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

宗敎敎育

〔영〕religious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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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종교 교육은 토라를 암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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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종교 교육은 토라를 암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느님의 계시에 응답할 수 있는 인간 형성을 목표로 하느님의 형상인 인간이 완성되는 총체적인 과정.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믿고 따르는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되도록 돕는 교육. 나아가 종교 교육은 헌신과 증거의 삶으로 내적 영적 자유에 도달하게 하며, 성인(聖人)의 생활을 지향하도록 하는 단계적 교육 과정을 의미한다.
〔기 원〕 초기 이스라엘의 종교 교육 : 가톨릭 종교 교육의 원형은 초기 이스라엘의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의 성전이 불타고 바빌론 유배를 떠날 때까지 행해졌던 교육을 의미하는데, 이 시기를 '히브리 교육기' 라고도 일컫는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을 정복한 후 점차 번영을 누리면서 왕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이 왕국은 곧 남북의 두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북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남 이스라엘은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되어 유배기를 맞았다. 이처럼 급격히 변화하는 대외적 환경 속에서 교육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육이 중요했던 이유는 교육이 민족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 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 시기의 교육은 삶과 종교가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어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하는 종교 교육이었다. 이 시기에 행해졌던 교육의 주된 내용은 종교적 의식, 성서, 그들의 문화와 사상, 이스라엘 땅에 대한 강한 애착이었다. 형식적인 학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가정에서 '하느님 백성' 으로 살아가는 삶을 가르치는 신앙 교육이 행해졌다. 이와 같이 당시에는 가정이 중요한 교육 수행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교육을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배우고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모든 삶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다. 이스라엘 민족은 배움을 매우 중요시하여 배움, 그 자체를 예배의 한 형식으로 여겼고, 배움에 있어서 중요한 문헌은 히브리 성서와 탈무드(후기 이스라엘 포함)였다. 이 시기에 교사들은 부모, 예언자, 제사장, 현인, 시인들이었다.
구약성서에는 백성들에게 교사라 불리던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던 '훈계' , '가르침' , '지도' 등과 같은 교육 전용 용어가 언급된다. '토라' (תּוֹרָה)하라는 히브리어는 '지시하다' , '보여 주다' 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야라'(יָרָה)에서 파생되어 '방향을 세우다' , '가르치다' 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교훈과 가르침은 구약에서 하느님이나 인간에 대한 삶의 바른 도리 또는 행동 규범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런 까닭에 '토라' 라는 용어는 '교훈' 과 '율법' 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이후 이스라엘 종교 교육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즉 '토라'는 인간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 가르침이었다. 여기에서 하느님 백성에게 가르치는 직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드러난다. 즉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일정한 전달 형태로 가르친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러한 가르침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계약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여기에서 종교 교육이 성립되었다.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은 '셔마' (), 즉 "이스라엘아, 들어라! ···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도록 하여라. ···이 말을 너의 자녀에게 거듭 들려 주고 일러 주어라" (신명 6, 4-9)는 구절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교육 과정에서 성서는 교육적 의미가 가득찬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처음에는 율법서(토라), 다음에는
