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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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5리 3반 산54 소재. 1921년 12월 금광리(金光里)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 설립되었으며, 1923년 11월 주문진 본 당으로 명칭 변경.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관할 구역은 현남면, 주문진읍, 연곡면 전 지역. 관할 공소는 삼산, 인구, 행정 공소 등 3개소. [교 세] 1964년 1,440명, 1974년 1,577명, 1981년 1,194명, 1986년 1,195명, 1991년 1,766명, 1996년 1,914명, 2001년 1,950명. [역대 신부] 초대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1923. 11~1928.5), 2대 김인상(金寅相) 야고보(1928.5~1931.6), 3대 맥고완(P. McGowan, 元) 파트리시오(1951. 11~1953. 3), 4대 윤예원(尹禮源) 토마스(1953.3~1957.6), 5대 최 창규(崔昌圭) 바르톨로메오(1957.7~1964.2), 6대 뉴젠트 (W. Nugent, 유) 누젠(1964.2~11), 7대 케니(P.Kemy, 기) 바오로(1964. 11~1967.9), 8대 이바르비아(A. Ibarbia, 전필 주) 안젤로(1967.9~1969.6), 9대 페르난데스(M. Fernandez, 하일성) 멜키올(1969 6~1970.9), 10대 브리아헤레카 (J. Uriagereka, 우영환) 요셉(1970. 9~1975. 1), 11대 무르 Murguzur, 문) 요셉(1975. 1~1979.2), 12대 하라 테(A. Garate, 강인조) 알렉산데르(1979. 2~1982. 4), 13대 강효식(姜孝植) 야고보(1982.4~1983.7), 14대 최병철(崔 炳喆) 아우구스티노(1983. 7~1985. 5), 15대 아바소로 (Abasolo, 서정천) 라파엘(1985. 5~1990. 3), 16대 하라테 ( 1990. 3~1994. 2), 17대 김권순(金權淳) 바오로(1994. 2~1997. 8), 18대 박우성(朴字成) 사무엘(1997. 8~2001.2), 19대 김학배(金學培) 안젤로(2001.2~현재) . 〔본당의 설립과 변모]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는 영동 지역의 신자들이 증가하자, 1921년 5월 5일 상도문 (현 양양)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최문식(崔文 植, 베드로) 신부를 임명하였다. 한편 상도문 본당 신설 당시 원산 대목구의 드브레(Devred, 俞世竣 보좌 주교는 영동 지역에 또 하나의 본당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었 다. 그 결과 1921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은 이철연 신부 가 상도문 본당의 보좌 신부로 임명되었다. 강릉 이남의 금광리(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 지역 신자들은 1921년 가을 판공 성사 때 양양 본당 최문식 주임 신부에게 이철 연 보좌 신부를 금광리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당시 이 지역의 공소들은 신자수도 많았고 상도문 본당과 의 거리 또한 멀었으며 공소 강당과 사제관도 갖추고 있 었기 때문에, 신부 파견 요청은 타당하게 여겨졌다. 그리 하여 대목구에서는 1921년 12월 금광리 본당을 설립하 고 초대 주임으로 이철연 신부를 파견하였다. 이때 금광 리 본당 관할 구역은 양양의 견불리(見不里), 강릉의 제 비골[濟飛里] · 금광리 · 오일골, 정선의 느랏 등 5개 지 역이었으며, 신자수는 227명이었다. 이 신부는 1922년 초 금광리는 발전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고 보다 전망 이 밝은 양양 쪽으로 본당을 옮기고자 최문식 신부와 상 의하여 주문진으로 본당을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1922 년 8월 신리면 교항리(橋項里) 133번지 소재 가옥과 부지를 매입하였다. 이어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 해 11월 23일 성당을 완공하고 본당명을 주문진 본당으 로 변경하였다. 이 신부는 성당 부지 마련을 위해 1924 년 인근의 770여 평의 부지와 8,000여 평에 달하는 토지를 순차적으로 매입하였다. 그러나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인상 신부는 새로 개항된 주문진보다 강릉 지역이 발전하고 있었고 신자수 역시 금광리가 주문진보다 많았으며, 더구나 1929년 1월 화재로 인해 성당이 전소되자 본당을 다시 금광리로 이전하고 성당을 증축하였다. 하지만 1931년 강릉(현 임당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주문진 본당은 공소로 전락하였다.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맥고완 신부는 1951년 11월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양양에 거처할 곳이 없게되자 주 문진 공소에 3대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이로써 공소는 본당으로 재승격되었다. 