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세상의 미래, 절대적 또는 최종적 미래, 곧 인 간과 세상의 궁극적 상태를 연구하는 신학.
I. 정의와 의미
'종말론' 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인 '에스카토스' (ἔσχατος)에서 나온 말로, 그 유래의 원천지는 집회서이다. "모든 언행에서 너의 마지막 때(τὰ ἔσχατα σου)를 생각 하여라. 그러면 결코 죄를 짓지 않으리라" (7, 36). '마지 막 때' (τὰ ἔσχατα)는 실제로 수 세기 동안 사람과 세상 의 마지막 실재들을 뜻하는 사말(四末, novissima quattuor, 죽음 · 심판 · 천당 · 지옥)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종말론이 란 의미의 라틴어 '에스카톨로지아' (Eschatologia)는 마 지막' 을 뜻하는 '에스카토스' 와 '학문 · 연구' 란 의미의 '로지아' (logia)가 합쳐진 용어이다. 이 용어는 최후의 실 재들 그리고 마지막에 구현될 종말 사건들에 대한 교의 를 일컫기 위해 만들어졌다. 결국 종말론은 인간과 세상 의 미래, 절대적 또는 최종적 미래, 곧 인간과 세상의 궁 극적 상태를 다루는 신학이다.
고전 신학은 마지막 실재들을 개인 및 인류 집단 등의 두 차원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개인 종말론은 죽음, 사
심판, 천당, 연옥, 지옥을 다루고, 집단 종말론은 세상의 끝, 그리스도의 재림, 육신의 부활, 최후 심판〔公審判〕을 다룬다. 스콜라 신학에서는 '에스카톨로지아' 라는 용어 대신에 '사말론' (四末論, De novissimis)이라는 표현을 사 용하였다. 이는 종말지사(終末之事)를 의미하며, 사말 신학(四末神學)을 의미한다. 그래서 종래의 종말론에 관 한 교의 신학서는 개인의 운명이나 세계 역사의 마지막 에 오게 될 죽음,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심판, 세계 파 멸, 새로운 창조, 천국, 연옥, 지옥 등의 사건을 중점적 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종말론적이란 용어는 이 세상을 초월하는 그리스도교 계시의 모든 측면을 가 리키는 전체적 용어로 사용된다. 일부 학자들은 그것을 '초자연적' 이란 용어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 서 종말론은 더이상 '사말론' 에서 다루어졌던 주제에 의 존하지 않고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근본 태도와 완성 에 도달하려는 그리스도인의 고군분투를 포함한다. 그래 서 오늘날에는 종말론이 신학의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것으로서 그 위치를 잡아 가고 있다. 사실 주요 교리, 전 례문 등에서 종말론적 성격을 빼면 알맹이 없는 껍데기 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종말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면서 신학 안에서 당당히 그 자리를 잡고 있다.
최종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먼 미래에 이루어질 종 말 혹은 종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역사의 목표로 이미 역사 안에서 역사에 방향을 부여하고 역사를 규정 하는가 하면 그릇된 역사의 정황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 렇기 때문에 최종 미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지금이라도 우리의 구체적인 처지를 위해서 극히 중요하다. 예수의 부활 이후, 역사의 매 순간은 영원의 무게를 가지고 있으 며 인간의 각 행위는 자기 안에 결정적인 목적성과 지향 하는 바의 최종적인 지평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아무리 자신의 본질과 사명을 자세히 반성할지라도 현재 의 상태만 본다면 일면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현 세에서 순례하는 면과 천상에서 완성될 면을 아울러 고 려해야 자기의 참 모습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그 전체가 엄연한 종말론적 실재이다. 따라서 종말론은 현재의 근 본적인 심각성과 극적인 희망을 알려 주는 중요한 삶의 역사 신학이다.
Ⅱ. 성서적 고찰
이스라엘의 종말 사상은 다른 민족들의 종말론적 기대 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면을 갖고 있다. 세상에는 민족과 종교에 따라 다양한 종말 사상들이 존재하는데 그 가운 데는 공통된 요소도 있다. 그 공통된 요소는 자연 안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건들과 사상이 상호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종말 사상들은 온갖 종류의 자연적 대재난 의 유형, 즉 대화재, 대홍수, 대지진 등에 따라서 미래에 있을 세계의 멸망에 관하여 말한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 하는 모든 것은 나이를 먹고, 사라지고, 또다시 태어나는 등 영원히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주기적이고 순환적인 시간 개 념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역사를 구원의 사건에 의해 형 성되는 긴 지평을 확장해 나가는 것으로 보았다. 즉 과거 에 있었던 야훼의 구원적 업적을 현재 안에서 수렴하고, 역사적 전망을 지나간 기원에서 미래의 메시아적 기원으 로 옮기면서 미래를 구원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는 것 이다. 따라서 성서의 종말 진술은 하느님이 최후에 완성 할 실재들에 대한 다양한 선언들로서 인간의 희망에 부 응하는 진술들이다.
〔구약성서〕 구약의 종말 사상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준 약속에서 오는 희망에 의해 그 근간이 형성 된다. 하느님에 의해 완전히 통치되는 미래에 대한 이스 라엘 백성들의 억누를 수 없는 기대는 자신들이 하느님 에게서 선택되었다는 의식에서 나오는데, 이것은 이스라 엘의 초기 문헌에 잘 나타난다.
시대별 고찰 : ① 예언자 이전 시대의 종말 사상 : 성 조 시대에는 후손과 풍요로운 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 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창세 15장). 그러나 약속의 성취 만이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 속에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판관 시기를 거친 다음 초기 왕정
시대에 들어와서 민족적 구원에 대한 희망이 발람의 신 탁(민수 23-24장)과 야곱의 축복(창세 49장) 그리고 모세 의 축복(신명 33장)에서 발견된다. 이들 신탁들은 하느님 의 약속이 다윗과 그 후손에게서 완성된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중적 믿음을 반영한다. 여기서 이미 메시아 에 대한 신앙의 전조들이 나타난다.
야훼 전승 문헌은 선택의 기원을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창세 12, 1-3)에 두었고, 땅의 약속은 '땅의 모든 종족' 을 위하여 하느님이 축복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신비한 운명에 연결지었다. 땅과 축복이라는 두 요소는 이스라엘인들의 선택이라는 의식의 기초를 이루었고, 하 느님의 어떤 명백한 행위에 대한 그들의 기대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② 바빌론 유배 이전의 종말 사상 : 초기 예언자인 아 모스의 종말 사상에서는 저주의 예언이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선택된 백성을 고발, 기소하였다(아모 3, 2).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인접 적대 국가들에 대한 심판 도 선언하지만(아모 1, 3-2, 3) 그보다 훨씬 더 혹독한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해 설파한다(아모 2, 6-16). 그의 저주 선포는 "주님의 날에 관한 위협으로 요약된다. 그 날은 빛이 아니라 어둠일 것이다(아모 5, 18-20). 북왕국 과 그 왕조는 멸망할 것이다(아모 7. 9 ; 9, 8). 전쟁(아모 3, 11 : 5, 3 : 6, 14), 지진(아모 2, 13 ; 6, 11), 떼죽음(아 모 5, 16-17 6, 9-10 8, 3) 등이 이스라엘을 덮칠 것이 다. 그러나 아모스는 약속에 대한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자각하여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불가 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견지하였다(아모 5. 4-6. 14-15 : 9, 11-15). 아모스의 메시지에 나타나 있는 종말 사상들은 예언자적 경험의 특징을 뚜렷이 지니고 있으 나, 마지막 심판, 세상의 종말 내지 세상의 회복 같은 개 념들은 아직 결여되어 있다.
