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라고 여겨진 현상을 신학 이외의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 종교 현상을 객관적 ·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특정 종교가 아닌 종교 일반의 본질을 밝히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학문.
〔성 격〕 종교학은 종교 현상에 존재하는 보편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 쉽다. 종교가 심리, 사회, 경제, 정치, 예술의 영역과는 구분되는 독자적 영역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종교학이 등장할 때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또한 종교학이 신학과는 다르다는 의미는 종교를 연구할 때 특정 종교의 호교론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종교를 인간적 현상으로 파악하려 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과 같은 일신론적 종교의 신학, 그리고 불교나 유교, 도교처럼 유일신을 내세우지 않는 종교의 교학 및 경학 모두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면, 신학은 신자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학은 교조의 카리스마나 경전, 혹은 종교 집단의 권위를 전제하면서, 우선적으로 신자의 신앙심을 심화시키기 위해 행해진다. 반면 종 교학은 특정 종교 집단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지 않으며, 종교를 인간적 현상 가운데 하나로 파악한다. 종교학이 객관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신학이 특정 종교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종교학은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사회 일반의 관점에 있으려고 한다. 또한 종교학은 다른 근대적 학문과 마찬가지로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신학의 출발이 초월적인 것, 혹은 신적인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데 있는 반면, 종교학은 초월적인 것과 신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다. 인간의 다양한 종교적 반응을 특정 종교의 관점에서 벗어나 서술하고, 서술된 내용을 서로 비교하여 결국에는 종교를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 종교학이 추구하는 바이다.
〔역 사〕 종교학의 성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네 가지의 역사적 요인을 든다면, 첫째 지리상의 '발견' 으로 인한 비유럽 자료의 대규모 유입, 둘째 종교 개혁과 뒤이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 셋째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정착과 세속적 합리성의 주도권 확보, 넷째 낭만주의와 역사주의에 의한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보완 등이 있다. 1492년 콜럼버스(C.Columbus, 1451~1506)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그동안의 그리스도교적이며 서구 중심적인 관점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처음에 유럽인들은 자신들에게 낯익은 관점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자연과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메리카의 새로움에 압도되면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아메리카라는 타자성' (他者性)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입장 대신 비유럽적 세계를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제기되었으며, 점차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 중심의 일신론적 관점으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보는 태도 역시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교와 일신론적 종교를 넘어서서 보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타자의 문화를 파악해 보려는 관점이
서서히 나타났다.
16세기 초 가톨릭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나타난 종교개혁은 유럽 사회 전체를 혼란에 휩싸이게 하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17세기 중엽이 갈등은 종식되었지만, 그로 인한 참혹한 양상은 이후 유럽 사상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신앙에 대한 태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즉 신분이나 거주지, 소속 집단 등의 외적인 표지에 의해 신앙이 좌우되 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고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신앙은 인간의 여러 가지 외적 차이성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신앙심은 인간 본성의 속성으로 간주되었으며, 불변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띠는 것으로 인정받으면서 보편적인 종교 범주가 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종교적 신앙심을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으로 보려는 태도는 계몽주의적 세계관이 득세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핵심은 인간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강조와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의한 합리적 세계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종교 역시 인간 이성의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초자연적 계시를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의 입장과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이전의 특권적인 위치를 잃고, 스스로를 여러 종교 중의 하나로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 