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敎會論

〔라〕ecclesiologia · 〔영〕ecclesi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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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 실재와 비가시적 실재의 조화가 교회의 본질이다.

가시적 실재와 비가시적 실재의 조화가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신학의 한 분야. 교회론이 신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5~16세기경이다. 그 이전까지 교회는 신앙을 수용하고 전수하는 주체로서 신앙의 학문인 신학을 전개 하기 위한 근거요 전제였을 뿐, 교회 자체를 탐구의 대상 으로 삼거나 객체화시키지는 않았다. 교회론이 신학(특 히 교의신학) 안에서 오늘날과 같이 독립된 분야의 과목으 로 교회에 관한 고유한 주제들을 다루기까지는 상호 유 기적으로 연관된 3단계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쳤다. 첫 번째 단계 : 교회의 초기 교부들부터 중세의 초기 까지는 교회 자체를 대상화시켜 성찰하는 고유한 신학 분야로서의 교회론은 없었다. 교부나 중세 초기의 신학 자들은 교회를 총체적인 신학적 성찰을 조건짓고 규정하 는 주체요 규범으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전체적인 계시 역사(구세사)의 빛 안에서 파악하 고 조명하였다. 특히 교회를 영(πνευμα) 안에서 혹은 영 을 통해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으로부터 이 해하려 하였다. 그들은 영 안에서 믿는 이들의 친교 공동 체(εκκλησία)인 교회가 새로운 존재의 장(stadium)이요, 세상 안에 하느님의 약속이 채워지는 징표가 된다고 보 았다. 이처럼 교회는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로부터 세 상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선사된 구원의 선포, 구원의 현존으로 자신을 이해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론을 명시적 그리스도론과 삼위 일체론의 전제로서 그 과목들 안에서 다루었고, 별도의 분야로 다루지는 않았다. 교부들에게 성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하고 있 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교부들은 성서의 비유로-백성, 몸, 성전, 집, 신부(新婦), 양 떼, 포도나무, 산 위의 도 성(都城), 왕국, 들판, 그물 등 -교회를 설명하려 했다. 교부들은 이런 비유들로 교회가 종말론적 구원의 선취 (anticipatio)요, 구원의 현존임을 설득력 있게 서술하려 하 였다. 교회에 관한 이러한 서술들에 일관되는 핵심적인 신학적 주제들은 영(pneuma)과 감사의 성찬(eucharistia), 영적인 어머니로서의 전체요 보편적인 교회, 개별 교회 들 사이의 사랑과 평화와 일치, 주교들의 단체성(collegialitas), 그리고 교회의 목자로서의 교황에 관한 문제들 이었다. 이것으로 뒤에 독립된 과목인 교회론 안에서 다 루게 되는 중요한 기본 주제들을 이미 이때에 언급했음 을 알 수 있다. 중세 초기의 신학자들은 이렇게 구원 역사와 감사의 성찬으로 보는 교부들의 교회론을 이어받는다.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회가 그리 스도의 신비(mysterium) 안에서 다루는 예가 바로 그것이 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신비라 는 맥락에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 인 교회에 관한 신학을 전개하였다. 결국 중세 초기의 교 회론은 이러한 의미에서 신학적이요 그리스도론적이며 종말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두 번째 단계 : 교회를 대상화하여 성찰하는 신학의 독립된 고유 분야로 교회론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교부 들은 교회가 그 자체로 세상 속에서 구원의 성사적 현존 이기에 총체적인 구세사적 관점에서 다루었을 뿐, 보편 적(universalis) 조직체로서 교회의 구조(교회의 가시적이고 외적인 형상)를 본 것은 드물었다. 그러나 교회가 맞게 되 었던 안팎의 여러 상황들 - 동서 교회의 분열, 재일치를 위한 687년의 제2차 니체아 공의회, 그레고리오 교황의 대개혁 이후 교회와 국가 사이에 야기된 대립의 첨예화 등 - 은 교회로 하여금 보편 교회(Ecclesia universalis)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보편 교회 는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와 연결되고, 로마의 교회가 전 체 교회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런 서술들 가운데 교황 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로 부각 되었다. 즉 구세사적 견지에서 교회는 종말론적 구원의 현존보다는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통치 아래에 있는 '조직화' 된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교회의 구조적 이고 가견적인 요소들이 15세기에 신학적으로 주제화되 었고 '교회론' 이라는 독립된 과목(De Ecclesia Catholica Romana)으로 등장하였다. 즉 세속적인 영향과 황제의 권 한에서 해방되고 독립하기 위해 교황의 입지를 더욱 강 화하면서 '완전한 사회' (Societas perfecta, 제1차 바티칸 공 의회의 교회에 대한 정의)인 교회에 대한 신학적 숙고가 이 때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로써 교회를 구세사적 · 구원 론적으로만 서술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 교회의 일치와 정통성을 위해 구조적 · 제도적인 면모를 설명해야 할 필 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한편 교회를 대상화시켜 독립 학문 분야로 탐구하는 데는 교회의 구조와 그 직무의 초자연적 규정에 대한 외 부의 거센 비판이 한몫을 차지했다. 이미 12세기에 영성 주의자(spiritualist)들과 이원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은 교회 의 구조나 제도 등 교회의 시공성이나 가시적 요소를 부 정했다. 이 주장은 그 후 종교개혁과 이성주의(rationalismus)에서 더욱 발전 심화되어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그 리고 교회에 대한 거센 외적 비판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 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더욱 깊이 하도록 하였다. 