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敎會

〔라〕ecclesia · 〔영〕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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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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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


I . 성서적 고찰 〔에클레시아와 이 개념에서 나타나는 교회〕 신약성서 는 교회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공동체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하는 것은 자신들을 에클레시아(έκκλησια. : ecclesia)라 지 칭한 데서 분명해진다. 이 단어는 그리스역 성서(70인역 성서)에 100번 정도 나오며, 집결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 리스 문화권에서 이 낱말은 구조적으 로 볼 때 한 도시 시민의 정치 집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도시의 에클레시 아가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결정짓기 위 한 남성들의 집회였던 데 반해, 이스 라엘의 에클레시아는 그들을 부르고 그들 한가운데 현존하는 하느님의 말 씀을 듣기 위해, 그리고 신앙하는 가 운데 그에게 동조하기 위해 남녀 노소 구분 없이 모인 모든 사람들의 집회였 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 과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가운데 자기들을 "부름받고 모인 백성" 으로 이해하였다. 이 단어는 유배 이후 에 스델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을 때 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의 에 클레시아는 흩어진 이스라엘 자녀들의 종말론적 재집합에 대한 희망을 중 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구체 적인 현실과 에클레시아 표현이 나타 내는 하느님 백성의 이상적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신을 에클레시아라고 표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들의 집회" 라는 의식을 가졌 다. 그리고 이 집회 안에 예언자들이 선포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재통합과 종말론적 희망의 주제가 실현되기 시작했다고 확신하였다. 바오로는 이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자주 사용 하였고 전체 구원 계획의 지평에 있는 교회로 묘사하였다. 바오로에게 교회는 이스라엘 안에서 예시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 된 이스라엘로서의 실현을 최종적으로 발견한 하느님 백 성이었다. 바오로는 이 단어를 종종 복수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바오로가 에클레시아를 개별 지역 공동체로도 이 해하였음을 말해 준다. 여러 교회 공동체들의 인정은 하 나의 교회라는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지역 공동체가 하나의 전체 교회의 구체적 묘사임을 나 타냈다. 이와 같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에클레시 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교회를 역사 가운데서 사회적 실재로 구체화되어 나타난 집회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근본적 사건으로 일어난 하느님의 계시와 관련되어 있는 신앙인의 공동체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 신앙 가 운데서 자신을 인간의 역사적 현실의 환경 안에서 작용 하는 신적 구원의 사회적 형태(구원의 성사로서의 교회)로 표현하였다. 〔구약의 교회〕(교회 준비 기간) 세 상이 생길 때부터의 교회(하느님께 기원을 둔 교회) : 신앙과 신앙인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이미 이스라엘 역사 이전의 역사(창세 1-12장)에 암 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하느님과 인 간의 관계(신앙의 공동체)가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사색에서부터 교부들은 교회를 '아담으로부터의 교회' (ecclesia ab Adam) 또는 '아벨로부터의 교 회' (ecclesia ab Abel)로 표상하였다. 특 히 아벨의 교회는 인간은 죄에 떨어 졌어도 계속 하느님과 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간과 하느님, 그리고 인간 끼리의 일치가 실현되는 곳에서 언제 어디서나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 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것 이 교회의 설립자가 예수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Lumen Gentium)은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영원하신 성부께서는 당신의 지극히 자유롭고 심오하며 지혜롭고 고마우신 계획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람들은 당신 생명에 참여하도록 들어 높이시기로 결정하셨다 ··· 그리 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교회에 불러들 이기로 결정하셨다. 이 교회는 세상 이 생길 때부터 이미 상징으로 암시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구 약을 통하여 놀랍게도 준비되었고, 마지막 시대에 창립되어 성령이 오심 으로 드러났으며 세말(世末)에 영광 스러이 완성될 것이다"(2항 참조 ; 로 마 9, 4 이하 ; 11, 8). 이스라엘과 교회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이 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구약을 통하여 놀라운 방법으로 준비되었다(교회 2항)고 말한다. 신약의 교회는 이스라엘 이라는 신앙의 공동체를 모체로 하고 있다. 바오로는 이 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가지에 비유하면서 "행여 가지들을 (얕보고) 잘난 체하지 마시 오. 어쩌면 잘난 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 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합 니다" (로마 11, 18)고 말한다. 바오로에 의하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는 시기는 전체 이스라엘이 그들의 신앙과 그들에게 유효한 약속들을 성취하여 '시온으로부 터의 구원자' 를 인정했을 때이다(로마 11, 26). 이스라엘 과 교회는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역사 안에서 인간의 구 원을 위해 말씀하시고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의 표징이며 증거이다. 이스라엘과 교회는 방랑하는 하느님 백성의 운명과 희망을 대변한다. 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스라엘과 교회는 본질과 임무를 자주 망각하였다(유대인 과 그리스도인 간의 비극적 마찰, 반유대주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다시 주제로 삼았 다.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에서 지금 까지 정식화되지 않았던 원칙적 표현을 보게 된다(4항). 