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하거나 거룩하거나 영적(靈的)이며 신적(神的)인 것과 인간의 관계.
종교에 대한 정의(定義)는 무수히 많다. 그만큼 종교가 중요하며, 복합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종교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종교의 내용은 종교 개념이라는 그릇에 담겨져 있기때문이다. 종교 개념이 지금과 같은 보편적 범주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은 특정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어원과 의미〕 라틴어로 종교를 '렐리지오'(religio)라고 하는데, , 그 어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학설이있다. 로마 공화정 시대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치체로(Cicero, 기원전 106~43)는 '다시 읽는다' 〔再讀〕라는 의미의 '렐레제레' (relegere)에서 '렐리지오' 라는 용어가 생겨났다고 하였다. 즉 종교 의례 때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하여 읽는 데서 '렐리지오' 라는 낱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호교론자 락탄시오(L.C.F. Lactantius, 250?~321?)는 '다시 묶는다' 〔再結合〕라는 의미의 '렐리가레' (religare)에서 '렐리지오' 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고 하였다. 하느님과 인류 간의 관계가 죄로 말미암아 끊겼다가 종교로 말미암아 다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노(354~430)는 '다시 뽑는다' (再選擇)라는 의미의 '레엘리제레' (reeligere)에서 '렐리지오' 라는 용어가 생겨났다고 하였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였으나 그 선민이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에, 다시 교회를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원 풀이에서 치체로의 것은 피상적이고, 락탄시오와 아우구스티노의 어원 풀이는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풀이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맞지 않는다.
종교라는 낱말의 어원이나 유래만 갖고 종교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기에 종교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정의를 내리곤 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종교사가인 오토(R. Otto, 1869~1937)는 종교를 "성스러움의 체험" 이라고 정의하였고, 미국의 조직 신학자인 틸리히(P.Tillich, 1886~1965)는 "궁극적 관심의 상태"라고 정의하였다. 하지만 이런 정의들도 종교를 이해하는 데 일부 도움이 될 뿐이다. 실상 종교심은 유한성을 절감하고, 아울러 그 유한성을 뛰어넘어 무한자 · 초월자 · 절대자를 갈구하는 생래적 · 보편적 심성이기 때문이다.
〔개념의 형성과 성격〕 유럽 : 라틴어 '렐리지오' 에 대한 논란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때는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화하면서부터였다. 그동안 여러 신앙이 혼재되어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교가 '진정한' 종교임을 자처하면서 경쟁자들과 논박을 하는 가운데 이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 후 '종교' 라는 용어가 다시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계몽주의 시대였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그리고 종교 개혁과 반종교 개혁의 역사적 과정과 이어져 이루어진 일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은 비(非)유럽 지역의 다양한 '야만적' 풍습을 어떻게 그리스도교 관점에
서 설명할 수 있는가를 놓고 고민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관점보다 더 포괄적인 것이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또한 종교 개혁과 그로 인해 파생된 상황은 종교성의 기준을 내면화시켜 '렐리지오' 개념에 보편성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이런 기반 위에 계몽주의 시대는 '종교' 개념이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개념에 속한 현상이 인간 이성의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자연 종교' (natural religion)라는 개념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도 이런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처음에는 인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을 '자연 종교 에 국한한 반면, 그리스도교의 영역은 '계시 종교' 이기에 이성이 파고들 수 없는 영역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점차 이 영역까지 인간 이성으로 설명하려는 이들이 나타나서, 이른바 종교와 과학의 논쟁이 벌어졌다. 종교와 과학 사이의 영합(零合) 관계를 상정하는 이런 양분법적 대립 구도는 세속화 명제라고 불리며, 근대성 체제의 핵심적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렐리지오' 란 용어가 계몽주의 시대에 다시 성행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논 쟁적 상황 때문이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인간 중심주의와 세속주의는 '종교'를 인간의 본성에 위치시켜, 이것이 단지 그리스도교적 세계에 머물지 않고 보다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종교에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신앙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전의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여러 신앙을 포괄하는 관점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신앙을 포괄할 수 있게 만든 기준은 인류가 공유한다는 '렐리지오' 의 본질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전에는 그리스도교 이외의 신앙이 우상 숭배이기에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으나, 이후 그리스도교와 다른 신앙일 뿐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신앙의 다원화가 인정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신앙 사이의 비교가 가능하다고 여겨졌고, 그 공통점이 종교의 본질로 일컬어졌다. 그런데 이런 비교의 과정은 신앙을 지적 산물로 파악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른바 신앙의 물상화(物象化)나 추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신앙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고 비교 가능한 체계로 간주한 것이다.
