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主日 〔라〕Dominica dies 〔영〕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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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은 최초의 근원적인 축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주간의 첫날"(마르 16, 2).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례적으로 기념하는 이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날 중의 첫째 날, 모든 축일 중의 첫째 축일이다. 이날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 축일로, 이날 성당에서 봉헌되는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가 신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일요일' (日曜日)이라고 불리는 이날을 '주님의 날' , 즉 '주일' 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성서적 기초와 교회의 전통〕 "교회는, 사도 전승에 따 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에 그 기원을 둔 파스 카 신비를 여덟째 날마다 경축한다. 그날은 당연히 주님의 날 또는 주일이라고 불린다"(전례 106항). 제2차 바티 칸 공의회(1962~1965)의 이 가르침은 주일의 본래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사도적 전통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실제적인 체험 안에서 얻은 주일 거행의 특성을 일깨워 주는 기초가 된다. 신약성서의 언급 : 소아시아의 비티니아(Bitinia) 총독 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 61/62 ~113?)가 112년 트라야 누스 황제(98~117)에게 보낸 '위험하고 별난 미신' 에 관한 편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정해진 날 새벽이 밝기 전에 그리스도를 찬미하기 위해 모이는 관습을 가지 고 있었다. 이 편지는 교회의 초기 생활을 알려 주고 있는 문서들 가운데 최초의 이방인 문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집회를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근원적이고 전형적인 행위로 이해하였다. 유스티노(100/ 110?~165?)는 152년경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138~ 161)를 향하여 쓴 《제1 호교론》(Prima Apologia)에서 값진 증언을 전해 주고 있다. 그는 "이른바 태양의 날에 시내 와 교외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장소에 모였다" (67장)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증언을 한 다음 유스 티노는 그 시대의 전례 거행에 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전례 거행에 관한 기록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초기 그리스도인 들의 주간 파스카 축제 거행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모든 백성에게 인심을 얻었다' (사도 2. 41-42. 47 참조). 그때부터 교회는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기 위하 여 한데 모이기를 결코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성서 전 체에서 그분에 관한 기록을' (루가 24, 27) 읽고, '그분 죽음의 승리와 개선을 재현하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동시 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 (2고린 9, 15) 감사를 드리고,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 (에페 1, 12)"(전례 6항). 신약성서의 기록들은 주일의 기원과 기초를 우리에게 전해 주며, 교회가 시작한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일이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거행되어 왔음을 알려 준다. 사도 행전은 트로아스(Troas)에서 이미 주일 집회가 관습이 되어 있었음을 전해 주고 있다. "안식일 다음날,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한자리에 모였다"(20, 7). 바오로 사도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헌금할 것을 권고하는 자리에서 주간 첫날에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였음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주간 첫날마다 여러분은 각자 형편이 닿는 대로 저축할 수 있는 것을 자기 집에다 따로 놓아 두시오"(1고린 16, 2). 요한 묵시록 1장 10절 은 '주님의 날에' 저자가 받은 계시를 묘사하고 있으며, 요한 복음서 20장 19절과 26절은 부활한 주님의 발현을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보이는 한 주간의 간격은 제자 공동체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일마다 한자 리에 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준다. "그날, 곧 주간 첫 날 저녁에" (요한 20, 19). "여드레 후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요한 20, 26). 