공의회 이후 유대인과의 대화는 교회가 교회 개념 자체 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된 동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아 가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해주 었다(비그리스도교 1-3항) 〔신약의 교회〕(예수와 교회) 교회의 그리스도론적 문 제점 : 신약에 의하면 조직화된 교회는 부활 후에야 비 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안에서의 한 교파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차츰 고유한 신앙 고백, 전례, 조직, 직무와 독자적 의식을 갖춘 공동체망 (網)으로 형성되며, 종말론적 구원의 공동체로 묘사되고 있다. 부활과 성령 강림을 교회의 시작과 교회의 기초로 서술하고 있다. 루가는 구원사적 관점에서 예수의 시간 과 교회의 시간 사이를 구분한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교 회의 형성은 부활의 첫 효과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옛 시간에서 새 시간으로 넘어가는 종말론적 사건이며, 교회는 부활 사건으로부터 실존한다. 교회는 부활한 예 수에 의해 합법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성령의 종말론적 선물이다. 이처럼 교회가 신앙인에서 하느님 백성, 그리 스도의 몸, 성령의 성전이며, 또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 랑의 신비를 드러내고 실현시키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 (사목 45항)라는 신학적 반성을 고려할 때, 교회를 이러 한 신비가 드러난 그리스도 사건의 전망에서 보아야 한 다. 그렇다면 교회의 설립은 역사적 예수와 무관한가? 르 와지(A. Loisy)의 말처럼 그리스도가 선포한 것은 하느님 나라였는데 실제로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교회였는가? 사실 예수는 이스라엘 밖이나 안에 다른 어떤 특수 공동 체를 설립하고자 하지 않았고, 또 임박한 종말을 믿고 있 었다. 그러므로 하나의 제도로 조직되고 역사적으로 지 속되어야 할 그런 교회상을 예수가 마음속에 두고 있었 다고 보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 가 어떤 강도를 가졌었기에 부활 후 제자들을 고무시켰 고 교회의 핵심이 되었는가? 이런 물음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밝히는 그리스도론적 지평 에서만 근원적으로 옳게 답할 수 있다. 역사적 예수가 신 앙의 그리스도와 무관하지 않다면, 부활한 그리스도에 기인한 교회는 처음부터 역사적 예수의 지상 생애와 무 관할 수 없다. 즉 그리스도 사건에 기인한 공동체도 이미 지상의 예수가 준비하고 의도하였으며, 메시아적 종말 공동체로서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된 공동체' 가 되도록 정해졌다. 사실 초기 공동체의 규정은 예수의 말과 행위 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교회 존재는 이 미 예수의 역사적 활동 안에, 그리고 예수가 형성한 제자 단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예수의 말과 행위가 이미 교회 적 의미를 지녔으며 제자들은 교회의 첫 씨앗이다. 교회 의 시작을 예수의 활동 안에서 찾고 이를 주석하고 역사 적으로 작업하며 그 의미를 찾는 것은 단순한 호교론적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일 이라고 믿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을 변호하는 신학 적 노력과 일치하게 된다. 교회 설립에 관한 주석학적이 며 역사적인 연구는 교회의 그리스도론적이며 성령론적 인 원칙에 관한 기본적 논쟁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설립 : 예수가 교회를 세웠다는 입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규정적 요소들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살펴볼 수 있다. ①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 백성 : 예수가 교회를 세웠 다는 것은 그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에서 볼 수 있다. 그 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교회를 시작하였다. "주 예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마르 1, 15 ; 마태 4, 17) 하시며 세세로부터 성서에 약속 된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심으로써 당 신 교회를 시작하셨다"(교회 5항). 예수가 교회를 세운 것 은, 하느님 나라가 불러모으는 공동체의 성격을 가졌다 는 데서 연역해 낼 수 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 하면서 하느님 백성의 집결(이스라엘의 집결)과 하느님 나 라의 재건에 관심을 보였다. 이 때문에 예수는 하느님 나 라를 선포하면서 각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백성, 이스라 엘 백성을 대상으로 하였다. 공동체 안에서 산상 설교, 하느님 나라와 다스림에 대한 약속과 의무들을 받아들였 고 실현하였다. 예수와 함께하는 공동체는 어떤 특수 단 체, 엣세네파와 같은 수도 단체, 또는 어떤 종교적 비밀 조직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하느님 백성이었다. 이 백성 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경계를 넘어서서 준비하는 인 간, 신앙하는 인간이고, 예수가 말한 대로 이스라엘에게 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마태 8, 10). ② 하느님 나라와 교회 :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교회를 세웠다고 하여 예수가 부활 이전에 공공연하게 교회의 설립을 선언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느 님 나라와 교회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이 둘의 이면에는 '이미' 와 '아직' 의 긴장 관계가 있다. 교회는 하느님 나 라의 역사적 발전 단계가 아니며 또 그 현현 형태도 아니 다.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하느님 구원 계획 의 궁극적 목표이며 온 세상 구원의 완전한 형상이다" (Schnackenburg, 166). 교회는 지상의 하느님 나라가 아니 다. 하느님 주권은 교회의 영역을 벗어나 헌신적인 행위 에서 발견된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는 자기의 지상 실재가 종말론적 유보 아래 있음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교회는 자신을 이미 종말론적 크기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께 신앙 고백하는 사 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기의 역사적 일 시성 안에 하느님의 최종적 공동체를 간직하고 있으며, 희망 가운데 이 공동체에 참여한다. 교회와 하느님 나라 의 이런 관계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표현된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내 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로운 것을 마시게 될 그날까지 포 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더 이상 마시지 않겠습니 다" (마르 14, 25). 