슐라이어마허(F.E.D. Schleiermacher, 1768~1834)로 대변되는 19세기의 자유주의 경향은 이런 물상화에 반발하여 등장하였다. 그는 종교의 핵심이 교리와 같은 외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하는 내면적인 감정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학과 계몽주의적 종교관을 모두 거부하고, 불변의 독특한 성향이 인간에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 경험 영역과 전혀 다르며 인간에게 변함없이 나타나는 것이 '종교' 이다. 이 영역은 인간 개인의 감정과 직관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 이성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 종교 영역의 독자성은 확보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현상으로 환원할 수 없는 종교 영역의 '환원 불가능성' 에 대한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또는 일상의 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독특성이 종교 영역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종교의 보편성에 대한 계몽주의 시대의 관점과 독자성에 대한 19세기 자유주의의 주장은 근대성의 체제에서 종교 영역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역은 한편으로 인간의 경험에 속해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성의 한계 밖에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져 인간의 다른 현상과는 구별되는 애매한 성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또한 19세기에 역사주의의 성행과 진화론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종교의 영역도 단순하고 미분화된 형태에서 복잡하고 분화된 형태로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그로 인해 종교는 끊임없이 변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그 본질을 드러내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종교의 기원(起源)을 추구하거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종교의 본질을 찾는 탐구가 성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종교의 보편성이 전제되었기에 인간 모두가 종교심을 지니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유럽와 비유럽 사이에는 종교의 본질이 드러남에 있어서 시간적인 차이성이 존재한다 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종교의 본질을 역사적 과정의 처음이나 역동적 과정 가운데서 찾으려는 시도는 이러한 시간적 차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종교가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것임을 주장하면서도 역사적인 전개 양식의 차이에 따라 우열(優劣)을 논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서구 문화는 유럽의 주요 개념을 비유럽 지역에 퍼지도록 만들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종교 개념이었다. 종교라는 개념 범주가 토착적인 범주가 아니며, 식민주의자들이 비유럽 지역에 부과한 것이라는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보편적 개념으로 널리 인정된 '종교' 개념의 바탕에는 서구 중심적인 관점 혹은 그리스도교 중 심적인 관점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종교'개념은 비유럽과의 관계에서 유럽의 자기 규정 작업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즉 종교 개념은 서구 문화의 근저에 있는 그리스도교적 관점을 중심으로 비유럽의 타자(他者)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발전된 것이라할 수 있다. 즉 서구인들은 그리스도교를 기준으로 그와 유사한 비유럽 지역의 현상을 지칭하게 되었으며, 그렇 게 묶여진 것들이 서로 공통된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여 '종교' 라는 추상 개념을 만들게 되었다.
일본 : 동아시아 3국 중 '종교' 개념을 가장 먼저 성립시킨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19세기 중엽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 조약을 체결하면서 '렐리지오' 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종교' 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종법' (宗法) 혹은 '종지' (宗旨)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867~1868년 사이에 '종교' 가 번역어로 등장하였고, 1880년대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이전에 '종교' 라는 용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교의 가르침' 이란 의미였다. 그러나 이제 '종교' 는 보편 개념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일본은 열강들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자구책으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체제 정비를 하였다. 이와 함께 열강과의 본격적인 접 촉과 서구 지식의 유입이 이루어졌다. 열강들은 일본과 조약을 체결할 때, 무엇보다도 선교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일본에서 '종교' 개념이 등장한 것도 열강들의 그리스도교 선교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더불어 비롯된 일이었다. 근대 이후 서양인들은 '신앙의 자유' 를 인간의 천부적 권리 중 하나라고 간주하고, 그 권리의 향유 여부를 문명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비유럽 국 가들과 조약을 맺을 때 그 권리 보장을 우선적으로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유럽 같은 '렐리지오' 개념 및 '신앙의 자유' 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로 인해 '렐리지오' 의 번역어로서 '종교' 라는 개념이 정착하기까지 일정한 기간을 거쳐야 하였다.
