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 대학 上智大學 [영]Sophi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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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大正 2) 도쿄(東京)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가톨릭 대학. 도쿄 치요다구 키오이초(東京都 千代田區 紀尾井町) 7-1 소재.
〔설립 배경] 일찍이 1549년(天文 18) 일본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던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 Xaverious)는 일본의 수도에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구상을 교황청에 건의하였다. 하지만 박해로 인해 추진되지 못하다가 막부(幕府) 말엽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다. 막부 말엽에 일본에서 선교의 자유가 인정된 후 가톨릭 선교사들은 일본에 건너와 소(小) · 중(中) · 고(高)의 학교를 차례차례 개교하였다. 이후 1906년 교황 비오 10세는 일본에 가톨릭 대학을 창설하기 위한 작업을 당시 교육면에서 활약해 왔던 예수회에 요청하였다. 이에 예수회는 1908년(明治 41)에 3명의 예수회원을 일본에 파견하여 대학설립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후 1911년에 재단 법인 죠치 학원(上智學院)을 설립하였고, 1912년에는 현 대학 부지를 매입한 후 1913년 4월 21일에 죠치 대학을 설립 · 개교하였다. 초대 학장으로 호프만(H. Hoffmann)이 부임하였으며, 당시 학과는 철학과, 독일 문학과, 상과(商科) 등 3개 과였다.
[건학 정신] 죠치 대학의 건학 정신은 그리스도교 정신에 기인한 인격 형성과 학문 연구이다. 죠치 대학은 해외에서 소피아 유니버시티(Sophia University)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소피아' (Sophia)는 지혜란 뜻으로 특히 일체의 사물의 완전한 인식을 말하며, '죠치'(上智)라는 단어도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의의 인식을 말한다. 《죠치 대학 자료집)(上智大學料集)에는 건학 정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본 대학의 목표는 인격의 도야(陶冶)와 학문 탐구의 통합을 추구한다.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는 학문적 심화와 함께 인격적 성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르치는 자인 선생과 가르침을 받는 자인 학생 간은 상호의 신뢰에 의해서 생겨나는 정신적 공동체로, 이를 기반으로 목표를 지향해야한다. 본 대학의 인격에 관한 이상(理想)은 신이 정한 질서의 승인을 바탕으로 자기 본성의 모든 능력을 발전시켜, 천부(天賦)의 사명 성취와 인류 공동체로의 협력을 포함하는데, 여기에 본 대학이 학생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것은 인간 존재와 도덕 행위에 있어서 체현시킬 수 있는 지식이다. 이것이야말로 본 대학이 명칭에 썼던 '죠치' 임에 틀림없다."
〔시련과 발전] <전문 학교령에 의한 대학>(専門学校令による大学)으로서 발족하였던 죠치 대학은 개교 이후 몇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먼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따라 독일 국내의 인플레가 지속되자, 당시 경제적인 면에서 예수회 독일 관구에 의존하고 있던 죠치 대학은 재정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서양풍 교사가 붕괴되었으며 <대학령에 의한 대학>(大學令による大學)의 인가 획득에 필요한 공탁금(供託金) 조달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겪은 후 죠치 대학은 창립 25주년 경축식을 거행하면서 이를 기회로 각종 문화 활동을 행하였다. 먼저 일본에서 최초로 《가톨릭대사전》을 편찬하였으며, 국제적 학술지인 <일본문화논총〉(モヌメンタ ニッポニカ (Monumenta Nipponica)의 발간과 함께 기리시탄(キリシタソ) 문고(文庫)를 창설하였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학생들의 징집이 이어졌으며, 동경 대공습으로 교사의 일부가 소실되고 학교 주변 일대가 화재의 피해를 입는 등 계속되는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패전 후 비텔(B.Bitter) 등의 노력으로 교지(校地) 확대를 실현함으로써 현재의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이후 몇 차례의 일과적인 학원 분쟁을 수습한 죠치 대학은 획기적인 비약을 달성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학부가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는 법문계 · 이공계 합해서 7개의 학부에 29개의 학과가 등록되어 있으며, 학부의 학생 수는 약 1만 명이다. 대학원생은 7개의 연구과에 24개의 전공에서 전 · 후기 과정에 대략 900명이 재적하고 있으며, 13개의 부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요츠야(四谷), 이치가야(市ケ谷), 샤쿠지이(石神井) 하다노(秦野)에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죠치 대학은 '국제성' 이라는 면에서 다른 대학과 구별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개교 이래부터 교수진에 다수의 외국인 선교사를 초빙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구미(歐美)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다. 현재도 500여 명의 교수진 가운데 100여 명이 외국인 교원이며, 1만여 명의 학생 중에 1,000여 명이 외국인 유학생들이다. 또한 매년 상당수의 학생들이 재학 중 외국의 대학에 교환 유학을 체험함으로써 국제 감각을 넓히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 2003년 개교 90주년을 맞이한 죠치 대학은 '세계 안에서, 세상을 위해 이바지하는 대학' 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2013년 개교 100주년을 준비하는 10개년 특별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다. 구체적 실행의 예들은 법과 대학원(法科大學院)의 설립,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 연구, 교원의 학술적 연구 장려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죠치 대학은 국제 사회의 세계화(globalizaion)와 환경 문제 등에 대한 학문적 · 인재적 공헌을 통해서 제2의 개교를 향한 약진을 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련] 죠치 대학은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다. 죠치 학원의 원장을 지낸 게페르트(T.Geppert) 신부는 1954년부터 1961년까지 한국으로 파견되어 서강대학교 설립의 기초를 세웠다. 그리고 죠치 대학은 한국 천주교회 발전과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 공헌한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과 강우일(姜禹一, 베드로) 주교 등을 비롯한 명망 있는 성직자들을 다수 배출시켰다.
※ 참고문헌  http:/wwww.sophia.ac.jp/ 新カトリック大辞典》 II,p.281/ 上智大學 編, 《上智大學史資料集》 全6冊, 上智學院, 1980~ 1995).[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