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罪 [라]Peccatum [영]Sin

글자 크기
10
아담과 하와의 죄는 하느님 명령에 대한 고의적인 위반이다.
1 / 3

아담과 하와의 죄는 하느님 명령에 대한 고의적인 위반이다.


이성과 진리와 올바른 양심을 거스르는 잘못. 어떤 것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 때문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참다운 사랑을 저버리는 것으로, 영원법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위나 욕망이다. 죄는 인간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고, 인간의 연대성을 해친다. 동시에 죄는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다. 죄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슬러 맞서며, 인간의 마음을 하느님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선과 악을 알고 규정하는 "하느님처럼"(창세 3, 5) 되겠다는 헛된 의지로 하느님께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것이다. 결국 죄는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며 자신을 높이는 것이므로, 구원을 이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명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I. 성서에서의 죄
[개념과 의미] 구약성서 : 구약성서에서 죄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50개 이상의 단어들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들은 보통 '과실, 부정, 반역, 불의' 등 대인 관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차용한 것이다. 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들에 대한 연구는 성서 저자들이 이해한 죄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죄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혹은 공동체와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며, 하느님에게서 돌아서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부채' (빚)라는 의미의 단어도 사용하는데, 신약성서에서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죄는 윤리 · 도덕적인 죄와 예배 · 전례상의 죄로 나눌 수 있는데 , 예배상의 죄들도 도덕적인 죄와 마찬가지로 중죄로 다루어졌다. 죄의 성서적 이해에서 죄의 개념을 경신례 위반, 전례상의 부정(不淨), 신성 모독, 부주의한 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낯설지만, 성서는 죄를 항상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라는 틀 안에서 이해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죄를 표현하는 말로 가장 자주 쓰인 낱말은 '하타' (חֵטְא)로, 595회 정도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기본적으로는 '실수하다, 잘못하다, 죄짓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나아가 규율의 회피 또는 위반, 선함과 의로움에서의 일탈, 그리고 야훼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을 가리킨다(신명 28, 15-68 ; 예레 3, 25). 대부분 영적 혹은 도덕적으로 동료나 하느님께 짓는 과오를 나타내며(창세 43, 9), 죄와 형벌 혹은 미리 규정된 제물을 통하여 죄를 씻어 버리는 행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는 가장 심각한 것으로, 속죄를 위한 희생이 정확히 이행되어야 한다. '하타' 명사형인 '하타트 (חַטָּאת)는 종종 제의적 문맥 안에서 속죄 제물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레위 6, 26).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를 가리키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인 단어인 '파샤' (פֶּשַׁע)는 135회 정도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반역하다, 위반하다, 거스르다' 등의 뜻을 갖고 있는데, '하타' 처럼 단순한 실수나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인 불순종' 을 의미한다. 이 용어의 명사형과 동사형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나 사람들에 대한 범죄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1열왕 12, 19 ; 아모 1, 3), 일반적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범죄와 계명의 위반을 나타낸다. 그리고 죄에 수반되는 죄과를 가리키기도 한다(욥기 33, 9). 하느님을 거역하는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로는 '마라드'' (מָרַד) , '마라' (מָרָה), 그리고 이 용어들의 명사형이 사용되었다.
죄인의 내적인 상태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악을 표현하는 명사 '아온' (עָוֹן)은 약 229번 등장한다. 이 단어는 '그릇되게 행하거나 그릇된 상태에 빠지다' 의 뜻을 가진 어근 '아아' (עָוָה)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아온' 은 사악한 행위와 이로부터 수반되는 죄과나 형벌을 가리키는데, 많은 경우 이 세 가지 의미는 서로 구분되지 않은 채다 함께 적용될 수 있다(창세 4, 13 : 19, 15).
이 밖에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의 악의와 사악함을 나타내는 '라아' (רָעַע) , '사악하고 죄된 행위, 죄스러운, 사악한' 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라샤' (רָשָׁע) 등 많은 단어들이 넓은 범위로 죄를 의미하였다. 이들은 죄의 완고함, 교만, 교리의 위반, 어리석음, 속임, 부정 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신약성서 : 신약성서에는 죄에 대한 옛 개념들과 용어들이 그대로 나타나지만, 그 내용은 심화되고 변형되어있다. 이러한 차이가 일어난 가장 큰 요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다. 예수는 죄에 대한 실제적이고 확실한 승리를 제공하며, 신약성서의 죄에 관한 가르침은 그리스도가 죄를 정복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는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파멸성과 심각성을 강조하는 말은 어떠한 것이나 그리스도로부터 얻은 구원의 위대성을 더욱 높이는 데 기여한다. 신약성서의 저자들도 죄를 하느님께 대항하는 행동 혹은 태도로 간주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서로 사랑하도록 명령하였기에 인간을 거스르는 죄들 역시 하느님께 대항하는 죄로 간주된다. 죄는 개별적인 오류를 말할 수도 있고, 하느님의 뜻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을 일컬어 '죄인' 이라하며,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행동 요인인 '힘' 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신약성서에서 사용하는 '죄' 를 가리키는 그리스어들은 모두 다 그리스 고전 작품에 사용되었던 용어들이다. 