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罪責感 [라]Compunctio [영)Compu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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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의도적으로 하느님을 거부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 죄를 범하였을 경우 느끼게 되는 죄에 대한 무거운 감정.
[정 의] 각 개인의 양심 정도에 따라 죄책감은 다르게 나타난다. 경미한 죄(小罪)를 범하고도 이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에 이르는 죄(死罪, 1요한 5, 16 ; 마태 18, 8-9) 즉 대죄를 범하여 죄의 경중에서 볼 때 가장 극단적인 한계에 이른 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죄책감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심의 세련과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상실하였던 것의 온전한 회복(restitutio in integrum)을 향한 인간의 노력, 즉 회개(contriio)와 절규 및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때 참 의미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죄책감은 영성 신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은총 상태의 회복과 완덕을 향한 수행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죄책감은 선을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인간성 자체에서 나오지만, 하느님에 의해 주어지는 은총의 결과이다(1고린 15, 10 ; 로마 8, 29-30). 그러므로 이 은총을 받은 이는 누구나 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려고 노력하며 도우심을 청하게 된다. 그리고 죄책감은 '죄에 대한 뉘우침이나 후회'이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한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군중들은 "마음이 찔려(κατε-νύγησαν τὴν καρδίαν) 베드로와 사도들을 향하여 '형제들이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사도 2, 37). 이 구절에서 "마음이 찔렸다" (compuncti sunt corde)라는 표현이 바로 죄책감이다. 이 표현은 교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성인들의 가르침] 초기 교부들 :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네딕도(480?~547)는 수도자들이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사순 시기를 성실히 지내도록 권고하면서 '찌름 · 뉘우침 · 죄책감' 이란 의미의 라틴어 콤풍시오' (compunctio)를 사용하였다. "만물의 주님이신 하느님께는 온갖 겸손과 순결한 경건심으로 간청해야 할 것이다. 많은 말로써가 아니라 마음의 순결함과 통회의 눈물로써 (compunctione lacrimarum) 우리의 (간청을) 들어 허락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베네딕도 규칙서》 20장). "우리가 모든 악습들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통회(et compunctionni cordis)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베네딕도 규칙서》 49장).
가시아노(360?-432/435)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의 작품들은 죄책감에 대한 고전적인 의미를 제시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죄책감은 정감적 기도를 겸하고 있다. 과거에 범한 죄를 성찰하면서 뉘우칠 때는 감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 도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 기도는 정감적이 된다. 정감적 기도는 순수한 마음의 기도로서, 어떤 경우에는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때 영혼은 순수하게 하느님을 염원하게 된다.
가시아노는 수도자들을 가르친 교훈서에서 죄책감과 뉘우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선 사도 바오로가 사랑하는 제자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1디모 2, 1)를 인용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잘못한 죄에 대해 주님께 간절히 용서를 청할 때 죄책감으로 인한 뉘우침이 일어난다(Obsecratio est imploratio seu petitio pro peccatis, qua vel pro praesentibus vel praeteritis admissis suis unusquisque com-punctus veniam deprecatur ; Conf. Ⅸ, 11)고 하였다. 그리고 주님께 서원을 발하는 시편 115장을 인용하면서, 수도자들은 기도할 때 세속의 영예와 재물을 경멸하고 잘못에 대해 마음으로 온전히 뉘우치고(in omni contritione) 영의 가난함으로 주님과 일치해야 한다(Conf. Ⅸ, 12)고 권고하였다. 또한 죄책감으로 인한 뉘우침은 지옥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나오며(Ⅸ,2) , 그로 인해 순수한 양심(conscientiae puritas Ⅸ, 33)으로 주님을 섬기게 되고 통회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변화된다(IX, 26-29)고 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죄책감을 네 단계로 구분하였다. 각 단계는 수행 생활을 통해 완덕을 지향한다. 첫 번째 단계는 범한 죄에 대한 수치를 극복하는 단계이다. 두번째 단계는 과거의 죄에 대한 합당한 결과를 깨닫는 단계이며, 세 번째 단계는 현세의 삶에서 다시 죄에 떨어질수 있는 가능성을 보는 단계이다. 네 번째 단계는 관상을 통해 천국의 기쁨을 강렬히 맛본 이후 느끼는 죄책감이다. 교황은 이 세상에서 천국에서 누릴 기쁨을 맛보지 않고는 죄의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는 인간성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관상 기도를 통해 천국의 아름다움을 미세하게나마 맛본 영혼은 절대로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지상의 삶이 끝나면 천국에서 누릴 그 삶이 너무나 아름답고 존귀하기 때문이다. 한편 교황은 낮은 단계의 죄책감은 벌에 대한 두려움에서(per timorem) 나오지만, 높은 단계의 죄책감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per amorem)에서 나온다고 하였다(PL 76 Morali-um in Lib. XXXII In Caput XLIB. Job ; 275B~277A ; 291D~292C ; Hom. in Ezech., PL 76, 1060B~C, 1070A~1071B)
