년일, 성당주보 성인 축일, 수도회 주보 성인 축일을 대축일로 지내야 하고, 주교좌 성당 봉헌 주년일(5월 18일)과 주교좌성당 주보 성인 축일(7월 9일)은 모든 성당과 수도회에서도 축일로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원동 주교좌성당의 주보 성인이 '평화의 모후' 이고 동시에 수원교구의 수호자도 '평화의 모후' 이므로 7월 9일 오전 10시에 교구장과 교구, 수도회 신부 공동 집전으로 '평화의 모후' 대축일 미사를 거행하였다.
4대 주임 양병묵 신부는 새로운 성당(정자동 본당)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전임 김창린 신부가 1988년 매입하였던 대지 1,500평에 추가적으로 2,500평을 확보하였다. 그 후 1993년 5월에 기공식을 가졌고, 1997년 2월에 정자동(亭子洞) 본당을 조원동본당에서 분리하였다. 정자동 본당의 관할 구역은 정자동 일부, 이목동, 파장동 전지역, 송죽동 일부이고, 신자수는 1,424세대 4,095명이었다. 조원동 본당은 1997년에 정자동 본당과 함께 '공동 주교좌 성당 이 되었고, 1999년에는 정자2동 본당을 분리하여 417세대, 1,389명의 신자를 편입시켰으며, 2000년에는 조원 솔대 본당을 분리하여 499세대 1,394명의 신자를 편입시켰다. 2000년에는 설립 25주년을 맞아 제대와 감실, 강론대, ,독서대 등을 새로 교체하였고, 조원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조원동 주교좌 성당 25년사》를 발간하였다. 2001년 6월에 수원교구 가정 사목연구소에서 조원동 본당에 교구 내 노인들을 위한 '노인 미사' 를 상설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수원교구 ; 정자동 본당)
※ 참고문헌 천구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천주교 조원동 주교좌 성당 25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조원동 주교좌성당 25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조원동 교회 , 2000. 〔梁仁誠〕
조원동 본당
棗園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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