이전에는 비유럽적인 타자를 주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규정하였지만, 이제는 자연 법칙에 대한 지식 유무로 타자성을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종교를 자연 법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 연 종교 (natural religion)라는 개념으로 종교의 기본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한 시도도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기득권은 여전히 강력하였으므로 자연 종교의 개념이 그리스도교에 적용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바로 '계시 종교 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자연종교라는 개념은 계시 종교의 영역 밖에만 적용되었으나, 종교학의 성립에 필수적인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계몽주의적 관점은 대체로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자연 질서의 법칙을 파헤치려는 인간의 노력에 종교는 방해만 되는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미신은 계몽주의적 합리성에 반대되는 영역으로서, 종교와 미신의 구별은 애매모호하였다. 종교와 과학의 대결이라는 것은 이런 관점이 고착화한 것이다. 하지만 계몽주의의 경직성에 반발하여 등장한 낭만주의는 종교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계몽주의가 지적인 합리성을 강조한 데 비해, 낭만주의는 그 폐해를 지적하면서 인간의 정서적 측면이 지닌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정복을 주장하는 계몽주의에 반해, 낭만주의는 자연과의 친화성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경향은 종교를 폐기 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본 계몽주의와는 달리, 종교가 인간 소외 극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한편 역사주의는 모든 현상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계몽주의적 관점이 지니는 정태성을 넘어서려고 노력하였다. 계몽주의적 합리성은 보편성과 불변성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변화의 측면에 소홀하였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진화론은 역사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였다. 그리고 역사주의의 영향으로 종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가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전개 과정〕 진화론적 입장 : 19세기 중엽 이후, 종교는 신자의 입장이 아닌 이른바 객관적인 방식으로 파악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것은 종교를 특정 신앙 집단의 독단적인 관점이 아니라, 인간 전체에 속하는 현상으로 간주하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종교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이다. 우선 이런 태도는 진화론의 영향으로 종교의 기원을 묻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화론적 관점은 동질적이고 연속적인 시간을 상정하면서, 종교가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보다 복잡한 형태로 전개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는 복잡한 형태를 취하게 되지만, 초기에 지니고 있었던 종교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종교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은 종교의 핵심을 파악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종교의 기원을 보여 주는 선사 시대의 종교는 원시 부족의 종교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고 보고, 원시 종교에 몰두하였다. 종교 발달이 원시 종교와 같은 '하등' 형태에서 그리스도교와 같은 '고등'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원시 종교에 나타나는 종교의 본질은 '고등'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원시 종교 연구는 암암리에 당시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그리스도교 세력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였다.
타일러(E.B. Tylor, 1832~1917)는 진화론적 종교 연구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종교를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 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믿음이 생긴 까닭은 살아 있는 몸과 죽은 시신의 차이, 꿈과 탈혼 상태에서 보는 환영(幻影)을 설명하기 위해 육신에서 벗어난 '아니마' (anima)를 상정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타일러는 이를 '어린애' 와 같은 사고 방식이라고 주장하여, 원시인과 어린이를 동일시하였다. 하지만 애니미즘은 원시인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을 일관되게 설명하려는 합리적인 노력의 산물로서 간주되었다. 전제는 잘못되었으나 사고의 절차는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인격적인 '아니마' 와는 달리, 비인격적인 '아니마
트 와 '마나' 등에 근거한 설명을 종교의 기원으로 보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그 다음은 다신론, 그리고 일신론으로 종교의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최고신' 이나 '지고존재' 가 인류의 시초부터 존재했다가 점차 퇴보하였다는 관점도 제기되었다. 19세기 말 영국을 중심으로 한 진화론적 종교 연구는 대부분 주지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관점에 입각해 있었기 때문에, 종교를 개 인의 잘못된 지적인 설명 방식으로 여겼다. 이렇게 세상을 지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서의 종교 관점은 보다 세련된 형태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최근의 주지주의적 종교 이론에서는 종교가 오류라는 점을 주장하지 않는다.