그러나 이 중 많은 용어들이 70인역에서 새로운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 사상과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히브리적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죄' 를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용어는 '하마르티아' (ἁμαρτία)로, 히브리어 '하타' 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 용어에서 파생된 '하마르테마' (ἁμάρτημα)는 '죄된 행위' 를 가리키며, '하마르타노' (ἁμαρτάνω)는 '표적에서 빗나가다. 죄를 짓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하마르톨로스' (ἁμαρτωλός)는 '죄인'을 가리킨다. '하마르티아' 는 일상적으로 죄짓는 행위 혹은 죄짓는 행위의 내적인 상태를 가리키는데, 바오로와 요한은 이 용어를 인간의 죄짓는 속성과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즐겨 사용하였다. 또한 로마서 5-7장에서는 이 용어가 시적인 상상력에 입각하여, 악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존재로 의인화되었다. 70인역에서 '하마르톨로스' 는 '라샤' 의 번역어로 자주 사용되었다. '죄인' 은 세리나 매춘부와 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바리사이파들은 이 용어를 자신들의 규례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비난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그 외에도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죄를 가리키는 또 다른 용어는 '파라프토마' (παράπτωμα)로서, '옆에 떨어지다, 떨어져 나가다의 뜻을 가진 '파라핍토' (παραπίπτω)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도덕적 의미를 가진 '죄, 죄과, 위반 을 나타내며, 죄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과오를 나타낸다.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용어는 '위반' 의 뜻을 가진 '파라바시스' (παράβασις)로 어떤 규칙 또는 법에 대한 위반을 뜻하는데, 서간들에서만 사용되었다. 이 용어의 파생어인 '파라바테스' (παραβάτης)는 위반자를 가리키며, '파라바이노' (παραβαίνω)는 '도를 지나치다, 위반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법, 불법' 이란 뜻을 지닌 '아노미아' (ἀνομία)는 율법을 멸시하거나 율법에 거스르는 태도나 상태를 가리킨다. '불순종' 의 뜻을 가진 '파라코에' (παρακοή)는 신약성서에서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로마 5, 19). 이밖에 죄를 가리키는 중요한 신학적인 용어로 '아세베이아'(ἀσέβεια)가 있는데, 이는 '불경, 하느님을 믿지 않음, 독신(瀆神)' 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경스러운' 이란 의미를 가진 '아세베스' (ἀσεβής)는 인간에 대한 그릇된 행위를 나타내는 '아디키아' (ἀδικία)와는 달리 하느님께 대한 죄를 가리킨다. 도덕적 · 영적인 사악함, 나쁜 짓을 나타내는 말로 '카키아' (κακία)와 '카코스' (κακός)등이 있고, '포네리아' (πονηρία)와 '포네로스' (πονηρός)는 '나쁜, 악한' 이란 뜻을 갖는다. 마태오의 복음서 6장 12절에 언급된 '오페이레마' (ὀφείλημα)는 재정상의 '빚' 을 의미하는 말로, 아람어 '호바' (חֹובָה)에서 온듯하다. '호바' 는 본래 빚진 돈을 가리키는 것으로 법적 성격을 지니며, 탕감되어야 하는 빚이나 채무를 뜻한다. 이 말이 종교상의 어휘로 바뀌어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죄과를 가리키는 관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신약성서에서는 죄를 율법과 연결시키는 것이나 금기와 관련된 개념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예수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이 율법의 참된 완성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또한 추상적인 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구체적인 죄와 죄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예수는 편협한 율법주의를 비난하면서 모든 감추어진 태도나 감정들도 중요시하였다(마태 5, 21-48).
초대 교회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있었으나(사도 10-11 ; 15 ; 갈라 2), 주로 바오로의 활동을 통하여 율법이 더 이상 도덕성의 궁극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도 바오로 역시 죄와 의(義)의 기준을 율법에 두지 않고, 외면적인 기준으로 의롭다고 평가받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강조하였다. 바오로는 율법이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하는 데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로마 8, 3). 죄에 대한 바오로의 특징적인 이해는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그는 종종 특별한 죄들에 관하여 언급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인간을 타락에 빠뜨리기 위해서 율법과 성령의 힘에 대적하도록 하는 악한 세력으로 죄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죄는 율법을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속박하고 인간의 영혼을 저주 속에 빠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로마 5, 12-8, 11), 육체와 연합한 악한 존재로 죄를 의인화하고 있다. 바오로는 죄와 그리스도, 육체와 영, 어두움과 빛을 계속적인 투쟁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았고, 인간은 이러한 두 세력중 어느 한 세력에 예속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로마 6, 16). 요한의 작품들도 역시 서로 적대시하는 우주적인 세력들에 대한 개념과 유사한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1요한 5, 19). 요한의 작품들 속에는 어두움의 영역인 죄의 통치권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다 이 악한 세력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며, 죄는 하느님께 대한 증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증오를 예수에게 전이시킨 것이 유대인의 가장 큰 죄이며, 무엇보다 가장 큰 죄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또한 고의적인 악의로 성령의 활동에 거스르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다(마르 3, 28-30).
[죄의 기원] 구약성서의 저자들은 죄의 기원을 역사적 · 우주론적 고찰을 통해서 찾기보다는, 인간의 삶 속에서 실존적으로 죄의 기원을 추구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죄를 인간의 피조성이나 성적(性的)인 출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은 잉태되었을 때부터 죄인이고 연약한 육체는 모든 악에 쉽게 빠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을 말해주고 있다(욥기 14, 1 ; 15, 14 ; 시편 51, 5). "산 이는 누구도 당신 앞에서 의로울 수 없나이다"(시편 143, 2).