이날은 바로 안식일 다음 첫날이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주일의 집회 가 그리스도교를 낳은 최초의 기원적인 예수 부활 사건 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 준다. 이렇게 하여 첫 믿는 이들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 만남 안에서 예수가 한 말 씀이 충만하게 실현된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마태 18, 20).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주일 집회 관습은 어떤 지역들 에서는 불법 집회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4세기에 아프리 카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로 카르타고 법정에 끌려가서 유죄 판결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때 그들은 주일 집회를 중단할 수 없음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우리는 주일 집 회를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중단하는 것은 허락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부들의 증언 : 주일의 기원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 체의 신앙 체험이 담겨 있는 그날의 깊은 의미는 초기 그 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날을 가리켜 사용한 그리스어, '주 님의 날' (κυριάκη ἡμέρα) 또는 간단하게 '주일' (κυριά κη)이라고 한 용어 안에 포함되어 있다. 라틴어 '디에스 도미니쿠스' (dies Dominicus)는 바로 이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주일은 주님(κύριος)의 날,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을 가 리키는 것이었다. 100년경 시리아에서 편집된 《디다케》 에서는 주일을 '주님의 주일' (koridκαάκυριακέυκύριου kuptakiv Se Kiop10v) 로 부르고 있다. 동어 반복을 하고 있지만 매우 의미 있는 표현이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14, 1). 이 밖에도 그리스도인들의 주일을 주님의 부활 사건과 관련지어 전하는 기록은 많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 도인들의 주일을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모 든 전승의 기본적이고 일관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테 르툴리아노(160~23)는 "주님의 부활의 날" (De oratione 23, 2)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 (260/265?~339)는 "주일은 그리스도의 구원적 부활의 날이다" 라고 말하며, "매 주간 구세주의 주일에 우리는 우 리의 파스카 축일을 지낸다" (De solemnitate paschali 7)라 고 전하여 준다. 바실리오(329~379)는 "거룩한 주일은 주님의 부활로 영광스럽게 된 날이며, 모든 다른 날들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날" (Hom. in Hexameron II, 8)이라고 하였다. 또한 예로니모(347~419)는 "주일은 부활의 날이 요 그리스도인들의 날이며, 우리의 날" (In die dominica paschae)이라고 단언하며 감격해 하였다. 이러한 증언들을 기초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은 "주일은 신자들의 신심 을 일깨워 주는 최초의 근원적인 축일"(106항)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주일은 전례 주년의 기초요 핵으로 이해된다. 연례적으로 지내는 부활 대축일은 그 다음에 지내게 된다. 점차적으로 주일과 부활 대축일이라는 두 기둥을 중심으로 전례 주년 전체가 짜여진다. 이 전례 주 년으로 교회는 특정한 날에 신랑인 그리스도의 구원 업 적을 기억하고자 하였다. 우리에게 전해진 전승의 기록들을 보면,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기쁘게 지내는 날이었다. 테르툴리 아노와 같은 엄격한 금욕주의적인 저술가도 이날을 기쁘 게 지내도록 권고하였다. 그래서 동방이나 서방 교회 모두 이날에는 무릎 끓고 기도하거나 단식하는 것을 금하 였다. 《디다스칼리아》/Didecacala)는 주일에 단식하거나 슬프게 지내는 이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하였다(5, 20, 11).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그리스도인들의 주일 :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자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초기부터 주일에 남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였음을 분명 하게 보여 주었다. 주일은 아무렇게나 택한 날도 아니고,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단순히 다음날로 이동시킨 것도 아 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그리스도인들의 주일 의 관계에 관하여 고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저술가들과 학자들이 연구를 기울여 왔지만, 아직 합의 점이나 만족할 만한 해결책은 찾지 못하였다. 안식일과 주일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처럼 서로 관련을 맺기도 하 고, 또 분명한 구분을 짓기도 하면서 발전하였다. 유대인들의 주간은 안식일에서 시작하여 다음, 다음날 로 이어진다. 