예언서와 성문서, 그리고 현인들의 가르침이 구전되어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결국 탈무드(Talmud) 형태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초기 이스라엘의 교육은 율법에 따른 종교 의식은 물론이고 하느님을 경외하라는 예언 자체가 종교 교육이었으며, 이러한 종교 교육의 기원은 분명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후기 이스라엘의 종교 교육 : 이 시기는 '유대주의 교육 시대' 라고도 하며, 기원전 587년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유배부터 로마 지배 시대(기원전 63~서기 70)까지를 의미한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가 되거나 혹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이로 인해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이러한 고난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신앙에 대한 새로운 열정과 민족의 결속을 가져왔다. 이 시기의 종교 교육은 특별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토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토라는 세상의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또한 그것은 교육의 중심 내용이었다. 따라서 교육에 있어서 가장 명백한 현상은 종교적이었다는 것이고, 삶과 문화는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이 시대 교육의 두드러진 특징은 회당과 학교를 통해 교육이 실시된 점이다. 회당은 기도하는 장소이자 종교 교육의 가르침과 집회를 겸하는 장소였다. 회당에서는 성서 낭독 및 해석을 하였는데, 이러한 교육은 오늘날 종교 교육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에 대한 꿈은 점점 그들의 종교 보존에 대한 열정과 일치하게 되었고, 국가의 종교가 존속하는 한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종교가 존속된다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 종교의 존속을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가 바로 교육이었다. 그래서 교육적 열정은 마침내 교육의 조직화와 제도화로 나타남으로써 새로운 양상의 교육적 특징이 등장하였다. 그것을 요약하자면 첫째 삶의 영역 전체를 지도하는 법전(제사법전)이 완성되었다. 둘째, 제사 법전이 국가 차원에서 채택됨으로써 율법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백성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셋째, 율법서와 함께 잠언, 집회서 등의 방대한 성문서들이 교과서가 되었다. 넷째, 회당의 출현으로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교육의 장(場)이 마련되었고, 초 · 중 · 고등 교육 제도가 생겼다. 다섯째, 교육 전문가인 지혜자 또는 현자, 소페림(soferim, 서기관 : 문자로 성서를 배운 사람) 집단이 등장했다. 현자들은 본래 교사들이었고, 마치 아버지가 자녀들을 교육하듯이 그 제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다(집회 30, 3 ; 잠언 3, 21 ; 4, 1-17. 20이하). 교사들은 점차적으로 율법과 예언서들의 내용을 흡수하였고 전통적 교육 내용을 토대로 참다운 지혜와 지식, 그리고 야훼에 대한 경외심을 전달했다. 즉 교사들은 "배움의 집"(집회 51, 23)에서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의 길을 제시하는 기본 교육을 실시했다(집회 51, 25-26).
후기 이스라엘의 교육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 교육 제도가 나타났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 최초의 학교에 관한 문헌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편이 상거래를 할 때 아내의 지참금을 활용하여야 한다. 둘째, 어린이들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 (Palestinian Talmud, Kethuboth VIII,8,Gemara).
학교와 관련된 법령도 쉐타크(Shetach)에 의해 마련되었다. 그는 바리사이파로 하스모네 왕조 알렉산더 안내우스(103~76)의 처남이었고, 후에 산헤드린(Sanhedn)으로 불리는 장로들의 모임인 게루시아(γερουσία)의 의장이 되었다. 그의 학교 법령은 기원전 75년경에 반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한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이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가르침을 받게 할 것이지만, 아버지가 없을 때 그는 그곳에서 배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 마을마다 교사들이 임명되어야 하고···각 지역과 마을마다 청소년의 교사들이 임명되어야 하고, 그리고 어린이들이 여섯 살 혹은 일곱 살 때에 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 (Baba Bathra 21a). 또한 63~65년까지 대제사장을 지낸 가말라도 64년 '각 마을과 도시에' 고등학교 제도를 규정하는 유명한 법령을 제정하였다.
당시 초등학교는 '책의 집' (Beth Hassepher)이라 불렸는데, 주로 토라를 반복해서 암기하는 것을 하였다. 먼저 모세 오경을 공부하고, 이를 마친 후에는 예언서와 성문서들을 공부했다. 학교의 교육은 교과를 정확하게 학습해야 하므로 암기에 중점을 두었고, 장소는 주로 회당을 이용하였다. 초등학교 교육의 목적은 율법을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성인이 되었을 때 율법을 책임지고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중등 교육에 해당되는 곳은 초등 교육을 마친 청소년들이 가는 곳이었으며, 이곳을 '주석의 집' (Beth Hammidrash)이라고 불렀다. 이학교는 10~15세 정도의 나이에 다니게 되므로 초등 교육보다는 더욱 고전적이었고, 미쉬나(Mishnah) 혹은 구전 토라의 연구와 해석이 목적이었다. '주석의 집' 이 일률적인 교육 시설로 제공되었던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져있지 않다.
