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비평가. 자연주의 문학 운동의 창시자.
〔생 애〕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남부의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자란 졸라는,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인정받는 토목 기사로 운하 건설을 위한 공사를 지휘하던 중이었다. 아버지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해 생활이 어려워지자, 졸라의 어머니는 1858년 운하 관리 이권을 주장하기 위해 외동아들인 에밀을 데리고 파리에 갔지만 허사였다. 이후 졸라는 사회의 불의에 대한 원한을 품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고 한동안 방황하였다. 1862년 그는 아세트(Hachette) 출판사의 책 판매원으로 취직하였다. 사장은 그의 재능을 파악하여 그를 광고부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졸라는 당시 유명한 작가들과 신문 기자들을 알게 되었고, 이전 세대의 소설가인 발자크(H. de Balzac, 1799~1850), 플로베르G.Flaubert, 1821~1880),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작품을 읽었다. 그는 1864년 출판된 《니농에게 주는 콩트》(Contes à Ninon)를 시작으로 여러 콩트와 신문 기사를 쓰기 시작하였고, 1865년부터는 출판사를 그만두고 문인으로 활동하였다, 그 이후, 졸라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공화주의적인 신문에 실린 시평과 당시 주된 문학 흐름인 이상주의와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문학 평론 <내가 싫어하는 것들> (Mes Haines, 1866)을 발표하였다. 또한 인상파 화가를 지지하는 평론 <나의 미술 비평들>(Mes Salons, 1866~1868) 을 발표하였고, 전위 비평가로 알려졌다. 그는 동시에 화학과 생리학을 공부하였고, 다원(C. Darwin, 1809~1882)의 진화설과 법에 관심을 가졌다. 졸라는 1867년 《테레즈라켕》(Thérèse Raquin), 1868년 《마들렌 페라》(Madeleine
Férat) 등의 사실주의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소설가로 성공하기 시작하였고, 1870년 5월 31일 멜레(G.E.A.Meley)와 결혼하였다. 이 부부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마르세유와 보르도에서 살았고, 그 후 파리에 정착하였다. 그의 가정 생활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를 두지 못하였다.
졸라는 이전 세대 작가들의 영향을 넘어서서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프랑스의 생리학자인 베르나르(C. Bernard, 1813~1878)의 실험적 방법을 빌려 《실험 소설론》(Le roman expérimental, 1880)과 《자연주의의 작가들》(Les romanciers naturalistes, 1881)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인 흐름을 시도하였다. 즉 과학자가 어떤 자연적인 현상을 해명하려고 한다면, 먼저 가설을 세운 다음 실험을 한다. 만일 실험의 결과가 현상과 같은 경우, 그 가설은 증명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설가는 상상 속에서 창조해 낸 등장 인물에 대해 실험이나 임상 실험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불행과 범죄의 근원인 인간의 허약함과 사악함에 대해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졸라는 주장하였다. 사실 그는 유전이 인간의 본성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허약함과 사악함은 한 사람의 신체 조직이 갖는 기질적 기능 장애의 결과이며, 이 장애는 모든 자손에게 유전된다고 믿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졸라는 자연적이며 생리학적인 현상에 적합한 방법을 인간적인 사회에 적용시키려고 하였다. 그래서 한 가족 구성원들의 생애를 담은 소설을 구상하였고, 그 결과 총 20권으로 구성된 《루공 마카르 총서 : 제2 제정 시기에 한 가족의 사회적이며 자연적인 역사》(Les Rougon-Macquart, histoire naturelle et socia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를 집필하였다. 그는 이 소설을 창작하기 위하여 당시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였고, 빈곤으로 인해 초래된 폭력, 알코올 중독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주제로 삼아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인물을 묘사하였다. 《목로주점》 (L'Assommoir, 1877)에서는 파리에서 세탁소를 운영한 후 남편의 노동 재해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타락하게 된 여자의 생애를, 《제르미날》(Germimal, 1885)에서는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과 파업을 아주 예리하게 재현하였다. 그는 1871~1893년까지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이 소설을 쓰는 데 전력하였다.