유대인들의 안식일 신학은 하느님이 6일 창조 후에 쉬었다는 창세기의 기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안식일은 메소포타미아 문화권에서 온 여러 제도들 가운데 하나인데, 유대 문화가 그날을 새롭게 해 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였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이다. 유대인들의 성서적 전통은 이날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안식일의 특징으로 절대적인 휴식을 강조하였다(출애 16, 29-30 ; 23, 12 ; 34, 21). 안 식일이라는 말은 '중단하다' , '쉬다' 를 뜻하는 '삽바트' (שָׁבָּה)라는 어원에서 나왔다. 사제계 문헌(출애 31, 17. 20)은 안식일을 하느님이 창조한 뒤에 쉬었음(창세 2, 2) 을 본뜬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에게 주간 휴식의 필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 진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이 하느님을 본받아 노동으로 창조 사업을 펼치듯이 그렇게 휴식하는 것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은 뒤에 아주 엄격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 별히 바빌론 유배 시대에 황제로부터 강요된 명령이나 규율에 저항하여 안식일 법을 엄격하게 지켰다. 그러나 안식일은 단지 하느님의 휴식을 모방한 것만은 아니었 다. 이날은 또한 예배의 날이었고 감사와 기도의 날이었 다. 하느님이 당신의 휴식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시 고 , 그날을 하느님께 봉헌된 '신성한' 날이 되게 하였 다. 성서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다"라는 표현을 하느님이 축성한 이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감사하는 마음 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가르치고자 할 때 자주 사용하였다(출애 20, 8 ; 신명 5, 12 ; 이사 56, 4 : 느 헤 13, 17). 안식일은 유대교의 중심을 차지하는 제도이다. 그리스 세계에서는 주간 요일의 이름들을 행성에서 따온 반면, 유대인들은 오직 안식일에만 이름을 붙였고 다른 날들은 단순히 첫째 날, 둘째 날 등으로 불렀다. 로마 전례도 평일을 가리킬 때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랐다. 사도들과 예수의 첫 제자들은 유대인들이었기에 다른 유대인과 거리를 두기 전까지는 그들의 관습을 따라 주 간을 지냈다. 그러므로 어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안 식일을 지키면서 주일을 지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마태 24, 20). 반(反)안식일 논쟁은 바오 로 사도와 그의 그리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시작되 었다(골로 2, 16 : 로마 14, 5-6). 그들은 더이상 안식일 법의 준수를 의무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인들은 할례와 율법에 따른 여러 가지 부정에 관한 법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에 관한 옛 법의 준수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 후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주 일, 곧 '안식일 다음 첫째 날' 을 경축하기 시작한다(마르 16, 1 ; 마태 28, 1 : 루가 24, 1 : 요한 20, 1 : 1고린 16, 2 : 사도 20, 7). 그리스도인들의 주일에는 유대인들의 안식 일 특징인 휴식이란 것이 없었다. 콘스탄틴 대제(306~ 337)의 밀라노 관용령(Edictum Milanensie)이 있기 전까지 주일과 휴식은 관련이 없었다. 관용령 이후 그리스도인 들에게도 윤리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 된 십계명 안에 안식일 법이 들어가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이 휴식의 주제를 발전시켰 다. 그는 《고백록》(Confessiones, 8, 35-37)에서 가장 좋으 신 하느님을 만나는 데서 느끼는 평화에 관하여 말하면 서 "쉼의 평화, 안식일의 평화, 저녁이 없는 평화"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지 만, 4세기부터 교회는 안식일의 옛 관습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로 설명된다. 첫째 는 321년 3월 3일 콘스탄틴 대제가 사회를 그리스도교 화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에게도 법으로 주일의 휴식을 의 무화한 것이다. 그때까지 주일은 모든 사람에게 노동의 날이었다. 황제는 '태양의 날' 을 모든 재판관들과 도시 에 사는 시민들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휴식의 날로 선포하였다. 또 다른 사실 하나는 아직도 매우 이상한 일 인데, 여러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의 준수와 함께 매우 자연스럽게 옛 안식일을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는 이 두 날을 "형 제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De castigatione). 이러한 관습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엄격해져 주일은 이중적인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주일은 십계명에서 명하는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유사한 의무적 휴식의 날이 며, 또한 미사를 봉헌해야 할 의무를 지닌 날이 되었다. 