서기 70년 산헤드린이 폐기되자 사두가이파의 대제사장들에게 남아 있었던 최고 권위가 토라의 교사들인 바리사이파에게 주어졌다. 예루살렘의 멸망 후 살아남은 저명한 학자들은 야브네(Jabneh,Jamnia)에 정착하여 산헤드린을 이끌어 갈 특별한 후계자를 양성하였다. 그 특성에 맞는 명칭은 없었으나, 일반적으로 '학교' 혹은 '아카데미' 라고 불리었다. 그곳은 박식한 학자들이 고등 연구에 전념하며 유능한 사람을 가르쳤던 대학과 같은 성격을 지닌 곳이었으며, 여기에서 랍비들이 고등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율법을 해석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 해석이 유대인들의 양심을 구속하였기 때문에 최고 법정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연구와 교육, 그리고 법률적인 판례들은 궁극적으로는 토라를 다루는 것이었다. 이상처럼 이스라엘의 교육은 삶과 문화가 하느님에 의해서, 하느님에게로,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으로써, 그 기원은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 교육이었음을 뚜렷이 나타낸다.
〔원 리〕 종교 교육은 다른 교육과 달리 특별한 원리를 갖고 있다. 즉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만, 종교 교육은 인간만이 아니라 창조주인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는 두 가지 실재를 모두 포함하는 원리이다. 이러한 원리는 하느님의 계시와 성서,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 등을 원칙으로 삼아 전개되어야 한다.
개념 : 화이트해드(R. Whitehead)가 "교육의 정수(精髓)는 종교적인 것이다" 라고 했듯이, 종교와 교육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종교 교육은 무엇보다 종교의 진리를 가르쳐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교육의 주체는 하느님이고, 종교교육의 대상은 인간이며, 종교 교육의 교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이어야 한다. 종교 교육의 개념은 종교적 인간 교육에 사용되는 내용, 과정, 방법 등에 대한 학문적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에 있으므로 종교 교육은첫째, 하느님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진다. 둘째, 종교 교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에 의한 인간 변화의 과정을 돕는 것이다. 종교 교육은 인격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루는 것이며, 이는 인간 완성에 도달하는 길을 신학적 · 철학적 · 심리학적 · 사회학적인 모든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응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셋째, 종교 교육의 핵심은 신앙 교육을 의미하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과정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즉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넷째, 종교 교육은 교회라는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게 하며, 동시에 증거자의 역할을 하게 하는 데 있다. 다섯째, 종교 교육은 인간의 내면 생활에 중점을 두며 내적 · 영적 자유에 도달하는 성인(聖人)을 지향한다.
목적 : 종교 교육은 교육 과정을 통하여 한 인간으로 완성시키는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충만하도록 완숙시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열망에 대해 더 정밀한 고찰을 함으로써 그 진의가 선명하게 표출되게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열망의 더 깊고도 본질적인 형태는 내적 · 영적(정신적) 자유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다. 바오로는 인간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으로 되는 것이며, 또한 신성한 영으로 활동하는 자들은 자유의 완성으로 된다고 하였다.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인 Maritain, 1882~1973)은 종교 교육의 목적은 각 인간이 획득해야 할 내적 · 영적 자유의 정복인데,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지식과 지혜와 선의와 사랑을 통한 인간의 해방에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 교육은 인간의 내면 생활에 중점을 두며, 지성과 의지가 영혼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서 진리와 사랑으로 나감으로써 내적 · 영적 자유에 도달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것이며 정의와 평화, 완성과 온전함, 일치와 행복, 충만과 풍성, 기쁨과 승리, 인간 고통의 종식 등을 도모하는 데 있다. 종교는 하느님께 합당한 존경을 드리도록 하는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있으므로 하느님이 그 목적이다. 따라서 종교 교육의 목적은 하느님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 형성에 있으며, 이는 곧 성숙한 신앙인의 형성에 있다. 이에 대해 성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일치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완숙한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랑으로 참되이 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분을 향하여 온전히 자라나야 합니다"(에페 4, 13-15)라고 하였다.