창세기 3장에서 소개되는 인간의 타락 기사는 죄에 관한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죄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낙원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죄는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고의적인 위반으로, 그 결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고 묘사하고 있다. 원조(元祖)들의 죄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고 책임져야 할 행위로서, 위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불순종, 벌, 죄의 용서이다. 창세기 1-11장의 태고사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분으로 나타나고, 끊임없이 죄를 일삼는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한다. 홍수로 모든 생물을 없애고 노아의 가족으로 새로 시작하지만(창세 6, 5-7),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스러움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창세 8, 21). 성서의 저자들은 죄가 인간의 본성적 특성임을 의심치 않았다(잠언 20, 9 : 전도 7, 20. 29).
신 · 구약 중간기에 나온 문헌들에는 죄와 악의 근원에 관한 풍부한 성찰이 포함되어 있다. 계속되는 환난과 고통 속에서 어떻게 악이 생겨났는지 절박한 물음을 끊임없이 추구하였고,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묵시문학에서 피난처를 찾는 자들이 늘어났다. 특히 이 시기의 초기에,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의식적인 반역이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이 시기 전체를 통하여 지배적이던 죄의 개념은 율법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토라(율법)는 하느님의 전체적인 뜻을 명시하고 있고, 동시에 모든 죄를 규정 짓는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율법을 어기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의(義)를 행한다는 것은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다. 외경 전체를 통하여, 그리고 그 후에 저술된 모든 랍비 문헌들에서 율법은 죄에 대한 실제적인 기준이었다. 율법에 충실한 의인과 율법을 어기는 악인들 사이의 구분은 점차로 더욱더 분명하게 그려졌다. 바리사이파의 정신이 강하게 표현된 《솔로몬의 시편》은 의인도 죄를 저지를 수 있으나, 이들의 죄는 연약함과 실수로 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이고 습관적으로 죄를 저지르는 악인의 죄와는 다른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육체는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사상이 유대 사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지혜 9, 15 참조 8, 20).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선하게 창조되었다는 정통적인 히브리적 견해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지혜 2, 23 ; 8, 19-20 ; 납달리의 언약 2. 5 : 2에녹 44, 1 ; 65, 2 ; 2에스드라 3, 4-6). 이러한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결코 의지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원래 죄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져야만 한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인간의 행위를 심판한다. 오직 죄인이 해야 할 일은 규정된 속죄 의식을 따르고, 회개와 죄의 고백을 통하여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전적으로 내맡기는 것이다.
신약성서는 죄의 기원에 대하여 구약성서와 맥락을 같이한다. 파수꾼(범죄한 천사들)의 타락 이야기는 베드로의 둘째 편지 2장 4절과 유다의 편지 1장 6절을 제외하고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의 타락이 인류의 부패와 죄악의 기원으로 명시되어있다. 바오로는 아담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담의 최초의 죄가 모든 죄의 기원이며, 따라서 모든 죽음의 원인이라는 점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죄인이 된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5, 19). 그러나 이는 단순히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언어적인 평행구일 뿐이다. 결코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에 속해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바오로는 육체가 악에 이끌리는 성향(정욕과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마땅히 제거되어야 함을 인정하면서도(로마 13, 14 ; 갈라 5, 16-21), 이러한 욕망들을 제어하지 못한 책임을 인간의 마음에 돌리는 죄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사실상 인간의 마음이 너무나도 타락하고 부패하여서, 이러한 인간의 욕망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제정된 율법의 금령들은 오히려 그러한 욕망들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로마 7, 7-8). 예수가 말한 것처럼 죄는 인간의 타락한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마르 7, 21-23). 이것은 구약의 관점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재현된 것이다(마르 7. 6-7). 죄는 율법에 의해 제시된 그릇된 지식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 속에 생겨나며, 또한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악한 행동을 하게 한다. 율법은 영적인 반면, 죄인은 육적인 까닭에 율법을 거스른다(로마 7, 14).
[죄의 결과] 죄의 결과로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큰 변화가 생긴다.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렸던 인간은 하느님을 기피하게 되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추방되었으며, 이때부터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갈라지게 된다. 죄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을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도 분열을 일으킨다. 아담과 하와의 분열은 아담의 후손들에게도 그 영향을 미친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창세 4, 8), 이어서 폭력과 약육강식의 법이 지배하는 시대가 출현한다(창세 4, 24). 이러한 일련의 악한 결과들은 더 큰 죄책과 고통을 가져왔고, 그 벌로 죽음을 가져온다. 죄의 결과로서 죽음이 오고, 마지막 심판 때 하느님에 의해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에는 계속 불어날 뿐이었고, 죄가 증가함에 따라 생명은 감소의 길을 걸었으며, 마침내는 대홍수로 인해서 단절되기에 이른다 (창세 6, 13-15).
하느님은 우상 숭배와 탐욕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어, 끊임없이 그들의 죄로부터 돌아설 것을 촉구한다. 죄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위해 마련한 계획이 실현되는 것을 막고, 또 하느님의 지배와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방해한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지도자들의 죄를 고발한다. 예언 문학에는 직접 · 간접으로 십계명과 관련된 죄들이 빈번히 열거되고, 지혜 문학에 와서는 더욱 많아진다. 죄는 매우 구체적인 실체로, 사람들이 야훼를 저버림에 따른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신약성서는 죄의 본질과 그 결과에 대하여 구약성서와 같은 어두운 견해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죄에 대한 구제책을 알고 있기에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음을 확신케 한다. 죄인들에 대한 예수의 태도에서 그 답을 얻을수 있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선포하였다(마르 1, 14). 그 후로 이 메시지는 교회가 세계 각지에 복음을 전파하는 가장 절박하고도 핵심적인 선포 내용이 되었다.