호세아도 이스라엘에 대한 재난을 선포하는 의무를 역 시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의 선택에 대한 이스라엘 의 배반과 우둔함에 내려질 처벌과 회복의 날이 임박하 였다는 것이 그의 신념의 기초이다. 북왕국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이를 데 없는 격렬함을 담고 있다(호세 5, 14 ;10, 14-15 ;13, 7-8). 이스라엘의 죄, 특히 바알(Baal)을 섬긴 죄에 대한 벌로서, 적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 며(호세 5, 8-9 : 10, 14-15), 제사는 중단될 것이고(호세 3, 4 : 9, 4 : 10, 2. 8),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호세 9, 3. 6. 17 ; 11, 15). 호세아의 관심사는 정 치적 상황의 예고나 엄격한 인과응보의 교리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희망 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배은망 덕과 우둔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 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모스의 경우처럼 호세아의 종말 사상도 두 양상을 지니고 있다. 다가올 파괴의 역사적 결 과에 대한 묘사는 가차 없는 비난과 나란히 발견되며(호 세 4, 4-6 ; 13, 12), 회복에 대한 애정 어린 약속(호세 14, 2-9)과 균형을 이룬다. 호세아에게는 세상의 다른 민족
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
북부 왕조의 몰락(이사 2, 5-22)을 보았던 이사야의 다 양한 종말론적 예언들은 역사적 사실과 신적 행위라는 초월적 감각과 혼합되어 있다. 그의 예언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충분히 발전된 개념을 볼 수 있고 (이사 5, 19 ; 14, 24. 26-27 ; 28, 29 : 30, 1), 우주적 면 모를 갖춘 종말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을 계획하고 주재하는 야훼의 권위에 도전하는 오 만과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최후 심판이 내려 질 것임을 이사야는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모든 국제적 사건들, 즉 아시리아의 흥망성쇠(이사 10, 5-12 ; 14, 24- 27) 등을 결정짓는 요소는 다름 아닌 야훼의 손임을 선 언하였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심판을 배경으로 개괄 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다가올 심판의 양면성에 대한 이 사야의 가르침은 그가 이스라엘의 '남은 자' 라는 개념에 부여하였던 큰 영역에서 잘 전형화되고 있다. 이 '남은 자' 개념은 구원에 앞서서 심판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 며, 또한 그 심판의 한계를 결정짓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재앙과 구원을 연결짓는 교량 역할을 하기 때문 이다. 즉 이 용어는 어떤 재앙이 임박하였다는 위협과 하 느님은 당신 약속에 충실하리라는(이사 1, 9) 확신을 모 두 포함하고 있다. 이사야에게는 남은 자의 사상과 더불 어 메시아에 대한 희망도 있다. 그는 다윗 가문과 다가올 어두움에서 빛날 빛을 연관지었다(이사 7, 13-14). 메시 아는 평화와 정의의 왕국을 세울 것이다.
예레미아의 종말 사상은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 다. 그는 북쪽으로부터의 적을 묘사함에 있어 스바니야 와 같은 경험이나 예언적 전통을 끌어내면서(예레 4, 5- 31)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종말론적 심판의 위협을 현실 화한다. 그는 이전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예언되는 재앙 을 단순히 미래에 대한 환상이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체 험한다. 바빌론의 힘의 상승은 파괴의 실제적 위협이 되 어 그의 종말 사상에는 절박감과 역사적 사실주의가 풍 부해진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와 종말론적 심판은 밀접 하게 관련되었으므로 일종의 '실현된 종말론' 이 발전되 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신적 심판이라는 결정 적 사건에 대한 이전의 모든 예언적 가르침을 느부갓네 살에 의한 예루살렘 침략에 적용하였다(예레 11, 15-17 ; 15, 1-4 ; 34, 8-22 ; 37, 3-10). 예레미아도 이사야처럼 이상적인 다윗 왕과 더불어 예루살렘은 다시 재건되어 (예레 33, 4 이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계속되리라고 주장하였다(예레 23, 1-13). 하지만 여기서 메시아에 대 한 희망은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예레 23, 5-6). 오히려 총괄적인 내적 쇄신(예레 24, 7)이 강조되고 있다. 예레미아는 이스라엘의 재수립을 위한 계약의 갱 신은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바꾸는 방식으로(예레 31, 31-34)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신의 통찰을 피력하였다. 예레미아에게는 보편적인 종말론을 거의 찾아 볼 수 없 다. 즉 그의 예언에는 이방 민족들의 최후 파멸이나 그들 을 위한 구원의 희망에 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다.
③ 바빌론 유배 시기와 유배 이후의 종말 사상 : 구약
시대의 종말 사상은 바빌론 유배기와 유배 이후 초기 동 안에 중요한 발전을 이루는데, 에제키엘서나 제2 이사야 서라고 알려진 익명의 작가 글에서 잘 보여진다.
에제키엘의 종말 사상은 예레미아처럼 전적으로 이스 라엘 백성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물론 그도 전통적인 방 법대로 인접 국가들에 대한 예언(에제 25장)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종말 사상은 알지 못한다. 예레미 아와 마찬가지로 그도 예루살렘의 몰락을 예언하였고 목 격하였다. 그의 글에서는 아모스의 가르침 이래 종말론 적 예언의 일부가 되었던 이스라엘의 복구에 관한 것도 찾아 볼 수 있으며, 회복된 백성을 이끌 목자에 대한 언 급(에제 34, 17-24 ; 37, 24-25)도 있다. 그리고 에제키엘 은 개인적인 응보도 많이 강조한다(에제 18, 1-32). 그렇 지만 그는 순수하게 개인적인 종말론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느님 통치의 성취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예 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는 절대적이고 불가피한 심판을 끊임없이 선포하지만(에제 4-24장), 그 다음에는 희망의 메시지로 전환한다(에제 36-37장 : 40-48장). 야훼는 이 스라엘 백성을 유배로부터 고국 땅으로 귀환시킬 것이며 (에제 37, 1-14),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종 다윗에 의한 통치를 받게 할 것이다(에제 34, 23 ; 37, 24). 생명을 주 는 강물이 흘러나올 새 성전은 구원에 대한 묘사를 마무 리짓는다. 에제키엘에게 있어 회복은 내적인 전환(에제 36, 26-27)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백성들 삶의 중심으로 서의 성전(에제 40-46장)이 더 강조된다. 이 성전에서 모 든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는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에제 47, 1-12).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고 순화된 세상의 통치가가 됨으로써(에제 36, 1- 8. 36-38)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마침내 현실(에제 47, 13-23)이 된다.