주일에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는 300~303년의 엘 비라(Elvira) 교회 회의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중세 후기에는 주일 미사 참례의 의무가 더욱 강화되어 이를 어기면 중죄가 되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관 련 없이 독자적으로 생겨나 발전하던 주일이 4세기 이후 방향을 바꾸어 점차적으로 주일의 '안식일화' 라는 특징 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신자들이 주일 미 사에 쉽게 참례하게 하는 긍정적인 작용도 하였지만, 다 른 한편으로는 주일 신학의 기본을 완전히 흔들어 놓는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실제로 주일 휴식의 남용 과 태만의 위험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변천 과정이야 어떻든, 그리스도인들의 주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과는 달리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기 념하는 주님께 봉헌된 예배의 날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신학적 · 전례적 의미〕 주일의 신학은 주일의 개념과 실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명의 핵심적 기초는 주일이 주간 파스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출발 하여 여러 다른 관점에서 주일을 설명한다. 주일은 구원 역사의 중심적이고 총괄적인 사건을 설명한다. 신자들은 주일 거행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고, 그들 자신의 구원을 실현한다. 교회는 파스카 신비로부 터 생겨났고(전례 5항), 교회는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 달할 때까지(에페 4, 13) 파스카 신비를 살고 그 신비를 통해서 드러나고 성장한다. 파스카 성사로서의 주일 : 아우구스티노에 따르면 주 일은 미래를 기다리는 날이고, 현재에 주목하는 날이며, 과거를 기억하는 날이다(《고백록》 5, 11). 이 표현은 주일 을 이해하고 주일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가르 쳐 준다. 주일은 무엇보다 전례적 표징이다. 그러므로 성 사적 표징들의 모든 차원과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주일 은 과거의 기억이고 구원 사건의 현재화이며, 미래의 선 포요 예언이다. 이 세 가지 차원이 주일의 거행 안에서 동시에 그리고 불가분적으로 실현된다. 아우구스티노는 주일에 대하여 '파스카 성사'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데, 이것은 주일이 과거사의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신 비' , 곧 과거의 기초 위에서 현재에 실현되는 실제 사건 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주일이 곧 그리스도의 생생한 현존을 실현하는 표징이고 신비라는 것이다. 주 일은 신자들에게 믿음 안에 받아들여지게 하고, 부활하 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게 하는 표징이다. 주일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의 한 조각이 아니다. 그 것은 성사의 품위에 들여 높여진 구원의 시간이다. 그러나 주일의 거행은 그리스도가 역사 안에 현존하는 양식인 교회에 의해 수행되는 인간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진다. 그 리스도는 교회의 행위 안에 현존하여 교회의 행위를 '거 룩한 신비' , 곧 주님을 믿는 이들을 위한 구원의 참된 샘 이 되게 한다. 그러한 성사적 행위들은 크게 셋으로 구분 된다. 곧 주일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말씀을 선포하 고 들으며, 빵을 나누는 예식을 통하여 주님의 파스카를 거행하는 것이다(전례 106항). 이 예식의 신비들을 매개로 주일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드리는 실제적인 효과를 내는 성사이고 표징이 된다. 사건의 세 차원 : 주일은 파스카의 기념적 표징인데, 파스카는 자신 안에 용해되고 없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간의 흐름을 구원의 순간들이 되게 하는 사건이다. ① 현재의 실현 : 주일은 무엇보다도 예수가 이 세상 에서 아버지에게로 넘어감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넘어 감' 은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고 성령을 보냄으로써 절정을 이루었다. 예수는 인간 의 살을 지닌 연약한 상태로부터 영광의 상태로 넘어갔 다. 아버지는 영광을 받은 예수를 역사와 우주의 주님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따라 모든 사람은 성사 의 거행과 참여를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고, '지금 여기에서' 파스카의 삶을 살아간다. 또한 온 우주는 묵시록이 이야기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를 때까지 나날이 새로워진다. ② 과거의 기념 :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은 구약의 모든 구원 계획의 도착점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한다 는 것은 옛 계약 안에서 하느님이 행한 '놀라운 일들' 을 상기하고 완성하는 것을 뜻한다. 옛 계약은 그리스도의 파스카에 대한 선포요 예언이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는 출애급이라는 구약의 파스카의 완성이다. 주일은 첫 창조를 기억하는 날로서 '첫날' 이다. 이 '첫날' 은 하느님이 빛을 만든 '빛의 날' , 곧 '태양의 날' 이다. 예수는 바로 이날에 부활하여 새로운 창조를 이루 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 (lux mundi)이요 '인류의 빛' (lumen gentium)이며, 정의의 태양이라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295?