[개인적인 죄와 사회적인 죄] 죄는 확실히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들은 그 기초가 되고 순수한 가치 기준이 되는 종교적 특성과 분리할 수 없다. 하느님은 만물에 앞서 계시며, 모든 만물은 그분이 원하기 때문에 또 그분이 명한 목적 때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서는 공동의 죄(판관 7, 애가)와 개인적인 책임감(예레 31, 29-30 ; 에제 18 ; 33, 10-20)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신학자들은 자기가 범한 죄, 즉 본죄(pec- catum personale, actual sin)와 원죄(peccatum originale, original sin)를 구분하는데, 본죄는 일상적인 의미의 죄로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범한 악행이다. 반면, 원죄는 인간이 날 때부터 죄 많은 종족의 일원임을 깨닫게 하는 도덕적인 부패 상태를 가리킨다. 죄 안에서 태어난 존재의 상태는 나의 개인적인 결단 혹은 나의 의지에서 생기지 않는다. 하느님으로부터의 분리로서의 죄는 고립의 여러 가지 다른 형식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자신들과 우리 이웃과 피조물과 인간 가족들과의 관계의 결핍 등으로 나타난다.
성서는 죄가 기본적인 정향(혹은 힘)이며 개인적인 행위인 동시에, '원죄' 의 결과이며 인간 자유의 결과이고, 공동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차원을 갖고 있으며, 현재의 벌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심판이라고 한다. 또 하느님과의 관계를 저버린 것은 인간 측이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화해는 하느님 편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초의 죄의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언젠가 몸소 이 화해를 실현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창세 3, 15). 창세기에는 이미 하느님의 자비가 움트기 시작하였음을 가르친다. 하느님은 전 인류의 타락과 거기에 따르는 벌에서 노아와 그 가족을 지키고(창세 6, 5-8), 그를 통하여 소위 새 세상을 이룩하고자 한다(창세 8, 17. 21-22 및 창세 1, 22. 28과 3, 17을 비교). 지혜서에는 지혜가 "그(아담)가 지은 죄에서 구해 주었으며"(지혜 10, 1)라고 기록되어있다. 특히 "악을 저지르기로 합심한 민족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지혜 10, 5), 하느님이 당신 자비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죄의 세계에서 떠나게 하고(창세 12, 1 ; 참조 여호 24, 2-3. 14),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종족들이 복을 얻게"(창세 12, 3) 한 데서 나타난다. 인류의 역사는 죄로 인하여 하느님을 떠났다가 그분의 자비와 은총으로 다시 그분께 돌아오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죄는 구약성서와 예언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우선적으로 전제되고 있다. 교회 최초부터 구원이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이라고 선포되었다. → 걸림돌 ; 구원론 ; 미움 ; 원죄 ; 의화론)
※ 참고문헌  김영남, <신약성서에 나타난 죄의 개념 (1)>, 《가톨릭 신학과 사상》 26호(1998, 겨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pp. 7~40/ S. Lyonnet, 《성서신학사전》, 광주 가톨릭대학교, pp. 536~544/ K.H. Peschke, Christian Ethics. Moral Theology in the Light of Vatican II, Al-cester and Dublin, C. Goodliffe Neale, 1986 (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의한 가톨릭 윤리신학》, 분도출판사, 1990)/ P. Schoonenberg, 조정헌 역,《인간과 죄》, 신학총서 15, 분도출판사, 1978/ D. Sölle, Gott Denken : Einfuhrung in die Theologie, Kreuz Verlag Stuttgart, 2 Auflage, 1990(서광선 역,《현대신학의 패러다임》, 한국신학연구소, 1993)/ R.C. Cover, Sin and Sinners in Old Tes-tament, (ABD) 4, pp. 31~40/ P. Fiedler, ἁμαρτία, 《EWNT), pp. 157~165/K. Koch, 8207, 《ThWAT》, PP. 857~870/ M. Limbeck, Sunde im NT, H.Haag ed., Bibel-Lexikon, Einsiedeln · Zurich . Köln, 1968, pp. 1672~1674/E.P. Sanders, Sin and Sinners in New Testament, 《ABD》4, pp. 40~47. 〔崔惠榮〕
Ⅱ. 윤리 신학에서의 죄
[정 의] 죄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인간에게 윤리 의식이 있기에 언제나 죄의식이 있어 왔으며, 대개의 경우 범죄 의식과 함께 죄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추구가 따랐다. 인간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추구해야 하고 그 목적에 어긋나는 행동을 범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이 목적의 달성을 보장해 주는 윤리 규범의 의무와 양심의 명령을 무시하여 행하는 악한 인간적 행위가 죄이다. 그것은 윤리 규범에 대한 위반을 자유로운 동의로 실천한 것이다. 하느님은 윤리 규범의 창시자이기에 윤리 규범의 무시는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순종이며 반역이고, 윤리 규범을 거스르는 것은 자기 양심을 거스르는 것이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거슬러 자기를 파괴하는 것이다. 죄는 어떤 규정을 어긴 행동이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잘못이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는 회복할 수 없고 오직 용서라는 과정을 통하여 화해로써만 회복될 수 있는 관계 의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범행이 있기 전에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죄는 항상 윤리적 죄책(culpa, guilt)을 포함하고있고, 윤리적 죄책은 항상 죄를 전제로 한다. 나쁜 행위는 윤리적으로 악한 것이고, 하느님께 대한 거역은 죄로 표현된다. 반면, 어떤 사람이 그가 행한 악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사실과 책임져야 할 행위자인 그에게 탓이 돌아간다는 사실은 죄책이라고 표현한다. 윤리적 죄책은 죄책감과 구별된다. 