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다종교 상황 혹은 그러한 종교 상황을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범적 태도.
〔등장 배경〕 196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 신학계와 종교학계를 중심으로 종교 다원주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종교 다원주의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첫째는, 종교사 및 비교 종교학의 발달이다. 근대에 이루어진 지리상의 발견과 제국주의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해외 선교 활동은 비서구 문화권의 종교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서구 사회에 소개하였다. 이러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 정리 · 분류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종교사와 비교 종교학은 서구 지성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여러 종교 중의 하나로 바라볼 수 있는 종교 다원주의적 사고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둘째는, 그리스도교의 선교 활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재고이다. 특히 19세기 후반 절정에 달한 그리스도교의 팽창주의적 선교 활동은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피식민지 국가들의 정치적 독립과 더불어 그리스도교는 비난과 공격의 주요 대상이 되었으며, 각 지역의 전통 종교가 민족주의의 발판이 되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힌두교 · 불교 · 이슬람 · 유교와 같은 오래된 종교 전통들이 온존하는 문화권에서는 기존의 정복주의적 선교 방식이 더이상 설득력을 지닐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서구 사회에서의 그리스도교 선교 활동은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이러한 선교의 한계 및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선교 신학적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종교 다원주의이다. 셋째는, 지구촌화 현상의 출현이다. 교통 및 통신의 급격한 발달로 국가 간 교역이 증대하면서 문화 교류도 급속히 증대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서구 출신 이민자들의 급격한 증대는 서구 사회를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만들었다. 이러한 문화적 다원 상황은 종교 영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오늘날 서구인들은 길거리에서 무슬림 · 불교도 · 힌두교도 그리고 새로 탄생한 신종교인들을
만나는 것이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종교적 다원 상황의 출현은 종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에 대한 정체성을 새롭게 성찰하도록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종교 다원주의가 중요한 논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와 종교인들에게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종교는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종교 다원주의는 최근의 산물이며, 이와 대립하는 '배타주의' (exclusivism)와 '포용주의' (inclusivism)가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다.
〔배타주의〕 이는 오직 한 종교, 즉 그리스도교에만 진리가 존재하고 그 종교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들은 참 종교 가 아니라 '거짓 종교 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배타주의를 따르는 그리스도교인들은 타종교의 가치를 부정하고 배척할 뿐만 아니라,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는 것을 참된 신앙의 길로 간주한다. 배타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성서의 구절은 "내 앞에서는 다른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 20, 3)라는 십계명의 제1 계명이다. "이분말고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들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받아야 할 또 다른 이름은 하늘 아래 없습니다" (사도 4, 12), 혹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요한 14, 6)와 같은 신약성 서의 구절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한편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정식은 초대 교회 이래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배타주의적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 준다. 이러한 독점적 진리관 혹은 배타적 구원관은 경전에 대한 태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배타주의자들은 성서만이 유일하고 참된 계시에 근거한 경전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다른 종교의 경전들은 인간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지만, 성서는 절대적이고 오류가 없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간주된다. 이들의 성서 해석에는 성서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문자 주의적 태도가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진리관 · 구원관 · 성서관을 지닌 배타주의자들은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하며,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매우 철저한 헌신과 충성의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열정도 매우 강하고 교회의 확장에 주력한다. 18~19세기 그리스도교의 해외 선교 운동과 그 놀라운 팽창은 이러한 선교적 열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교적 열정은 다른 종교 집단이나 다른 문화와 충돌하거나 갈등을 일으킬 여지를 많이 지니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배타주의는 교회 안팎에서 강력한 비판과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아직도 그리스도교 안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포용주의〕 이는 타종교를 전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제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타종교에 대해 포용적인 입장이다. 이러한 태도에서는 타종교가 거짓 종교나 무가치한 종교로 간주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종교들도 나름대로의 진리 체험이나 구원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포용주의는 타종교들에 대한 관용을 미덕으로 삼는다. 이처럼 포용주의는 타종교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최종적 진리의 소유자라는 입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타종교들은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진리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포용주의는 타종교와 자기 종교의 가치를 완전히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일정한 위계를 설정한다. 요컨대 그리스도교가 타종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
