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 디 본도네 (1267~1337)

Giotto di Bondone

글자 크기
10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왼쪽). <오상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산타 크로체 성당, 피렌체) .
1 / 4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왼쪽). <오상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산타 크로체 성당, 피렌체) .

14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 건축가.
〔생애 및 활동〕 조토는 1267년 피렌체 북부의 베스피냐노(Vespignano)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전기를 쓴 최초의 작가 바사리(G.Vasari, 1511~1574)에 따르면, 총명하고 활달한 성격의 조토는 10세 무렵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와 양들을 돌보면서 눈에 보이는 자연과 마음에 떠오르는 상상들을 돌 위나 땅바닥, 혹은 모래 위에 그리곤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조토가 양떼들이 농장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바위에다 날카로운 돌로 그리는 것을, 당시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였던 치마부에(Cimabue, 1240?~1302)가 지나가던 길에 보았다. 그는 어린 소년의 예술 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도제로 삼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하여 피렌체로 데려왔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일화로는, 원래 조토는 모직 상인이 되기 위해 피렌체로 왔으나 치마부에의 화실에 자주 드나들다 그림을 공부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치마부에의 도제가 된 조토는 타고난 화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여 아주 짧은 시간에 스승의 양식을 습득하였다.
조토는 키가 작고 못생겼으나 매우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성격이었고, 피렌체의 시민이었으나 아시시, 로마, 파도바, 밀라노와 나폴리 등지에서 작업을 하였다. 두 번의 결혼으로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예술적 재능과 함께 뛰어난 사업 감각을 가져 그의 공방은 번창하였고 윤택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공방에서 제작된 작품 중 3점만이 그의 서명이 있는 조토 자신의 작품이고, 나머지는 상표처럼 그의 이름을 단 조수들의 것으로 여겨진다. 조토의 명성과 중요성은 이미 동시대인들로부터 인정받았다. 특히 유명한 시인 단테(A. Dante, 1265~1321)와 절친한 친구였는데, 그가 그린 단테의 초상화는 지금도 피렌체 박물관에 남아 있다. 그리고 단테는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의 <연옥 편> 제11곡에서 조토의 명성을 언급하였다. 또한 보카치오(G. Boccaccio, 1313~1375)는 《데카메론》(Decameron) 제6일 5화에서 조토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다. 또한 조토가 세상을 떠난 후에 저술된 빌라니(G. Villani, 1275?~1348)의 《연대기》(Cronica)에서도 그는 당대 최고의 인물로 평가되었다.
바사리에 의하면, 교황 베네딕도 11세(1303~1304)는 조토의 명성을 듣고 베드로 대성전의 그림을 맡기기 위해 그의 인품과 작품을 알려고 사람을 토스카나로 보냈다. 그는 조토에게 교황의 뜻을 전하면서 데생(dessin)을 시범작으로 요구하였다. 조토는 컴퍼스도 없이 한 손으로 완벽한 원을 그려 보냈다. 교황과 그림에 정통한 이들은 그가 뛰어난 화가임을 확인하고 로마로 초빙하여 구 베드로 대성전의 성가대석에 그리스도의 생애 중 다섯장면과 제의방에 큰 패널화를 그리도록 하였다. 매우 만족한 결과를 얻자 교황은 금 600두카토를 주었다고 한다. 또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베네딕도 11세가 선종하고 글레멘스 5세(1305~1314)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조토는 교황을 따라 아비뇽 궁전에 가서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1321년 피렌체로 돌아온 조토는 나폴리의 왕 로베르토(Roberto of Anjou)의 청으로 나폴리로 가 왕실 교회인 성 글라라 성당을 장식하였다. 그는 친구 단테를 기리며 묵시록을 근거로 한 작품을 수녀원 경당에 몇 점 제작하였으며, 왕은 그를 매우 총애하여 친구로 여겼다고 한다. 1334년에는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Santa Maria dell Fiore, 꽃의 성모) 성당 신축을 위한 총지휘자로 임명되었다. 7월 9일 종탑 건설을 시작하였으며, 18일의 기공식에는 피렌체 시의 주교와 많은 성직자, 고위 관리들이 참여하였다. 이 공적으로 조토는 피렌체 시로부터 금 100피오리네의 연금을 받았으나,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1337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이 공사는 그의 제자인 가디(T. Gaddi, 1300?~1366?)에 의해 계속되었다. 조토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왼편에 묻혔으며, 그곳에는 '피렌체 시의 화가들 중 과거와 현재를 통하여 가장 뛰어난 화가 라고 적힌 묘비가 세워져 있다.