이냐시오 :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는 직접적으로 죄책감이란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신수련》(Exercitia Spiritualia) 제1 주간에서 죄에 대한 묵상을 안내하면서, "양심의 가책" (69번)과 과거의 죄악에 대해 크게 아파하고 통회의 눈물을 구하라고 권고하였다(32~55번). 이는 구체적인 성찰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생각과 말과 행위로 잘못한 죄들에 대해 "자기 양심을 살필 것이다"(43번)라고 권고한다. 특히 48번에서는 범한 죄악에 대하여 "부끄러워하고 당황하는" 기도를 하라고 권고한다. 또한 천사들의 죄악에 대한 묵상에서는(50번), "거기에 대하여 더욱 나의 감동을 일으킬 것과 "그들은 단 한 가지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갔는데, 나는 그렇게도 많은 죄 때문에 얼마나 여러 번 갔어야 마땅하였겠는지를 생각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두려움을 갖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이는 죄에 대한 증오심은 물론이고 죄책감을 가지라는 묵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63번의 묵상에서는 구체적인 나의 죄악을 성찰하여 뉘우치도록 안내한다. 첫째, 나의 죄악을 진심으로 깨닫고 미워할 것, 둘째, 내 행동의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지겨워하며 고쳐서 나의 생활을 바로잡을 것, 셋째, 세속을 지겨워하고 또 세속적이며 헛된 것들을 내게서 멀리하기 위하여 세속에 대한 인식을 구할 것 등이다. 여기에 부과될 부분은 기도의 세 가지 방식에서 안내하는 십계명과 칠죄종, 영혼의 세 가지 기능과 육신의 오관에 대한 묵상이다(239~248번). 이 묵상에서 죄악과 연관된 것은 성찰하고 뉘우치며 죄사함을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각 묵상이 끝난 다음 '그리스도의 영혼' 이란 기도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한편 지옥에 대한 묵상에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자연적으로 죄책감과 구원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묵상을 자비하심의 담화로 끝마칠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나를 그분의 은총의 도우심으로 지금부터는 개과천선하도록 권고하시면서 아직도 내게서 생명을 거두시지 아니하셨음을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외울 것이다" (61번 담화). 또한 48번 '십자가와 부활의 묵상' 에서 특히 인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신 주님에 대한 묵상은 자연적으로 죄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키게 하며, 죄에서 해방된 영혼은 죄에 대한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청하게" 된다. 원조와 인간의 죄악(본죄)에 대한 묵상 51~53번에서도 '감정' 이 개입된 기도를 요구한다. 특히 55번과 63번, 65번에서 "내 죄에 대하여 크게 아파함과 통회의 눈물을 구하라" 고 한 권고는 과거의 죄악들, 특히 영혼을 죽이고 지옥에로 이끄는 대죄들을 묵상하고 뉘우친 후 성사를 통해 정화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이냐시오는 지옥에 대한 묵상을 상세히 안내한다. 지성과 의지를 사용하는 지옥에 대한 묵상은 생활을 고치려는 이들에게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일으킨다. 74번의 묵상은 죄인의 배은망덕과 비참한 상태를 상세히 언급한다. 은혜를 베푼 임금에게 배은망덕한 신하 같은 죄인의 상태에서 수갑을 차고 재판관 앞에 선죄수는 장차 자기에게 언도될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죄악으로 인해 지옥벌을 받을 영혼도 이와 비슷한 상태이므로, 이 상태에서 해방된 영혼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할 뿐 아니라 땅에 엎드려 최대의 겸손과 뉘우침의 기도를 해야 한다(76번). 이 기간에는 웃음을 피하고(80번), 감미롭고 즐거운 일들도 피하며 오로지 슬픔과 아픔만을 청해야 한다(78번). 또한 외적으로도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데, 사람들과 눈인사만 하고 방을 밝게 하지 말고 문과 창문을 닫아 어둡게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죄인은 이런 식으로 온갖 좋고 화려한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사도 마찬가지이다. 존재는 행위를 따르므로(Agere sequitur esse) 이런 상태의 그리스도인은 화려한 음식을 삼가고 고행을 해야 하며(83~84번) , 필요하면 육체적인 고행도 해야 한다(85번). 이렇게 수행한 그리스도인은 지난날의 죄악을 미워하고 통회하여 죄사함의 성사인 고해성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죄악의 파괴자인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써 영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사랑 자체인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성실히 따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냐시오에게 있어서 죄책감은 단순한 생각이나 회심으로 끝나지 않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구원 자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 시작은 육신과 세속과 악령의 유혹을 이겨 올바른 분별력(313~336번)과 성령의 인도를 받은 지성과 의지를 사용하여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게 한다.