여기서 예수는 (그리고 그 후의 공동체 는) 교회의 시대에서 결코 현재가 될 수 없는 미래를 바 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또 교회는 전례적 식사에서 상징 적으로 이미 예수와의 공동체를 체험하고 있으며, 이로 써 상징적으로 현재와 미래를 종합하고 있다. '이미' 와 '아직' 의 긴장 속에서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현재로 이 해할 수 있다. 이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는 "구 원의 보편적 성사" (교회 45항)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미 온 분과 아직 기다리고 있는 분 사이에 놓여진 존재로 특 징지어지는 교회는 십자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주인처럼 주님의 영광 속에 들어가기 위해(루가 24, 26) 고통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들 가운 데 순례의 도상에 있다. ③ 예수의 칭호와 교회 : 메시아, 그리스도, 사람의 아 들, 하느님의 종 등의 호칭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에서 사용한 호칭들이다. 이는 예수가 사적인 인간이 아 니라 공동체와 관련된 공적인 인간이었음을 암시해 주 며, 여기서 교회 설립의 근거를 볼 수 있다. 목자에게 양 떼가 속해 있듯이 그리스도에게 하나의 공동체가 속해 있다. "예수가 교회를 원하였으며 또 설립하였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예수의 메시아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일 메시아 의식이 역사적으로 인정된다면 예수 는 자기 안에 나타나기 시작한 종말의 하느님 백성으로 서의 메시아적 공동체를 자기 주변에 모았어야 하였다" (Schmid, 797). '사람의 아들' , '하느님의 종' 이라는 호칭이 교회론적 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은 메시아, 메시아 공동체에서처 럼 그렇게 확실하고 명백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 은 다니엘서에 의하면(7, 13) 영광과 권력, 그리고 영원한 왕국을 수여받은 형상으로 서술되어 있어 인간들 의 공동체에 관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니엘서는 이 공동체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 (7, 18 이하)으로 묘사한다. 예수가 "사람의 아들" 호칭을 자신에게 사용한다면, 거기에는 - 많은 성서 주석자들 의 견해를 따르면 - 단체, 공동체, 백성, 하나의 공동 인 물(corporate personality)도 함축되어 있다. 똑같은 방식으 로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 (이사 49, 4 ; 53, 12)의 사고 도 공동체와 연관되어 있다. 예수에게 붙여진 이 호칭들 이 예수에 대한 고백의 호칭이라는 것은 예수가 신앙 고 백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복음서 에 나오는 고백은 개인적이기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고백 이다. 이렇게 해서 예수의 종말론과 복음서의 교회론 사 이에는 하나의 종합이 이루어진다. 교회는 예수의 종말 론에서 출발하고 그 안에 근거한다. 교회는 이 예수와 관 계하고 있기에 결코 종말론에 대한 해결책으로 세워진 것일 수 없다. 교회는 종말이 오기까지의 과정에 임시 방 편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다. 제자들을 부르심 : 공동체 소속 조건(가령 세례)이나 조 직 구조(공동체 지도 직무)를 갖춘 교회 제도(institutio)는 아직 예수에게서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부활 전(前) 구조를 갖춘 일정한 결집 운동을 형 성하였다. '제자들' 의 부르심이 그것이다. 제자들은 예 수와 함께하는 공동체에서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는 특별 한 과제를 떠맡은 그룹이었다. 즉 예수의 특수 증거 공동 체, 운명 공동체였다. 이 제자단은 특수 단체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말을 건네고 모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로핑크는, 이스라엘 안에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되 자기가 살던 곳에 머무르며 그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기 다리는 사람과, 예수를 따라 나선 제자들로 나눌 수 있다 고 한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단은 윤곽이 드러난 집단이 다. 예수가 열두 제자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제자들을 불러모은 이유는 루가 복음 10장 2절에서 찾아볼 수 있 다 :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들이 적습니다. 그러니 여 러분은 추수 주인에게 빌어 그의 추수(밭)에 일꾼들을 보내시라고 하시오." 여기서 말하는 추수는 이스라엘을 세말의 하느님 백성으로 모은다는 뜻이다. 제자들은 열 두 제자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섬기는 일의 협력자들이 요, 이스라엘을 모으는 일의 협력자들이다. 그러나 이스 라엘 전체가 예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자 제자들에 게 다른 기능이 주어졌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 전적으 로 헌신하는 일, 새로운 생활 질서로 철저히 회개하는 일, 형제 자매를 공동체로 불러모으는 일이 맡겨졌다. 열둘 : 열둘과 베드로의 부르심에서도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관심을 볼 수 있다. 제자들 중에서도 선택된, 그 러나 고유한 그룹으로 '열둘' 이 있다. 열둘은 이스라엘 의 열두 지파를 가리키는 상징적 숫자 이다. 열둘은 새 하느님 백성의 선조들 로서가 아니라 지금 최종적으로 부름 을 받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이해된 다. 예수는 열둘을 불러 세우는 상징적 행위로 자기가 전체 이스라엘을 상대 로 하고 있음을, 그리고 전체 백성을 사제나 율법 학자들에게서가 아니라 자기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부른 자들 안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는 고유한 교회를 목적으로 한 것 은 아니었지만 열둘로서 부활 전에 이 미 사회적 제도를 건설하였다. 베드로 위에 건설된 교회 : 교회라는 단어는 복음서 중에서 마태오 복음에 만 두 번 나온다(16, 19 ; 18, 17). 교회 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교 회가 예수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말 해 준다. 교회의 원천은 예수적인 것 위에, 다시 말해서 예수와 베드로의 관 계에서 주어진다. 예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베드로가 맺고 푸는 종말론의 열 쇠이다. 예수는 시몬을 당신 교회를 건 설하기 위한 바위의 기능으로 정하고, 베드로를 자기 자신의 바위 기능, 기초 기능에 참여시킨다(마태 16, 17-19). 바 위인 예수가 시몬을 통해 자신을 대변 하게 한다. 시몬은 바위로서 예수의 바 위 기능을 현대화시키고 중재하고 대 변해야 한다. 예수의 만찬과 교회 : 부활 전의 예 수 그룹과 부활 후의 교회를 연결시키 는 사회적 구조에 상징적인 행위인 공 동 식사가 속한다. 