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종 罪宗 [라]Peccatacapialilia [영]Capital 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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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많은 죄의 근원이면서 악습을 만드는 죄들.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부 시대부터 주요 죄들의 목록을 만들고, 그것을 '죄종'('죄종 혹은 '죄원' (罪源)이라고 불렀다. 죄종은 언제나 중죄라는 의미는 아니며, 다른 많은 죄의 근원이 되고 악습이 된다는 의미이다.
[죄의 원인] 외적 원인 : 성서에는 하느님이 마치 죄의 원인인 것처럼 묘사된 내용들이 있다(출애 4, 21 ; 7, 3 ; 9, 12 : 10, 1. 20. 27 ; 11, 10 ; 14, 8 : 아모 3, 6 : 4, 13 ; 이사 45, 7 ; 욥기 1, 21 : 2, 10 ; 집회 11, 14 ; 2사무 24, 1 ;로마 9, 18 등).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이 저지르는 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죄의 원인이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죄에 대한 초월적인 역할을 의미한다. 즉 하느님은 죄를 범하는 것들의 존재를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는 데 있어, 피조물이기에 완전할 수 없다는 의미의 물리적인 악과 당신의 정의를 드러내기 위한 형벌이란 의미에서 악을 의도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악들은 그분의 명예와 영광에 직접적으로 반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들의 자유로운 행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인간들에게 자유를 준 그분의 사랑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오며, 그분에게로 돌아가게끔 만들어졌고, 그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졌다. 이처럼 그분은 당신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였기에, 어느 것이라도 당신을 미워하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하느님은 피조물이 당신을 거스른다는 의미의 죄를 짓는 것을 직접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다.
악마는 분명 죄의 원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성서는 악마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를 하는데, 성서에 의하면 악마는 실재(實在)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악마 역시 인간의 의지에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 그들은 다만 인간의 내부적 감각(intemal sense)에 작용하여 악한 생각을 일으키고, 관심을 부정한 기쁨에 두게 함으로써 인간을 죄로 유혹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유혹이 악마적인 행위로 설명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 구원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유혹은 어떻게든 악마와 연관되어 있다. 악마는 인간을 악에로 내던진 원죄를 야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기에, 모든 죄의 간접적이고 부분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타인을 죄로 이끌려는 고의적인 노력(죄로의 유인)을 하거나, 타인에게 죄의 기회를 제공하는 마땅찮은 행동(악표양)을 하거나, 타인의 죄에 물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참여(타인의 죄에 대한 협력)함으로써 죄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세상' 을 죄의 원인 중 하나로 보는 의견도 있다. '세상' 이란 다른 말로 '죄의 기회' 로서 외부에서 오는 유혹의 기회들이며, 범죄할 위험을 야기하는 일정한 상황, 즉 인물, 사물, 시간과 장소의 환경을 지칭한다.
내적 원인 : 죄의 내적 원인은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죄는 물리적 실체라는 의미에서 질료적인 면이며, 무질서라는 의미에서 형상적인 면이다. 질료적인 면에서의 죄는 직접적인 유효한 원인이 있어야 하며, 이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죄에 있어서 형상적으로 악한 것의 원인을 명확히 하는 것은 더 어렵다. 죄로 인해 야기되는 무질서는 반드시 현존해야 할 것이 결핍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엔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죄로 인해 성립되는 악은 그 자체로 탐낼 만한' (per se appetible)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형상적 원인은 직접적으로 악이나 무질서와 관련된다기 보다는 그것들을 수반하는 어떤 긍정적인 목적에 연관될 것이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의지이다. 의지가 자신의 방향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되는 이유로는 의지 자체의 결함(악의), 이성에 있어서 지식의 결핍(무지), 감각적 의욕의 결핍(나약함) 등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외부에 있는 것들만이 인간을 죄짓게 하는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 외부의 것들이 위험한 이유는 인간 내부의 요소들이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 의지를 정말로 유인하는 것은 사악(邪惡)으로 기울어지는 인간 내심의 경향이기 때문이다.
