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8동 본당

朱安八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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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8동 15662 소재. 1979년 7월 21일 주안1동 본당에서 석암(石 岩) 본당으로 분리 · 설립되었고, 1993년 2월 주안8동 본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 아. 관할 구역은 주안8동, 관교동, 구월3동 전 지역과 구 월1동, 간석1동 주안4 · 6동 일부 지역. 〔교 세〕 1979년 658명, 1983년 1,560명, 1987년 3,277명, 1992년 4,936명, 1997년 7,293명, 2002년 7,161명. 〔역대 신 부〕 초대 송주석(宋周錫) 안셀모 (1979.7~1984.2), 2대 강 근신(姜根信) 미카엘(1984. 2~1989. 2), 3대 펠리니(R. Pellini, 방인이) 로베르토(1989.2~1992.2), 4대 노동한(盧 東漢) 베네딕도(1992. 2~1996.2), 5대 강용운(康龍雲) 시 몬 ( 1996. 2~2001. 1), 6대 이수일(李秀-) 제르바시오 (2001.1~현재). 1970년 이후 주안 지역이 도심화의 중심권으로 형성되자 인구가 급증하고 신자수도 증가하였다. 이에 확장된 교세를 정착시킬 필요성과 지역적 발전 및 주안1동 본당과의 거리 관계 등을 고려하여, 1979년 7월 21일 석암 본당을 주안1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주석 신부는 남구 주안동 1094번지 개인 주택 20평을 임대하여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 다. 또한 원활한 본당 사목을 위해 수녀원을 마련하고자 9월에 20평의 주택 한 동을 임대하여 영원한 도움의 성 모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이처럼 어느 정도 본당의 체계가 갖추어지자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가 1980년 12월 구성되어, 1972년 인천교구에서 마련해 두었던 주안 8동 1566-2번지(1,086.3㎡)에서 1981년 4월 신축 기공 식을 가졌다. 건축 기금 조달의 어려움과 시공사의 도산 으로 성당 건축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들과 본당 신부의 노력으로 1982년 12월 성당이 완공되어 이듬해 5월 봉헌식을 가졌다. 성당 건축이 완료되자 송신부는 1983년 1월 사목 협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본당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2대 주임 강근신 신부는 성당 건물에 누수가 많자 1984년 4월부터 6개월 동안 대대적인 보수 · 방수 공사 를 실시하였다. 또한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레지오 마리 애, 성모회, 성소 후원회, 빈천시오회 등의 각종 사도직 단체들이 설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4대 주임 노동한 신부는 1993년부터 본당 총회를 구성하여 신자들이 본당의 중요 사안들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매달 둘째 주간에 구역별 성체 조배를 실시하여 신자들 사이의 공동체적 단합을 강조하였다. 한편 본당에서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성당 근처의 주택 세 채(총 147평)를 매입하여 장차 교육 관 건립 부지를 확보하였으나 현재까지 착공하지는 못하 고 있다. 5대 주임 강용운 신부는 구반장들에게 반적부와 냉담자 교적부를 만들어 배부함으로써 효과적인 반원 관리에 도움을 주었다.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수일 신부는 지 도급 신자들의 세대 교체 및 신심 단체 육성, 전 신자 교 육 및 피정 등을 실시하여 본당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 련하였다. 이 신부는 성당 재건립을 추진하고자 하였으 나, 성당을 점검한 결과 재건축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받아 대신 성당을 개 · 보수하기로 결정하고 2001년 7월 부터 9월까지 공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성당의 재건축이 불필요하게 되자 이를 위해 매입해 놓은 성당 앞 주택 네 채를 헐고 그 부지(600여 평)에 숲을 조성하여 11월에 공 사를 마쳤다. 이 숲은 성당 재건축 보수를 앞두고 있는 다른 본당에 '절약형' , '환경 친화적' 인 리모델링의 좋 은 사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 사연구소편,《인천교구사》, 인천교구, 1991.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