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빈천시오. 1907년 황해도 장연군 읍외리에서 조성옥(趙成玉, 디다고)과 김홍석(金興石, 수산나)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장연 본당 김명제(金命濟, 베드로)신부의 추천으로 1920년 9월 용산 신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12월 17일 대신학교를 마치고 뮈텔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1933년 1월 춘천 본당 보좌로 부임하였다가 1934년 5월 춘천 본당 주임이 되었고, 1936년 5월 서천 본당 주임, 1938년 5월 연안 본당 주임을 거쳐 사제가 부족한 평양교구에 파견되어 1940년 2월 안주 본당 주임, 1944년 4월 평양 대신리 본당 주임을 역임하였다. 1944년 11월 서울교구로 복귀하여 논산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고, 해방이 되자 1945년 9월 성당 구내에 강습소를 설치하였다가 유지들의 협조로 1946년 4월 대건중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맡았다. 1948년 12월 명동 성당에서 분리된 신당동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본당을 개척하던 중, 6 · 25전쟁이 발발하고 한국군에 군종 제도가 설치되자 제1기로 입대하여 문관으로 육군 본부 군목과(군종과)에 배속되어 군종 신부단을 책임진 바 있다. 1952년 4월에는 육군 본부 제2대 군목과장에 취임하여 활동하다가 1954년 6월 예편하고, 7월 서울교구 상서국장과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1957년 9월 가평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1958년 10월에는 본당 내에 전교회장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정지신학원(貞知神學院)을 설치하고 원장에 취임하였다. 1962년 12월 정지신학원을 미아리 본당 구내로 옮겨 원장으로만 봉직하다가 1964년 수유동에 건물을 지어 이전하고, 8월 청량리 본당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71년 5월 14일 은퇴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청량리 본당 주임 신부로 재임하는 동안 2,520명을 영세시켰으며, 1965년에는 경기도 양주군에 본당 묘지를 조성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바티칸에서 거행된 병인순교자 24위 시복식에 참석하고 성지 순례를 한 바 있다. 1971년 은퇴 후에는 수유리에 기거하며 교리 지도와 번역에 진력하였다. 1978년 9월 12일 간암으로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였고,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번역서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실천》(가톨릭출판사, 1963), 《당신도 성인이 될 수 있다》(갑진문화사, 1964), 《성녀 말가리다 마리아》(가톨릭출판사, 1964), 《어둠을 밝힌 장미》(가톨릭출판사, 1971), 《성모의 딸 데레시다》(가톨릭출판사, 1976) 등이 있다.
※ 참고문헌 徐相堯, <趙仁元 신부>, 《교회와 역사》 71, 1981. 7/ 《新堂洞本堂 四十年史》, 천주교 신당동 교회, 1988/ 《清涼里聖堂 四半世紀》, 천주교 청량리 교회, 1981/ 《천주교 군종교구사》, 천주교군종교구, 2002. 〔崔起榮〕
조인원 (1907~1978)
趙仁元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