〔주요 작품〕 아레나 경당 : 파도바에 있는 이 경당은 '카펠라 스크로베니' (Capella Scrovegn)라고도 불리는데,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으로 묘사한 파도바의 고리 대금업자 엔리코 스크로베니를 위해 그의 아들인 레지날도 스크로베니가 아버지의 영혼 구제를 위해 봉헌한 것이다. 조토는 이 경당을 장식하는 프레스코를 1306년경 제작하였다. 아치 형태의 동쪽 제단 상부의 황금색 나무 패널에는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가 있으며, 벽에는 천사들과 예수 탄생 예고의 순간이 그려졌다. 반대편 서쪽 출입구 쪽에는 최후의 심판이, 남쪽과 북쪽 벽은 삼단 구성으로 나뉘어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마리아의 아버지인 요아킴의 일생이 각각 완결된 프레임 속에 에피소드 중심으로 묘사되었다. 14개의 장면으로 표현한 마리아와 요아킴의 일생은 중세 시대 베스트 셀러인 《황금 성인전》(Legenda Aurea, 1263~1273)에, 그밖의 이야기는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남쪽 벽면 하단에 의인화된 일곱 가지 미덕(Virtue)-믿음, 희망, 사랑, 현명, 정의, 절제, 용기-이 그려져 있고, 북쪽 벽면 하단에는 일곱 가지 악덕(Vice)-어리석음, 변덕, 분노, 불신, 배신, 질투, 절망-이 회색조로 그려져 있다. 이는 관람자의 시선을 모으기 위한 조토의 성숙된 기교이다. 즉 조토는 이 벽화에서 예수 탄생 예고로 시작되어 최후의 심판으로 매듭 지어지는 완벽한 구성과 함께, 미덕과 악덕이라는 주제의 배열로 구원과 심판이라는 메시지를 관람자에게 보다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완벽한 공간 구성과 함께 중세적인 황금색 배경에서 벗어난 푸른색의 배경은 자연의 색을 고스란히 묘사한 것으로, 그의 회화가 자연 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중세의 관념적인 표현이 아니라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애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물군의 자세와 표정, 더욱이 천사들까지 애도하는 표현은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또한 대상을 묘사하는 그의 태도는 단순하고 견고하며, 명쾌하게 구획된 공간 속에 대상의 핵심만을 포착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 아시시에 있는 이 성당은 이곳에서 태어나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창설한 성 프란치스코(1182~1226)를 기리어 세워진, 프란치스코 수도회 최초의 성당이다. 1228년에 기공하여 1253년에 완성된 이 건물은 비탈이 많은 지형을 살려 상하 두 쌍으로 된 진기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토는 상부 성당(Upper Church)에 <성 프란치스코의 전설>, <이사악의 이야기>와 신약 성서에서 가져온 일련의 이야기들을 프레스코로 그렸는데, 제작 연대가 학자들마다 분분하다. 대략 1290년대로 아레나 경당보다는 앞선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하부 성당(Lower Church)의 막달레나 경당에는 막달레나의 일생을 그렸는데, 이는 아레나 경당보다 후에 그려진 것으로 제작 연대는 1320년대로 추정된다. 성 프란치스코의 전설적인 일대기를 담은 28점의 프레스코 중, 특히 입구에 그려진 <물이 솟아오르는 기적>,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는 조토 회화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 프란치스코가 자연을 서정적으로 대하였던 것처럼, 조토는 섬세한 화필로 이러한 서정성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에서 프란치스코의 자세, 특히 손의 묘사는 섬세함과 동물을 사랑했던 성자의 다정한 영혼이 잘 표현되었다. <이사악의 이야기> 프레스코는 2점으로, 나이 든 이사악이 야곱에게 축복을 내리는 장면과 형 에사오에게 복을 내리지 않는 장면을 나란히 그리고 있다. 구약의 이야기를 압축시켜 단순하게 표현한 점이 탁월한 이 작품은 아레나 경당의 형식과 유사하지는 않고, <성 프란치스코의 전설>만큼 예리하게 표현되어 그 제작 연대를 1290년대로 추정한다. 하부 성당의 막달레나 경당에는 파렌테 디 조토(ParaedeGiofto)와 벨레의 화가(Master of the Vele)로 알려진 두 명의 조수와 함께 작업한 조토의 후기 작품이 있다. 여기에는 <막달레나와 폰타노(Pontano) 추기경>, <라자로의 부활>, <천사와 이야기하는 막달레나> 등이 조토의 완숙된 기법으로 그려졌다.