만찬에 관한 성서 내용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후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받아들여졌다 는 것은 공동체의 만찬이 예수의 만찬의 빛 속에서 설명 되고, 예수의 만찬이 공동체의 전례의 빛 속에서 묘사되 었음을 의미한다. 54년경에 쓰여진 예수의 만찬에 대한 내용에서 바오로가 보인 관심도 고린토에서 공동체의 만 찬이 예수가 배반당하여 넘겨지던 날 밤의 행위에 기인 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식사는 예수의 그 행위를 기억하 며 현재화하고, 그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인한 계 약의 잔으로 특징짓는 빵과 잔에 참여한다는 것을 증명 하는 데에 있다. 공동체는 예수의 위임과 유언을 채운 것 이다. 이것은 바오로가 첨가한 "나를 기억하며 이를 행 하시오"(1고린 11, 25)라는 문장을 통해 입증된다. 교회 는 예수의 만찬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실존한다. 이 사건 안에서 예수의 죽음이 기억되고 열정적으로 선포되며, 선물과 표징의 형태로, 식사의 형태로 예수와의 공동체 가 이루어진다. 이로써 예수의 제자 공동체는 남을 위한 예수의 현존의 기능을 채운다. 이렇게 볼 때, 예수는 만 찬을 통해서 하나의 공동체, 자기와 결합된 인간들의 공 동체를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공동체는 만찬 행사를 통해 결합한 채 머물러 있게 된다. 〔그리스도와 교회〕(연속성과 쇄신) 부활 사건과 함께 예수에게 기원을 둔 교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부활 사건은 예수의 제자를 다시 모으는 결과를 낳 았다.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체험을 하느님의 일로 이해 하였고, 동시에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전 하라는 사명의 위임으로 파악하였다. 예수의 결집 운동 과 제자단의 근본적인 지속에는 이 운동이 종말 사건 한 복판에 놓여 있으며, 그 때문에 종말이 시작되는 예루살 렘에서 하느님 주권의 최종적 계시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제자들은 마티아를 뽑음으로 이스 라엘의 종말론적 부르심의 상징인 열두 제자를 복구하였 다(사도 1, 15-26). 이 모든 것은 "예수가 시작한 이스라 엘의 세말 집결 운동이 예수 부활 후의 제자 공동체에 의 하여 예수에게 충실한 태도를 계속 수행한다" (G. Lohfink, 127)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한 제자들은 그들이 지 상 생활에서 얻은 예수상(像)을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선물에 근거하여 새로 선사받은 것으로 체험하였다. 하 느님 주권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가 예수에 대한 복음이 되고, 예수의 현존이 예수의 영의 현존 안에 대변되고 있 음을 체험한 것이다. 성령의 교회 : 성령의 교회는 예수 승천 후에 비로소 시작된 교회가 아니다. 성령은 처음부터 예수가 설립한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 신앙의 전승이 실제로 이루어 진 장소는 부활 후 성령의 교회였지만, 이 교회가 다룬 원칙은 복음서의 예수성이다.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복 음의 종말론적 내용이 교회의 원리이다. 예수성은 그 역 사성 때문에 한계를 갖고 있지만 성령에 의한 은사의 힘 으로 계속된다(교회 4항). 예수의 일과 카리스마 성격은 바오로 신학의 중요한 테마이다. 교회를 일방적으로 부 활 후의 결집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교회 역 사가 예수의 교회라는 측면에서 일방적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즉 교회는 예수가 세웠으며, 예수는 그 교회를 베 드로 위에 세움으로써 베드로의 후계자를 통해 관리하도 록 하였다는 면을 강조하고 교황과 제도, 교계 제도를 중 심으로 교회사를 기록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쓰 여진 교회사라 할지라도 예수의 교회는 역시 성령의 교 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어려움과 위기 속에 서도 멸망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성령의 교회의 모습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제도와 조직을 갖춘 교회는 성령의 교회이다. 또한 그리스도가 책정한 직무 와 여러 카리스마의 힘으로 자기의 여정에서(에페 4, 1116) 종말론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영적 일치를 추구하게 된다. 교회 역사에는 영적인 온갖 무정부 상태 를 정당화하여 교회의 참 모습을 흐리게 하는 성령주의 (pneumatismus)도 나타났다. 교회의 참 모습은 이 두 극 단적인 모습(제도와 영적인 면)이 균형을 이룬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교회는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볼 수 없는 성사적 실재이다. 이러한 균형에 대해 교황 바오로 6세 는 "카리스마를 유포하고 동시에 교회의 생명력을 하사 하시는 성령은 카리스마적 영감과 교회의 법적 구조가 서로 일치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룩하도록 역사하고 계 신다" 고 말하였다.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 의 사회적 기구도 교회를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함으로써 몸을 자라게 한다" (교회 8항)고 언급하였 다. 교회의 제도, 예수에 기원한 교회는 영(靈)의 교회이 기에 항상 새롭게 형성되는 교회이다. 교회의 지속은 제 도적으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써 보장된다. 계속 성은 쇄신과 모순되지 않는다. 원초 공동체의 자기 이해 : 예루살렘의 초기 그리스도 인들은 자기 자신을 "성도"(사도 9, 1. 32. 41 ; 26, 10 ; 로마 15, 25 이하. 31 ; 1고린 16, 1 ; 2고린 8, 4 ; 9, 1. 12) 로, "하느님의 공동체"(갈라 1, 13 ; 1고린 15, 9)로 표시 하였다. 하느님 공동체는 구약의 '카할 야훼' 라는 표현 을 통해 신학적으로 규정된 자기 이해의 표현이다. 그리 고 이러한 표현은 유대 그리스도교적 공동체(1데살 2. 14 ; 1고린 11, 16)와 바오로 공동체(고린토 교회 ; 1고린 1, 2 ; 10, 32 ; 11, 22 ; 2고린 1, 1)에 전수되었다. 바오로는 지역 공동체를 부를 때에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1고린 1, 2 ; 2고린 1, 1). 이로써 에클레시아는 처음부터 새 하느 님 백성의 전체성을 포괄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 신도들 의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다(사도 9, 31 ; 20, 28 ; 1디도 3, 51. 15 ; 1고린 12, 28). 첫 공동체, 예루살렘의 원초 공동체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믿는 사 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 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신명나는 순 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들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사도 2, 42-47). 새 하느님 백성이 성령으로 가득 채워진 데서 사회적 장벽들이 지양되고, 근원적인 형제애가 실 천으로 옮겨지며, 폭력의 포기가 실현된다. 이 공동체는 "서로 함께"의 실천으로 특징지어진다(G. Lohfink). 