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알프레트. 세례명은 루도비코.
1903년 11월 19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교구의 운터세플렌츠(Unterschefflenz)에서 태어난 좀머는, 1923년 오틸리엔 연합회의 뮌스터슈바르자흐(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은 후 1924년 12월 26일 평수사로 단순 서약을 하였다. 그리고 1928년 5월 27일 덕원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좀머 수사는 1928년 7월 19일 6명의 동료들과 함께 덕원 수도원에 도착하여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는 덕원 수도원 경리부 옆에 제분소(製粉所)를 세우는 일을 맡았다. 오랜 준비와 장애를 극복한 끝에 완성된 제분소는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들을 갖추고 있었다. 좀머 수사는 제분공으로 강원도에서 큰 농장을 경영하는 뫼글링(Mögling)으로부터 공급받는 호밀을 갈아 식탁에 호밀빵을 내놓게 하였다. 그후 그는 덕원 수도원 앞에 펼쳐진 넓은 농장에서 농부 선교사로서 일하였다. 1932년에는 농장 책임자로 임명되어 조선인 수사 지망생들 및 고용인들과 함께 젖소, 한우, 돼지 등 가축들을 키우며 밭에는 호밀, 감자, 콩, 당근, 메밀, 수수, 옥수수, 무, 가축용 사료들을 가꾸었다. 가능한 자급자족하기를 바라는 경리부의 뜻에 따라 수도원 농장은 점차 번성하여 수도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명소가 되었다. 당시 일본인 농업 관리들과 농업 학교 선생들이 호밀 농법을 배우기 위해 자주 찾아올 정도였다. 그는 덕원 수도원 농장의 총책임자로서 수사들과 신학교의 젊은 신학생들 그리고 본당 분원들의 식구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야 했기에, 농사의 작황은 수도원 살림의 중요한 변수였다.
1949년 5월 덕원 수도원이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접수된 후, 좀머 수사는 평양 인민 교화소와 옥사독 수용소를 거쳐 1954년 1월 24일 독일로 송환되었다. 1986년 9월 22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나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제2집 : 원산 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위원회, 1991/ 박영구 역, 《북한에서의 시련》, 분도출판사, 1997/ D. Drexl hrsg., Necrologium, St. Ottilien, 2000. 〔宣智勳〕
좀머, 알프레트 (1903~1986)
Sommer,Alfred
글자 크기
10권

좀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