맥고완 신부는 우선 20여 년 동 안 공소로 있었던 본당의 활성화를 위하여 목조 8칸 기 와집을 전면 개수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4대 주임으 로 부임한 윤예원 신부는 1953년 시멘트 블록으로 120 평의 본당 건물을 건립하였으며, 1956년 사제관(28평) 을 목조 함석으로 신축하고 현재의 성모상을 건립하였다. 5대 주임 최창규 신부는 1958년 10월에 행정 공소 (38평), 12월에 인구 공소(26평), 이듬해 7월에는 삼산 공소(18평)를 신축하였다. 또한 최 신부는 성당 전면을 개축하였고, 1957년부터 1964년 사이에 5개의 쁘레시 디움과 본당 꾸리아를 발족시킬 정도로 본당 사목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성장과 발전] 1967년 9월 3일 춘천교구와 작은 형제 회 사이의 계약으로 주문진 본당은 작은 형제회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하여 8대 주임으로 이바르비아 신부가 부 임하였다. 이바르비아 신부는 부임 직후 사목 협의회를 조직하여 평신도들의 활동을 강화하였고, 본당 신자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신용 협동 조합을 설 립하였다. 또 벽돌 공장을 운영하였고, 행정 공소에서는 옹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9대 주임 페르난데스 신부는 영동 지역에서 최초로 성당 내에 장궤틀을 설치하였다. 1970년 9월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브리아헤레카 신부 는 1972년 7월 본당 청년회를 통해 주보를 창간하였으 며, 천주교 부인회를 창설하여 현재의 성모회를 태동시 켰다. 1973년 7월에는 본당 교우와 함께 꾸르실료 모임 에 참석하였고 이후 꾸준히 꾸르실리스타를 배출하였으며, 8월에는 현 사제관을 개축하였다. 1975년 1월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무르구수르 신부는 사목적 소신으로 청 년 사목과 학생회 발전에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무르구 수르 신부는 영동 지구 학생회 지도 신부를 역임하였고, 주문진 중학교에서 영동 지방 성체 대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타지역에 있는 본당 출신 청년들에게 본당 소식을 알려 주기 위해 <동해>라는 월보를 발행하여 청년들 사 이에 일치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3대 주임으로 부임 한 강효식 신부는 1982년 5월 반(班)으로 구성되었던 구역을 리(里)별로 확대 · 정리하여 6월에는 리별 레지오 마리에를 창단하였다. 14대 주임 최병철 신부 재임기였던 1984년 1월에 전 기 누전으로 사제관과 교육관이 전소되었으나, 춘천교구 와 작은 형제회의 도움을 얻어 1985년 2월부터 재건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15대 주임으로 부임한 아바소로 신 부는 그해 7월 재건축 공사를 완료하였고, 9월에 본당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다. 1987년 2월에는 아시시의 프 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어 현재까지 본당 사목 활동을 돕고 있다. 16대 주임으로 재부임한 하라테 신부는 특히 병자들에게 큰 관심을 가져 매주 병자 방문 을 하였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의 모범을 보였 다. 또한 1993년 3월에는 지체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 공소를 수리하여 그해 6월 축복식을 가졌 다. 17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권순 신부는 1994년 4월 본당 진입로를 새로 설치하고 대강당을 보수하고 성당 부속 건물인 만남의 방과 성모 회관을 신축하는 등 본당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또한 1995년 7월에는 바닷가에 있는 인구 공소의 캠프장에 샤워실을 갖추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30여 년간 활동하였던 작은 형제회의 본당 사목권이 1997년 9월 다시 춘천교구로 이양됨에 따라, 18대 주임으로 박우성 신부가 부임하였다. 30년 동안 수도회 신부 들이 사목하던 본당에 부임한 박 신부는 본당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신자들의 재교육을 위해 1998년 2월부터 성서 백주간을 시작하고, 소공동체 활 성화에 주력하였다. 19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학배 신부 는 50년 이상 된 성당을 전면 보수하여 2003년 5월 장 익(張益, 십자가의 요한)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지고 본당의 재도약을 위해 힘쓰고 있다. (→ 춘천교구) ※ 참고문헌  《주문진 본당 75년사》, 천주교 주문진 교회, 1998/ 작 은 형제회 한국 순교 성인 관구,《한국의 작은 형제들》, 가톨릭출판 사, 2000.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