산타 크로체 성당 : 조토는 1320~1325년 사이에 피렌체 산타 크로체(SantaCroce) 성당의 바르디 경당(Bardi Chapel)에 또 다른 프란치스코 이야기를, 페루치 경당(Peruzzi Chapel)에 <두 요한의 일생>을 프레스코로 제작하였다. 메디치 가문 이전에 피렌체의 경제를 장악하였던 은행가 집안인 바르디 가문의 무덤이 있는 이 경당에 조토는 <오상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가 포함된 7점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초기 작품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설>과 연결된 이 작품은 많은 부분에서 아시시의 영향이 드러난다. 그러나 청빈을 강조하였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에 따라 이 성당은 검소하게 꾸며졌고, 따라서 프레스코화도 제한된 장식과 색채를 사용하였다.
화면 배경에는 이탈리아 후기 고딕의 전형적인 건물이 등장하며, 색채는 더욱 섬세해지고 화면은 이전의 작품들보다 부드럽게 나타난다. 페루치 가문은 요한을 수호 성인으로 하였기에 경당의 왼쪽 벽에는 세례자 요한의 일생을, 오른쪽 벽에는 사도 요한의 일화를 각각 3점씩 그리고 있다. 이 프레스코화는 조토의 다른 프레스코화 보다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패널화 : 패널에 그린 조토의 그림은 오니산티(0gnissanti) 성당의 제단화로 그려진 <옥좌에 앉은 성모>(1310)가 가장 유명하다. 두초(Duccio di Buoninsegna, 1255?~1318?)나 치마부에도 같은 주제와 비슷한 크기의 제단화를 제작하였으나, 황금색 바탕을 사용한 조토의 것에서
드러나는 인물 묘사는 이전 두 화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깊이감과 양감을 찾아 볼 수 있다. 치마부에의 작품과는 10년의 차이가 있지만, 조토의 작품은 선적인 비잔틴의 양식에서 벗어나 조각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 밖에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성당에 있는 <십자가 처형>(1290)은 십자가 형태의 패널이다. 특히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몸은 화면 앞으로 뛰어나올 것 같은 입체감을 지녔으며, 양 측면에는 성모마리아와 사도 요한의 반신상이 그려져 있다. 그는 유사한 형태의 <십자가 처형> 패널을 리미니(Rimin)와 파도바에서도 제작하였다.
〔평 가〕 바흐(J.S. Bach, 1685~1750)를 '음악의 아버지' 라고 말한다면, 조토는 '회화의 아버지'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근대적인 의미의 회화에 미친 조토의 영향은대단히 크다. 무엇보다 그는 중세 기간 동안 소홀히 다루어 온 자연과 인간, 즉 '삶' 이라는 주제를 회화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르네상스의 시작을 예고하였다. 기법적으로는 비잔틴의 개념적이고 단선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원근법, 명암법, 그리고 단축법까지 시도하였다. 또한 그는 유럽 회화 역
사에서 창조력과 개성을 지닌 최초의 화가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 가톨릭 미술)
※ 참고문헌  마이클 리비, 양정무 역,《서양회화사 : 조토에서 세잔까지》, 시공사, 2000/ 이미혜,《중세 말 지옥도에 관한 연구 : 조토의 최후의 심판을 중심 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청구 논문, 1996/ 지오르지오 바자리, 이근배 역,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986/ A. Ladis, The Arena Chapel and the genius of Giotto, New York, Garland Publishing, 1998/ J. Guillaud . M. Guillaud, Giotto architect of color andfom, New York, C.N. Potter, Distributed by Crown, 1987/ J.H. Stubblebine, Giotto : the Arena Chapel,frescoes : illustrations, introcluctory essay, backgroumds and sources, criticism, New York, Norton, 1969/ L. Bellosi, Giotto, Firenze, Scala, 1981 . 〔鄭恩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