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천 (1912~1970)

曹在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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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 정치가. 세례명은 바오로. 호는 일운(逸雲). 1912년 11월 19일 전남 광양 출생.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일본 주오(中央)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여, 1940년 조선 변호사 시험과 일본 고등문관 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43년 판사로 임용되었고, 해방 후 서울 지방 검찰청 부장검사에 취임하여 1946년 조선 정판사 위폐 사건을 담당하였다. 1948년 9월 철도 경찰청장을 거쳐 1949년 1월 경북 경찰국장에 임명되었고, 1950년 1월 2대 경북 도지사에 취임하여 1951년 6월까지 재임하였다. 1954년 5월 야당인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3대 민의원에 당선된 이래 4 · 5 · 6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특히 1958년 5월 민주당 소속 4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민주당 선전부장을 맡아 자유당 독재 정권을 비판한 명대변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1960년 8월 민주당 내각이 수립되자 장면 총리가 이끌던 민주당 신파 소속으로 법무부 장관에 기용되었으며, 1961년 5월 내무부 장관으로 전임되었다. 5 · 16 군사 쿠데타로 체포되었다가 8월에 출감한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1963년 9월 29일 명동 성당에서 서울대교구 부주교 신인식(申仁植, 바오로) 신부의 집전으로 세례를 받았다. 1963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에 참여하여 11월 6대 국회의원(전국구)이 되었다가 1965년 10월 한일 회담 비준 동의 파동시 국회의원을 사직하였으며, 1967년 4월 민주당을 창당하여 대표로 선거를 치렀으나 참패하자 은퇴하여 변호사업에 전념하였다. 1967년 9월부터 중림동 본당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1969년 7월 신병으로 사직하였다. 1970년 1월 빙판에서 넘어져 뇌일혈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7월 5일 선종하여, 벽제 소재 중림동 성당 교우 묘지에 안장되었다.
※ 참고문헌  <가톨릭시보> 1963. 10. 6 ; 1970. 7. 12/ <조선일보> 1970. 7. 7/ 《약현 본당의 공소와 교세 통계표》, 천주교 중림동 교회, 1991.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