일본에서 '종교'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천황제의 이념적 기반으로서 국가 신도(國家神道)가 성립하면서부터이다. 메이지 정부는 서구 열강들의 세력 기반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스도교의 통합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도 그리스도교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신도가 천황제를 뒷받침할 수 있
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전통적으로 서로 구분없이 결합되어 있던 신도와 불교를 분리시킨 1868년의 신불(神佛) 분리 정책과 뒤를 이은 배불 훼석(排佛毁釋) 운동은 신도의 국교화 맥락에서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불교의 무시 못할 저항, 그리고 국민 교화 운동에 불교의 협조가 필요한 점, 또한 정부의 조치가 신앙의 자유와 정교 분리 원칙을 침 해한다는 강력한 비난 때문에 노골적인 신도 국교화 작업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메이지 정부가 마련한 해결책은 신도를 국가 신도와 교파(敎派) 신도로 나누는 것이었다. 이는 제사와 종교의 영역을 분리시키면서 이루어졌다. 국가 신도는 국가의 제사만을 다루는 것으로, 일반 종교와는 전적으로 구별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였다. 반면 교파 신도는 종교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간주 되었다. 국가 신도는 '비(非)종교' 혹은 '초(超)종교' 이므로 신앙의 자유나 정교 분리의 원칙에도 적용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황실과 국가의 제사를 담당하는 국가 신도를 천황제의 핵심적 장치로 기능하도록 만들고 일본 제국 헌법의 신앙의 자유 및 정교 분리 조항과도 양립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제국 헌법에서 신앙의 자유는 사회의 "안녕과 질서 를 해치지 않고, 신민(臣民)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보장되는 것이었다. 1945년 패전과 함께 국가 신도 체제가 붕괴되자, 신앙의 자유는 이전의 제한에서 벗어나 기본적 인권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최대한의 신앙의 자유와 엄격한 정교 분리가 새로운 헌법의 기본적 원칙으로 확보되었다는 것은 일본에서 종교 영역이 서구와 같은 방식으로 배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천황제가 계속 유지되고 어느 정도 과거의 국가 신도 체제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한, 일본에서 종교 영역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 한국에서 종교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것은 1883년 11월 10일자 <한성순보>(漢城報)이다. 그 이전에는 그리스도교, 도교, 유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 등이 언급되었지만, 이를 총칭하는 의미에서 종교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았었다. 종교라는 보편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외양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성격을 지닌 신앙의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졌다. 간혹 종교 개념에 대응하는 이전 개념으로 '교' (敎), '도' (道), '학' (學) 등을 거론하며 개념적 연속성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종교 개념의 작동 방식은 전통적인 '교' , '도' , '학' 등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종교 개념 안에는 당시 재편되고 있던 동아시아 질서의 맥락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서의 재편에 대한 관점은 단일하지 않았기에, 종교 개념도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 복합성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시대적인 요청으로 간주된 두 가지 핵심적 노력을 알아야 한다. 즉 서구의 부국 강병을 모방하기 위해 제시된 '문명화의 달성' 노력과 위기로 동요하고 있는 '집단 정체성(identity)의 유지' 를 위한 노력이다. 당시 지향했던 것은 이 두 가지 기준을 양립시키는 것이었지만, 두 방향이 서로 상반되게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복합적인 경우가 나
타났다. 두 축을 기준으로 하여, 각각의 경우 종교에 대한 네 가지 서로 다른 담론을 유형화할 수 있다.