이런 교회의 조성과 보전, 장려와 실현을 바오로는 "오이코도 메인"(οικοδομειν, 건설하다)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사도 행전의 기록을 보면 그 공동체는 실제 그렇게 이상적이 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스계 신자들과 유대계 신자 들 사이에 생긴 마찰과 긴장이라든지(1고린 1, 10-17), 온갖 부정과 패륜이 단죄되고(1고린 5장), 음행(1고린 6 장)과 우상 숭배(1고린 8장)가 경고되는 것 등이 이를 입 증한다. 예루살렘의 원초 공동체는 처음 유대 출신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였다. 유대 신앙의 지평에서 종교를 실천 해 나갔고, 그 바탕 위에서 예수에게 초점을 맞춘 교회의 고유한 것을 묘사하려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 앙을 새로운 종교로 이해하지 않고 이스라엘에 대한 약 속의 확인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다가 유대인 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차츰 분열이 생기기 시작하였 다. 그 원인은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메시아로서 선언된 사실에도 있지만, 한편 백성의 지도자들이 율법의 이름 으로 죽음에 붙인 나자렛 예수를, 즉 십자가에 처형된 예 수를 새 계약의 원천(기원)이며 설립자라고 주장한 때문 이기도 했다. 마찰과 분열은 이런 역사적 배경 외에도 이 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종말론적 영의 수여로 이해되는 성령의 전달(사도 2장)과 스테파노의 순교 후 이스라엘에 서 독립된 공동체가 형성(사도 8장 이후)되었다는 초기 그 리스도교의 선교론적 차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초기 핵심 공동체는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자신을 백 성의 보편적 대표로 확신하였다(사도 2, 5). 바오로가 개 종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고(사도 9, 1-22 : 갈라 1, 15 이하),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새로운 (독립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는 선교 운동과 신앙 운동의 결과를 낳았으며, 수많 은 공동체가 생겨났다. 종말론적 이스라엘의 집합에 대 한 구약적-유대 그리스도교적 사고가 모든 민족 세계를 관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보편적으로 현대화하는 원초 그리스도적-바오로적 사고로 전향된다. 안티오키 아 공동체에서 열두 사도로 대표되는 초기 사도들의 선 포를 벗어나 예루살렘에 이은 제2의 원초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보편적 · 가톨릭적 형상이 드러나게 된다. 교회는 모든 백성(마태 28, 29)에 대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이해된다. 바오로는 베드 로와 함께 이 운동의 대표자였으며 만백성에 대한 탁월 한 복음 선포자였다. II . 신학사적 고찰 〔3세기의 교회 모상〕(신비로서의 교회) 사도 후 시대 에 나타난 3세기의 교회의 모상은 신비의 요인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 교회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느님의 신비로운 결의를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말 씀과 세례, 성찬, 죄사함(참회)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 을 통해서 불리고, 모이고, 거룩함에 참여하게 된 공동체 로 인식하였다. 이 교회 공동체는 일치와 성령의 선물로 실현되는 한, 신비로 이해된다. 온갖 위협과 박해 속에서 도 공동체가 지속되고 더욱 결속될 수 있었던 것도 교회 를 신비로 체험하게 하였다. 신비로서의 교회의 모상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새 백성 :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불리 운, 신앙과 성사 안에 건설된 하느님의 백성이다. 하느님 의 백성은 비밀 단체가 아니라 도래할 하느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며(디다케 9, 4), 하느님이 이런 목적 으로 세계 모든 곳에서 불러모은 공동체이다. 이런 교회 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구약의 여러 약속 들과 예언들의 충만으로 이해되는 데에서 더욱 풍요해진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 교회는 몸,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으로 비유되었다. 이것은 신약성서(바 오로 서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두 가지 모습으로 표현 된다. 하나는 개별 공동체의 모습(로마 ; 1고린)이고, 다 른 하나는 전체 교회의 모습(옥중 서간)으로서이다. 그리 스도의 몸으로 표현된 교회상에는 그리스도 안에 교회 가,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 고 있다. 이러한 상호 내재에 대한 이해는 말씀과 성사, 성령의 부여, 사랑, 특히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성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된 교회의 모상을 통해서 교회 안의 여러 봉사와 기능과 질서가 파악된다. 그리고 어떻게 교회가 일치와 진리, 신앙과 사랑 안에 건 설되었는지가 드러난다. 하느님의 건물, 하느님의 성전 : 여기서 건물과 성전은 경신례를 위한 공간 개념인 건물의 의미를 넘어 신앙인 자신의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말한다. 이는 교회가 인격 개 념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교회는 예배와 성 찬을 위해 모인 인간의 모임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면 어디에서나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성전 이다. 그리스도의 신부(新婦) : 에페소서(5장 특히 22-23절) 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되어 있다. 남편과 아내가 부부로서 일치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교회는 일체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 에 대한 비유는 교훈적인 힘도 가지고 있으며, 교회의 과 제와 의무도 보인다. 신부와 같이 신앙하고 희망하고, 순 명하고, 봉사하고, 찾는 인간들 그리고 신부와 같이 사랑 하는 인간들의 공동체이고자하는 바가제시되어 있다. (거룩한) 죄인들의 교회 : 이런 묘사는 교부들의 교회 론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순결한 창녀(casta meretrix)에 대 한 비유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비유에는 교회란 죄를 벗 어 던져 버린 인간들, 즉 의인들로만 구성된 단체가 아니 라 죄많은 인간들의 교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죄인 한 사람까지도 버리지 않고 끌어안으시는 하느님의 뜻이 담 긴 교회, 외형상으로는 죄인의 모습일지라도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담긴 거룩한 교회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교회를 어머니, 마리아, 하와로 비유하였다. 교부들은 또한 고대 그리스 사상, 철학, 종교의 비유를 들어 교회를 설명하였다. 교회는 '달의 신비 (mysterium lunae)로 비유되었다. 달이 자기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태양(그리스도)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교회가 발하는 빛은 받아서 되비추는 빛이다. 