이 소설들 중에 대성공을 얻은 작품으로 인해 졸라는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1880년대 어머니와 친한 친구들의 죽음, 그때까지 뜻이 같이한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상처를 입었다. 동시에 정치적 · 문학적인 유력자들이 그의 소설을 서민들을 무시한 외설적인 작품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에, 졸라는 의욕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이때 졸라는 자신보다 30세나 어린 잔로즈로(Jeanne Rozerot)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첩으로 두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잔의 따뜻한 사랑과 부성애 체험은 졸라에게 힘이 되어 《루공 마카르 총서》의 마지막 작품들인 《꿈》(Le Rêve, 1888) 《인간적인 동물》 (La bete humaine, 1890), 《돈》(L'argent, 1891), 《붕괴》(La Débacle, 1892) , 《파스칼 박사》(Le Docteur Pascal, 1893)를 완성하였다. 그로 인해 졸라는 발자크, 플로베르, 스탕달의 뒤를 이어 사실주의 소설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란 평가를 받았고, 여러 차례 외국 순회 강연도 하였다.
졸라는 윤리적인 스승으로서의 작가의 역할을 보여 주고자 1895년 12월부터 6개월간 신문 <피가로>(Le Figaro)에 반유대주의(Amisemitism)를 고발하였고,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서 그리스도교 대신 사랑과 생명의 종교를 신봉하는 인물들을 만들어 냈다. 이 마지막 작품은 두 개의 작품군을 이루고 있는데, 첫째는 세 권으로 된 연작인 《세 개의 도시》(Les trois villes)로 <루르드>(Lourdes, 1894), <로마>(Rome, 1896), <파리>(Paris, 1898)이다. 그리고 둘째는 네 권으로 된 《4복음서》(Les quatre Évangiles)로 <다산>(Fecondite, 1899), <일>(Travai, 1901), <진리>(Vérie, 1903), 그리고 미완성 작품인 <정의>(Justice)이다. 이 작품들에서 졸라는 사회의 개선에 헌신적으로 이바지하는 착하고 건전한 인물을 창작하였고, 비판자들도 많이 얻었지만 당대의 명사가 되었다. 1897년부터 졸라는 '드레푸스(A. Dreyfus, 1859~1935) 사건' 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그는 1898년 1월 13일 <여명>(L'Aurore)이란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공개장 형식의 글을 발표하여 프랑스군 참모본부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그로 인해 명예 훼손죄로 기소된 졸라는 평결을 기다리지 않고 변호사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영국으로 망명하였고, 1898년 7월부터 1899년 6월까지 그곳에 머물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인권을 옹호하는 뛰어난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졸라는 1902년 9월29일 가스 중독으로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1902년 10월 5일에 국장으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광부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참석하였고, 2년 후 그의 유해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사 상〕 졸라는 다원의 주장에서 영향을 받아 인간의 삶이 유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유물론자이고, 당시 프랑스의 정신적인 세계를 지배했던 과학 만능주의를 신봉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이상주의와 형식주의를 거부하였고, 뛰어난 창의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면서 프랑스 문학사 속에서 처음으로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또한 서민들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성당에 다니는지 안 다니는지에만 신경을 쓰며, 정치적 · 사회적으로 유력자들의 편에 서 있던 당시 교회를 공격하였다. 졸라는 또한 인간의 애정과 자연의 생명력, 공장의 기계와 돈의 힘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감동적인 서사시로 재현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현대 사회의 신화와 현대 프랑스 소설에 길을 열었을 뿐 아니라, 대표적인 인본주의 작가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졸라는 진리와 정의를 해치는 세력과 용기 있게 싸움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주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당시의 정치적인 이념들이 소개되었고, 졸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 참고문헌 Oeuvres complètes, sous la direction d'Henri Mitterand, Cercle du livre précieux, 1966~1969/ J. Borie, Zola et les mythes ou De la nausée au salut, Seuil, 1971/ P. Hamon, Introduction à l'analyse du descriptif, Hachette, 1981/ ㅡ, Le Personnel du roman. Le systême des personnages dans les Rougon-Macquart d'Emile Zola, Genève, Droz, 1983/ M. Serres, Feux et signaux de brume. Zola, Grasset, 1975/ J. Vassevière, Zola. Biographie. Etude de l'oeuvre, Vuibert, 1999. 〔H. Lebrun〕
졸라, 에밀 (1840~1902)
Zola,Émile
글자 크기
10권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중 하나인 《나나》(Nana)의 책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