종교 개혁자인 후스(Hus)나 위클리프(Wyclef) 등 영성주의자들은 아우구스티노의 입장 을 일방적으로 해석하여 교회를 영적 으로만 파악하였다(Ecclesia praedestinatorum).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의 교회적이 며 사회적인 실재의 의미를 축소하거 나 거부하려 했다. 이런 주장에서부터 교회의 구성원 문제가 첨예하게 등장하였고, 그에 대 응하여 교회의 구성원은 반드시 가시 적이요 역사적인 교회의 유기적 구조 (organismus)에 속해야 함을 신학적으로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교회의 가시적 구조와 제도를 통한 구원의 중재에 대 한 밖으로부터의 거센 비판은 결국 신 학에서 교회를 정의할 때 은총의 실재 로 파악하기보다는 법적이요 가시적인 실재를 더 강조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 았다. 이 과정에서 교회론이 다루는 주 제들은 양적으로 점점 늘어났다. 그러 나 질적으로는 교부들이나 중세 초기 의 구세 경륜적 사고에 비해 매우 미약 해졌다. 이로써 당시의 교회론은 교황 의 교도권과 교계 제도를 설명하는 정 도로 축소된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하였 다. 세번째 단계 : 프랑스 혁명에서 최고 조에 달한 교회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 이후 19세기에 신학적 쇄신 작업의 과 정을 거치고 난 뒤에 오늘날 교회론의 주제들이 등장하였다. 신학적 쇄신 작 업은 독일의 튀빙겐(Tübingen) 학파에 서 먼저 주창하였다. 그들은 성서와 교 부들의 전통에 대한 성찰을 통해 교회 를 우선적으로 교도권이 전면에 부상 된 가시적이요 교계 제도적인 사회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이루 는 유기적 삶의 친교로 서술하려 했다. 즉 교회를 그리스 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 Christi)란 측면에서 조망하 려 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음 에도 교회의 시공성과 가시적 측면을 간과한 낭만주의적 사고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쇄신의 노력은 그 이후에도 포괄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레오 13세의 회칙 <교회 일치>(Satis Cognitum) 에 신비체에 관한 신학이 수렴되어 교회를 우선적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행위에서부터 파악하고 서술하려는 입장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비오 12세의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 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분명히 했다. 즉 교회의 머 리는 그리스도이며, 교회 안에는 가시적이고 사회적이고 유기적인 실재가 내포되어 있고, 그 실재를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원리가 성령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회칙은 교회의 가시적 실재와 비가시적 실재를 조화시키 고 교회를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 으로 정의함으로써 중세 이후 교회의 역사화 과정에서 강조되는 교회의 구조적 측면을 배제하지 않은 채, 성서 와 교부 그리고 중세 초기의 전통을 재평가하고 수용한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탐구는 교회를 성사(sacramentum), 친교 공동체(commmuio), 그리고 신비(mysterium)로 정의하 는 이해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교회 생활의 쇄신 과 연결되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를 정의하려는 움 직임이 성서에 근거를 두고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성찰과 쇄신의 노력들이 어우러져 열매 를 맺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이다. 공의회는 성서와 교부들의 전통을 재수용하면서 교회를 세상을 향한 구원의 성사(Sacramentum mundi)이며, 구원 을 향한 순례의 여정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이 살아 있는 성전, 믿는 이들이 모여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공동체로 규정하였다. 교회에 관한 공의회 의 이러한 서술들 속에는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비가시 적 실재와 가시적 실재를 조화시켜 성서와 교부적 전승 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동시에 역사적 전통의 유산을 포 함하는 종합으로서의 교회론이 자리잡고 있다. 공의회 이후 교회론의 발전 속에 일단의 교회론적 양 극화 경향(교회의 가시적 실재나 비가시적 실재 중 하나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려는 입장)이 다시 대두되는 듯 보이 기도 하지만 오늘날 교회론의 자리요 과제는 이 두 실재 를 조화시키고 보충하여 교회론적으로 종합하는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회론은 역사가 변천하면서 서서히 독립된 고유 분야로 신학 안 에 정착되었고, 이렇게 구분된 교회론은 교회의 자기 이 해와 세상 속에서의 자기 실현을 위해 교회를 대상화시 키고 그와 관련된 모든 문제와 주제들을 중점적으로 다 루는 신학의 고유 분야가 되었다. (→ 교회) ※ 참고문헌  O. Semmelroth, Ekklesiologie, 《LThK》 3, Sp., pp. 781~787/ M.J. Guillon, Ekklesiologie, in : K. Rahner Hrsg., Theologisches Taschenlexikon 2, Freiburg, 1972, pp. 113~118/ WI Löser, Ekklesiologie, in : W. Beinert Hrsg., Lexikon der katholischer Dogmatik, Freiburg, 1987, pp. 116~117/ M. Kehl, Die Kirche, Eine katholische Ekklesiologie, Würzbrug, 1992/E. Klinger, Ekklesiolgie der Neuzeit, Freiburg, 1978/ 심상태, <하느 님 나라로서의 교회>, 《한국 교회와 신학 -전환기의 신앙 이해》, 성 바오로출판사, 1988, pp. 63~151/ 임병헌,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교회 론적 기초>, 《가톨릭 신학과 사상》 8, 가톨릭대학 출판부, 1992, pp. 71~89. 〔林炳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