바빌론 유배 말엽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제2 이사야 서(40-55장)의 저자는 구약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동족의 현 상황과 미래의 전 망을 고찰함으로써 선민을 통해 인류 전체를 포함시키는 웅장한 학문에 이르고 있다. 즉 그는 이스라엘을 선택하 고 구원을 약속한 하느님에게서 출발하여 창조주 하느님 에게까지 소급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과 역 사를 세계 창조와 역사에서 하나의 범례(paradigma)로 소 개한다. 그는 하느님의 계획과 시간 개념을 시작과 끝이 있는 것으로(이사 41, 22-23 ; 43, 13 : 46, 9 등) 바라본 최초의 인물로서, 보편적 구원의 종말론을 보여 준다. 하 느님의 계획에는 모든 나라의 구원이 포함되어 있다. 따 라서 주님의 종의 임무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세계에 전 파하는 것이며, 모든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빛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이사 42, 1-4. 6-7 ; 49, 6). 제 2 이사야서는 회복의 시기를 사람과 세상 양쪽 모두의 새로운 창조로 보았다(이사 41, 17-20 ; 42, 5 ; 43, 1 ; 45, 8 등). 즉 그는 새 창조인 구원의 개념을 사용함으로 써 순수한 종말론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된 이후 종말 사상이 크게 고조된 시기에 활동하였던 하깨와 즈가리아는 계속
해서 예루살렘의 재건을 기대하였고 도유된 통치자, 즉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를 찾았다(하깨 2, 20-23 ; 즈가 6, 9-14). 요엘은 계속하여 '주님의 날' 이라는 용어를 선택 된 백성에 대한 심판(요엘 1-2장)에 적용하면서, 예레미 야와 에제키엘이 말한 정신적 갱신과 뭇 민족들에 대한 위대한 심판(요엘 3-4장)을 기대하였다.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현장을 배경으로 하는 제3 이사 야서(56-66장)는 예루살렘 재건이 새로운 창조행위로 만 방의 민족들을 위한 세계라고 묘사하고 있다(이사 61, 4- 5). 그는 창조하는 구원자인 하느님에 대한 고백을 통해 새로운 종말론적 전망을 전개한다. "보라, 나 이제 새 하 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 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 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이사 65, 17-18). "정녕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서 있을 것처럼 너희 자손들과 너희의 이름도 그렇게 서 있으리라"(이사 66, 22).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구원 의 때에 있을 현 상태의 기적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 사 65, 18 이하)이지 묵시 문학적 초월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묵시 문학은 환상적인 표현으로 이스라엘 당대의 고난 을 위로하고 먼 훗날의 승리의 희망을 고취하였다. 그리 고 세상 종말에 관한 예견을 하며, 이스라엘의 최후 승리 를 마지막 날 하느님의 출현에 기대하였다. 이스라엘의 고난과 야훼의 승리(에제 38 ; 39장). 최후의 혼란과 심판 (이사 24 ; 요엘 3-4장). 야훼의 잔치(이사 25, 6-12). 최후 의 승리(이사 27, 6-13 ; 즈가 12장). 다니엘서의 후반부 (7-12장)에서는 사람의 아들이라 불리는 메시아가 열왕 (列王)들을 전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끝없이 지배할 것이 며(7-9장) 부활과 영생을 예고하였다(12장). 바빌론 유배 이전 이스라엘의 사고에서 종말론적 희망 즉 야훼의 구 원 행위들과 심판 행위들은 전적으로 역사 안에서 그리 고 역사적 과정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었 다. 그런데 묵시 문학에서 이 종말론적 희망이 어떤 새로 운 기원에 대한 기대로 넘어갔다. 이 새 기원은 어떤 초 월적 실재이다. 이처럼 묵시 문학에서는 종말론적 희망 을 초월화시켰는데, 이 초월화는 다니엘서에 처음으로 분명하게 나타난다(다니 2, 31-45)
다니엘서는 구약 안에서 충분히 발달된 묵시 사상을 보여 준다. 우주적 심상(心象, imagery)과 계획이라는 개 념은 다니엘서에 의해, 이제 모든 역사를 위해 명백하게 될 사건의 초월적 성격을 더 크게 강조하는 것과 연결되 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소명조차도 이제 한 왕이나 한 종에게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들, 나라들 그리고 언 어들" (다니 7, 14)을 위해 중요하게 될 사람의 아들의 현 양에 모아지게 되었다. 최초의 묵시 작품 중 하나인 다니 엘서는 이미 복잡한 심상과 역사의 시대적 구분을 담고 있다. 이는 환상에서 도피처를 찾으려는 정신의 산물이 기보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고수하려는 신앙의 노력이다.
구약성서의 독창성 : 첫째, 육신이 죽은 뒤에도 계속 되는 영혼의 불멸에 대한 표상은 히브리인에게는 없는
것이다. 즉 성서에는 영혼 불멸의 상념이 없다. 히브리인 은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 리고 죽음 후에도 지속되는 영적인 존재가 인간 안에 있 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은 오직 하 느님에게만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그 를 재생시키고 부활시킨다는 기대만이 있을 뿐이다. 즉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죽음을 이겨 내는 힘은 인간 자신 들 안에 소유하고 있는 내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외부에 서 그를 부활케 하는 하느님의 권능 안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죽음에 의해서도 소멸되지 않는 요 소가 인간 안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인간은 육신이 죽 어도 불멸의 영혼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신적 생명에 참 여한다. 그리스인은 이처럼 죽음을 이겨 내는 원리를 인 간 자신 안에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요인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후에 많이 발견된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구약성서는 마지막 실재들에 대해서 고찰하지 않는다. 이런 뜻에서 구약성서는 종말 사건에 대한 종말론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종말 사건에 대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는다. 이런 결여는 이스라엘의 모든 문화에 생명을 넣어 주는 종교적인 특 별한 체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즉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한다는 체험이다(출애급, 창조 등). 그래서 구약에서 는 이 종말을 인격적 하느님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것 을 대상화하거나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한다(신명 27, 15). 구약성서는 시간을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역사로 체험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죽음과 부활 사상 : 히브리인들이 '생명' 이라 할 때는 생활한 모든 작용을 포함한다. 그들은 추상 적으로 생명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나 생명은 없다. 죽음은 생명의 끝이나 존재의 끝 은 아니었다. 그래서 거대한 무덤에 시체와 양식, 그릇 등을 합장하였다. 그리고 무덤을 훼손하는 자들을 저주 하였다. 무덤에 묻힌다는 것 외에 구약의 다른 표현은 사 람이 죽으면 셔올(שְׁאוֹל,명부,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무덤에서 존재한다는 것과 셔올에 간다는 것은 논리적 으로 맞지 않지만, 이들은 두 가지 표현을 혼용하였다. 원시 시대에는 무덤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후 주변 문화 의 영향으로 셔올 사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 브리인들은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이 셔올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셔올은 땅 밑에 있고 어둡고 고요하고 쓸 쓸한 곳이며, 모든 인간의 집합소이다. 여기에 있는 인간 을 "그림자"(이사 14, 9 : 26, 5 ; 시편 88, 11 : 잠언 2, 18) 라 하거나 또는 단순히 "죽은 자라 하였다. 히브리인은 셔올에서의 상태를 단순히 지상 생활의 축소판으로 보기 도 하고(1사무 28, 14-19), 지상과는 관계 없는 망각과 무위의 상태로 보기도 하였다(욥기 14, 21. 22 ; 집회 9, 5). 그리고 유배 이후에는 하느님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고 생각하기도 하였으나(시편 88, 6), 더 오래된 사상은 하느님이 지상뿐만 아니라 셔올까지도 지배한다고 여겼
다(아모 9, 2 ; 호세 13, 14 ; 이사 25, 8). 욥은 죽은 자들이 모두 아무런 구별 없이 같은 처지에 있다(욥기 3, 1-19) 고 하였지만, 에제키엘은 지위와 종족의 구별이 있다(에 제 32, 17)고 하였다.