죄책감은 잘못된 교육과 사회적 금기에서 비롯된 초자아나 정신병적인 병력에 의하여 부당하게 금지당하는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언급할 때는 행동 자체보다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서 죄행(罪行, peccatum materiale)과 범죄(犯罪, peccatum for-male)를 구분해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죄행은 한사람의 행위가 윤리 규범에 비추어 나쁜 행동으로 파악되는 것을 말하고, 범죄란 그 행동이 인간적 행위로 평가 될 때를 말한다. 따라서 죄의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죄행보다는 죄스러운 인간, 불행한 인간 의 상태를 더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울러 죄는 단순히 인간의 유한성이나 한계성에 의한 표현이나 인간 삶의 비극적인 진행에 의한 결과 또는 현상이 아니라, 다만 그 깊이를 마지막까지 헤아려 볼 수 없는 신비의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죄는 윤리 규범이나 계명의 위반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더 원초적으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단절을 통해서 체험되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죄의 본질과 현상을 올바르게 해명할 수 없다.
[성서적 의미] 죄에 대한 명백하고 완벽한 이론을 성서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죄와 악은 성서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하느님께 등을 돌려 멀어져 가는 역사이며, 동시에 은총을 받아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역사이기도 하다. 성서는 하느님이 인간들의 역사 한가운데서 당신의 구세사를 전개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죄의 현실과 세력이 성서에는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성서는 죄의 본질을 항상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라는 틀 안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죄는 하느님에 대한 반역이며 불충실이고, 하느님에 대한 반항으로 보고 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특히 3-11장까지에는 죄가 무엇인지 전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즉 인간이 하느님과 가졌던 본래의 관계가 깨어지는 극적인 상황을 묘사한 태고사(太古史)인 것이다. 원조의 범죄(原罪, peccatum originale]는 겉으로는 하느님의 금기 계명을 어긴 것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윤리적 자율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아담과 하와가 만사를 다 알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스스로 정하고 거기에 따라 살고자 했던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인간이 용납될 수 없는 자기 주장을 하느님께 내세운 것이며, 하느님만이 가지시는 최상권에 반항한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께 순명하는 순진함을 벗어 던지고 피조물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느님처럼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하느님에 대한 반항이고, 하느님에 대한 불경, 불충, 부정이며, 죄의 근원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악한 마음에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죄란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하타' (חֵטְא)는 목적을 상실하는 것, 알고있는 길을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죄는 규율의 회피 내지 위반이며, 야훼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 또는 하느님에 대한 증오이다. 죄에 대한 구약성서의 가장 특징적인 관점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 관계에 있다. 따라서 죄는 계약의 하느님에 대한 망각, 하느님과의 결별이며 그분에 대한 배은망덕이라 보았다. 그리고 구약성서는 인간의 공통적인 윤리 의식을 하느님과의 관계에 비추어 이 관계에 어긋나는 행동을 죄로 판단하고 있다.
구약에서 죄라는 개념은 구세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죄악을 극복할 수 없음을 구약성서는 분명히 하고 있으며, 하느님이 개입하여 인간을 깨끗이 씻고 소생시키고 새로이 창조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시편 51). 이러한 사상이 신약에 그대로 나타나며 더 발전되고 있다. 신약성서가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가를 알려면 그리스도의 육화를 언급해야한다. 즉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그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어린 양으로 죄인을 부르러 왔으며, 이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 우리에게 생명을 되찾아 주었다. 즉 인간의 죄로 인한 하느님과의 계약의 단절을 회복시킨 것이다.
신약성서는 구약의 용어들을 이어받아 사용하면서도 그리스 문화권의 죄 개념들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죄악들' (ἁμαρτία, ἁμάρτημα), '경거망동' (ἀσέβεια), '죄-탓' (πονηρία), '불법 · 무법 행위' (ἀνομία) , '과실' (παράπτωμα) , '위반한 행동' (παράβασις) , 불의 . 불경' (ἀδικία), '죄'' (ἁμαρτία)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공관 복음은 주로 '죄악들' (ἁμαρτία, ἁμάρτημα : 인류의 죄)이라는 표현을 쓴다. 요한과 바오로는 단수로 '죄' (ἁμαρτία)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즉 개개인의 범죄 행위 뒤에는 구원의 반대인 악과 고통과 불행의 상황, 인류 전체와 인간 개개인을 짓누르는 죄에 빠진 상태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힘만으로는 그 처지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악의 세력을 죄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전반에 걸쳐 인간에게 죄를 뉘우치고 마음과 생활을 고치도록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윤리적인 것으로 생각함으로써 죄의 개념을 정화시키고 심화시켰다. 죄는 하느님께 대한 배은망덕의 결과이며, 애덕의 반대, 사랑의 거역으로 나타난다. 바오로 서간은 죄의 성서적 개념에 몇 가지 관점을 첨가하였다. 바오로는 인간의 타락상에서 하느님 공경의 거부, 사람이 자기를 주인으로 삼으려는 무례한 시도를 발견하였다. 따라서 바오로에게 있어 죄인은 하느님을 미워하는 자로 하느님 나라에서 제외된 상태이고, 죄는 성령을 상실한 상태이다.