으며, 그리스도교를 통해서만 타종교들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이러한 포용주의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현대 가톨릭 교회와 진보적 프로테스탄트 진영이다. 구체적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나온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 1965. 10. 28)과 '세계 교회 협의회' (WCC) 대화국에서 펴낸 <살아 있는 종교와 이념에 귀의한 사람들과의 대화 지침서>(1975)가 포용주의의 출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의 실질적 기초자인 신학자 라너(K. Rahner, 1904~1984)에 의하면, 타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 경우에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빛 아래에 있다. 따라서 그들은 고백적인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익명의 그리스도인' (anonymous christian)으로서 구원을 받는다. "가톨릭 교회는 비그리스도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 양식과 행동의 방식뿐 아니라 그 규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또 끊임없이 선포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요한 14, 6)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은 풍요로운 종교 생활을 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당신과 화해시키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혜와 사랑으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언하는 한편,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 도덕적 자산과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 모든 자녀에게 권고한다"(비그리스도교 2항).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큉(H. Küng, 1928~ )도 두 가지 구원의 길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공적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특별한 길' (extraordinary way)이고, 다른 하나는 사적 계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반적 길' (ordinary way)이다. 이처럼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포용주의는 타종교들을 구원의 도상에서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되, 최종적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온전한 계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세계 교회 협의회가 취하고 있는 교회 일치 노선은 '하느님의 선교' (Missio Dei)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신학적 노선은 선교의 주체를 좁은 의미의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에게 두고 있다. 따라서 아직 선교사가 파
견되지 않았거나 교회가 설립되지 않은 지역의 종교들 속에서도 하느님은 이미 구원의 역사(役事)를 나름의 방식으로 행하여 왔다고 본다. 이러한 선교 신학적 태도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 · 적대적 태도를 버리고,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 프로테스탄트 선교 신학에서도 최종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전하게 완성된다는 '성취 신학' (fulfillment theology)의 입장이 깔려 있다.
〔다원주의〕 이는 모든 종교의 가치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종교 다원주의는 타종교의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배타주의나 타종교의 진리를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포용주의를 모두 거부하고, 타종교들을 그리스도교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종교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다원주의가 있는데, 하나는 모든 종교의 공통 기반을 강조하는 '보편주의적 다원주 의' 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 간의 차이에 주목하는 '상대주의적 다원주의' 이다.
보편주의적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의 궁극적 동일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의 외양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모든 길이 정상에서 만나듯이, 다양한 종교들이 추구하는 진리도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난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종교는 하나의 궁극적 실재를 역사적 · 문화적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반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보편주의적 다원주의 시각은 물자체(物自體)와 현상계(現象界)를 구별하는 칸트적 인식론에 기초하고 있다. 칸트(I.Kant, 1724~1804)에 의하면, 물자체는 우리의 인식 범위 밖에 위치한다. 우리는 단지 현상계를 통하여 사물의 한 측면을 불완전하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종교의 세계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는 물자체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는 궁극적 실재 자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으며, 어떤 종교도 궁극적 실재 자체를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다. 각 종교들은 궁극적 실재의 한 측면을 부분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각 종교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상호 대화를 통해 궁극적 진리에 대한 인식을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은 천문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에 비유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N. Copermicus, 1473~1543)가 천동설을 거부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는 전통적 세계관을 붕괴시켰듯이, 이러한 시각은 그리스도교를 모든 종교의 정점에 놓는 그리스도교 중심주의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러한 시각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수많은 위성을 거느린 태양이 아니라 태양의 주위를 도는 여러 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한편 상대주의적 다원주의는 병행주의(paralleisim) 혹은 평행주의라고도 한다. 모든 종교는 하나의 궁극적 진리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평행선을 그리면서 나아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본래부터 여럿이기 때문에 각 종교의 길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종교들 사이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모든 종교의 동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별 종교의 독특성이 약화되고, 각 종교의 정체성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행주의는 종교들 사이의 동일성보다는 차이를 강조한다. 차이의 소멸이 아니라 차이의 보존을 통해 종교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문화 상대주의' 의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문화 상대주의에 의하면, 각 문화는 다른
문화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언어마다 고유한 문법 체계를 지니고 있고 운동 경기마다 각기 고유한 게임 규칙을 가지고 있듯이, 각 문화는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때 특정한 문법 체계나 게임 규칙의 관점에서 다른 언어나 운동 경기를 평가할 수 없듯이, 특정 문화의 관점에서 다른 문화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주의적 인식론에 서있는 병행주의는 특정 종교의 관점에서 다른 종교를 공격하는 배타주의나 타종교의 가치를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포용주의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궁극적 동일성을 주장하는 보편주의도 거부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병행주의는 타종교에 대해 전적으로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상호 간의 대화와 협력을 지향한다.
