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종로구 인의동 169 소재. 1955년 4월 10일 명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한 비안네. 관할 구역은 공평동, 권농동, 낙원동, 돈의동, 묘동, 봉익동, 산림동, 연지동, 예지동, 와룡동, 원남동, 익선동, 인사동, 인의동, 장사동, 종로3 · 4 · 5 · 6가, 주교동, 충신동, 효제동 등 총 22개동. 〔교 세〕 1966년 4,767명, 1973년 3,100명, 1980년 4,739명, 1987년 3,773명, 1995년 2,216명, 2002년 2,146명. 〔역대 신부〕 초대 이계중(李啓重) 요한(1955. 6~1965. 5), 2대 김옥균(金玉均) 바오로(1965. 5~1966. 12) , 3대 유영도(柳榮道) 디오니시오(1967. 1~1971. 5), 4대 백일성(白日星) 도미니코(1971. 5~1976. 5), 5대 남영희(南永喜) 이시돌(1976. 5~1981.9), 6대 장대익(張大翼) 루도비코(1981. 9~1987. 8), 7대 베랑거(O. Berangar, 오영진) 올리비에(1987. 8~1988.2), 8대 김현배(金鉉培) 프란치스코(1988. 2~1990. 8), 9대 송진(宋眞) 발렌티노(1990. 8~1992. 2), 10대 정웅모(鄭雄謨) 에밀리오(1992. 2~1998. 2), 11대 전형의(全亨義) 베드로(1998. 2~2000.9), 12대 구요비(具要備) 욥(2000. 9~2002.2), 13대 최성균(崔聖均) 요한 보스코(2002.2~현재).
서울의 중심 상가 가운데 한 곳으로, 조선 시대부터 상거래의 중심지였던 종로는 명동 본당의 관할 구역이었다. 1944년 6월 12일 당시 서울교구장인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는 이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지역 사목 및 성화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종로구 인의동 169번지 소재의 대지 77평을 매입하였다. 하지만 성당이 건립되지 않은 가운데 한국 전쟁 직후인 1951년 8월 30일 당시 명동 본당 6대 주임인 장금구(莊金龜, 요한 그리소스토모) 신부가 인의동 170-3번지의 19평을 추가로 사들여 성전 건립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5년 봄 종로4가 인의동 165번지에 임시로 새 성전을 건축한 후, 같은 해 4월 10일에 서울교구에서는 종로 지역에 본당 신설을 발표하였다. 당시 본당 명칭은 종로4가 본당이었고, 6월에 초대 주임으로 이계중 신부가 부임하여 전교 활동에 노력하였다. 1956년 11월 본당에 레지오로는 처음으로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이 조직되었고, 1957년 7월에는 미사 전례의 활성화를 위해 복사단이 발족되었으며,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 종로 분원이 설립되었다. 이후 본당에는 성실하신 정녀 쁘레시디움(1960)과 능하신 정녀 쁘레시디움(1961.7)이 창설되었다. 이처럼 인적 조직을 정비하는 가운데 이계중 신부는 기존 대지가 좁아지게 되자 1958년 11월 대지 134평을 새로 매입하였다. 이후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61년 10월 230평의 대지 위에 총건평 182평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2대 주임 김옥균 신부는 1년 반의 짧은 재임 기간을 통해 본당 활동 단체의 주축이 되는 청년회를 결성하고 부인 성가대를 조직하여 전례의 활성화를 기해 나갔다.
3대 주임 유영도 신부는 1967년 1월 본당 사목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유지회라는 회장단을 조직하고 평신도 자문 위원을 새로 선임하였다. 그리고 성당 옆에 있던 낡은 사제관과 수녀원에 대한 본격적인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유 신부는 본당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종교 교육을 위해 1967년 1월에 주일학교를 개설하는 한편 , 같은 해 12월에는 유치원의 설립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67년 12월 본당 차원에서 처음으로 무료 결혼 상담소를 설치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68년 2월과 3월 1, 2차에 걸쳐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신산리 산 5번지의 임야를 매입한 후, 11월 묘지 축성과 묘지 강당 신축을 마쳤으며, 이듬해 2월 3차로 임야를 더 사들여 묘지 허가를 받았다.