사회 기능적 입장 : 당대의 지배적 연구 경향과는 달리, 뒤르켐(E. Durkheim, 1858~1917)은 종교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그도 역시 원시 사회를 통해 종교의 기원을 탐구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연구 관심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집단과 그 유지 방법에 있었다. 그는 종교적 믿음과 행위가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종교적 신앙의 핵심은 사회적인 차원이며, 집단의 결속 및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것이었다. 뒤르켐은 종교의 기원이 토테미즘(toemism)에 있다고 보면서, 원시 집단의 숭배 대상인 토템은 사회 집단 그 자체를 상징화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토템 숭배는 결국 집단 자체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셈이었다. 특히 그는 집단적으로 행하는 종교적 의례 및 의례 중에 만들어지는 집합적 감정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뒤르켐은 종교의 진위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생명력을 지닌 종교라면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통합을 위해 기능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뒤르켐은 개인보다는 사회, 지적인 측면보다는 정서적 측면, 그리고 진위보다는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두고 종교를 연구하도록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종교가 사회 통합의 기제(機制, mechanism)라는 뒤르켐의 관점은 후에 종교의 복합성을 너무 단순하게 취급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는 종교를 무의식의 관점에서 설명한 프로이트(S. Freud, 1856~1939)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이트는 태초에 있었던 친부 살해의 죄의식을 제거하기 위한 금기(禁忌)에서 인류의 문화가 생겨났으며, 종교도 그로부터 연
유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프로이트의 설명은 종교를 개인의 무의식 차원에서 파악한다는 점에서 뒤르켐의 관점과 전혀 다르다. 그러나 프로이트 역시 뒤르켐처럼 종교의 복합성과 독자성을 제대로 못 보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종교가 하는 일을 탐구하는 뒤르켐의 관점은 이후의 종교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제 종교는 오류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종교의 주요 기능은 집단을 결속시키는 사회 통합 기능으로 여겨졌다. 이런 관점은 광범위한 식민지 경영에 골몰하던 영국인들에게 설득력을 얻어, 영국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말리노프스키(B.
Malinowski, 1884~1942)는 종교가 개인의 불안을 해소시킨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인의 생물학적 욕구 충족에 초점을 맞춘 반면, 래드클리프 브라운(A.R. Radcliffe Brown, 1881~1955)은 종교의 사회적인 기능에 보다 치중하였다. 또한 그는 행위 방식을 찾아내고자 애썼으며, 이것의 연결 방식을 구조라고 불렀다. 래드클리프 브라운의 기능주의는 구조-기능주의라고 하며, 1960년대까지 학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현상학적 입장 : 초기의 종교 연구 경향은 진화론적 종교 연구처럼, 종교의 통시적 변화 속에서 단일한 본질을 추구하거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종교의 다양성과 복합성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면서, 종교적 요소들 상호 간의 내적 연관성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처럼 복합적인 내적 연관 관계에 대한 인식을 위해 체계적인 비교와 분류 작업이 필요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를 나타난 그대로 살피려는 태도가 등장하였다. 종교 '현상' 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 영역 속에 나타나는 종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는 태도가 필요하게 된것이다. 종교 현상학은 나타난 그대로의 종교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연구 영역을 관찰할 수 있는 종교 현상에 국한한다. 종교 현상은 주체와 객체가 서로 만나 형성되는 제3의 영역이다. 종교 현상학은 현상의 배후에 있는 존재의 본질, 혹은 물(物)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괄호 치기' 와 '판단 중지' 라는 개념은 이처럼 현상에 초점을 두는 태도를 잘 보여 준다. 이런 관점은 종교 현상을 그 자체로 이해해야지, 다른 현상으로 환원시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 현상의 독자성 주장과 연결된다.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는 종교 현상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종교의 핵심을 '거룩함' 의 경험으로 파악한 오토(R. Otto, 1869~1937)의 뒤를 이어, 종교 현상의 특징을 성스러움의 현현(顯現)으로 간주하고, 성스러움이 드러난 성현(聖顯, hierophany)의 역사가 곧 종교의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聖)과 속(俗)을 인간 경험의 두 가지 기본 양식으로 보고, 성과 속은 서로의 관계 안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성현은 성이 속 가운데에서 드러난 것이다. 엘리아데는 이런 성현의 양식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종교 현상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은 종교학의 고유 영역을 주장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에, 신생 학문인 종교학이 다른 학문과의 경쟁에서 자기 영역을 내세우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종교 현상학은 종교를 사회나 심리 또는 경제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태도를 환원주의라고 비판하면서, 환원 불가능한 종교 나름의 독자성(suigeneris)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은 환원주의 논 쟁을 불러일으켜, 종교 현상학의 학문성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행해졌다. 종교 현상학의 환원주의 비판에 대해, 종교 현상의 복합성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론적 절차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반면 종교의 자율성을 주장한다는 핑계로 근거 없이 불변의 본질을 상정하여 실제로는 종교 연구를 저해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어떤 평가가 올바른가는 종교 현상학이 얼마나 종교 현상의 상호 관계와 형식을 잘 보여 주는가, 그리고 종교 현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의 정당성을 어느만큼 설득력 있게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적 입장 : 종교 연구에 구조주의의 관점이 도입된 것은 레비 스트로스(C. LéviStrass, 1908~1991)의 영향이다. 그는 구조 언어학의 방법을 문화 연구에 적용하여 인간 정신에 내재된 심층 구조를 탐구하였다. 구조 언어학이 언어의 주관적 의미와 내용을 따지지 않고 기호가 언어체계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묻듯이,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방법도 종교의 본질이나 선험적 의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종교의 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망을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조주의 방법은 가시적인 표면이 아니라 불가시적인 심층 구조의 탐구, 통시적이 아니라 공시적인 분석, 그리고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와 인간 문화 전반을 연관시키는 연구 방식을 주장한다.
