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철학적 견해와 모든 윤리적 학설을 비롯한 모든 종교적 가르침은 모두 동등한 가치가 있고 진리라고 하는 견해. 특정 종교나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것을 부정하고, 어떤 종교를 믿든 다 가치가 있고 동일하게 구원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정의와 특성〕 종교적 무관심은 자신이 신의 존재, 또는 종교의 필요성을 믿고 안 믿는 것과는 관계 없이 여러가지 이유로 종교 생활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 무관심주의는 국가나 사회에서 말하는 종교의 자유와는 다르다. 종교의 자유란 법 앞에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전제 아래, 현대 사회나 국가에서 통상적으로 적용하는 정치적 종교 평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국가가 종교적 진리나 종교 교리의 진위 여부 등, 신앙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판단하지 않는 것과 종교 간 진위 논쟁 등에 간섭하지 않고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 무관심주의는 종교적 관용과도 다르다. 종교적 관용이란 타종교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 종교가 거짓으로 드러났을 경우에도 그것이 사회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교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종교적 무관심주의는 종교적 실천이나 신에 대한 숭배 등에 있어서, 그것이 특정 종교만을 대상으로 할 필요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신의 존재와 종교의 필요성, 인간의 종교적 의무 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한 종교, 이를테면 그리스도교만을 믿어야 한다든가, 아니면 그중에서도 가톨릭만을 참 종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 등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간은 종교적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종교를 믿더라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구 분〕 종교적 무관심주의는 세 가지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신은 존재하지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절대적 주재자는 아니기 때문에 믿고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절대적 무관심주의' , 종교의 필요성이나 신을 숭배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반드시 특정 종교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어떤 종교나 신을 믿어도 된다는 '개방적 무관심주의' , 그리고 특정 종교나 신을 인정하지만 그
안에서는 어떤 교파나 종파를 믿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제한적 무관심주의' 가 있다.
절대적 무관심주의 : 이는 범신론이나 유물론, 그리고 불가지론자들에게 해당된다. 범신론은 모든 만물에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다는 것으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절대적 인격체로서의 신성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유물론은 범신론과 비슷하지만, 구별해서 말하면 신조차도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가지론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 무관심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신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듯이 절대적 흠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종교적 수행이나 종교는 인간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무익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종교적 관심, 신에 대한 관심, 인류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 있음을 놓치고 있다. 즉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지니지 못한 여러 가지 특성들 가운데 하나인 종교를 가진 종교적 동물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개방적 무관심주의 : 이는 일단 종교의 필요성, 신의 존재 등을 인정한다는 면에서 첫 번째 입장과 구별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종교들은 각기 다양한 의례, 다양한 교리 체계, 다양한 윤리와 철학 등을 지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즉 가는 길은 다르지만 최종 도착지는 같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어떤 종교적 지식 또는 진리가 정말 확실한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이 이론은 오늘날 널리 퍼져 있다. 이 이론이 힘을 얻는 또 하나의 상황은 세계가 종교 다원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는 하나의 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가 뒤섞여 있다. 또한 지구촌이라는 말이 보여 주듯 굳이 해외를 나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사는 곳에서 세계 곳곳의 문화나 종교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특정 종교의 가르침만 진리이고, 다른 종교들의 가르침은 모두 거짓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 결국 종교 간의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 인도의 힌두교 신비가인 라마크리시나(Ramakrishna, 1834/1836~1886)도 이러한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스스로 힌두교의 여러 신들과 예수 그리고 알라신을 체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가 내린 결론은,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하느님이나 이슬람의 알라 그리고 힌두교의 여러 신들은 하나의 신을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신을 믿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조금만 비교해 보면 그 오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다양한 종교들의 가르침이 모두 진리라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그 가르침들이 모두 오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각 종교들의 가르침이 서로 다른 것은 물론, 어떤 것은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주장에 따르면 힌두교의 신인 비슈누(Vishnu)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동일한 신이다. 그러나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비슈누 신은 태초에 탄생한 신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르침 가운데 어느 하나가 맞거나 아니면 둘 다 잘못된 것이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모두가 진리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뱀을 숭배하는 종교와 그리스도교가 동일한 종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두 종교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니면 뱀을 숭배하는 종교에서도 살인하지 말하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두 종교 사이에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 궁극적으로는 차이점이 더 크다.