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연기》 主教緣起

글자 크기
10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인 살 폰 벨(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2~1666) 신부가 저술한 교리서. 저술 시기는 일반적으로 1643년이라고 하지만, 책 내용 중 명 왕조 말이라는 의미의 '명계' (明季)란 표현으로 미루어 1644년 이후, 청대 초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책은 1쪽 당 아홉 줄, 1줄 당 20자씩, 두 쪽이 한 장(張)을 이루는 한서(漢書)로 전 네 권이다. 권1은 36장, 권2는 37장, 권3은 38장, 권4는 52장으로 총163장, 326쪽에 이르는 방대한 교리서이다.
《주교연기》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인 창조주인 천주의 존재와 그 속성, 천지 창조, 천주의 우주에 대한 주재(主宰), 인간 영혼의 존재와 불멸성, 천당과 지옥의 존재와 의의,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천주인 구세주의 육화 · 수난 · 부활 · 승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주교연기》의 더 큰 가치는 이 책이 교리서일 뿐만 아니라, 보유론(補儒論) 입장을 강조하고 반(反) 성리학적 이론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중국 천주교회의 호교론적(護敎論的) 저술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원시 유교가 지녔던 종교적 가르침이 역사가 흐르면서 상실되거나 망각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완전하거나 더이상 적정하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는데, 천주교가 이것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즉 유교의 오륜(五倫)을 그리스도교의 십계(十誡)와 동일시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자신의 선교사로서의 임무를 설명하면서 충(忠) · 열(烈) · 절(節) · 효(孝) 등 유교에서 지향하는 덕목이 결국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덕목임을 강조하여, 실제로 이 둘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선(善)을 추구하며 천주교가 유교를 보완하는 종교임을 시사하였다. 또한 반성리학 이론에 관한 것은 《주교연기》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성리학의 기본 이론인 태극(太極) · 이(理) · 기(氣) · 음양(陰陽) · 오행(五行)에 관하여 비판하였다.
《주교연기》는 일반적으로 난해하고 모호한 성리학 이론을 알기 쉽게 내용의 요점을 소개 · 설명한 후 그것을 하나씩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 · 비판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서술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표현의 한문을 구사하여 선교사들의 반 성리학 저술 중 가장 탁월한 것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주교연기》는 1791년(정조 15) 5월 진산 사건(珍山事件)을 계기로 같은 해 11월에 홍문관(弘文館)에 소장되어 있던 서양서 24종을 불태울 때 포함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조선에 일찍 도입되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 보유론 ; 살 폰 벨, 요한 아담)
※ 참고문헌  L.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sur les Jesuites de l'ancienne Mission de Chine 1553~1773, Chang-Hai, 1932/方豪, 《中國天主教史人物傳》 2, 湯若望 條, 香港, 1970/ 장정 란, 《그리스도교의 중국 전래와 동서 문화의 대립》, 부산교회사연구소, 1997. 〔張 貞 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