4대 주임 백일성 신부는 본당 관할하의 신자수가 점점 증가하자 1972년 1월 동대문 본당을 분리 · 설정시켜 990세대 1,916명의 신자를 새 본당으로 이적시켰다. 분당(分堂)으로 말미암아 본당 단체들을 신설하고 재조직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백 신부는 1975년 9월 본당 전교 활동과 전례 활동의 중심 단체로서 푸른 군단을 창설하고, 1976년 1월에는 부인 성가대를 재발족하였다. 5대 주임 남영희 신부는 부임 직후 우선 기존 단체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1976년 7월 은퇴 사제 후원 활동의 일환으로 백합회를 구성하였다. 본당 공동체가 더욱 활성화되자 성전 대지의 확장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이에 남 신부는 1978년 3월 종로구 인의동 164-1번지 소재 대지 47평을 매입하였고, 1981년 4월에는 인의동 165번지 소재 35평 건물을 매입하여 회의실, 교리실, 강의실, 기도실로 사용하였다.
6대 주임 장대익 신부는 부임 직후부터 가정 방문 실시와 함께 성당 구역 내 신자, 냉담자, 행불자에 대한 교적 정리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본당 내 여러 단체들을 새로이 조직하여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그리고 1984년 2월 사무실과 유치원 건물을 철거하여 사무실은 성당본 건물 안으로, 유치원은 교리실로 옮겼다. 한편 성전 신축을 위해 1984년 3월 기성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신축 작업에 들어갔으며, 1985년 6월에는 원남동 209번지 우체국 뒤 월금장학회 빌딩 5층으로 성전을 임시 이전하였다. 같은 해 11월 신축 성당 기공식을 거행한 후, 1986년 8월에는 본당 성령 기도회의 활성화를 위해서 광탄 나자렛 묘원 안에 성령 기도원을 짓기 시작하여 10월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1987년 5월 공사를 완료하여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베랑거 신부 재임기인 1987년 11월에는 본당 레지오의 각 쁘레시디움이 커짐에 따라 샛별 꾸리아가 발족되었다. 8대 주임 김현배 신부는 부임 직후 사목회를 새로 구성하여 본당의 면모를 새롭게 가꾸어 나갔다. 본당 청년 단체들의 일치와 활성화를 위해서 협의회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한편, 1989년 4월에는 노인 대학을 개교하였다. 또한 1989년 6월 빈천시오회 설립 총회를 개최하였고, 7월에는 27세부터 40세까지의 장년들을 위한 하상 바오로회를 조직하였다. 1990년 2월에는 본당 신앙 홍보지인 <종탑>을 계간지 형식으로 창간시켰다.
9대 주임 송진 신부는 부임 후 먼저 종로 본당 주변의 6개(명동, 세종로, 가회동, 동대문, 신당동, 혜화동) 본당의 관할 구역이 불분명한 것을 파악하고, 1990년부터 각 본당과 함께 관할 구역 정리에 착수하였다. 이에 1991년 교구 방침에 따라 타본당 구역이었던 공평동, 인사동, 권농동, 와룡동(일부)이 종로 본당 관할 구역으로 편입되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종로1, 2가 일부 지역이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10대 주임 정웅모 신부는 그동안 교적 정리 등으로 말미암아 해체되었던 단체들을 부활시켜 나가기 시작하였다. 1992년 11월 어버이 성가대를 재창단시켰고, 1993년 4월에는 노인 대학을 재개교시켰다. 그리고 남성 레지오와 프란치스코 성가대를 재창단시켰다. 또한 1993년 7월 성당 앞의 성모자상을 새로 교체하여 건립하였다.
12대 주임 구요비 신부는 2001년 봄에 성당 묘지 옆의 땅을 농장 겸 자연 학습장 용도로 매입한 후, 같은 해 11월 거기서 재배한 배추로 김장을 담가 종로 일대의 무의탁 노인과 결식 아동 가정에 전달하였다. 그리고 2001년 12월에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소재의 나자렛 공원 묘지에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 처음으로 본당이 운영하는 대단위 '가족 납골묘' 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같은 달에 보다 나은 본당 환경을 만들고자 엘리베이터 설치 및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하였다. 현재 주임인 최성균 신부는 2002년 4월부터 종묘 공원을 찾는 노인들이 성당에 찾아와 이발 서비스, 건강 검진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매주 월요일 성당의 유휴 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천주교 종로 교회,《종로 본당 사십년사》, 1995. 〔白秉根〕
종로 본당
鍾路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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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