구조주의적 종교 연구는 인간 주체의 주관적 혹은 상호 주관적인 종교의 의미 탐구에 집중하는 종교 현상학적 관점과 다르고, 종교가 사회적 혹은 생물학적 욕구 충족을 위해 기능한다는 기능주의적 종교 연구와도 차이가있다. 또한 종교적 기호 체계의 공시적 구조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진화론적 종교 연구와도 다르다. 특히 종교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종교 현상학에 대해 구조주의적 종교 연구는 종교와 다른 문화 사이의 긴밀한 상관 관계를 주장함으로써, 종교의 자율성 주장이 야기할 수 있는 자폐(自閉)적인 해독을 비판하였다. 공시적인 보편 구조에 집착하는 구조주의적 관점은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방법은 인간의 뇌 연구 발달에 따라 성행하고 있는 인지주의적 종교 연구에 의해 계승되었다.
〔최근 경향〕 근대 서유럽에서 출발한 종교학은 비(非)서유럽적 타자와의 조우에서 비롯되었고, 타자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앎의 욕구에서 출발하였다. 서유럽적 주체인 '우리' 가 '그들'' 을 지식의 대상으로 해서 성립되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런 지식 획득의 과정은 권력의 불평등 관계를 전제하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런 조건 아래에서 종교학을 포함한 근대적 학문이 등장하였고, 또한 유지되었다. 따라서 다른 근대적 학문과 다르지 않게, 종교학의 기본 관점에도 유럽 중심주의적 편견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편견에는 근대 서구에서 암묵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유대-그리스도교적 관점, 특히 프로테스탄트 중심적인 관점이 스며 있다. 우선 그것은 구비전승보다는 경전을 특권화하는 문자 중심적 편견이며, 개인의 종교적 경험을 부동(不動)의 출발점으로 삼는 태도이다. 그리고 추상적 교리 체계를 중심에 놓고 종교를 보는 관점이며, 자신의 입장을 보편적인 타당성을 지닌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이다.