[칠죄종]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 시대부터 일곱 가지 중요한 죄종, 즉 일곱 가지 대죄라는 것에 관해서 논의하였다. 이를 칠죄종(七罪宗)이라 한다. 대죄는 창조된 선, 즉 피조물들에게로 향하는 초자연적 최후 목적에서 이탈함으로써 성립되기 때문에, 모든 대죄 중에는 교만(Supetidia(驕慢)과 욕정(Concupiscentia, 欲情)이 있다. 그래서 교만과 욕정을 공통의 악덕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 두 가지로 일곱 가지 죄종을 요약할 수 있다.
교만 : 이는 겸손의 덕에 반대되는 것으로, 자기 소질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이다. 교만(驕傲〕은 자신의 인격에 대한 높임으로,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난 자로 자처하며 무질서하게 행동하면서 명예 · 직위 · 명성 등에서 어떤 특수한 우월성을 탐하는 것〔貪位)이다. 따라서 교만은 그 자체로 사랑에 반대가 되며, 교만한 자는 하느님에 의해서 자신에게 실제로 주어진 것 이상으로 자신을 높이는 것이기에 교만에는 하느님께 대한 멸시가 포함되어 있다. 결국 하느님과 그 계명에 예속되기를 거부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며, 하느님께로 지향해야 하는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대죄가 된다. 하느님을 경시할 지향 없이 행위가 함축적인 경우에도 대죄이며, 숙고의 불완전성과 가벼운 소재인 경우에는 소죄가 될 수도 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하면, 네 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교만의 죄가 있다. 먼저 어떤 사람의 선을 하느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다고 추정할 때이다. 둘째, 하느님에 의해서 받았지만 자신의 공로 때문에 받은 것으로 추정할 때이다. 셋째,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선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경우이다. 넷째, 자신이 갖고 있는 선에 대해서 실제 가치보다 높이 평가하기를 원하는 경우이다.
교만에서 나오는 죄들에는 '자만(自慢), 야심(野心), 허영, 자기 자랑, 과도한 치장, 이유 없는 고집, 말다툼' 등이 있다. 그중에서 '허영' 은 영광과 명성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로, 다른 사람 앞에서 헛된 표현과 평가를 하려는 욕구이다. 허영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그 자체로 영광이 아닌 것 혹은 미미한 것에 대해서 영광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는 악한 일, 거짓, 가장된 것, 방탕한 일 등이 있다. 둘째는 영광되지 못한 것에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광을 정당한 목적, 즉 하느님의 영광이나 이웃의 구원 그리고 자신의 유익에서 찾지 않는 것이다.
인색 : 이는 재물에 대한 무절제한 욕구로서, 정당한 이유나 목적 없이 세상 물질에 대해 지나친 애착을 가지는 것이다. 많은 것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물질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나쁜 것이다. 특히 인색[Avaritia, 慳吝]은 관후(寬厚)와 공명(公明)의 덕에 반대되며,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즉 불법적으로 재물을 보유하려는 욕구와 일반적인 재물에 대한 무질서한 애착이다. 인색에서 나오는 죄는 모반(謀叛), 사기(詐欺), 위증(僞證), 폭력(暴力),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무정(無情), 동요(動搖), 재물에 대한 과도한 염려 등이다. 그러므로 탐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천상 재물을 추구해야 하며, 지상 재물의 헛됨과 그리스도의 가난을 묵상해야 한다.
음욕 : 성적 쾌락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로서, 합법적인 혼인 외에서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무질서이다. 또한 사랑과 생명의 신비를 더럽히고, 영적인 사랑에 불감증을 일으키며, 참사랑의 능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욕(Luxuria,迷色)은 정결덕에 반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음행은 육체의 쾌락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하게하고, 하느님께 대한 증오를 가져오고, 쾌락 때문에 현세에 대한 맹목적이고 과도한 애착심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영적인 일에 대한 염증을 초래하고, 미래 세계에 대한 공포와 실망을 초래하게 된다.