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와 신은 오로지 한 분 뿐이라고 하는 그리스도교를 같은 종교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러한 오류들로 인해 개방적 무관심주의의 주장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제한적 무관심주의 : 이 입장은 특정 전통의 종교, 예로 그리스도교를 든다면,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특성, 유일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가지 것들을 공유하고만 있다면 어떤 교파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른다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진리이며 다른 종교들보다 참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고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것이 어느 교회나 교파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교나 다른 종교들도 그렇지만 그리스도교에도 다양한 교파나 교회들이 있다. 가톨릭이 있고, 동방 교회가 있으며, 영국 성공회, 그리고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전통들이 있다. 프로테스탄트가 이처럼 수많은 교파들로 나누어지게 된 요인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성서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 개혁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고 그 권위 를 성서로 대체시켰다. 이후 성서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사적 판단에 의해 해석된 성서가 이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많은 교파, 교회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성서를 자의로 해석하는 운동이 유행하였던 것은 이성주의적 조류의 영향 때문이었다. 이성주의자들에 따르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간의 이성을 통한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진리를 파악할 때도 예외가 아니다. 성서를 해석하는 것도 인간의 이성을 통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적인 계시를 통해 신이 인간에게 진리를 가르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성적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이 인간에게 가르친 종교적 진리는 다른 진리들처럼 인간의 순수한 이성으로는 도달하기 어렵다. 비록 그것이 타고난 이성의 능력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성만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확하게 확신할 수 없다. 이것은 다른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모든 종교적 가르침은 인간의 이성만으로 그 진위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불교나 힌두교의 세계관인 윤회의 경우, 누구든지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물론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아주 독특한 경우이다. 대부분의 불교나 힌두교 신자는 전생에 자신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있지 않다. 따라서 인간 이성만으로 종교적 진리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일정한 큰 틀에서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성서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누구나 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며 구원될 수 있다는 생각은, 성서에 명확하게 규정된 신조는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구원에 유익하다는 견해로 이어져 널리 퍼졌다. 이러한 주장들은 종교적 계시도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 인간 이성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성서의 내용도 사적인 판단에 의해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영향 및 평가〕 종교적 무관심주의가 극단에 이르면 무신론에 이른다. 무신론은 종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들 수 있으며, 서구의 인본주의적 무신론도 이에 해당된다. 이들에게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나 신에 대한 의례는 쓸모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비종교적 무관심주의' 로 따로 부를 수도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는 인간이 종교 문제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종교 자유 1, 2항). 그 증거로 인간은 언제나 적어도 어렴풋이나마 자기 생명과 자기 활동과 자기 죽음의 뜻을 알려고 갈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죽음을 초월하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이때 그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 주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다른 어느 것도 이것을 대신할 수 없다.
이러한 종교의 역할을 부정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끊임없이 현실 세계를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다양한 문화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특히 현대인은 스포츠에 열광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에 황홀함을 느낀다. 또한 영화나 연극을 보고 그 안에 몰입하여 일상에서 벗어나며, 그것은 첨단을 걷는 컴퓨터 게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목숨을 연명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활동만으로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러한 문화 생활을 보다 높게 승화시킨 것이 종교이며, 보다 일상화시킨 것이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세에서의 영생 추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현세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도 종교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 범신론 ; 유물론 ; 종교 : 종교 다원주의 ; 종교 체험 ; 종교학)
※ 참고문헌 T.F. Mcmahon, 《NCE》 7, 2003, pp. 421~422/ JJ. Fox, Religious Indifferentism, The Catholic Encyclopedia, Robert Appleton Company, New York, 2003/ N. Molinski, 《SM》 3, pp. 120~12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라틴어 대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尹龍福〕
종교적 무관심주의
宗敎的無關心主義
〔라〕Indifferentismus · 〔영〕Religious Indifferen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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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