첫째는 '종교' 가 문명화의 방향과 양립할 수는 있지만, '집단 정체성의 유지' 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종교가 지닌 문명화와의 연관성은 적극적인 것이 아니다. 종교가 자신의 영역에 머무르면서 제 몫을 하는 경우에만, 문명화의 방향과 양립할 수 있게 된다. 이 관점은 인간 본성에 종교적 차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종교의 영역은 개인의 내면에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종 교가 공적 차원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개인의 정신적 · 영적 문제에 국한하여 활동하는 한, 종교의 자유는 무제한으로 허용된다. 정교 분리와 신앙의 자유란 원칙이 주장되는 것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둘째는 '종교' 가 문명화의 방향과는 어긋난다고 보고 종교의 쓸모없음을 주장하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문명화의 방향을 선도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적 합리성 의 발달이다. 이는 계몽주의-실증주의로 이어지는 반(反)종교적 관점이다. 그래서 종교와 과학의 대립, 세속화로 인한 종교 소멸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집단 정체성의 측면에 대해서는 종교의 기여가 있음을 인정하는 편과 그렇지 않음을 주장하는 쪽으로 나누어진다. 존속하는 동안 종교가 계급과 같은 집단 정체성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다고 보는 쪽도 허위의식 혹은 이데올로기의 기능이라고 하여 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셋째는 '종교' 가 문명화의 방향과 동시에 집단 정체성의 유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은 서구 열강들이 지닌 부의 기반이 종교 개혁 때부터 마련 되었음을 내세우며 프로테스탄트가 서양 문명의 뿌리라고 강조하는 관점이다. 프로테스탄트를 국교로 삼는다면, 문명화와 집단 정체성 유지라는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한국에서 문명의 상징으로 프로테스탄트를 보는 관점은 널리 확산되었으며,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가 세계 선교사상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둔 것도 이런 관점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 넷째는 문명화보다 집단 정체성 유지 측면에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종교' 의 흥망 성쇠와 집단 정체성의 존속을 직결시키려는 입장이다. 집단 정체성 유지에 '종교' 의 통합력이 결정적인 몫을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나라마다 종교가 있어야 국민을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 다른 나라와의 생존 경쟁이 필수적이라고 여기던 상황에서 종교가 국민 정신을 단합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유교를 국교로 삼아 서양 세력에 대항하려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첫 번째의 입장은 현재 서양의 지배적 체제 원리 중 하나로서 종교를 사적 영역에 두어 정치가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두번째 관점은 종교에 대한 1930년대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주장, 그리고 1960~1970년대 근대화론자의 주장에서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반종교적인 관점은 종교 진영으로 하여금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위기 의식을 불러 일으켜서, 교리적 · 조직적인 측면에서 자체 정비를 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 와 네 번째 입장은 나라마다 종교가 있어야 국민을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두 입장의 차이는 서양 모델의 문명화 방향에 대한 태도 때문에 발생한다. 이 관점은 집단 정체성의 위기 상황에서 영향력이 있다. 하지만 정교 분리론이 주도권을 잡으면, 주변적인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현재 한국에는 네 번째 관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지의 종교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이 가운데 공식적으로 지배적인 것은 첫 번째 관점이다. 반종교적인 관점은 소수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존속하고 있으나, 그리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반면 세 번째인 프로테스탄트 국교화 관점은 남한 프로테스탄트 특유의 반공주의와 결합되어 암암리에 번성하고 있다. 이 점은 정교 분리를 주장하면서도 프로테스탄트 계가 선거 때 정치 세력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종교 개념이 천황제 유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개되었다면, 한국의 종교 개념은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과 적지 않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유교가 종교인가? 의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는 점이나, 이단과 정통 여부에 관한 논의가 일반 방송 매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아무 의심 없이 프로테스탄트를 종교의 모델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종교의 유형〕 현재 '종교' 라는 개념을 통해 떠올리는 것은 종교라는 총칭 아래 있는 여러 가지 종교들이다. 즉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도교, 그리고 유교 등이다. 그런데 유교를 종교 개념에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교회와 동방 교회, 프로테스탄트가 있고, 유대교는 그리스도교의 모태이므로 종교에서 빠질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교와 많은 전통을 공유하는 이슬람이 있다. 이러한 유일신론적 종교와 교리적 · 교단적인 차원에서 필적할 수 있는 불교가 있으며, 힌두교는 불교의 모태이고 인도인의 종교라는 자격으로 포함된다. 불교가 종교 범주에 포함되는 한, 불교와 쌍벽을 이루고 중국 전통을 이어온 유교와 도교가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중국 종교를 다루었기에, 서양인에게 중국과 더불어 동양 정신 을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일본의 신도가 포함된다. 이러한 종교들이 이른바 '세계 종교 라는 명칭에 포함된다. '민족 종교 라는 범주는 세계 종교에 포함되지 않은 종교 가운데 특수한 민족 집단에 국한된 종교로서 아직 보편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또한 한정된 집단이 아니라, 무정형의 민간에서 신봉되고 있는 종교는 '민속 종교' 라고 불린다. 한마디로 종교의 분류가 신자 집단이 얼마나 많은 수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세력의 판도가 변하면 종교 분류의 기준도 바뀌게 마련이다.