신(新)식민주의적 종교 연구는 종교학이 암암리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종교학이 서유럽과 비서유럽의 이분법에 근거하여 타자에 대한 '거리 두기' 전략의 일환으로 등장하였음을 밝히고, 종교학의 비교 방법도 이런 맥락에서 제시되었음을 지적한다. 현재 종교를 보는 지배적 입장인 각 개별 전통 위주의 관점도 비서유럽적인 것을 분류하고 질서화하려는 서유럽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학은 반드시 자체 지식 추구의 욕망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등의 특정 종교 전통을 '객관적' 으로 연구할 뿐이라는 차원을 넘어, 종교학은 자신의 지식 추구가 지닌 역사적 · 사회적 맥락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신식민주의적 종교 연구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종교학의 기본 전제가 얼마나 서유럽의 특정 시대에 기인하는지 예리하게 드러내 줌으로써 종교학을 공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하게 한다. 또한 연구자 자신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간과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연구자가 쉽사리 보편적 본질주의나 예외적 민족주의에 함몰되지 않게 한다. 이 관점은 종교 연구자도 자신의 연구 활동이 지닌 정치적 효과를 스스로 의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종교와 여성 문제는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현대 종교학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이다. 남성 중심주의와 가부장제에 도전을 제기하는 페미니즘(feminim)은 19세기 서양에서 출현한 시초부터 종교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성직(聖職)이 여성들에게 서서히 개방되기 시작하였으며, 경전 해석이나 의례 실천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변화는 1960년대에 제2 세대 페미니즘이 출현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고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서양에서는 류터(R.R. Ruether) 같은 여성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유대교 등의 기존 종교들 내부에서 변혁을 추구하는 진영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데일리(M. Daly)처럼 새로운 대안으로 여신(女神)을 내세우며, 기성 종교에서의 탈피를 추구하는 진영이 등장하였다. 또한 동양 종교들과 토착 종교들을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려는 학문적 · 실천적 시도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종교학 진영에도 영향을 끼쳤다. 주요 국제 및 지역 종교학회마다 종교와 여성 분과가 개설되었으며, 세계 각 대학의 종교학과에 관련 교과 과정이 개설되었고, 페미니즘 종교학을 표방한 잡지들이 창간되었다. 특히 그로스(R.M. Gross)나 킹(U. King) 같은 종교학자들은 개별 종교 연구나 비교 종교학에 페미니즘적 시각과 방법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으며, 페미니즘 종교학은 점점 더 많은 남녀 종교학자들이 참여하는 종교학의 핵심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종교학은 서유럽적 기준을 중심으로 서구 종교, 특히 프로테스탄트의 유사성, 일치성, 동일성을 확보하려는 끈질긴 욕망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제 신식민주의와 페미니즘적 종교 연구의 도전을 받으면서 그런 시도의 폭력성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점은 다른 근대적 학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종교학은 근대적 학문의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도전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비교 종교학〕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 그리고 이교(異敎, 혹은 우상 숭배)라고 종교를 구분하면서, 그리스도교 신학 관점에서 다른 종교를 정리해 온 태도가 19세기 중엽 이후 본격적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이외의 다른 종교와 빈번한 접촉이 이루어지고 자료가 축적되면서 그동안의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관점으로 타종교를 파악하는 것이 많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 결과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비서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제기되면서, 그리스도교 일변도가 아니라 보다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타종교를 인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교 종교학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물러(M. Miiller, 1823~1900)의 "하나의 종교만 알면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다" 라는 격언도 이런 분위기에서 생겨났다. 종교 이해는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된 편협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가 수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편적 종교 개념의 정착은 이런 관점의 변화를 촉진하는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종교 간의 비교는 그리스도교도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때 비로소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의 주제였으며, 지금까지도 그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비교 종교의 작업이 엄밀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동어 반복적 노고에 지나지 않거나, 이념적 편견의 고착화에 빠지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진화론적 관점에서 나름대로 여러 종교의 우열(優劣)을 판정하고 순위를 매긴 비교 종교의 작업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를 구분하고 비교 작업을 통해 단지 이를 확인하려고 하거나, 진화론적 작업처럼 우열 순위를 정하는 비교 종교의 작업은 이미 편향된 전제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다. 종교 현상학적 관점은 이와 같은 종교의 진 · 위 판별이나 여타 규범적 전제의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비교 종교의 작업은 그리스도교에 편향된 관점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시각을 얻으려고 애썼다. 이는 보편적인 종교성에서 추출된 기준에 따라 여러 종교를 비교하려는 시도였다.
예컨대 희생 제의, 신화, 기도, 숭배, 영혼, 신비주의 등의 기준은 그런 비교 작업에 사용된 개념이었다. 이러한 기준으로 종교들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성이 편견 없이 확인될 수 있다고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서구 학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과 오리엔탈리즘 비판의 기운이 고조되면서 이와 같은 종교 현상학적 비교 작업도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중심적, 서구 중심적 관점으로 오염' 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종교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여겼던 것이 은밀하게 서구 중심적 시각을 전파하는 통로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 내용이었다. 엘리아데는 이런 비판의 주요 표적이었다.