현세에서의 인과응보에 관한 전통적 사상으로 자신들 의 삶을 볼 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문제시되고, 히브리인들의 신앙심이 점점 영성화되면서 죽은 자의 운 명에 관한 사상에 변화가 일어났다. 사후에라도 하느님 의 정의로운 상선 벌악은 있어야 되겠고, 또 열심한 히브 리인들은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 해지면서 후기 지혜 문학에서 차츰 영혼 불멸과 육신 부 활 사상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헬레니즘 의 영향이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육신 부활론이 언급되 는 구절(호세 6, 1 ; 에제 37 ; 이사 26, 19 ; 53, 10 ; 욥기 19, 25-27 ; 시편 16, 9-11 ; 49, 73 등)을 언급하지만 그
것은 성급한 결론이고, 부활과 영생에 관한 최초 의 분명한 증언은 다니엘서 12장 1-3절이다. 그 리고 부활이 율법에 충실한 히브리인의 상급으로 묘사된 내용(2마카 7장)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 의 부활이라는 사상은 《바룩의 묵시록》이라는 외 경과 신약성서에 와서 비로소 나타난다. 유대인 들의 전통은 영혼과 육신을 갈라서 생각하지 않 았기에, 부활은 육신 부활이 아니고 인간의 부활 을 뜻한다. 그러나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기록된 지혜서에는 영혼과 육신이 구별되고 있으며(9, 15 ; 19, 20), 불멸성은 덕행의 상급으로 영혼에 게 주어진다(2, 22 ; 3, 1-4 ; 4, 14)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혜서는 악인의 영혼은 불사불멸한다고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심판의 결과는 그 들 영혼의 죽음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 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죽음을 이겨 내는 힘은 인간 안에 내재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외부에 서 그를 부활케 하는 하느님의 권능에 있는 것이 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의 사상(영혼 불멸 사상)과 유대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신약성서〕 신약성서의 종말론 개념은 모두 그 리스도란 사실에 의해 지배되고 그 사실에 집중 된다. 신약은 구원과 저주라는 명백한 심판 행위 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서 실현되었으 나, 이 실재가 각 개인과 전 우주에 완전하게 드 러나게 될 날을 고대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 중적인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완전 한 구원을 향하는 비구원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객관적 구원과 주관적 구원을 이야기한다. 객관적 구원이란 그리스도가 역사의 어떤 시점에 구원 사업을 완수하였음을 말하고, 주관적 구원이란 인간 각자가 이 구원에 참여해 야 되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가야만 구원 사업 이 완결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는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이 다 들어 있으며, 이 긴장은 그들 나름의 신학을
펼쳐 나간 신약성서의 저자들에 의해 유지되어 있다.
공관 복음서 :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는 현실적으로 이 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고달팠던 만큼 사회적 · 문화적 환 경은 묵시 문학적, 종말론적 기다림이 무르익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서 예수는 자신을 종말론적 존 재로 언급하였다. 따라서 예수의 메시지에서 가장 핵심 적인 내용은 종말론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예수로 말미암아 역사의 현재는 자신 안에 폐쇄된 현 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개방된 현재가 되었 다. 그래서 예수도 어떤 경우에는 하느님의 나라를 현재 적인 것으로(마태 5, 3. 9 : 12, 28 ; 13, 14-17 : 루가 4, 21 ; 11, 20) 말하였고, 어떤 경우에는 아직 기다려야 하는 미래적인 것으로(마르 13, 32) 말하였다. 이것이 의미하 는 바는 예수의 인격과 역사(役事)하심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본질적으로 종말론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
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비유들을 통해 하느님 나 라의 역동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겨자씨의 비 유(마태 13, 31-32 ; 마르 4, 30-32 ; 루가 12, 18-19)와 누 룩의 비유(마태 13, 33 : 루가 13, 20-21)를 보면, 하느님 나라는 갑작스럽게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성장하 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마지막 때에 인간의 참여를 봉쇄하면서 갑작스럽게 급습하는 것이 아 니라, 각자의 참여하에 서서히 점차적으로 다가오는 것 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가 미래적인 동시에 현재적 인 것으로서 언급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런 역사적 종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정리해 보 면 다음과 같다. 예수 설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느 님 나라의 도래가 긴박하다는 것을 강조한 점이다. 예수 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의식주를 걱정하는 일보다도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시오"(마태 6, 25-33)라고 하였을 만큼 하느님의 나라는 급하고 중요하다. 이 명제 는 초기 설교의 주제인 것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 생애 동안 다양한 비유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 로는 법정에 가는 두 남자의 비유(마태 5, 25-26 ; 루가 12, 57-59)와 포도원의 비유(마르 12, 1-12)가 있다. 그 리고 하느님 나라의 마지막 도래하는 시간은 알 수 없다 고 한다. 이 시간은 오직 아버지에게만 유보된 것이다(마 르 13, 32). 따라서 사람들이 종말을 맞는 근본적인 자세 는 그 시기를 알려고 하지 말고 오직 항상 깨어 기다리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 1-13)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마지막 도래를, 예수는 잔치와 같은 기쁨의 사실로 소개하고 있 다(마태 22, 2-14 ; 루가 14, 15-24). 이런 점은 세례자 요 한의 설교와는 상충된다. 왜냐하면 요한은 처벌의 심판 에 대해 역설한 반면, 예수는 죄인에게 부여되는 기쁨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역사의 종말은 기쁨의 종말이고 어디까지나 희망에 찬 종말이다. 이는 해산에 대한 비유(요한 16, 21)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종말에 관한 희망적인 가르침은 공관 복 음서뿐만 아니라 모든 신약성서의 초점이 되는 근본적인 것으로서, 예수의 말씀 자체까지 초월하는 사건인 예수 의 죽음과 부활과도 연결된다. 만일 종말이 하느님과 인 류 역사와의 만남이라면, 여기서의 하느님은 예수의 죽 음과 부활 안에서 자신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분이다. 공관 복음서의 신학적 메시지를 고찰해 보면, 예수 부활 이후의 교회 공동체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메시아라 는 사실 인식에서 출발하여 예수 안에서 구원 역사의 절 정이 실현됨을 바라보았고, 예수 안에서 역사의 마지막 이 시작됨을 깨달았다.