달 이 밤에 비추듯 교회도 어두운 시대, 무명(無名)과 죄악 과 상실의 시대를 비춘다. 태양(그리스도)이 변하지 않는 강력한 빛 가운데 있는 데 반해 달(교회)은 쉴 새 없이 변 하는 모습, 차는가 하면 곧 기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 교 회의 길과 운명과 역사는 달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 어 변화 무쌍하지만 새로움과 쇄신으로 끊임없는 희망을 준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선장으로 한 배로 비유되었다. 배로서의 교회상은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는다" (Fluctuat, non mergitur)는 말로 표현된다. 즉 교회는 변화 무쌍한 변동과 위험 속에서도 결코 파선하지 않고 목적 지에 도달한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교회가 세 상의 홍수 한가운데에서 감싸 주고 구조해 주고 구원을 보장하여 주기 때문이다. 방주의 비유에서 치프리아노 (Cyprianus, 200~258)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Extra ecciesiam nulla salus)고 언명하였다. 교회는 예수가 민중을 가르쳤던 베드로의 배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비유와 우화가 있다. 천국, 비둘기, 하늘, 양 떼, 포도원, 밭, 그물 등. 교부들은 이 모든 상징적 비 유로 교회의 본질을 신비로 파악하고, 교회에 대한 신뢰 와 사랑과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교회 6항). 이상의 비유 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들의 온갖 죄로 인해 얼룩져 버린 교회의 구조 질서가 그대로 천상 질서 의 모사(模寫)라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징표, 상징, 성 사(聖事), 그리고 작용 형태가 보이지 않는 신적 실재의 모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교회에 대한 그리 고 그 구성원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뢰하며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교부들의 교회에 대한 태도였다. 〔콘스탄틴 대제의 관용 칙령 이후의 교회〕 제국주의적 교회 탄생 : 콘스탄틴 대제의 관용 칙령(313)으로 교회 는 박해받던 시대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교회, 합법적인 교회(ecclesia licita)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제국주의 교 회를 형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주교들은 국가의 고위 관 료와 원로의 대열에 끼게 되었고, 교황은 황제의 지위에 도달하게 되었다. 교회의 경계가 세계의 경계가 되었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는 성서의 말을 제국주의 식으로 해석하고, 교회의 외적인 성장(지리상으로 땅 끝까 지 퍼져 나가는 발전)을 강조하며, 황제의 행적과 승리를 성서적 약속의 충만으로, 하느님 나라의 승리로 이해하 였다. 콘스탄틴 이후 초기 교회에 두 가지 문제가 명시적 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교회의 단일성 문제로서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로마 주교(교황)에 중심을 둔 교계 제도 적 권위로 표현되었다. 둘째는 교회의 내적 생활과 더 직 접 관련된 것으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속해야 한 다는 교회의 필요성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수세기 에 걸쳐 생동적으로 다루어져 현대 교회론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취급한다. 중세기에는 속권과 교권 간의 경쟁 관 계와 함께 교계 제도, 특히 교황권에 대한 옹호를 일방적 으로 강조하였고, 교회를 법률적인 용어로 치장하였다. 교계 제도가 점증적으로 세속화하고, 교회의 권력이 정 치적이고 기타 세속적인 일의 이해 관계에 얽혀 빈번하 게 남용되는 등 교회의 명성에 손상을 끼쳤으며,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 교회 권위를 거슬러 발발한 공격과 배척 운동이 반(反)성직 운동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위기는 종교개 혁과 함께 그 절정에 달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함께 교회 본질에 대한 공식 문헌을 집대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공의회 는 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신앙과 교회에 관한 두 개 의 교의 헌장(Dei Filius, Pastor Aeternus)을 발표하고 중단 되었다. <교회 헌장>(1870, DS 1821~1840)에는 교황의 보편적 재치 수위권과 무류권만이 확정되었다. 교회의 중심 권위의 한 측면만이 강조되었고 시대의 징표에 대 해 방어적인 태도만을 취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주 의의 배척과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후마니 제네리스> (Humani Generis, 1950)처럼 비교적 최근의 문헌들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교회와 국가 및 문화의 세속적 현실과의 관계가 비오 9세, 레오 13세의 문헌 특히 회칙 <교회 일 치>(Satis Cognitum, 1896)에 나타났다. 또한 교황 비오 12 세의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 1943)에는 교회의 내적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전체 교회론을 위한 시도가 표현되어 있다. 교회 밖 구원의 가 능성에 대한 논쟁도 활발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론에 특별한 의미를 주는 두 개의 문헌을 발표하였 다. 교회 생활의 여러 측면을 다룬 <교회 헌장>과 현대 세계 안에서의 교회 위치와 사명에 대해 설명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이다. 이들 두 문헌은 일방적인 법 률적 교회 개념과 사회와 역사로부터 그리스도의 신비를 분리시키려는 비현세적 영신화라는 두 극단을 거부하였 다.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 표지이며, 성사로서 드러난다. "볼 수 있는 집단이며 동시에 영적 공동체이고, ··· 인간 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합성된 하나의 복잡한 실체를 구 성한다" (교회 8항). 교회에 대한 위계 질서적 구상이 인격 적 개념으로 인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으며, 직무와 봉사를 연결하여 강조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 회론은 교계 제도적 관점보다는 개별적이고 인격적인 관 점에서 확대되었다. 교회 안에는 하나의 개별 존재인 교 황 외에도 수많은 개별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하느님 백성의 동료로서 그리스도적 봉사의 힘으 로 일치되어 있다. 그리스도적 봉사가 교회 조직과 과제 의 다양성의 뿌리이다. 이런 원리에 입각하여 교회와 교 회 밖 교회의 관계, 교회 밖 인간들의 교회 구성원 자격, 교회 권한의 성사적 원칙, 지역 교회와 전체 교회의 관 계, 사제직 등을 다루고 있다. 공의회는 갈라진 그리스도 신도들의 공동체도 '교회' 라고 불렀다(교회 15항). 