〔신학적 개념] 죄는 인간의 자유롭고 근본적인 결단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탓을 돌릴 수 는 없다. 죄의 원인은 자기 자신 속에, 자기의 자유 의지에서 찾아야 한다. 즉 인간이 지닌 자유 의지의 특성 안에는 죄의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인간은 모든 자유로운 행동에서 필연적으로 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악을 행할 때에도 그것이 선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행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참된 선을 거절하고 선으로 착각한 죄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의 양심의 밑바탕에서는 그것이 일시적이고 무가치한 선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부족한 이성과 의지로 인하여 무한한 선을 충분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 죄 안에 들어 있는 모순이다. 모든 죄는 하느님을 거스르고 이웃과 인간 공동체를 거스르고, 죄인 자신을 거스르는 3중적 해악을 가져온다.
하느님에 대한 거부로서의 죄 : 죄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계획에 대한 거부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의 종교적 성격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있으며, 죄의 그러한 성격을 배제해 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죄의 개인적 · 사회적 성격들은 그것들의 기초가 되고 순수한 가치 기준이 되는 종교적 특성에서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죄인이 범하는 죄, 즉 하느님과 자기의 목적에 대한 거부는 하느님과의 근본관계를 방해하거나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가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역이라면 무신론자나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죄는 하느님을 거슬러범하는 신학적 죄인가, 아니면 윤리적 · 철학적 죄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인간의 궁극 목적은 하느님께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신론자도 누구나 양심을 통하여 알게 되는 이 궁극 목적에 어긋나는 죄를 범하면 결국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범하게 되는 것으로 보다 순전한 철학적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죄의 사회적 성격 : 많은 죄들이 이웃들에게 직접, 간접으로 해를 끼치고 있다. 아주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 죄들도 모두 미묘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해를 끼친다. 모든 죄는 사회의 궁극적 과업을 성취하는 데 장애가 된다. 생각이나 욕망과 같은 내적인 죄들도 그 즉시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사회에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이웃과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대한 가르침은 죄의 사회적 성격을 입증해 주는 또 하나의 이유를 보여 준다. 즉 각 개인이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에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죄에 병들어 있는 지체는 은총의 생명을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죄의 개인적 성격 : 인간은 자기가 태어난 궁극 목적이 아닌 것에서는 행복과 자기 성취를 얻지 못한다. 죄를 범함으로써 인간은 궁극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며, 다른 목적들에 더 마음을 씀으로써 궁극 목적을 망각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창조된 자기 존재의 구조를 무시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영적인 인격을 파괴하게 된다. 또한 죄는 자기의 충분한 성장과 완성을 거부하는 것이며, 결국 하느님이 마련하신 길을 걷지 않음으로써 자기의 참된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구 분] 죄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실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죄의 구별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끊임없이 존재하여 왔다. 이단자인 펠라지우스(Pelagius, 354?~418?)의 윤리관은 죄의 경중을 인정하지 않으며, 16세기의 종교 개혁가들도 모두가 죄이지 대죄나 소죄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죄 구분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교회 생활 내에서 발전되어 왔다. 이를 교도권이 받아들인 것이다. 뵈클레(F.Böckle) 신부는 교회 전통이 성서의 죄 구별과 더불어 늘 대죄와 소죄를 구별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윤리 신학도 마땅히 교회의 전통에 따라 죄의 구별을 해야 한다고하였다. 즉 고해성사에서의 죄의 평가를 위해서도 죄의 구별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 교회가 별도로 죄의 구별을 정식으로 정의한 일은 없다. 다만 스콜라 신학자들이 죄의 구별의 사변적 토대를 놓았고, 교회는 이들의 용어를 사용해 온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대 · 소죄 구분은 변함없이 주장되고 있다. 또 인간의 죄의 경중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죄의 이해를 더 깊이 할 수 있다.
