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환 1892 ~ 1964)

曹元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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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교사. 세례명은 요한. 호는 두봉(斗峰). 1892년 6월 24일 충남 서산군 팔봉면 금학리에서 조병학(曹秉學, 요셉)과 유정혜(柳貞惠, 바르바라)의 아들로 출생. 1894년 동학 농민 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으로 피난하였다가 3년 뒤 합덕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관립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하여 당진 공립보통학교 훈도로 있다가, 1917년부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일본어 · 박물(博物) · 산술 등을 가르쳤다. 1919년 공주 재판소 서기, 이듬해에는 인천 재판소 서기, 1922년부터 경기도 내무부 지방과의 사회주사 · 촉탁으로 근무하다가 1935년 사임하고 만주 봉천으로 이주하였다. 봉천에서는 봉천시 공서(公署) 주사와 만주국 협화회(協和會) 봉천 분회 상무원 등으로 만주국 관리와 친일 기관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봉천의 한국인 천주교회 창설에 참여하여 총회장을 맡았고, 한국인 학교 연합회 이사로 교육 사업에도 관여하였다. 8 · 15 해방 후 만주에서의 활동 때문에 1949년 3월 반민족 행위 특별 위원회(反民特委)에 기소되었다가 7월 석방되었다. 수감 중에 감리교 총리사를 역임한 정춘수(鄭春洙) 목사에게 선교하여 개종시켰다. 1954년 명동 본당 총회장을 지내고, 1960년 조선기계 제작소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2년 명동 성모병원에서 시작된 지성인 교리반의 인원이 늘자 명동 본당 문화관으로 옮겨 박귀훈(朴貴勳, 요한) 신부와 조원환회장이 강사로 강의하였다. 조 회장은 교리반과 개인적 접촉을 통하여 많은 지성인들과 저명 정치인 · 학자 · 법조인들을 입교시켰는데, 해방 이후 일반 교리 강좌 18회(매년 2회), 특별 교리 강좌 3회를 개최하여 1,000여 명을 입교시켰다. 1964년 5월 17일 노환으로 사망하여 금곡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번역서로 《예수전》(가톨릭출판사, 1962), 《진리본원》(眞理本源, 가톨릭출판사, 1964) 등이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진리본원》의 번역 초고인 《이원》(理源, 1917년경 번역)이 소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시보> 1963. 10. 6 ; 1964. 5. 24/ 韓龍煥 . 徐相堯 편 《福音의 證人》,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조선총독부, 1914~1935/ 조원환 역, 《예수전》, 가톨릭출판사, 1962/ -, 《真理本源》, 가톨릭출판사, 1964.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