요한 복음사가 : 요한의 종말 사상은 공관 복음서의 경우와 전체적 강조점이 다르다. 요한의 복음서에는 공 관 복음의 미래적 종말론이 거의 없다. 따라서 요한의 종 말론은 이미 실현된 종말론이란 특성을 갖고 있다. 예수 의 죽음과 부활에서 구원 사업은 완성되었고, 영원성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구원은 바로 지금 현재한다는 것이
다. 심지어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그리스도의 사랑 에 의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실적 실재인 것으 로 그리고 있다(요한 14, 3. 19. 21 ; 16, 16-22).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은 이미 사라졌고, 심판 은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 심판은 요한 복음서의 표준 주 제이다(요한 12, 48 ; 5, 24 : 3, 18-21).
요한의 종말론적 사고는 심판이라는 주제를 현실화하 며, 영원한 삶의 소유를 현재의 실재로 만든다(요한 6, 47. 51 : 17, 20-21). 도덕적 올바름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하나(마태 5, 20), 예수의 종말론적 가 르침의 새로운 점은 미래는 예수에 대해 지금 취하는 입 장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심판은 역사 안에 육화한 말씀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빛인 그 리스도는 요한 복음서에서 참된 종말론적 실재로, 인간 들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거나 아니면 예수를 거슬러 결 정적인 선택을 하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예수가 이 세상 에 온 것 자체가 심판이라는 것이다. 심판은 요한에게 있어서 여전히 마지막 날에 있을 종말론적 사건이다(요 한 12, 48 ; 5, 28). 그러나 미래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역 사하심 때문에 현재 속으로 들어와 있다. 따라서 종말론 적 심판은 사실상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어떻게 응답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판결의 집행이 될 것이다.
구원의 현존은 오직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고, 신앙을 통해서 미래의 요소가 현실화된다는 것을 요한 복음서는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구원 사업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항상 인간 각자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져야 하고 계속 현 재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요한 묵시록의 주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종말론 적 다스림' 이다. 묵시록의 확신은 예수가 지상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곧 나타낼 것이라는 기대와 연결되어 있 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이미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악 의 모든 권세를 쳐부수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고 영원 하고 우주적인 완성 안에서, 즉 재림 시에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바오로 : 열렬한 바리사이파였던 바오로는 메시아 시 대가 곧 종말 시대라는 유대인들의 종말관으로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개종하여 예수를 메시 아로 인정함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내림이 한 번이 아니 고 두 번임을 깨달았다. 즉 육화 · 구속을 위한 첫 번째 내림과 심판을 위한 영광의 주님으로서의 재림이 있음을 깨달았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악한 세상과 메시아 왕국은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역설 적이지만 그 공존이 현실이었고, 메시아 왕국도 한순간 에 무조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복음 선포로 확장되어 나가며 신자들의 성장으로 완성되어 가는 진행 형의 것이다(골로 2, 19 ; 에페 4, 15-16). 이것이 유대교 의 메시아 왕국 사상과 그리스도교의 메시아 왕국 사상 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내림으로 시작된 은총의 세계(신앙의 세계)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확정될 영광의 세계(지복직관의 세계)의 연속성 을 강력히 옹호한다. 세례로 받은 하느님의 자녀다운 영 광은 계속 발전하여 영원한 영광으로 연결되고(1고린 2, 7 ; 2고린 3, 10-11. 18 ; 4, 4. 6 ; 로마 2, 7. 10 ; 3, 23 ; 9, 23 등), 세례로 시작된 영생은 점점 자라서 천상 생명 으로 연결된다(1디모 6, 12 ; 갈라 6, 8 ; 로마 2, 7 ; 골로 2, 13 등).
주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에서 바오로는 개인의 운명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다 가올 시대' 의 동참자일 뿐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1데살 4, 14). 이런 개인의 종말론적 운명관은 고린 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장에 언급된 부활의 확실 성과 부활한 몸에 관한 토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 스도는 확실히 부활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몸이 된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1고린 15, 13-16). 바오로는 활동 초기에 그리스도 부활의 실재가 신자들의 삶에 종말론적 차원을 부여한다는 종말 사상의 초석을 다졌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모두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사람으 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니) 역시 한 사람으로 말미암 아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담 안에 서 모든 이가 죽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1고린 15, 21-22). 바 오로의 논리는 아담의 범죄로 전 인류가 죽게 되었듯이, 그리스도가 그 죄를 이김으로써 스스로 살고 또 전 인류 를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 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1데살 4, 14). 그리스도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함께 한 사 람들에게 미치며(필립 3, 10-11), 결국 그리스도는 이 권 능으로 만물을 당신에게 복종시킨다(필립 3, 20-21).
바오로는 부활한 육신이 불멸성과 영광과 힘과 영성을 가진 것으로 변한다고 하며, 감각적 육신이 영성화되어 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나라는 영의 나라이기에 물리 적 속성(혈육)에 구애되는 상태에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 이라고 한다(1고린 15, 42-51). 심판의 나팔 소리에 이미 죽은 자는 부활하고 그때까지 죽지 않은 자는 변화하여 불사불멸성을 띤다(1고린 15, 52-53 ; 1디모 4, 17).
바오로는 심판을 언급하면서 '죄인의 부활' 도 가르친 다. 심판관은 하느님이나(로마 2, 2-6 ; 14, 11-12) 그리 스도를 통해 심판하고(1데살 3, 13 ; 2데살 1, 17 ; 로마 2, 15),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배석시킨다(1고린 6, 2). 그리 스도는 천사들에게 옹위되어 오고(1데살 3, 13 ; 2데살 1, 7), 모든 인간은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1데살 4, 1). 각 자는 그 행위를 셈바칠 것이며(로마 14, 12), 심판은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내려질 것이다(골로 3, 23 ; 4, 1 ; 에페 6, 9). 의인은 영광과 명예와 평화와 안식과(2디모 1, 7) 정의의 월계관을 받을 것이고(2디모 4, 8), 마침내 하느님 을 대면할 것이다(1고린 13, 12). 그러나 악인은 분노와 수치와 근심과 고통(1디모 1, 6)과 주님을 영원히 잃는 벌 을 받을 것이다(1고린 3, 15 ; 2데살 1, 9).
그리스도와 개인의 구원, 우주적 구원, 실현된 종말론
이라는 세 요소는 바오로의 서간에서 부활, 승천한 그리 스도의 실재를 중심으로 종합되어 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개념들 은 최종적으로 통합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을 완성하는 분의 계획을 자신 안에서 완전히 이룰 것이다(에페 1, 23 : 3, 19 ; 4, 13). 이런 교회 안에서 그 리스도는 우주와 모든 악의 능력을 당신 자신에게 굴복 시킬 것이다(에페 3, 10 ; 6, 12 ; 골로 1, 15 ; 2, 8-15). 바 오로는 하느님 계획의 처음과 끝은 이미 세상이 창조되 기 전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였다고 말한다(에페 1, 4 ; 3, 9 ; 골로 1, 15). 이 계획의 완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 든 것이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에페 1, 10). 인간이 기다리는 것은 각자 안에, 교회 안에, 그리고 우 주 안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현현(顯現)이다. "사실 여러 분은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더불어 영광 속에 나 타날 것입니다" (골로 3, 3-4).