성숙한 신앙인 : 종교 교육에서 신앙 교육은 핵심이고 그 중심이다. 신앙 교육은 신앙인이 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그 신앙인은 하느님을 궁극적인 대상으로 삼는다. 성서에서 '신앙' 이란 단어는 '아만' (אָמַן)과 '바타흐' (בָּטַח)란 히브리어로 표현되었다. '아만' 은 '확신하다 · 지지하다' 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며,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는 것을 의미 한다. '바타흐'' 는 '신뢰하다' 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오직 야훼만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따라 살며, 하느님의 권능에 자신의 길과 문제를 의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들은 성실한 상대자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라는 의미이고, 보이지 않는 실재를 말과 표징만으로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언어가 사고의 표출 방법이듯이 외적 신앙 고백은 신앙 방법이면서 신앙의 행위이다. 그런데 신앙을 갖도록 하는 분은 하느님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믿을 진리를 계시하며, 인간 안에 있는 사고의 동의를 통해 신앙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동의는 의지에서 나오며, 이것은 인간 실존의 한계를 넘어서서 그 실존의 궁극적 조건과 대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대면과 받아들임의 과정에 대한 균형 잡힌 신앙을 위해서는 인간 성숙의 과정을 도외시할 수 없다.
종교 교육은 성숙한 신앙인 또는 그리스도인 완성에 이르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성실한 동의와 응답을 기본 바탕으로 한 인간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Gravissimum Educatuinis)에서 인간 성숙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완전한 인간, 그리스도의 충만성에 도달하도록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성숙한 신앙은 인간적으로 성숙된 이에게 더욱 풍요로워지며, 이와 같은 인간 성숙은 그리스도인이 완성에 이르는 데 갖추어야 할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종교 교육은 한 인간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성숙한 인간성의 교육까지 포함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숙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간이 은총의 효력을 더 풍부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헌장>(Lumen Gentium)에서는 신앙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거룩함〔聖性〕, 사랑의 완성, 그리스도인 생활의 충만성 등으로 표현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성숙 혹은 완성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그 모습을 닮아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 봉사를 위해 부여된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계발 · 사용함으로써 은총 중에 성령의 결실인 거룩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반면에 정신적 결함이나 왜곡된 성격이 있을 때 인간은 은총에 대한 응답과 표현에서 한계를 갖는다. 정신 요법 전문가들은 자아나 타인에 대한 개념 혹은 인격 구조 안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게서 간혹 정신 질환적으로 변형된 하느님 상(像)을 보게 된다고 지적한다. 신경 및 성격
의 미성숙은 인간 활동의 각 분야에 문제점을 가져오는데 종교 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정신 계통의 미성숙자는 다양한 변태적 종교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참된 믿음이나 진정한 애덕도 없고 기쁨도 희망도 없이 종교 생활 실천에 형식적 노예가 된다. 정신이 건강할 때 종교심이 정상화될 수 있으며,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아 발달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아를 초월할 수 없으며, 그 개인이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자아는 낮은 정도의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만 유리한 일을 하므로 결국 자기 숭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복지까지 향상시킬 수 있어 자기 완성과 자기 초월의 양자를 통합시키는 특성이 있다.
방법 : 종교 교육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교육적 절차를 밟는 것이 종교 교육의 방법이다. 이것에 대한 필연적 조건으로 '신앙의 교육 방법' 이 있다(<현대의 교리 교육> 58항). 신앙 교육의 원천이며 모범인 하느님의 교육 방법은 구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이 세상에 가져다 주었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한 인류의 구원과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한 신앙 교육 방법을 제자들에게 전수해 주었다(〈교리 교육 총지침> 139~140항). 신앙은 하느님 말씀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응답으로써의 기도가 성립된다. 이러한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깨닫게 하며 종교 교육의 방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적인 요소이다.
