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증 (1827~1868)

趙喆增

글자 크기
10
문신. 자는 치양(稚壞), 본관은 풍양(豊壤). 서울에서 조능하(趙能夏)의 아들로 태어나 1859년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주서(注書)를 거쳐 사간원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조철증이 천주교 신자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울 재동(齋洞)에 거주하면서 지자익(池子益, 프란치스코) 등 교우들과 교류한 것은 분명하다. 1868년에 체포된 장치선(張致善)에 따르면, 1866년에 지자익을 통해 조철증을 알게 되었고, 리델(Ridel, 李福明) 신부를 탈출시키려는 지자익의 계획에 조철증이 재정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장치선의 이 진술은 1868년 4월 18일(음)에 있었는데, 그 결과 4월 19일(음)에는 월해초구죄(越海招寇罪)로 조철증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규장각 검서관이던 조카 조유선(趙猷善)이 4월 22일(음) 단양에 거주하던 조철증에게 체포 소식을 미리 알려 주었고, 그 소식을 들은 조철증은 곧바로 자결하였다.
※ 참고문헌  《捕盜廳謄錄》/ 《推案及鞫案》/ 유홍렬, 《한국 천주교회사》 하, 가톨릭출판사,6판, 1994.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