성서에서의 구분 : 인간이 저지르는 죄가 구분된다는 것은 성서에 암시되어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과의 사랑의 계약을 파기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파괴하여 은총을 상실하게 하는 죄가 있다(신명 27, 15-26 : 호세 4, 14 ; 이사 35, 15 이하 ; 에제 18, 5-18 ; 22, 7-12 ; 레위 18 ; 예레 7, 9-15 : 에제 18, 5-8 ; 22, 6-16). 반면, 앞의 죄보다는 가볍게 생각되며 속죄가 가능한 죄가 있다(레위 4-5). 신약성서에서도 마땅히 죽어야 할 죄들과 하느님 나라에서 제외되는 죄들(마태 25, 41-46 1고린 6, 9-10 ; 갈라 5, 19-21 ; 로마 1, 24-32 ; 13, 13 ; 1요한 3, 14 ; 에페 4, 17-19 ; 5, 3-5 ; 골로 3, 3-11 ; 1디모 1, 9 이하 ; 2디모 3, 1-5 ; 1베드 4, 3 ; 2베드 2, 12-22 ; 유다 10-16 ; 묵시 21, 27 : 22, 15)이 있다. 요한은 이러한 죄를 '죽을 죄'〔死罪)라고 부른다(1요한 5, 16-17). 다른 한편 가벼운 죄들이 있다(마태 6, 12 ; 루가 11, 4 : 야고 3, 2 ; 1요한 1, 8-10 ; 1고린 3, 10-15). 이상의 죄에 대한 성서 구절들은 대죄와 소죄를 구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하는 모든 이들이 구원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성서에서는 대죄와 소죄의 엄밀한 구분이나 그 경중의 중간 단계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성서 구절들로부터 죄의 차이와 '사죄' (死罪)라고도 불리는 '대죄' (大罪, peccatum mortale)와 '소죄' (小罪, peccatum veniale)의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인 가르침 : 고대 교회에서 죄를 구분하는 기준은 걸림돌(scandal)이 되는 행동과 교회의 진실성과 사명에 끼친 해독에 있었다. 초대 교회에 이르러서는 항상 하느님 나라에 위배되는 죄 목록을 선포하였으며, 내적인 죄도 대죄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6세기경부터는 고해성사에 의한 죄의 용서가 자주 이루어졌고 죄의 목록도 많아졌지만, 고백해야 할 모든 죄가 대죄라고는 하지 않았다. 고해성사 제도가 유럽 대륙에 확장되면서 8~9세기의 신학자들은 주관적이고 내적인 면에 더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점차 '마음의 회개' 가 강조되었다. 이와 더불어 객관적인 면에서 고해성사에 의한 속죄 행위가 부과되었다. 10~13세기의 많은 신학자, 대표적으로 아벨라르(1079~1142)와 보나벤투라(1217?~1274)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내적인 면의 중요성에 관심을 둔 반면, 교회법 학자들은 정확하고 외적인 제재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한편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에서 죄는 우선 '원죄' 와 '본죄' (本罪, peccatum personale)로 구분된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에게 굴복함으로써 지은 죄이다. 그런데 이 죄가 타락한 상태로 전달된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 원죄는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다. 하지만 하느님 자비의 주도적 간여와 인간 마음의 회개가 필요한 본죄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는다. 각 인간이 저지르는 본죄는 대죄와 소죄로 구분할 수 있다. '대죄' 란 중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하느님의 법을 완전한 지식과 완전한 동의를 갖고 고의로 어기는 것이다. 이때의 중대한 문제란 심계명 안에 구체화되어 있다. 그리고 '소죄' 는 중대한 문제에 관한 하느님의 법을 완전한 지식 없이 불완전한 동의로 어기는 것이다. 즉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도덕률은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였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 이루어진 죄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정의에서는 일의 객관적 중요성에 따라 죄를 정의하는 것에 첫 번째 이유를 두고 있으며, 행위의 주관적인 면은 2차적인 이유로 보고 있다. 하지만 외적인 면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죄의 정의는 성숙한 양심 형성을 위해서는 매우 적합치 못하다. 이러한 정의는 죄 정의에 있어서 객관적인 면만을 치중하여 이완주의(laxism)와 엄격주의(ngonsm)가 되기 쉽다. 또한 죄인의 주관적인 면에 있어서는 완전한 인식과 자유가 알 수 없는 문제이므로 수많은 자기 변명의 구실을 만들어 주게 된다.
현대 신학자들의 입장 : 현대에는 전통적인 구분만이 아니라 죄를 더 세분하여 '대죄' 와 '소죄' 그리고 '중죄' (重罪, peccatum grave)로 나누고자 시도한다. '대죄'는 하느님에게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이고, '중죄' 는 가치 감각의 부족이나 윤리적 능력의 결여 등 어떤 나약성에서 오는 중대한 위법이며, '소죄' 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잘못이다. 대죄와 대죄가 아닌 죄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죄가 아닌 죄들인 중죄와 소죄는 구분되긴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며, 소죄는 얼마든지 중죄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소죄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헤링(B. Häring)은 중한 소죄(grave venial sin)와 가벼운 소죄(light venial sin)로 소죄를 구분하고 있다.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그리로 나아가는중에 있는 소죄들이 있는 반면, 진실되이 하느님께로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잠시 나약하게 되어 짓게 되는 소죄들이 있는 것이다. 실천적인 면에서 죄를 구분한다는 것은 참으로 모호하다. 왜냐하면 죄는 객관적인 면으로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죄와 소죄의 구분은 죄인의 주관적인 상태에 달려 있으므로 하느님과 당사자 외의 제3자가 그 죄인의 죄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윤리신학이 특정한 범죄의 경중성을 다룰때에는 궁극 목적의 실현에 끼치는 객관적 방해에 대해서만, 즉 그 방해의 크고 작은 정도에 대해서만 본다. 죄인의 주관적 상태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그가 처한 구체적 조건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죄의 구분은 죄인 자신에게 맡겨진 문제이고, 공동체가 죄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죄인의 죄가 신앙의 공동체에 해를 입힐 때뿐이다.