또한 교회의 소속성을 가톨릭 교회 밖 공동체의 실제 그리스 도적 봉사에 두어 종교간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 〔교회의 구조〕(직무의 구조) 예수의 의향과 행업을 수 행하는 과제는 실제 상황 및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어 일 정한 형태, 구조, 조직을 필요로 한다. 교계 제도의 가장 중대한 대표자들은 교회의 직무자들이다. 그들의 영적 권위는 그리스도교 자유에 대한 봉사로 파악된다. 이 봉 사는 모든 세례받은 자들의 일반 사제직과 예수 그리스 도의 예언직, 사제직, 그리고 왕직의 참여에서 주어진 영 적 권한의 자유로운 전개로 공동체 건설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교회 공동체의 삶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직무 구조는 주교 직, 사제직, 부제직의 위계 질서적 3층 구조로 표현된다. 이 세 근본 단어는 신약성서에 나타난다 : ① 주교 (επισκοπος=감독) : 사도 20, 18 ; 필립 1, 1 ; 1디모 3, 1 이하 ; 디도 1, 7 ; 1베드 2, 25. ② 사제(πρεσβυτερος =장로) : 사도 11, 30 ; 14, 23 ; 15, 2. 4. 22 이하 ; 16, 4 ; 20, 17 ; 21, 18 ; 1디모 5, 17. 19 ; 디도 1, 5 이하 ; 야고 5, 14 ; 1베드 5, 1. 5 ; 2요한 1장. ③ 부제(διακονος=봉사자) : 필립 1, 1 ; 1디모 3, 8. 12. 초 기 교회에는 이 세 직무 외에 사도, 예언자, 교사, 복음 선포자, 목자들이 있었다(1고린 12, 28). 신약성서의 가장 기본적인 직무는 이 3층 구조 이전에 사도(αποστολος)를 들어야 한다. 사도직은 부활 직후인 초기에는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어쩌면 유니아라는 여인 도 사도에 속했을지 모른다(로마 16, 7). 사도는 베드로의 통솔 아래 "열두 사도" 로 양식화하였다. 그러나 바오로 에 의하면 부활한 주님의 발현을 제시할 수 있으며(1고린 9, 10 ; 15, 3-8), 부활한 주님으로부터 복음 선포의 위임 을 받은 사람이다(로마 10, 15-17). 고린토 전서 15장 38절에는 예루살렘 초기 공동체의 지도 신분이 잘 나타나 있지만 아직 직무 - 교계 제도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이 러한 내용은 갈라디아서 2장 9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이 "기둥" 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게파를 주축으로 하는 유대-사도와 바오로를 주 축으로 하는 이방인-사도는 근본적으로 "선교적" 성격 을 가진다는 것이 강조된다. 즉 복음 선포와 공동체 건설 의 수행이 강조되고 있다. 바오로 서간에서는 필립비인 들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만 주교가 나온다(필립 1, 1). 바오로의 편지에 교회 주교들과 봉사자들이라고 복수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아직 군주적 주교직을 생각하고 있 지 않았으며, 따라서 사도행전의 의미에서 말하는 장로 (사제) 제도와 필립비서의 의미에서 말하는 감독(주교) 제도 사이에는 구조적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도들 이 죽고, 기대했던 임박의 순간이 지연되고, 공동체 안팎 으로 많은 이단들이 생기면서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발생 하자 주교가 사도의 대리자가 되었고 드디어는 지금 우 리가 볼 수 있는 주교 - 사제 - 부제(봉사자)의 수직적 3층 구조가 생기게 되었다. 이 구조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 오의 편지와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 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스미르 나(Smyrna)에 보낸 서간문 8장에서 처음으로 "가톨릭" (καθολυκος=καθα+ολος) 교회라는 표현을("예수 그리스 도가 있는 곳에 가톨릭 교회도 있다" ) 쓰면서 주교와 사제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관계 안에서 다루었다. 이 냐시오는 이단 분열에 대해 권고하면서 오직 주교와 주 교로부터 위임받은 자가 거행하는 성찬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공동체가 있기" 때문 이다(이냐시오, <스미르나> 8, 1 이하). 이렇게 해서 점차적 으로 주교가 지역 교회의 우두머리, 참되고 옳은 신앙 공 동체의 중심이며 표준이 되었다. 이냐시오가 주교/장로 를 성찬과 관련하여 강조했지만, 이 '직무' 를 아직은 '경 신적 사제 직분' 으로 이해하지 않았고, 장로도 아직은 사제와 일치하여 보지 않았다. 중세부터 직무를 받은 자 들의 과제는 경신례와 성사 집행으로 좁혀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장로(πρεσβύτερος) =사제(presbyter)' 가 눈에 띄 기 시작했다. 피렌체 공의회(1439~1442)에서는 사제 직 무가 산 이나 죽은 이를 위해 제사드리는 권한으로 기록 되었고(DS 1326),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여기에 다 풀고 맺는 권한을 첨부했다. 〔교회의 주요 직능〕 예언직, 사제직, 왕직 : "나는 길 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요한 14, 6)라는 그리스도의 말 씀에 따라 교회의 직능을 인간이 나아갈 길을 인도하는 사목적(왕적) 기능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적(교도적) 기 능과 생명을 가꾸는 사제적 기능으로 3분한다. ① 예언 직 : 그리스도는 진리이다. 그리스도가 진리를 위해 파 견된 것처럼 교회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 되었다(마태 28, 28 ; 교회 25항). 진리를 선포하는 임무를 예언직이라 하고 교도권(magisterium)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된다. 예언직에는 주교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모두 참여한다(교회 12항). ② 사제직 : 예수는 생명이다. 생명은 자기 헌신을 통해 얻 어진다. 생명을 십자가 위에서 봉헌한 예수는 사제이다. 교회는 예수의 이 사제직에 참여한다. 사제직에는 모든 신도들에게 공통된 일반 사제직과 직무자들에게만 해당 하는 직위적 사제직이 있다. 이 둘은 "정도의 차이뿐 아 니라 물질적 차이로 구분된다고는 하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각기 특수한 모양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 직에 참여한다"(교회 10항). 직분상의 사제들은 백성을 모으고 성체성사를 집전함으로써 사제직에 참여하고, 모 든 믿는 이들의 일반 사제직 봉사는 각 개인의 그리스도 적 삶과 성사적 삶 안에서 성취된다(교회 10항). ③ 왕직 : 예수는 길이다. 또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이며 양 떼에 이르는 길, 목자, 문이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 목하는 사목권을 자기 제자들에게 주었다(요한 21, 15-17 ; 마태 16-19). 사목직에는 사목적 통치권도 포함되어 있 다. 모든 신도들이 왕직에 참여한다. 예언직, 사제직, 왕 직은 전체 교회와 각 개인에게 유효하다. 직무적 교회는 이 직능으로부터 이해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 면 모든 직능은 봉사이며, 모든 봉사는 자발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한 직능이다. 봉사 안에 직무와 봉사가 일치하 고 있다고 보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의 본질이다. Ⅲ . 신학적 주제들 〔구원의 신비와 구원의 성사로서의 교회〕 신비에 대한 사고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계시 안에서 인류에게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증언하면서 인류를 당신 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것을 직접 알리신 행위에 기인한다. 