그동안 보편적 기준이라고 여겼던 것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일반화를 지향하는 비교 종교 작업은 상당 부분 위축되었다. 커다란 비교 작업에 가해지는 비판을 피해 가기 위해 세부적인 측면의 비교에 한정하여 작업을 행하거나, 비교 작업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나타났다. 하지만 인간의 인식 활동을 비롯하여 인간의 의미 있는 사고와 행위 영역에서 비교 작업이 필수 불가결하다 는 관점이 설득력을 얻게 됨에 따라서 비교 종교학에 점차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교 종교 작업의 체계성과 역사적 맥락을 균형 있게 고려하려는 최근의 시도도 새롭게 부각된 그런 관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교 종교학에 대한 관심은 비교 작업 자체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고 있다. 왜 비교 작업을 행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문제 의식 아래 어떻게 비교 를 할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반성이 이루어지느냐에 비교 종교학의 앞날이 달려 있다.
〔한국의 종교학〕 한국에서 종교학이란 용어는 1895년 간행된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의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유길준은 종교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종교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는 의미에서의 종교학은 20세기 초 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암암리에 인정되었다. 하지만 다른 영역과는 달리, 종교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종교는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비판으로부터 면제받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한편으로 종교와 정치가 서로 분리된 영역이라는 이른바 정교 분리의 원리가 서서히 관철되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가 인민 통합에 필수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고 여겨져 종교와의 타협이 요청되었다는 것이다.
일제하 조선 총독부의 촉탁(囑託)을 중심으로 종교학적 자료 수집이 이루어진 것은 주로 민간 신앙과 신(新)종교와 같이 기득권을 지니지 못한 전통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아키바(秋葉), 아카마츠(赤松智城) 등의 일본인 학자들은 조선 총독부의 의뢰를 받고 식민지 통치를 위한 정보 수집을 하였으며, 이능화(李能和, 1869~1945),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무교와 민간 신앙을 비롯하여 민족 문화의 보존을 위해 자료를 체계화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이능화는 한국의 불교사, 그리스도교사, 도교사 서술을 위해 광범위한 자료를 정리해 놓았다. 하지만 일제하의 종교학적 연구는 대부분 민중의 종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식민 통치의 자료 수집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일제 통치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반발로 등장하였다.
해방과 한국 전쟁 후의 한국 사회는 냉전 체제 아래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으며, 철저한 반공 노선을 취하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은 사회 지배층에 깊이 침투하였고,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위세도 강력해졌다. 이런 점은 1970년대 초반까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프로테스탄트 신학 교육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의 국립 대학에서 프로테스탄트 신학 교육이 당연한듯이 행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프로테스탄트의 권력이 강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 시기의 불교와 유교 등 전통 종교에 대한 연구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와 한국 종교학회가 창립되고, 엘리아데를 중심으로 한 유럽 종교학의 관점이 소개되면서 비로소 프로테스탄트 신학의주도권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1975년에는 장병길의 《종교학 개론》이 간행되었고, 다음해에는 엘리아데의 《우주와 역사》가 번역되어 새로운 분위기를 선도하였다. 이런 경향은 1980년대에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강대학교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종교학과가 설치되었고, 1985년에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한국 종교학회가 다시 재개되었다. 이 시기에 종교학계에서는 엘리아데의 문화 비평적인 측면과 스미스(W.C. Smith)의 종교 간 대화의 측면이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 상당히 많은 종교학 서적이 번역되어 있고, 연구서도 계속 간행되고 있으나, 아직 한국 종교학 나름의 특징적인 연구 풍토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개별 종교 전통에 대한 연구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종교학을 하기 위해 불교, 그리스도교 등의 개별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필수적이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다. 