탐욕 : 음식이나 술에 대한 무질서한 욕구로서, 이성의 판단이나 윤리적 자유를 상실하게 하여 인간의 품위를 하락시킨다. 먹고 마시는 본능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이성에 의해서 조절되어야 하고 때로는 절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제나 조절이 되지 않고 무질서하게 탐닉할 때, 영혼과 육체에 해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탐욕[Gula, 貪饕〕은 절제의 덕에 반대되는 것이다. 또한 탐욕은 무절제한 음식의 섭취로 정신력을 약화시키고, 이성에 의한 통제를 마비시키며, 게으름과 건강의 상실을 초래하여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실추시킨다.
질투 : 다른 사람의 선에 대한 비관이나 비난으로서 , 다른 사람의 선을 마치 자기의 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선을 자신의 품위를 격하시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질투(Invidia,嫉妬)는 원칙적으로 대죄이며, 사랑에 위배되는 죄이다. 원래 사랑은 이웃의 선에 대해서 기뻐하지만, 질투는 비애를 갖는다. 질투에는 다섯 가지 죄, 즉 증오(憎惡), 훼방(毁謗), 비방(誹謗), 이웃의 불행을 기뻐함, 이웃의 행복을 슬퍼함 등이 따른다. 또한 질투는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갈라 5, 21) 다른 사람의 멸망을 원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선을 기뻐해야 할 사랑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성적인 선을 시기한다면, 그것은 형제적 사랑의 시기이기에 성령께 대한 큰 죄악이 된다.
분노 : 타인을 벌하고자 하는 무질서로서, 욕구와 함께 싫어하는 감정을 무절제하게 터뜨리는 것이다. 분노(Ira,憤怒)는 인내와 온유에 반대되는 것이다. 분노가 올바른 이성에 따라 다른 사람의 잘못을 깨닫도록 하려는 정의의 실천을 위한 격정(激情)일 경우에는 악이 아니고 중립적인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경우에는 악이 된다. 즉 보복을 합법적인 질서에 따르지 않고 자기의 권위로 하거나, 정당한 목적이 아니라 증오심에서 보복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분노가 내적으로 과도하거나 외적으로 과도하게 표현될 때, 즉 모독이나 저주 그리고 악한 표양과 함께 표현될 때 악이 된다. 분노는 불평불만, 모욕, 악담, 언성을 높임, 욕설, 폭행, 싸움 등을 초래한다.
나태 : 육체적 · 영성적 수고에 대한 염증으로서 근면, 하느님께 대한 효성과 사랑의 덕에 반대된다. 나태[Acedia, 懈怠]은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먼저 영성적인 선에 대한 염증이나 반감으로서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 수고와 어려움 때문에 오는 영혼의 게으름이다. 둘째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선에 대한 염증과 비탄이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우정을 악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과의 우정에 관심이 없고 그를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태만에서 나오는 악에는 악의, 욕심, 선행의 기피, 실망, 무기력, 시간 낭비, 정신의 산만함 등이 있다.
교만, 인색, 음욕, 탐욕은 자신의 이익을 지나치게 원함으로써 생기고, 질투, 분노, 나태는 자기의 불편을 지나치게 피하려는 데서 생긴다. 이는 모두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애덕의 부족에서 생기는 결과이므로, 애덕과 극기의 정신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 전통은 칠죄종에 대립을 이루는 일곱 가지 주요 덕의 목록을 만들었다. 즉 세 가지의 '대신덕' (믿음, 희망, 사랑)과 '사추덕' (현명, 정의, 용기, 절제)이다. 칠죄종이나 주요 덕은 논리적 결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중 윤리에서 유래된 것이며, 어디까지나 우연적인 것이다. (← 칠죄종 ; → 욕정 ; 죄)

※ 참고문헌  K.H. Peschke, Christian Ethics. Moral Theology in the Light ofVatican II, vol. I, C. Goodlif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77(김창훈 역,《그리스도교 윤리학 I》, 분도출판사 1990)/ 유봉준,《기초 윤리 신학》, 가톨릭출판사, 1978/ 김경식, 《생활 교리》, 대건인쇄출판사,2판, 1998. 〔金政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