Ⅲ. 교의사적 고찰
〔초대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과 인간의 최종 운명이 관련되어 있음은 일찍이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앙 조목이었다. 사도 바오로처럼 유스티노(100/110?~ 165?), 오리제네스(185~253), 히폴리토(170~236), 테르툴 리아노(160~223)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지막 날 그리스 도인의 부활과 연결지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신자들의 생활상과 교회 규범, 윤리 등을 자세히 전해 주는 《디다 케》(Didache)가 증언하는 종말관은 신약성서의 표현 그 대로이다. 즉 주님이 심판관으로 올 때를 알 수 없으니 언제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디다케》 16장)는 것이다.
영혼의 불멸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인간의 경험 과 이성을 초월하는 무엇이었고, 부활한 그리스도에게 집중된 신앙이었다. 그리스도의 분명한 승리에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성취되기를 갈망하는 것은 이 세 상의 덧없음과 불영속성을 의미하였다. 초기 교회에서 주의 재림이 미루어지는 것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었지 만, 교회는 그 기다림의 기간을 세상을 변모시키는 데 써 야 한다고 인식하며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 도의 부활과 승천에서 미래의 보화들을 이미 누리고 있 다고 여겼다. 그러나 몬타누스주의(Montanismus)와 같은 이단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의인들과 함께 이 지상에서 천 년 동안 군림한 후 육신 부활과 영원의 세계가 펼쳐진 다는 '주의 재림 임박설' 과 '천년 왕국설' 을 주장하여 초 대 교회 신자들을 혼란시켰다. 이러한 몬타누스주의의 영 향은 한때 대단하여 북아프리카에까지 크게 보급되었다.
2세기 초에 활동한 프리지아(Phygia)에 있는 히에라 폴리스(Hierapolis)의 주교 파피아스(Papias)가 처음으로 주장한 천년 왕국설(Millenarismus)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3세기 중엽에는 이집트에서 크게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동방에서는 오리제네스
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190~265?), 서방에서는 교황 가이오(282/283-295/296)와 아우구스티노(354-430) 가 반박하였다. 콘스탄틴 대제(306~337) 때 황제권으로 천년 왕국설파의 활동을 금지시켰으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현대까지도 이 종파의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오 리제네스는 요한 묵시록을 암시적으로 해석하면서 천년 왕국설의 잘못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모든 것은 결국 그 리스도 안에서 행복을 회복할 것이라는 '우주의 복원' (ἀποκατάστασις)을 기대하였다. 그는 악마조차 용서받 게 되고, 지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 여겼 다. 이런 생각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받아들여져 543년 콘스탄티노플 교회 회의에서 비난을 받았다(D. 411). 그 의 잘못은 인간의 자유 의지의 문제를 간과한 데에 있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 간의 구원 문제는 필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의 문 제인 것이다.
초대 교회의 종말론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형태가 정 리되었다. 그는 묵시록을 영성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천년 왕국설을 결정적으로 매장시켰고(《신국론> 20권), 선행 없는 신앙만으로 구원된다는 설을 강력히 배격하였다. 마태오 복음서 25장 41절과 46절, 요한 묵시록 20장 9-10절 그리고 '지옥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교 회의 풍습' 을 들어 아우구스티노는 오리제네스와는 반대 로 지옥의 영원성을 주장하였다(21권, 19~27장). 지옥 벌은 하느님의 생명을 아주 상실하는 것이며 영육을 태 우는 불로써(21권, 9~10장), 공심판 때까지 기다리지 않 고 적용된다. 그는 모든 신자들의 종국적 구원론을 의미 하는 '우주의 복원' 을 배척하였고, 지옥 벌의 감소 가능 성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연옥에 대해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3장 11-15절에 의거하여 연옥의 존재를 인정하였고, 후세의 잠정적 보속으로 영혼이 정화된다고 믿었다(21권,13. 16. 24장). 연옥 불을 교정하는 불(ignis emendationis) 혹은 정 화하는 불(ignis purgationis) 등으로 부르며,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를 권하였다(《고백록》 9권, 12, 32)
천국 복락은 하느님을 보는 것과 진리에 대한 즐거움 으로, 의인의 영혼은 지상에서부터 그것을 미리 맛볼 수 있다고 하였다(《고백록》 9권, 3, 6 : 《신국론》 20권, 9, 2). 하 느님에 대한 직관(直觀)은 영성적이지만, 천국 성인들의 육체도 이 직관을 누리는가에 대해 초기에는 부정하였으 나 후에는 개연적으로 누린다고 인정하였다(《신국론》 22 권, 29, 3).
〔중세 교회〕 아우구스티노 이후 전통적 종말론은 골격 을 거의 갖추게 되어 신학의 마지막 분야로 정리되어 갔 다. 그래서 중세 시대 동안 초대 교회 때와 같은 종말론 적 유형이 계속된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끝 부분에서 종말론을 다 를 예정이었으나, 성사론 집필 도중에 세상을 떠남으로 써 그의 종말론은 미완성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종말론의 주요 주제인 '천당 영복' 과 '지옥 영벌' 의 본
질에 관한 귀중한 논술을 볼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전의 중세 신학자들은 인간의 지성 과 의지가 행복의 본질적 요소라고 보았다. 그러나 토마 스는 지성의 작용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의지 작용은 지성 작용의 결과론적인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천 당 영복이란 진리 자체인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인식 하는 것이고, 지성 작용의 완성은 최고의 절대 진리인 하 느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의 본질적 요소는 지성 작용의 완성에 있다(S. Th I, 12, 1). 행복의 본질이 하느님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데 있다 면, 인식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의지의 작용은 당연히 인 식을 따른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랑하는 의지 작용이 행복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하느님에 대한 직관은 감각 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지성으로 한다. 그런데 인간 지성 의 자연적인 능력으로는 하느님 본질에 대한 직관이 불 가능하므로 특별한 도움, 즉 '영광의 빛' (Lumen gloriae) 이 필요하다. 이 영광의 빛은 사랑이 큰 사람에게 더 많 이 주어진다. 따라서 각 사람의 천당 영복에는 차이가 있 다(S.Th I, 12, 5~6). 그러나 천국에서는 서로 부러워하는 일 없이 각자의 처지에서 행복의 만족을 누린다(S. Th II-I, 5, 2). 토마스는 악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죄와 벌의 관계 를 논하며 지옥 벌에 관해 설명하였다. 그도 당시에 인정 되던 대로 지옥 벌에는 실고(失苦, poena damni)와 각고 (覺苦, poena sensus)가 있다고 하였다. 본죄로 지옥 벌을 받는 자는 실고와 각고를 둘 다 받고, 본죄 없이 원죄만 으로 지옥 벌을 받게 된 자는 실고만 받는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고 은총으로만 가능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범죄로 이 은총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세 례로 이 은총을 회복하지 못한 자는 하느님의 본질을 인 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죄를 가진 자는 실고를 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원죄는 본성의 죄이지, 본죄처럼 인격 의 결함이 아니다. 본죄는 범죄자의 지성과 의지의 탈선 에서 오는 것이므로 인격적 책임이 따르지만, 원죄는 본 인의 인격적 결단과는 관계 없이 본성의 위축에서 유래 하는 것이므로 자격 상실 이상의 적극적인 처벌은 정의 에 어긋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둑질할 소질이 있다고 처형을 가할 수는 없다. 실제로 도둑질을 할 때에만 처형 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토마스 아퀴나스가 종말 교리에 대한 설명을 함으로써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형태가 잡혔던 전통적 종 말론은 나름대로 완성을 보게 된다.