만일 신앙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잘못이다. 신앙이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다고 한다면 모든 실재가 다 하느님 은혜의 선물인 이상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하느님 은혜의 선물을 가르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하느님 은총의 선물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며, 또한 우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물음이 종교 교육에서 다루어질 중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종교 교육의 역할은 하느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방식을 가르치는 일이고, 하느님의 은혜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다루는 것이 종교 교육의 학습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 교육의 방법은 학습의 과정을 동원해야 하며, 이 학습은 지적인 깨달음이나 통찰력이 증대되는 과정으로써 어떤 사람이 결정하고, 평가하고, 결정하는데 있어서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
종교 교육의 원리는 교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을 교화(敎化)시키고, 신앙 생활을 실천하게 하는 데 있다. 학습은 무엇을 단순하게 알게 되는 그 이상의 것이다. 학습은 인간의 생활 방식에서 뜻깊은 사건이며 진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행동의 변화가 진정으로 일어났을 때 진정한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처트(R.Richer)에 의하면, 인간은 출발 점(동기 유발), 중대한 체험, 성찰, 동화의 과정을 통해 행동의 변화를 겪게 된다고 하였다.
출발점은 한 사람이 지닌 현재의 가치 체계, 그의 의식적인 행동 양식, 그가 결정하는 데 있어서 사용하는 원칙들이다. 이러한 원칙들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그의 심리적 자세나 인간적인 성숙도, 문화적인 환경, 가정 환경 등이므로 학습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은 복잡하다. 교육 방법이 학생의 욕구에 부합될 때 학습의 실현 가능성은 크다. 그러므로 종교 교육을 위해서 필수적으 로 학생의 출발점에 관하여 가능한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학습 목표에 도달하는 참된 통찰력을 터득할 수 있다. 교사가 학생들의 출발점을 이해했다면 중대한 체험을 하게 되는 단계에 이른다. 만일 학생이 진실로 배우려 한다면 그의 출발점 및 현재의 안정된 상태에서 중대한 체험을 겪게 된다. 어떤 체험이 어느 정도로 중대한가에 따라서 학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체험은 중대한 의미를 가지며 현재의 생활 양식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방향을 의식적으로 모색하는 계기가 된다. 학습 과정의 핵심 부분으로서의 중대한 체험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를 깨닫도록 하는 사건들의 배합이다. 여기에서 응답하는 학습을 유발시켜 성찰과 결심을 촉구하게한다. 예를 들면 학생들의 출발점에서 교사는 전례 모임, 만남의 자리, 피정, 서적, 영화, 여행, 봉사 활동, 일상 생활 등을 통하여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찰은 중대한 체험과 마찬가지로 장시간에 걸치거나 혹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인간은 중대한 체험에 비추어 현재의 자신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신을 재평가하는 작업을 통하여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이때의 재평가는 성찰이라는 학습 과정의 결과로서 결심을 하도록 이끄는데, 항 상 자유 의지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성찰은 매우 개인적이고 내적인 행위이며 고독의 차원과도 관련된다. 미리 결심을 하고서 하는 체험은 무엇이나 실체적인 체험이 아니라 조정일 뿐이며, 그러한 경우 그 사람은 배운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응답하기 위하여 훈련을 쌓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습 과정에서 조건이라는 개념은 배제되어야 한다. 진정한 학습 과정은 구속하고 있는 갖가지 형태의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동화는 자기가 성찰한 대로 살아가겠다는 진실성에 이르는 순간이다. 예를 들면 피정에서 중대한 체험을 한 후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피정의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결심한다. 이 새로운 통찰들을 현실의 생활 양식에 통합시키고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고 시도한다. 여기에서 '시도' 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시도는 학습을 실제로 적용하는 일로서 철저하게 시험해 보는' 단계이다. 체험을 근거로 해서 철저하게 실행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당분간 의혹과 주저, 혼동 속에서 고통스럽지만 동화되어 간다. 이 동화는 어쩌면 일생의 과업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성서에서 보면,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의심하고 망설였으나 이러한 모습 역시 일반적으로 동화의 한 과정이며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에 의하면 "학교에서 교육의 임무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소명은 승고하며 중대하다." 