죄의 구분 요소 : 죄에 대한 현대의 새로운 연구는 근본 선택(fundamental option) 이론에서 특별히 도움을 얻고있다. 근본 선택 이론은 죄를 구분할 때 행위에 있어서 '최후 결단' 이나 '기본 선택' 의 유무를 따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죄는 자신의 전생애를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갈 만큼 강한, 윤리적으로 악한 결단이다. 그리고 소죄는 자기 인생의 참된 목적을 실제로 거부하지는 않지만, 비고 정적으로 자기의 올바른 인생 계획에 어긋나는 행동을하는 윤리적으로 악한 결단이다. 따라서 오늘날 죄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① 인식 : 인간의 인식이란 항상 여러 가지 면에서 제한되어 있고, 항상 완전한 지식을 추구한다. 즉 인간의 지식에는 단계가 있고 차도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가 되는 행위를 할 때 그 행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면, 분명히 죄의 중대성이 작고 소죄가 될 것이다. 반대로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죄가 되는 행위를 한다면, 죄의 중대성은 크고 대죄가 된다. 인간의 인식이 죄의 정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피상적인 관계에 있는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② 의지 : 대죄와 소죄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죄를 원한 강도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를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이성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다.
③ 범죄 내용(죄질)의 중요성 : 중요한 일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죄를 지으면 그것은 대죄가 되고, 반대로 사소한 일에 있어서 소극적으로 죄를 지으면 소죄가 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이라도 죄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면, 즉 하느님이 객관적 질서로 정해 준 인생의 목적과 인간의 순수한 사명을 중대하게 거스르고 방해한다면 대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이라도 사소한 일로 생각하는 모순과 무질서를 범할 때에는 소죄가 될 수도 있다.
④ 인격과 본능 : 윤리적인 행동에 있어서 인간 안의 인격의 완성과 본능 사이의 대립 양상은 여러 가지로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드러나는데, 첫째는 본능이 인격에 앞서는 경우로, 이 경우에 성립되는 죄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으며 인격 자체에 큰 손상을 주지 못한다. 둘째로는 본능이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자유 의지가 뚜렷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성립되는 죄는 죄인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어 주고 죄의 심각성은 매우 커지게 된다.
〔죄의 결과] 자유 의지의 방향 상실 :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피조물의 선익에 집착한다는 것으로, 하느님이 세우신 질서를 위배하며 그분의 사랑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죄의 상태에 머물 때, 그는 궁극의 선으로 향해야 할 자신의 자유 의지를 그릇된 방향으로 잡아놓게 된다. 왜냐하면 죄의 상태에 빠져 초자연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자신의 본성적인 사랑이 다시 초자연적 사랑 안에 포함되지 않는 한 그분을 본성적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고 계속 죄의 상태에 머물게 되면, 그 범죄 행위는 범죄 성향(犯罪性向, dispositio peccaminosa)으로 변한다. 사랑이 한 인간 실존 전체에 미칠 때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죄 역시 뉘우침 없는 최후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죄책 : 죄책(罪責)은 잘못을 저지른(reatus culpae) 상태이거나 조건이며, 그로 인해 초자연적인 삶을 상실한, 즉 영혼에 있어 하나의 흠으로 인해서 광채가 사라진(ma-cula peccati) 상태이거나 조건이다. 또한 잘못에 대한 벌로 기인한 형벌에 책임이 있는 존재의 상태나 조건이다(rea-tus poenae) . 말하자면 죄책은 어떤 이가 행한 죄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책은 죄책감과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윤리적 죄책에서 죄책감이 비롯된 것일 수도 있으나, 심리학적으로 병적인 것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있기 때문이다. 모든 죄책감이 병적인 것은 아니다. 또 한편으로 모든 윤리적 죄책은, 특히 양심이 무딘 사람일 경우에, 항상 죄책감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죄벌 : 죄의 벌[罪罰]은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즉 영벌(永罰)과 잠벌(暫罰)이다. 대죄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고의적으로 단절하여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하느님은 인간들의 사랑과 구원의 근원이기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영신적 죽음' 으로서 영벌이 된다. 소죄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곧은 길로 가지 못하고 종종 옆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잘못에는 본인이 바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기간이 늦어지거나, 더 큰 어려움이 생기는 형벌이 알맞을 것이다. 이것이 '잠정적인 벌' 인 잠벌이다.
이러한 죄벌을 하느님이 내리는 외적인 처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떨어지는 죄벌은 우리 '자신' 인 것이다. 인간은 선 자체인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스스로 저지르는 죄로 인하여 선을 지향해야 하는 인간 자신의 존재에서 멀어지게 되고, 그 존재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스스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 대죄 ; 본죄 ; 사죄(死罪) ; 소죄 ; 죄인 ; 중죄 ; → 고해성사 ; 벌 ; 사죄(赦罪) ; 영벌 ; 잠벌 ; 죄종)
※ 참고문헌  K.H. Peschke, Christian Ethics. Moral Theology in the Light ofVatican Ⅱ, vol. I,C. Goodlif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77(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I》, 분도출판사 1990)/ F. Böckle, Grund-begriffe der Moral, Pattloch Verlag, Aschaffenburg 1966(성염 역, 《기초윤리신학》, 분도출판사, 1975)/ P. Schoonenberg, Theologie der Siinde, Benzinger Verlag 1966(조정헌 역,《인간과 죄》, 분도출판사, 1978)/ 최창무, 《윤리신학 I), 가톨릭대학 출판부, 1989/ 김경환, <죄에 대한 신학적 소고>, 《신학 전망》 34호, 1976, pp. 3~13. [金政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