〔종교 개혁 시대〕 종교 개혁가들이 문제시한 것은 연 옥 교리였다. 루터(M. Luther, 1483~1546)는 교회에 반기 를 들던 초기에는 연옥 교리를 인정하였으나 은사 교리를 비난하면서 연옥 교리를 의심하기 시작하였고, 의화설을 굳히면서 구원에 대한 공로 무효성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교황과 그 추종자들이 미사로 재물을 모으기 위해 연옥의 존재를 주장한다고 설교하였다. 또한 죄의 보속 개념 자 체를 부정하였는데, "네 죄를 보속하라"는 말은 그리스도 의 구원 사업을 부정하고 세례를 없애며 복음과 성령을
저버리는 것이라 하였다. 칼뱅(J. Calvin, 1509~1564)은 가 톨릭 신자들이 연옥 교리를 위해 인용하는 모든 성서 구 절들(1마카 12, 45 ; 1고린 3, 15 등)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며, 초대 교회부터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해 온 교회의 전통은 악마가 도입한 미신이라고 맹박하였다. 종교 개 혁가들의 연옥 교리에 대한 부정은 의화의 본질에 대한, 그리고 일시적 벌을 이해하지 못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기 본 관념과 연관된다.
종교 개혁으로 혼란된 교회를 수습하려는 트리엔트 공 의회(1545~1563)는 피렌체 공의회(1439)에서 선포한 연 옥과 보속의 교리를 재천명하였다. 지상에서 완덕에 도 달하지 못한 채 또는 자기 죄를 다 기워 갚지 못한 채 죽 은 의인의 영혼은 연옥의 벌로 정화를 받는다. 이 벌이 삭감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신자들의 연옥 영혼을 위 한 기도가 필요하다. 지상 교회의 기도와 희생은 연옥 영 혼들을 위해서 유익하며 결국 신자 자신들을 위해서도 유익하다(DS 1304, 1820).
이렇게 하여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벨라르미노(R.F.R. Bellarminus, 1542~1621)와 수아레스(F. Suárez, 1548~1617) 에 의하여 연옥 교리가 정립되었으며, 근세에는 별다른 문제의 발전 없이 종말론이 고정되었다.
IV. 전통적 종말론과 현대의 종말론
〔전통적 종말론〕 전통적 종말론은 개인 삶의 끝과 세상 의 역사 끝에 올 미래 사건들을 위주로 전개되었다. 개인 의 종말론에서는 죽음, 사심판, 천당, 연옥, 지옥의 실재 가 구명되었고, 세상의 종말론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육신 부활, 공심판, 세계의 종말이 구명되었다. 이렇게 두 종류의 종말론이 펼쳐진 것은 초대 그리스도교가 성서 적 · 유대교적 전통에서 점차 그리스 문화권 안에 정착된 데에 기인한다. 역사에 대한 견해와 인간관에 대한 유대 교의 이해와 헬레니즘의 이해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성서적 인간관은 인간을 영육의 합일적 존재로 생각하 는 일원론인 반면, 그리스의 인간관은 영육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원론이었다. 그래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육신 부활과 최후 심판 그리고 단체적이면서 우주적인 측면에서 세상의 종말론을 전개하였고, 그리스계 그리스 도인들은 육신 부활보다는 영혼의 불멸성과 개인의 사후 에 즉시 있게 되는 상과 벌의 사적 심판 등의 문제를 중 심으로 개인의 종말론을 전개하였다.
개인의 종말론 : 죽음과 동시에 개인에게 초래되는 각 자의 운명에 대해 다룬다. 다시 말하면 사심판과 그 결과 에 대한 것을 말한다. 원죄의 벌로 죽음을 맞이한 인간의 영혼은 불사불멸하기 때문에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는 순 간, 즉시 심판자인 하느님 앞에 나아가 사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그 심판의 기준은 이 세상에서 쌓아 올린 공로와 저지른 죄의 중량에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영복이나 지 옥의 영벌 그리고 연옥의 단련 등 세 가지로 나누어 판결 을 받게 된다. 죽을 당시 은총 지위에 있었던 영혼은 천 국으로 가고, 죽을 당시 대죄로 은총 지위를 잃은 영혼은
지옥으로 가며, 소죄 중에 있는 영혼은 연옥으로 간다. 천국에 간 영혼은 하느님을 뵙는 지복직관의 행복을 누 리게 된다. 이 지복직관은 창조의 목적이요 인간의 최종 적 목적이다. 대신 지옥에 떨어진 영혼은 실고와 각고라 는 두 가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연옥에 떨어진 영 혼은 완전히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시한부로 실고와 각 고를 겪는다. 그래서 전통적 종말론에서는 죽는 그 순간 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세상의 종말론 : 이것은 세상의 끝날에 있을 일을 다 루는 부분이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 육신의 부활, 공심 판(公審判)에 관한 것이다. 세계와 역사가 끝나면서 그 리스도가 재림하면 죽었던 모든 인간들이 부활하게 된 다. 그리고 곧이어 심판자인 그리스도는 이미 각 개인에 게 내렸던 사심판의 결과를 만인 앞에 공포한다(공심판). 이때 연옥은 없어지고 이 세계는 영복과 영벌로 나뉘게 된다.
이런 전통적 종말론에서는 미래사들을 명확히 말하지 만, 오해의 여지가 상당히 있다. 즉 자칫하면 이 세계는 장차 올 종말 때까지만 존속하는 잠정적 공간으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세의 삶은 내세를 준비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이 세상의 삶은 개인의 구원을 준비하 는 일시적 공간의 소극적 실재만으로 파악되기 쉽다. 이 에 의하면,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세상 역사는 그 자체 안에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종말론적 중요성을 별로 지니 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 종말론에서는 종말적 실재 를 장소로 파악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즉 천당과 지옥 의 표상이 장소 개념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전통적 종말론을 가르치는 교리 설명에는 일반적으로 현대인에게 납득되기 어려운 신화적 표현들이 있다. 예 를 들면 이 세상의 마지막이 임박하면 전쟁, 천재지변 등 의 이변이 속출하고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서 모든 인간을 심판하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그 리스의 우주관에 입각한 성서의 자의적 해석에서 온 결 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성서와 전승에 언급된 암호와 상징들을 종말에 관한 과학적 정보로 착각한 경우도 있 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학계에서는 역사 비판적 방법론에 입각해서 새로운 성서 해석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전통 적 종말론에서는 성서와 전통의 상징적 표현들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말에 관한 성서의 언급은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성서는 종말의 시간과 실제 상황을 미리 알리는 점쟁이가 아니다. 종말 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창조에 관한 말씀의 성격과 비 슷하다. 창조에 관한 말씀은 우주 기원에 대한 고고학 적, 자연 과학적 증명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계시, 즉 하느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것과 바로 그분이 창조주라는 것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종 말에 관한 성서의 말씀도 종말에 어떠한 현상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이끌고 돌보는 하 느님이 모든 창조물의 미래이며 최종 목표, 최종 의미, 최종 희망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성서의 종말론
은 인간의 죽음이든, 역사의 파멸이든 간에 그 어느 도 하느님의 이러한 뜻을 무효화할 수 없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현대의 종말론〕 상술한 것처럼 과거 종말론의 성향은 미래사에 대한 정보 제공식이었다. 즉 먼 장래에 있을 일들에 관해서 성서의 단편적인 증 언들과 추리를 통해 하나 하나 묘사하였다. 그
것은 여러 가지 미래사를 사전 지식으로 다루 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이 그리스도교에 서 모든 초자연적 · 신비적 요소를 과학의 이름 으로 부정하며 심판, 천당, 지옥 등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바르트(K. Barth, 1886~1968)와 브루너(H.E. Brunner, 1889~ 1966) 등
은 하느님 말씀의 절대성과 그리스도교의 종말론 적 성격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실존주의
학의 영향을 받은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은 미 래사의 종말론을 지양하고, 미래사를 현재하는 그리스도 인의 실존적 양상으로 파악하는 실존적 종말론을 였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종말론의 검토가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실존주의 철학과 프로테스 탄트 신학의 영향 그리고 가톨릭 신학 전반의 쇄신 이 기여하였다.
