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자는 치양(稚壞), 본관은 풍양(豊壤). 서울에서 조능하(趙能夏)의 아들로 태어나 1859년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주서(注書)를 거쳐 사간원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조철증이 천주교 신자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울 재동(齋洞)에 거주하면서 지자익(池子益, 프란치스코) 등 교우들과 교류한 것은 분명하다. 1868년에 체포된 장치선(張致善)에 따르면, 1866년에 지자익을 통해 조철증을 알게 되었고, 리델(Ridel, 李福明) 신부를 탈출시키려는 지자익의 계획에 조철증이 재정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장치선의 이 진술은 1868년 4월 18일(음)에 있었는데, 그 결과 4월 19일(음)에는 월해초구죄(越海招寇罪)로 조철증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규장각 검서관이던 조카 조유선(趙猷善)이 4월 22일(음) 단양에 거주하던 조철증에게 체포 소식을 미리 알려 주었고, 그 소식을 들은 조철증은 곧바로 자결하였다.
※ 참고문헌 《捕盜廳謄錄》/ 《推案及鞫案》/ 유홍렬, 《한국 천주교회사》 하, 가톨릭출판사,6판, 1994. 〔方相根〕
조철증 (1827~1868)
趙喆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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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