개별 종교 연구를 모은 것이 종교학이라면, 종교학의 학문적 정체성은 곧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또한 이런 경직된 태도는 문화적 변동과 더불어 변화하는 종교의 영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1세기 전 종교학은 근대적 격변기에 하나의 새로운 문제 의식으로 등장하였다. 종교학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 정신을 지니지 못하고 상투적인 관점과 기득권에 함몰한다면, 종교학 본래의 개혁적 태도는 죽게 된다. 그렇게 되면 왜 종교학적 관점이 필요한지 답변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학자는 처음부터 반란의 정신을 내면화하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 비교 종교학 ; → 상징, 종교학에서의 ; 종교 ; 종교 다원주의 ; 종교 사회학 ; 종교 심리학 ; 종교 인류학 ; 종교 철학)
※ 참고문헌 정진홍,《종교학 서설》, 전망사, 1980/ 김승혜 편, 《종교학의 이해 : 종교 연구 방법 론을 중심으로》, 분도출판사, 1986/ 정진홍, 《종교 문화의 논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장병길, 《한국종교와 종교학》, 청년사, 2003/ W. James,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s : A Study in Humam Nature, New York : The Modern Library, 1902(김재영 역,《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한길사, 2000)/ R. Otto, Das Heilige, Miinchen, 1917(길희성 역, 《성스러움의 의미》, 분도출판사, 1987)/ 효. Durkheim, The Elementary Forms ofthe Religious Life, London, Allen and Unwin, 1976(노치준 · 민혜숙 역,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 태》, 민영사, 1992)/ Geradus van der Leeuw, Inleiding tot de Phaenomenologie von den Godsdienst, Haarlem, De Erven F. Bohn N.V., 1948(손봉호 . 길희성 역, 《종교 현상학 입문》, 분도출판사, 1995)/ J. Wach, The Comparative Study of Religions, New York, Th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58(김종서 역 , 《비교 종교학》, 민음사, 1988)/ W.C. Smith, The Meaning and End of Religion, 1962(길희성 역,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C. Lévi-Strass, La Pensée Sauvage, Paris, Libraire Plon, 1962(안정남 역, 《야생의 사고》, 한길사, 1996)/ M. Eliade, Cosmos and History : The Myth ofthe Eternal Return, New York, 1954(정진홍 역, 《우주와 역사》, 현대사상사, 1976)/ 一,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 New York, Merdian Books, 1963(이은봉 역 , 《종교 형태론》, 한길사, 1997)/ 一, The Quest : History and Meaning in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fChicago Press, 1969(박규태 역,《종교의 의미 : 물음과 답변》, 서광사, 1990)/ E.E. Sharpe, Comparative Religion : A Histor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75(윤이홈 . 윤원철 역, 《종교학 : 그 연구의 역사》, 도서 출판 한울, 1986)/ N. Smart, Worlaviews : Crosscultuural Explorations of Human Beliefs,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83(김윤성 역, 《종교와 세계관》, 이 학사, 2000)/ W.H. Capps, Religious Studies : The Making ofa Discipline, Minneapolis, Fortress Press(김 종서 외 역 , 《현대 종교학 담론》, 까치글방, 1999)/ F. Whaling eds., Contemporary Approaches to the Study of Religion The Social Sciences, Berlin, Mouton Publishers, 1985(이용범 . 이진구 역, 《현대 종교학과 사회 과학》, 서광사, 1999)/ R.M. Gross, Feminism and Religion : An Introdution, Boston, Beacon Press, 1996(김윤성 . 이유나 역, 《페미니즘과 종교》, 청년사, 1999)/ JZ. Smith, Imagining Religion : From Babylon to Jonestow,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T. Asad, Genealogies of Religion : Discipline and Reasons ofPower in Christianity and Islam, Baltimore & London,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M.C. Taylor ed., Critical Termsfor Religious Studie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W . Braun · R.T. McCutcheon eds., Guide to the Study ofReligion, London & New York, Cassell, 1999/ R.T. McCutcheon ed., The Insider . Outsider Problem in the Study of Religion : A Reader, London & New York, Cassell, 1999. 〔張錫萬〕
종교학
宗敎學
〔라〕Scientia religionis · 〔영〕Science of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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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