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서 (1815~1866)

趙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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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의 마부로 여러 해 신부를 보필한 조화서 베드로(탁희성 작) .

최양업 신부의 마부로 여러 해 신부를 보필한 조화서 베드로(탁희성 작) .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병의(丙宜). 성인 조윤호(요셉)의 아버지. 1815년 경기도 수원 도마지에서 조 안드레아와 권 율리아나의 아들로 태어났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로 부친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동생 조화경(야고보)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충청도 신창 남방재로 이주하였다. 신창에서 한 막달레나와 결혼한 조화서는 1848년 조윤호를 낳았고, 아들이 8세 되던 1855년경 아내가 사망하였다. 상처 후 그는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마부로 뽑혀 여러 해 신부를 보필하였으며, 1864년에는 과부인 김 수산나와 재혼한 후 이듬해 전주의 성지동으로 이사하였다. 조화서는 수계 범절이 극진하고 애주 애인(愛主愛人)하는 표양이 출중하였으며, 집안의 화목을 위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감수 인내하며 모범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조화서 부자는 12월 4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이명서(베드로) · 정원지(베드로)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전주 감영에서 여러 차례 신문을 당하였으나 모든 유혹과 형벌을 이겨냈고, 결국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아들 조윤호도 10일 후인 12월 23일(혹은 12월 18일 · 12월 28일)에 순교하였는데, 이로써 조화서 집안은 3대가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형장에 버려진 그의 시신은 오사현이 부응 바위 아래 도랑가에 묻었다가, 1867년 4월 4일(혹은 2월18일) 조화서의 동생 등과 함께 전주 소양면 유상리 막고개로 이장하였으나 현재는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방한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조윤호)
※ 참고문헌  《치명일기》, 761번/ <병인 치명사적》, 6 · 8 . 16 . 17권/《병인 순교자 시복 재판 기록》 《병인 순교자 29위》, 1918/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현대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I, 천주교 전주교구, 1998.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