그리고 "올바르게 교육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이 협력하도록 그리스도 신자에게 권고하는 바이다" 라고 밝히며, 가톨릭계 학교는 물론 비가톨릭 학교에서도 영적 도움을 주는 교육자의 사명을 아주 중대하게 제시했다. 나아가 교사는 하나의 학과를 가르침으로써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인격을 완전히 성숙시키는 것이 임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심리학, 교육학, 교수학의 진보를 이용하여 학생들이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촉구했다. 또한 교회는 교사들이 교육 방법론과 학문 연구에 있어서 훌륭한 성과를 보여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은 그리스도교적 교육의 다른 수단, 예컨대 전례의 이해와 참가, 성서를 읽는 것, 종교 활동과 더불어 종교 교육에서 신앙을 가르치는 수업은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결부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며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봉사하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가톨릭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의 과제를 요약하면, 학생의 양심 배양,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의 만남, 인생의 문제들, 특히 10대 청소년의 문제 해결, 쓸데없는 다툼을 초래할 논점을 피하는 것, 종교 교육을 담당할 열심하고 유능한 교사의 양성 등이다.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대학은 학문 연구에서 뛰어나야 하며, 세계 각지에 가톨릭계 대학을 설립하여 학생들이 영적 · 지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연구 활동에 우수성을 발휘한 학생들에
게 특별하게 배려하여 교직에 종사하도록 촉진하고 양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생의 신앙이란 어느 한 순간에 생겨서 완성되는 것이기보다는 인간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가진 씨앗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어난 후한 인간의 정신은 성장하고 발달하면서 성숙한 신앙으로 발달해 가는데, 이러한 학생의 신앙을 돕기 위해서는 훌륭한 교사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교사는 하느님에 의한 은총의 계시를 향해 학생이 응답해 가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하느님에 의한 은총의 계시를 향해 학생이 어떻게 하면 성숙하게 응답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학생의 발달 과정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더 깊은 신앙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의 대학 및 모든 학교의 임무는 그리스도교적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학교 내에 자유와 사랑의 복음적 정신이 충만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은 매우 중요하고, 비록 어려운 문제가 사방에 많이 있지만, 교회의 구원 사명을 위한 커다란 기회이다. 그러므로 종교 교육 및 교육 방법의 연구와 교사 양성을 통해 종교 교육 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은 학생들의 전인 교육과 신앙 교육을 병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사립 학교 종교 교육 ; →교리 교육 ; 교육 사상)
※ 참고문헌  E. Schurer,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in the time of Jesus Christ, Edinburgh, Megillah, 1885/ E. Sukenik, Ancient Synagogues in Palestine and Greece, London, 1935/ J.B. Collins, Religious formation, 《NCE》 12, pp. 279~283/ L.J. Sherril, The rise ofchristian education,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63/ N. Thompson, Religious education and theology, New York, Religious Education Press, 1982/ R. Reichert, A learning processfor religious education, Dayton, Pflaum Publishing, 1975/ R. Zavalloni, Le strutture umane della vita spirituale, Brescia, Morcelliana, 1973/ R. Zavalloni, La libertà personale, Milano, Pubblicazione della Università Cattolica Milano, 1973/ X. Lon-Dufour, Vocabulaire de théologie bibligue, Paris, Les éditions du Cerf, 1977(김영환 외 역 , 《聖書神學辭典》,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1984)/ Dal Sasso-Coggi, 이재룡 외 역, 《성 토마스의 신학 대전 요약》,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3/ 박재만,<인간 성숙과 그리스도인 성숙>,《사목》 116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8/ 최영희, <현대 교육의 오류>, 《신 학과 사상》17호,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一, <가톨릭의 가정 종교 교육>, 《종교 교육학 연구》 10, 한국 종교교육학회 2000. 〔崔榮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