~373)는 주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날에 하느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셨고, 같은 날에 세상에 부활을 주셨다. 이날은 세상 창조의 시작의 날이고, 부활의 시작의 날이며, 주간의 시작인 날이다"(sern. 16).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이러한 이해를 더욱 발전시켜 매우 정확한 언어로 주일을 설명하였다. "첫 창조를 가리키는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 이 주일에 그리스도의 부활 로써 시작된 새로운 창조를 기억한다"(S.Th. Ⅰ-Ⅱ,q.103, a.3, ad 4). 이렇게 일요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축제의 날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거기에서 시작된 새로운 창조를 기념한다. 이날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분의 생명에 참여하여 새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듣는다. 또한 새로운 세상에 속하는 기쁨을 누리고 그 세상을 정의와 거룩함으로 건설하라는 사명을 의무로 받는다. ③ 미래의 예언 : 주일은 성사라는 의미에서 세 번째 차원, 곧 미래적 또는 종말론적인 차원을 지닌다. 주일은 선택된 이들과 함께 영원한 파스카를 거행하러 올 부활 한 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예고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 재림을 미리 체험한다.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 하며 나그네들인 우리가 걸어 나아가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 전례를 미리 맛본다 . · · · 하늘 의 모든 군대와 함께 주님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고, 성인들을 기억하고 공경하면서 그들의 친교에 참여하기를 바라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그분을 기다린다"(전례 8항). 그러므 로 그리스도 공동체는 주일의 전례 거행에 참여하면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교부들, 특히 바실리오는 주님의 날이 지닌 종말론적인 차원을 매우 심화시켰다. 주일은 부활한 분의 날일 뿐 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심판하러 오는 그분이 재림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부들의 생각은 '여덟째 날' 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주간의 첫째 날이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지시하는 것처럼, 여덟째 날은 미래 세계의 완성을 암시하고 파스카 신비에 대한 완전한 참여의 표징이 된 다. 주간의 일곱째 날이 우주의 시간 속에 있다면, 여덟 째 날은 7일의 시간성을 초월하는 영원의 표징이다. 주 님의 날은 세상의 시간으로 계산하는 7일이라는 주간 밖 에 있는 미래의 날, 곧 여덟째 날이다. 도래하는 세상의 표상으로서 여덟째 날의 개념은 주님의 날이 지닌 종말 론적인 차원을 매우 적절히 표현해 주고 있다. 이렇게 주일은 구원된 모든 존재의 삶의 방향을 가르 쳐 준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출애급, 곧 새로운 탈출을 하라는 부르심을 듣는다. 이러한 부르심을 따르는 그리 스도인의 삶은 파스카를 향한 발걸음이고, 주일을 거듭 하며 하느님의 영원한 안식, 곧 하느님과의 완전하고 결 정적인 친교를 향하여 걸어가는 여정이다. 이러한 여정 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온힘을 다하여 그리스도 자신과 그 분의 파스카에서 드러난 정의와 평화의 완전한 실현을 위하여 헌신해야 함을 깨닫는다. 주일에 대한 전체적인 신학이 이제 분명히 밝혀진다. 주일은 먼저 창조주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였음을 경축 하는 세상 창조의 기념일이다. 그리고 부활한 주님의 날 이요 성령을 선물로 준 날이며, 부활한 주님의 현존을 선 포하고 성찬례를 거행하는 교회의 날이다. 주일은 또한 인간의 날로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창조를 기리는 기쁨의 날이고, 안식일을 완성하는 휴식의 날이며, 모든 이가 함 께 자비와 사랑을 나누는 연대의 날이다. 마지막으로 주 일은 그리스도의 육화에서 충만에 이르고 부활에서 정점 을 이룬 시간의 의미를 알려 주는 근원적인 축일이며, 도 래하는 시대의 종말론적인 날로서 '날 중의 날' (Dies Dierum)이다. (⇦ 일요일 ; ↔ 평일 ; → 십계명 ; 안식일 ; 엘비라 교회 회의 ; 전례 주년 ; <주님의 날>) ※ 참고문헌 A.M.Triacca, Bibbia e liturgia, D. Sartore · A.M.Triaca eds., Nuovo Dizionario di Liturgia, Frascati, 1983, pp. 378~394/ M. Rooney(a cura di), la domenica, in L'anno Liturgico,Animimesis 6, Genova, 1988, pp. 67~91/ A. Adam, L'Anno Liturgico-Celebrazione del Mistero di Cristo, Liturgia e Vita 4, Leuman, Torino, 1984, pp. 44~621 C.S. Mosna S.C.J. Storia della Domenica dalle origini fino agli inizi del V secolo, Analecta Gregoriana 170, Roma, 1969/ P. Jounel, Le Dimanche, A.G. Martimort ed., L'Eglise en priere IV, La liturgie et le temps, Paris, 1983, pp. 23~37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 <주님의 날>, 1998. 5.31. 〔金宗秀〕