아빌라의 데레사 : 가르멜 수도원의 개혁가인 아빌라의 데레사(1515~1582)도 수행에서 과거의 죄악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영성 생활을 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안내를 한다. 데레사는 <영혼의 성》(Las Moradas 0 Castillo Interior, 1577)에서 자신이 기도를 통해 얻은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서 영혼이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영혼은 일곱 개의 방을 거치면서 보다 성숙한 기도의 단계로 올라간다. 마지막 일곱 번째 단계는 영적 혼인의 단계로서, 영혼이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하는 단계이다. 즉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정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지막에는 하느님과 변형 일치(變形一致, trans-forming union)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그 단계의 시작은 지난날의 죄악을 성찰하고 뉘우치는 데있다. 영혼은 좋지 않은 냄새를 피우는 온갖 종류의 맹수와 독충들이 우굴거리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강석이나 맑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악을 미워하고 자아 인식과 겸손한 기도를 통해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이 비참한 상태에서 일어나려는 영혼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나, 하느님의 도우심과 인간의 노력으로 기도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의지도 대단히 중요하다. 의지가 약한 영혼은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따라서 지난날의 죄악에 대한 성찰도 약한 의지로 인해 중도에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죄책감의 결과] 죄책감과 연관된 결과로서 '눈물' 과 '웃음' 이 있다. 눈물과 웃음은 하느님이 주는 하나의 선물 또는 은사이다. 단순히 말해서, 눈물은 죄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나오지만, 공포와 영벌에서 해방된 영혼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눈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후자의 눈물은 자연적으로 기쁨을 동반하며 순수한 영적 기쁨에 속한다.
이냐시오는 《영신 수련》에서 여러 번 눈물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선 죄책감에서 자아내는 눈물이 있다. 많은 사람이 대죄 한 번으로도 지옥에 갔는데, 나는 많은 죄를 범했으므로 마땅히 지옥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픔과 고통과 눈물을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신 수련》 48번에서 "의욕을 가지고···감동을 일으킨다"라는 표현은 단적으로 눈물과 고통과 아픔을 의미한다(50, 51, 52, 53, 65, 78, 87번). 한편 즐거움과 기쁨의 은혜를 청하는 권고도 있다(221, 229번). 말년에는 신비가로 성덕에 출중하였던 이냐시오는 미사를 봉헌할 때 자주 눈물을 흘렸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영적 기쁨은 기도의 여섯 번째 단계인 정적의 기도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때 영적 기쁨을 마음에 숨겨 둘 수가 없어 함성을 지르거나 기뻐 날뛰거나 영적 찬가를 부르게 된다(생애 16장 : 자서전 29, 17 ; 영적 관련 8, 16).
여러 성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범죄로 인한 죄책감과 이로 인한 뉘우침과 용서 및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기도 체험을 볼 수 있다. 죄책감은 인간성 자체를 보거나 성서, 교부들, 교회의 가르침이나 성인들 및 현인들의 교훈집과 그리스도교 문학 작품들을 볼 때, 하느님과 이웃 사람들에 대해 잘못을 행하고 느끼는 무거운 감정이다. 영원을 향한 삶의 여정에서 죄책감은 상실된 인간성을 온전히 회복하려는 인간 내부의 염원이며, 자신의 노력과 은총의 도움으로 양심의 세련과 은총 상태의 회복 및 완덕을 향한 수행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을 때 참 의미가 있다. (→ 가시아노, 요한 ; 그레고리오 1세 ; 데레사, 아빌라의 ; 이냐시오, 로올라의 ; 죄)
※ 참고문헌  아빌라의 데레사, 최민순 역, 《영혼의 성》, 성바오로 출판사, 1970/ 전달수, 《신비 체험과 현상》, 가톨릭출판사, 1997, pp. 17~24/ D. Hurst, 4,pp. 45~46. 〔田達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