이 신비는 강생의 사건을 포함하고 있으며, 강 생은 말씀의 선포와 성사를 통해서 교회 안에 계속되고 완성된다(에페 2, 13 ; 5, 25 ; 골로 1, 2 이하). 구원의 성 사인 교회의 개념은 삼위 일체적 관점에서 궁극적 의미 를 얻게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를테면 성사, 즉 하느님과의 내면적 일치와 인류의 일치를 위한 표징 과 수단이다"(교회 1항). 또한 예수의 부활과 성령을 교회 의 제정을 강조한 관점에서 본다면 : "그리스도께서는 땅에서 높이 들려 올라가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당신께 로 이끌어 주셨고(요한 12, 32), ,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 하심으로써(로마 6, 9) 생명을 주시고 당신 성령을 제자 들에게 부어 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당신 몸인 교회를 구 원의 보편적 성사로 세우셨다.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 면서도 이 세상에서 활동하심으로써 사람들을 교회로 인 도해 들이시며 그들을 당신과 밀접히 결합시키신다 ··· " (교회 48항 ; 선교 2, 5항 ; 사목 45항). 교회는 "그리스도교 성사들의 포괄적인 장소" 또는 "성사들의 성사" 로서 예 수 그리스도의 성사이다. 세상에 "주의 신비를 드러내도 록(교회 8항) 부름을 받은 교회는 전세계를 위한 말씀이 며 표징이다(교회 17항). 교회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신비 를 성령 안에서 선포하면서 현재화하도록 부름받았으므 로 가시적이며, 사회적인 구조는 성령 안에서의 예수 그 리스도의 작용의 징표이자 수단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 회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전통적 교리를 요약 하며 선포한다(교회 7항).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회칙 <교 회 일치>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서 포괄적으로 표현되 었다. 바오로는 이 개념을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를 중재로 하여 신앙인의 공동체를 구성한 몸으 로 이해하였다(골로 1, 24).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세례로 증거된 신앙의 공동체를 통하여 설립된 교회가 신앙인들을 부활한 주님의 몸과 일치시키는 성체성사의 빵의 공동체에서 지속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의 빵 을 나누어 먹는 하느님의 경신례 모임이며, 이 나누어진 빵이 모여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교회는 주님 의 몸으로부터(마르 14, 58) 하나가 된다. 구약의 교회 개 념이 "야훼의 백성" 개념으로 쓰였던 데 반해, 신약의 교 회는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성전을 통해서만 "하느님 백성"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살고 성체성 사를 거행하는 데에서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하 느님 백성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자기 자신의 가 시성을 이 세상 안에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사의 가시성, 즉 표징과 말씀의 가시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 님 식탁 공동체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교회의 일치 원리 는 신앙(세례)이고, 교회의 실존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준 헌신 행위처럼(성체성사) 자신을 헌신하는 가운데(아가 페, 순교) 보여진다. 교회의 종말론적 실재는 자기 몸의 주인이며 성령 안에서 전체 몸의 유기적 일치의 삶의 원 칙인 그리스도 안에 정돈될 때 파악된다. 그리스도의 몸 으로 표현된 교회의 모상을 통해서 교회 안의 여러 봉사 와 기능 · 질서가 파악되고, 어떻게 교회가 일치와 진 리 · 신앙과 사랑 안에 건설되었는지가 드러난다.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교회〕 '백성' 개념은 구약성서 에서는 이스라엘의 국가적이며 종교적 일치(출애 6, 6b) 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는 계약을, 신약성서에서는 교회의 종말론적 의식을 중재하고 있다. 이 개념은 신약 의 교회와 구약의 백성과의 연속성을 나타낸다. 또한 교 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파악되는 공동체, 끊임없이 하느 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실재, 제도와 구조 이상의 인격 체(하느님도 백성도 모두 인격 개념이다)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의 신학은 원칙적으로 그리스도 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창조로 인하여 자유의 백성이 된다. "이 백성의 신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자유이며, 성신이 그들의 마음을 성전 삼아 그 안에 거처하신다"(교회 9항). 하느님 백성은 요컨대 자유의 성령 안에서 종말론적 희망의 증 인으로서 살고 있다(2고린 3, 17). 하느님 백성 개념은 한 동안 교계 제도를 성직자와 비교하여 평신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함께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신도들을 의미하는 교회 개념으로 새롭게 이해되었다. 이로 인하여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정의 내리면서 "우리가 교회다"라는 정 식이 성립되었고, 교회의 모습을 그 전체성에서, 인격적 이고 인간적인 모습에서 찾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 로부터의 교회론' 에 제동을 걸고 평신도로 하여금 그들 각자가 교회임을 의식케 해주는 '아래로부터의 교회론' 을 가능케 하였다. 〔부분 교회와 전체 교회〕 이스라엘이 구약의 '하느님 의 교회' 를 처음부터 부분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으로 이 해하였던 것처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 느님의 교회' 도 보편적이며 동시에 지역적인 것으로 이 해된다. 이런 부분과 전체의 변증법은 교회의 본질에 속 한 것이기에 지역에 있는 교회(공동체, 모임)는 보편적 교 회의 한 부분, 한 대표가 아니며, 또 보편적 교회는 지역 공동체의 합계에서 비로소 형성된 것(연합으로서 보편적 교회)이 아니다(교회 13, 23항). 개별 지역 교회인 가정 교 회도(로마 16, 5. 14 이하 ; 1고린 16, 19 ; 사도 1, 13 ; 2, 46) 그 자체로 그리고 완전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교회(1 데살 1, 1 ; 1고린 1, 2)이며 초지역적 공동체의 의미를 지 니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나타난 주교 형제단 (collegialitas episcoporum)은 지역 교회가 전체 교회임을 말해 준다. (→ 가톨릭 교회 ; 교회론 ; 교회의 특징 ; 그 리스도교) ※ 참고문헌  J. Schmid · Y. Congar ·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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