현대 종말론의 가장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는 교의신학 체계의 마지막 부분인 종말론이라는 관점에서 신학의 모 든 분야를 종말론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 체 신학에 통합되지 않고 신학 안에서 당당히 그 자리를 잡자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상은 단순한 이론 체계가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관여하 고 활동하는 살아 있는 현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구세 사의 한 시점에서 볼 때, 과거가 현재 안에 거듭 활성화 되고 미래가 이미 현재 안에 지향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상태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역설적으로 역사를 초월하면서도, 역사 안에 실존하는 것이다. 따라 서 종말론은 장래에 닥쳐올 사건들을 예상하여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종말 사건들이 이미 현재 그리스 도인의 존재 양상을 규정하고 지도하고 해석하고 있다는 현실을 설명하고자 한다.
종말 사건에 관한 성서의 진술들은 미래에 발생할 사 건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비유들이다. 예수가 가르친 종말의 근본 내용은 '잔치와 해산의 비유' 에서 볼 수 있듯이 기쁨이며 희망이다. 그 러므로 종말에 대해 성서가 강조하는 근본적인 것은 종 말에 관한 희망이다.
그리스도교적 종말의 희망은 부활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인격적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서 생겨난다. 그래 서 종말 사건에 관한 성서적 표상들은 장소적으로가 아 니라 인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하느님 자체가, 인 간과 세계가 종말에 이르게 되는 장소로 파악되어야 한
다. 이와 같이 인격적 하느님이 종말 실재로 이해되면서, 차안(此岸) 세계와 피안(彼岸) 세계의 관계가 새롭게 이 해된다. 전통적 종말론에서는 차안 세계가 피안 세계로 입장하기 위한 준비 공간으로 이해되면서, 피안 세계라 는 존재 차원에서 분리된 별개의 세계로 소극적으로 파 악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느님과 그의 나라는 그리스 도 안에서 이미 충만하게 차안 세계에도 나타났다. 즉 그 리스도에 의하여 차안 세계가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구체적인 실재를 따져 본 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순전히 미래의 것으로 희망해야 할 실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나라를 순전 히 기다려야 할 미래의 실재이기만 한 것이 아님을 선언 하였다. "사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여러분 가운데 있습 니다"(루가 17, 21). 이렇듯 하느님의 나라는 두 가지 면 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이미 현존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직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아직 아니' 라는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이미' 와 '아직 아니' 의 변증법은 현세 교회의 본질적인 존재 양상이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실 존이 있고, 신학의 실체가 있다.
하느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은 선포된 하
느님 나라의 완성이 현재 안에 깊이 관련되고 있다는 것 을 말해 준다. 이러한 통찰은 종말 사건을 순전히 미래적 인 사건만으로 보지 않고, 현재적인 실재로 간주하고 평 가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현대 종말론은 전통적 종말론 이 공로와 형벌의 범주로 궁극적인 미래 구원을 위한 행 동 동기를 유발하고, 또 구체적 인간 세계와 역사로부터 동떨어져 본질주의적 사변과 윤리 교리에 집착하는 것과 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이해 지평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종말 사건은 단순히 미래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신앙 전체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현대 종말론은 개인주의적 협소성에서 탈피하여 개인의 운명에 관한 물음도 전체 세계 역사의 구원 전망 속에서 보려고 한다. 즉 전통적 종말론의 물음 이면에는 개인적 인 구원의 보장과 노력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비해, 오늘 날의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종말론적으로 규 정된 전체 역사의 지평에서 개인과 모든 피조물의 구원 을 보편적으로 정립하려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오늘날의 종말론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 다. 하나는 인격주의적 종말론이라고도 하는 실존론적 종 말론이다. 이것은 현재 개인의 종말론적 처지 규정에 치 중하므로써 전체 역사 과정으로의 개인적 유대가 경시되 는 종말론 유형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행동주의적 종말 론이다. 이것은 개인의 처지보다는 세계와 역사의 관계를 중시하는 종말론 유형이다. 1960년대 이후 신학계에 등 장한 정치적, 혁명적, 진화적, 해방적 종말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개인의 현 실존과 세계 전체를 각각 중시하는 두 유형이 상호 보완을 꾀할 때, 현대 종말론은 균형 잡힌 종말론으로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재 림 ; 종말 ; → 각고 ; 낙원 ; 내세 신앙 ; 몬타누스주의 ; 벨라르미노 ; 부활 ; 사말 ; 셔올 ; 수아레스 ; 신학 ; 심 판 ; 알파와 오메가 ; 연옥 ; 영벌 ; 영복 ; 오리제네스 ; 지복직관 ; 지옥 ; 천년 왕국설 ; 하느님의 나라)
※ 참고문헌 F. Martin, Eschatology in the Bible, 《NCE》 5, pp. 524~533/ M.E. Williams, Eschatology, theological treatment, 《NCE》 5, pp. 533~538/ K. Rahner, 《SM》 1, pp. 242~246/ G. Greshake, 심상태 역, 《종 말 신앙》, 바오로딸, 1995/ J.B. Libânio · M.C.L. Bingemer, 김수복 역, 《그리스도교 종말론》, 분도출판사, 1989/ 정하권, 《가톨릭 사전》, pp. 1071~1073/ 심상태, <종말론의 어제와 오늘>, 《성서와 함께》 140호, pp. 19~241 최영철, <현대 신학의 종말론>,《사목》 119호,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 pp. 31 ~40/ Thomas Aquinas, STh I,q. 12, a. 1-5 ; STh II-I, q. 5, a. 2-5/ FJ. Nocke, 조규만 역, , 《종말론》, 가톨릭 사상 총서 2, 성바오 로출판사, 1998/ C. Pozo, Teologia dell'aldla, Roma, 1983. 〔徐炅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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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終末論
〔라〕Eschatolo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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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재림, 심판 등을 다루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