종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창시자가 있는 종교' 이다. 이러한 종교에는 역사적 기원이 있으며,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강력한 윤리적 경향을 갖고 있다. 이 종교에서는 교리가 중심이 된다. 또한 이러한 종교에 부족 종교의 의식이 포함되어 상징적으로 재해석된다. 그로 인해 새로운 축제가 도입되고, 축제는 그 종교의 창시자의 삶이나 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초점을 둔다. 둘째는 '부족 종교 이다. 이 종교는 한 해의 주기나 인생의 주기에 초점을 둔다. 종교 의식은 축제 형태로 매일의 생활 속에서 경험된 절정의 경험이나 위험스러운 일들을 표현한다. 부족 종교는 교리보다 예배를 더 강조한다. 많은 경우 조상 숭배가 중심적인 의식이 된다. 그것은 전통, 정체성, 종족의 일치감으로 이어진다. 부족 종교에서 형성된 경건성이 모든 다른 종교의 기초가 되며, 특히 민속 종교는 이러한 경건성을 창조하고, 그 위에 스스로를 덧입히고 거기에 적응한다. 셋째는 '신비주의' 이다. 이런 유형의 종교는 대부분 의식을 배척한다. 신비주의는 종교의 특징적인 면을 넘어서서, 명상이나 황홀경을 통해서 접속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영원 불변의 유일한 힘으로 귀속하려는 경향성을 가진다.
〔교회의 입장〕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을 통해 타종교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다른 종교의 존재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거룩한 공의회는 인간이 하느님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하느님께서 직접 인류에게 알려 주셨음을 천명한다. 우리는 이 유일한 참 종교가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 안에 있음을 믿는다" (종교 자유 1항)라고 함으로써, 가톨릭 교회만이 유일하고 참된 종교라고 밝히고 있다. 유대교에 대해서는 "정신적으로 결합시켜 주는 유대" (비그리스도교 4항)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모르고 오해하는 비극 속에서 세상 끝날까지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밝힌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40항). 그리고 이슬람 역시 가톨릭 교회와 유사한 신앙과 가르침이 있음을 인정한다(교회 16항, 비그리스도교 3항).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른 종교들은 인류의 공통적 기원과 공통적 목적에 따른 유대가 있다고(비그리스도교 1항) 밝히면서 그들은 하느님을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찾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843항)라고 하였다. 또한 "교회는 다른 종교들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선한 것과 참된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843항)라고 하였다. 이렇듯 교회의 입장은 그 믿음을 가진이들이 가톨릭 교회로 들어와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교회 14항)라고 하였다. (⇦ 세계 종교 ; → 교회와 타종교 ; 도교 ; 불교 ; 세속화 ; 슐라이어마허 ; 신도 ; 유교 ; 유대교 ; 이슬람 ; 자연 종교)
※ 참고문헌 장석만,《개항기 한국 사회의 종교 개념 형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청구 논문, 1992/ 정진홍, 《종교 문화의 논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鈴木範久,《明治宗教思潮の 研究 : 宗教學事始》, 東京大學出版會, 1979/ S.N. Balagangadhara,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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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宗敎
〔라〕Religio · 〔영〕Religion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