〔한국 교회의 논쟁〕 한국 사회에서는 1990년대에 소수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종교 다원주의 신학이 소개되었다. 이 종교 다원주의 신학은 전통적 의미의 복음 전파보다는 종교 간의 대화를 중시하였다. 따라서 복음 전파와 교회 확장을 지상 과제로 삼는 보수 근본주의 신학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특히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 지도자들은 종교 다원주의 신학이 서구 교회의 쇠퇴를 가져온 장본인이라고 간주하면서 종교 다원주의의 교회 침투를 적극적으로 막으려고 노력하였다. 1992년 한국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 두 명에 대한 교수직 및 목사직 파면 조치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와는 달리 한국 프로테스탄트 내에서 소수파에 해당하는 진보주의 진영은 종교 다원주의 논쟁에 직접 휘말리지 않았다. 세계 교회 협의회의 교회 일치 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진보주의 진영은 타종교에 대해 포용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를 동일 평면에 놓는 급진적인 종교 다원주의를 수용하지도 않지만, 타종교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배타주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타종교와의 교리 논쟁보다는 종교 간 협력과 연대에 근거한 사회 변혁 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가톨릭의 경우에도 종교 다원주의 논쟁에 뛰어들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적 노선을 따라 타종교에 대해 포용주의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궁극적 우월성을 견지하면서도 교리 논쟁보다는 타종교와의 대화 및 협력 운동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종교 다원주의는 일부 신학자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종교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는 특성을 보여 주었다. 종교간의 갈등 해소와 평화에 관심이 많은 종교학자들은 종교 다원주의에서 해법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학자들 중에는 종교 다원주의 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종교 현상' 으로 진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1990년대 한국 종교학은 한국 사회의 갈등 해소와 사회 통합의 한방편으로 종교 다원주의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의 의] 각 종교의 구체적 기원과 역사적으로 축적된 전통을 무시하고 모든 종교들의 공통성 · 상수(常數) · 등가 가치를 찾아내어 선험적 · 추상적 종교 통일 이념을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교학과 종교 철학의 관점에서는 모든 종교들의 공통성을 당연히 추구할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 신앙과 신학의 관점에서는 예수라는 구체적 기원과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축적 전통 안에서 보편 적 구원의 가능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종교 다원주의가 다분히 지적 유희라면, 그리스도 신앙과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연을 맺고 사는 실존적 투신이다. 그리스도인이 보기에 예수는 분명히 한 개성이지만, 아울러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한 분이기 때문에 '보편적 개성' (Universel Concret)이다. 종교들 간의 이해와 화해를 이룩하는 길은 각 종교의 고유한 기원과 축적 전통에 대해 역사 비평과 해석학적 성찰을 깊이 하여 각 종교 안에 들어 있는 상수와 변수, 특히 신앙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 다원주의 ; → 교회와 타종교 ; 종교 간대화)
※ 참고문헌 H. Coward, Pluralism : Challenge to World Religions, New York, Orbis Books, 1985(한국종교연구회 역,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서광사, 1990)/ P.F. Knitter, No Other Name? : A Critical Survey ofChristicam Attitudes the World Religions, Orbis Books, Maryknoll, New York, 1985(변선환 역,《오직 예수 이 름으로만?》, 한국신학연구소, 1986/ J. Hick · P.F. Knitter eds., The Myth of Christian Uniqueness : Towarda Pluralistic Theology or Religion, New York, Orbis Books, 1994. [李進龜〕
종교 다원주의
宗教多元主義
〔라〕 Religio Pluralismus · 〔영〕Religious Plur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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