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 수사,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건축가. 조콘도 다 베로나(Giocondo da Verona)라고도 하며, 본명은 조반니 다 베로나(Giovanni da Verona)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인근에 있는 베로나에서 1433년경 출생한 조콘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중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당시 가장 존경받는 이탈리아 건축 기술자 중 한 사람이었던 조콘도는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되어 폭넓은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것 같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기념물을 연구하면서 명문(銘文)을 수집하였고, 그리스어에도 정통하였다. 하지만 그의 건축 경력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1487년 칼라브리아의 알폰소 공작의 요청을 받아 나폴리로 가서 고고학 탐사를 하였고, 요새와 도로 건설의 자문 역할을 하였다. 또한 포조레알레(Poggioreale) 궁의 정원 설계를 담당하였다. 1495~1505년까지, 프랑스 왕 샤를 8세(1483~1498)와 루이 12세(1498~1515)의 초대를 받고 프랑스에서 활동함으로써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데 공헌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남아 있지 않지만, 1500년경 파리 센 강의 노트르담 다리(Ponte Notre Dame)의 건설 책임을 맡았으며, 앙부아즈(Amboise) 성과 가를롱(Garllon) 성 등을 설계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몇몇 수도 공사와 비록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베네치아의 리알토(Rialto) 계획을 맡았고, 1509~1511년까지 군사 건축가로서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트레비소(Treviso) 시의 성벽 건설을 계획하고 감독하였다. 도시를 완전히 둘러싼 성벽 건설은 요새 방어로 전환한 형태의 한 실례였다. 그리고 대포대의 형태가 안토니오 다 상갈로(Antonio da Sangallo, 1455~1534)의 사각형과는 달리 원형이었다.
브라만테(D. Bramante, 1444~1514)가 세상을 떠나자 조콘도는 교황 레오 10세(1513~1521)에 의해 베드로 대성전의 구조 문제를 감독하도록 로마로 초청되었다. 이것이 구조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날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줄리아노 다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 1443?~1516) 라파엘로(S.Raffaello, 1483~1520)와 함께 브라만테의 안을 재검토 · 수정 · 개선하였다. 이 당시 성당 기초의 지주들이 움직이고 금이 가기 시작하였기에 정역학(靜力學)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춘 그가 필요했던 것 같다. 건축가이자 기술자이며 문학가인 그의 명성은 특히 기원전 1세기 경에 활동한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 십서》(建築十書, De Architectura)에 주(註)를 붙이고 목판화로 그림을 그려 넣은 책을 1511년에 출판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 참고문헌 Macmillan Encyclopedia of Architects, The Free Press. 〔金正新〕
조콘도, 조반니 (1433?~1515)
Giocondo, Giovanni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